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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재보선 결과 새누리당 후보가 15곳 중 11곳에서 당선된 가운데, 7월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선자들이 꽃다발을 받으며 축하받고 있다.
 7.30 재보선 결과 새누리당 후보가 15곳 중 11곳에서 당선된 가운데, 7월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선자들이 꽃다발을 받으며 축하받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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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 규모였다는 7·30 국회의원 재보선이 끝났다. 여당의 압승, 야당의 참패로 끝났다는 평가다. 1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새정치연합은 후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휘청대고 있고,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애써 표정관리를 하는 듯하다.

정치전문가나 정치인들은 이런저런 평가와 분석을 내놓는다. '세월호 참사를 정치에 악용하려고 했던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다'라며 '세월호 피로감'을 원인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정권심판론을 내건 야당에 등을 돌리고 여당이 내놓은 일꾼론을 지지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쟁보다는 민생경제를 챙기라는 준엄한 심판이라는 의견도 있다. 전략공천을 앞세운 야당 대신 지역인재를 내세운 여당에게 표를 줬다고도 한다.

나는 이런 식의 평가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 별 의미 없는, 결과에 꿰맞춘 아전인수식 평가라고 보는 것이다. 동의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무능한 야당에게 국민들이 표를 주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그럼 청와대와 여당은 어떠했는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청와대가 민생경제를 챙기려는데 야당이 막은 것도 아니고, 새누리당은 공천을 민주적으로 하는데 새정치연합만 구시대적으로 한 것도 아니다. 새누리당은 새 세상을 만들려는 신진 세력인데, 새정치연합은 과거로 돌아가려는 구시대 세력인 것도 아니다.

7·30 재보선 결과 당선자 분포는 새누리당 11 : 새정치연합 4 : 진보정당 0(진보당, 정의당, 노동당)이다. 새누리당의 압승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번 재보선이 실시된 선거구의 원래 정당 분포는 9(새누리당) : 5(새정치연합) : 1(진보당)로, 크게 다르지 않다. 원래 새누리당 의원이 있던 지역은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었고, 원래 새정치연합 의원이 있던 지역은 새정치연합 후보가 다시 당선되었다. 예외는 딱 2곳인데, 하나는 경기 수원을 선거구이고 다른 하나는 전남 순천곡성 선거구이다.

수원을 지역 18대 국회의원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정미경 의원이었다. 그런데 19대 총선에서 배은희 당시 비례대표 의원이 전략공천되자 반발한 정미경 의원이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이에 비해 민주당(현 새정치연합) 신장용 후보는 야권 단일화에 성공했다. 그 결과 여권 후보가 57%(배은희+정미경)를 얻었음에도 40%를 얻은 민주당 신장용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신장용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당선무효형을 받아 치러진 이번 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다는 의미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 정당이 바뀐 또 다른 지역인 전남의 순천곡성은 19대 총선에서 야권 단일화를 통하여 진보당 김선동 의원이 재선된 곳이었다. 하지만 김선동 의원이 한미FTA 비준안 처리에 반대해 국회에서 최루가루를 살포한 혐의로 당선무효형을 받으면서 보궐선거가 실시됐다. 이곳에서는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다.

2012년 4월 실시된 19대 총선에서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이후 새누리당으로 합당)이 얻은 의석수가 157석인데, 7·30 재보선 이후 현재 새누리당 의석수가 158석이다. 2년 전 19대 총선 결과가 현재에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새정치연합 등 야당이 망하고, 새누리당이 엄청 잘 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전후 사정을 살피지 않은 수박 겉핥기식 평가일 수 있다.

선거 전후 무엇이 달라졌나... 청와대·여당 정당화 근거 안 된다

이번 재보선 전략 중 하나가 지역 토박이, 지역 일꾼론 등 지역 마케팅 전략이다. 유정복 의원의 인천시장 선거 출마로 공석이 된 김포에서는 홍철호 후보를 김포 토박이로 치켜세운 새누리당이 경남도지사를 지낸 새정치연합 김두관 후보를 '400km를 날아온 정치 철새'라고 비아냥거렸다.

그 논리대로라면 국회의원 임기 중에 지역구 김포를 버리고 인천시장 선거에 출마한 유정복 시장은 뭐가 되는가? 유정복 시장은 군수, 시장, 국회의원 3선을 지내는 등 정치 인생 대부분을 김포에서 활동했다. 그런 그가 인천이 고향이라며 인천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새누리당이 김두관 후보에게 들이댄 논리대로라면 유정복 시장은 철새가 아닌가?

비슷한 선거전략이 수원에서도 사용되었다. 경기도지사(경기도청은 수원에 있다)를 지낸 손학규 새정치연합 후보는 수원에 연고가 없다고 공격받았고, 같은 수원이지만 수원정(영통)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하였다가 수원을(권선) 선거구에 공천된 백혜련 새정치연합 후보도 낙하산 후보로 비난받았다. 그럼 성남(성남분당을) 국회의원 출신으로 이번 재보선 평택을 선거구에 공천 신청을 했다가 공천을 못 받자 탈당 카드까지 내세워 결국 수원정에 전략공천된 임태희 새누리당 후보는 철새 아닌가?

