메뉴 건너뛰기

close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또 군부대 폭행 사건이다. 피해자 윤아무개 일병은 사망했고, 가해자들은 언론들에 의해 '악마'로 낙인찍히고 있다. 공개된 피해자의 시신 사진이나 계속해서 밝혀지는 범죄행위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충분히 그럴만하다. 도대체 인간으로서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의 '악마' 거론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들의 행위가 매우 잔인했다는 것에는 십분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악마'라고 쉽게 칭해버리면 또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 '악마'였던 개인에게로 귀속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번 사건은 가해자들이 '악마'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까?

때마침 난 지난 주, 군대 선임과 현재 교사인 후배를 만났었는데 그들의 대화 속에서 이번 사건의 원인을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과연 우리는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1. 군대 선임과의 만남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 군 수사기록

관련사진보기


오랜만에 만난 선임은 앉자마자 내게 한 마디했다.

"요새 군대 왜 그러냐?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처음 선임의 말을 듣고는 피식 웃음부터 나왔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더니, 딱 그 꼴이기 때문이었다. 이 선임 역시 군대에 있었을 때는 나름 악명 높은 인물이었다. 태권도 3단에 무서운 얼굴로 별 것 아닌 일로도 밑의 후임병들을 '갈구고', '때리고'. 덕분에 며칠 동안 영창까지 다녀온 바 있는 우리 선임. 그런데 요새 군대 운운하다니.

그러나 한 편으로는 선임 말에 일부 수긍한 것도 사실이었다. 비록 나 역시 선임에게 욕을 먹고, 심지어 맞기까지 했지만 최소한 28사단의 윤 일병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까지 군대 선임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군대에서 한 욕지거리와 폭행이 결코 그의 본질이라고 느낄 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록 영창까지 다녀온 선임이었지만, 내 눈에 그것은 그가 악하다기보다, 그가 하필 군대라는 조직에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에 가까웠다.

상명하복과 구타가 여전히 존재하는 군대

상명하복의 계급이 중시되고, 여전히 구타라는 악습이 존재하는 군대. 그곳에서 20대 젊은이들은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들에게 권위를 세우기 위해 구타 등의 비합리적 행위를 비교적 쉽게 행한다. 그것은 일상화된 폭력이며, 나 하나만 반대한다고 달라지지 않을 일이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끊임없이 이를 개선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했듯이 개인이 '생각'을 하지 않는 이상 악은 우리에게 평범한 모습으로 찾아오기 마련인데, 아직도 우리의 군대는 개인의 생각을 막으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사병의 생각을 막기 위해 쓸데없는 '삽질'을 시키고, 자신들이 규정해 놓은 기준을 넘어서면 뭐든지 불순하다고 생각하는 대한민국 군대. 결국 악은 그 속에서 잉태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번 '28사단 가혹행위 사망 사건'이 벌어질 수 있었던 토양은 역시나 군대 시스템이다. 아무리 방송에서 <진짜 사나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하며 군대가 달라졌다고 홍보하더라도, 본질은 그리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비합리성의 정도는 계속해서 개선되겠지만, 이번 사건처럼 조직 속의 개인이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게 될 때, 폭력과 폭압에 기반을 둔 시스템의 본질은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다.

여전히 우리 군은 60만 대군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아니, 60만에 이르는 다양한 20대의 젊은이들을 강제로 징병하여 일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일지도 모른다.

#2. 교사 후배와의 만남

최근 28사단 병사폭행사망사건으로 군 사망사고 문제 여론이 확산 되고 있는 가운데, 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들이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호소문을 전달하기 위해 영내 진입을 시도하자 닫힌 정문 뒤로 병사들이 곤봉을 들고 대기하고 있다.
▲ 진압곤봉 들고 대기 중인 군 병력 최근 28사단 병사폭행사망사건으로 군 사망사고 문제 여론이 확산 되고 있는 가운데, 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들이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호소문을 전달하기 위해 영내 진입을 시도하자 닫힌 정문 뒤로 병사들이 곤봉을 들고 대기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오랜만에 만난 후배는 역시나 자신의 학교 이야기부터 꺼냈다. 중2 수학 선생님을 맡고 있는 녀석이었는데, 녀석의 넋두리는 꽤 심각했다.

"요즘 아이들, 우리 때와 너무 달라요. 제가 꿈이 선생님이었잖아요. 근데 이젠 선생님도 예전 같지 않아요. 우선 무서워요. 아이들한테 뭐라고 못한다니까. 윤리 선생님이 그러는데 학생들, 예전과 가장 많이 달라진 게 분노조절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래요. 집에서 감정을 배우지 못하고 오는 경우도 많고. 그래서 요즘 윤리 과목의 고민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감정을 가르치나 하는 거라네요."

후배는 이후 이어진 '28사단 가혹행위 사망 사건'에 관련된 대화 속에서도 위와 비슷한 원인분석을 내놓았다. 요즘 학생들이 분노조절장애 등의 문제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 이런 이들이 그대로 군대를 가면 이번 사건과 같은 사고를 일으키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군대가 그런 군인들을 세세하게 분류할 수 있다면 사고가 줄겠지만, 아직도 주먹구구식으로 사병 관리하는 것이 대한민국 군대인 이상 이번과 같은 사고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는 후배.

물론 후배의 말이 모두 옳을 수는 없다. 비록 녀석은 학교 현장에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늘어났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 전에는 그것을 개념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혹은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분노조절장애가 늘어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개연성은 충분하다. 인간성에 대한 교육은 거세된 채, 1등만이 살아남는, 무한경쟁으로 점철된 한국 사회 속에서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스트레스는 상상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를 기록하는데도 이에 대해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사회.

어쩌면 후배의 말대로 이번 '28사단 가혹행위 사망 사건'의 근원에는 단순히 군대 시스템만이 아닌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자란 청년들이 아직도 전근대적인 군대 시스템과 조우하면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동료가 맞고 있는데도... 전우들의 침묵

이번 '28사단 가혹행위 사망 사건'이 여느 사건보다 충격적인 것은 그 잔혹함 때문이다. 물론 전에도 그와 같은 일이 없었겠냐만은, 문제는 시점이다. 어쨌든 군대 역시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나아진다고 믿었는데, 이번 사건은 그 믿음을 정면으로 배신했다. 내가 근무했던 1999년에도 보기 힘들만큼의 잔혹한 가혹 행위들.

더욱 기가 막힌 건 그와 같은 참혹한 행위들을 옆에서 지켜만 본, 아니 오히려 동조하고 있는 이들의 존재다. 아무리 윤 일병이 잘못을 했더라도 그런 식으로, 죽을 정도로 구타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도를 넘어섰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은 모두들 입을 닫고 있었다. 도대체 왜?

물론 그것은 앞서 말한 군대 시스템 탓이 크다.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 상 후임이 선임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상명하복이 생명인 군대에서 후임이 선임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곧 하극상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며, 이는 자신에게도 절대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임을 중심으로 자신이 소대에서 왕따를 당할 가능성이 크다면, 과연 어느 누가 선뜻 선임에게 진언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인권에 대한 무감각이다. 사실 사람이 죽을 정도로 맞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군대 시스템을 넘어서서 한 인간으로서 차마 보기 힘든 장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군대의 선임이라고는 하지만, 당장 사람이 죽을 것 같다면 인지상정 말려야 되지 않겠는가.

군대 시스템 넘어 교육시스템 역시 문제

최근 28사단 병사폭행사망사건으로 군 사망사고 문제 여론이 확산 되고 있는 가운데,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들이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항의서한 전달을 위해 국방부 정문을 향해 가고 있다.
▲ 국방부 항의서한 전달 나선 유가족들 최근 28사단 병사폭행사망사건으로 군 사망사고 문제 여론이 확산 되고 있는 가운데,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들이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항의서한 전달을 위해 국방부 정문을 향해 가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가해자를 말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진실을 말하는 것조차 저어했다. 인류 보편적으로 가져야 할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한낱 군대의 조직논리에, 자신의 안위에 묻혀버린 것이다. 괜찮은 사람들만 있으면 개선되었다고 생각되지만, 정작 잘못된 폭력이 등장하면 이내 퇴보하고 마는 병영문화.

이는 군대 시스템을 넘어서서 우리의 교육 시스템 역시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가 각 개인에게 인권의 중요성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바, 그 결여의 결과가 잔혹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인간으로서의 감수성이 경쟁의 이름으로, 탐욕의 이름으로 생략되는 사회. 혹자들은 최근 벌어진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을 운운하며 이 역시 '악마'의 짓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악마를 키우고 있는 것은 현재 사회 시스템에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는 우리 자신이다.

'28사단 가혹행위 사망 사건'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도 모른다. 정부는 책임자들을 문책하고 다시금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있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아무리 소원수리를 한다고 해도 신뢰가 병행되지 않는 이상 내부고발은 없을 것이며, 아무리 병영문화를 개선한다 한들 인권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이상 병사들은 잘못된 폭력 앞에 쉽게 무릎 꿇을 것이기 때문이다. 군대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태그:#군대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