서울 동작을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된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이 압권이다. 나 의원은 주소를 늦게 옮기는 바람에 투표권도 없었다. 그런 그가 "동작의 외손녀"라고 선거운동을 했다. '노량진에 있는 병원에서 출생하고, 이름을 상도동 작명소에서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동작구이지만 노량진과 상도동은 동작'갑' 선거구다. 마지막으로 내세운 것이 외가가 동작을 지역인 흑석동에 있었다는 것이다.

서울 출생으로 부산과 인천지방법원에서 판사를 지낸 나경원 의원은 2004년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에 입성한다.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설립하고 그가 이사를 지낸 사립학교는 서울 강서구에 있다. 18대 총선 때는 애초 송파구에 공천을 신청하였는데, 아무 연고가 없던 중구에서 출마하여 당선된다. 서울시장 출마를 위하여 의원직을 사퇴한 후 정치권을 떠났다가 2년 만에 이번 동작을 보궐선거에 출마하였다.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가까운 예로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을 보자. 고향은 충남 천안이지만 국회의원 지역구는 줄곧 서울 동작구였다. 하지만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경기 화성갑 선거구에 출마했다. 느닷없는 화성 출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외가가 화성이며, 6.25 전쟁 기간 동안 1년 정도 피난 생활을 화성에서 했다"고 연고를 주장했다.

18대 국회의장을 지낸 박희태 전 새누리당 의원은 원래 지역구가 경남 남해하동이었다. 2009년 재선거에서 "아내의 고향이 양산"이라며 양산에 출마했다. 이런 비슷한 사례는 새누리당에서 무수히 많다. 자신들이 지역 연고 없이 전략공천을 할 때는 '힘 있는 인물론'이라 하고, 상대 정당이 그렇게 하면 '철새 정치인', '낙하산 후보'라고 몰아붙인다.

국회의원과 도지사·시장... 이름은 다른데 공약이 똑같다?

7·30 순천·곡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7월 30일 오후 전남 순천시 새누리당 전남도당 사무실에서 당선이 유력시된 뒤 조충훈 순천시장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활짝 웃고 있다.
 7·30 순천·곡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7월 30일 오후 전남 순천시 새누리당 전남도당 사무실에서 당선이 유력시된 뒤 조충훈 순천시장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활짝 웃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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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오랫동안 지역에서 지역민들과 동고동락하여 지역을 잘 아는 후보가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것은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역일꾼론으로 포장되어 타지역 출신을 배제하는 제2의 지역주의로 진화(?)하고 있는 현 상황은 우려스럽다.

국회의원은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이다. 우리 헌법은 국회의원을 별도의 조항으로 하여 기능과 역할, 권리와 의무 등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교과서에 나오는 국회의 중요 기능(권한)은 입법권, 조세권(재정권), 예산심의권, 국정통제감시권 등이다. 쉽게 말해 국민을 대표하여 법을 만들고, 세금을 결정하며, 예산을 심의하고, 나아가 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우습게도 국회의원들이 지역개발을 우선공약으로 내건다. 그래서 공약만 보면 이게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인지, 지방자치단체장 또는 지방의원을 뽑는 선거인지 구분이 안 된다. 공약이 거의 똑같기 때문이다. 이를 지역일꾼, 지역개발로 포장한다.

예산심의권이나 국정통제권의 일부가 지역개발과 연관될 수는 있지만, 오히려 헌법 제64조는 국회의원이 지위를 남용하여 자신이나 타인이 계약, 처분에 의하여 권리·이익, 직위를 취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예산 심의 때 자기 지역구 예산을 챙기는 관행을 '쪽지 예산'이라고 비판해온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크게 화제를 몰고 온 인물은 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된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다. 그는 민주화 이후 최초의 보수정당 출신 전남 지역구 의원이 되었다. 우리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중대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공약은 대단히 우려스럽다.

그는 '예산 폭탄으로 지역발전을 10년 이상 앞당기겠다', '국회사무실에 호남예산 지원 전초기지를 만들어 호남지역의 예산 담당 공무원들이 사용하도록 하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므로 중앙정부 예산을 순천곡성에 끌어와서 지역 개발에 쓰겠다는 것이다. 순천곡성 유권자들은 여기에 화답했다. 새누리당은 정말로 이정현 의원을 지역개발과 예산 관련 상임위원회인 예결위원회와 산업자원위원회에 배치했다.

이건 정치권력 사유화의 나쁜 선례가 될 것이다. '차라리 박지만(박근혜 대통령 동생)을 후보로 내서 누나한테 예산 타오게 하라'는 조롱이 나오는 이유이다. 지난 이명박 정권 당시 '모든 것은 형(이상득 전 의원)에게 통한다'는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조롱이 유행했던 이유도 이런 것이다. 지역주의, 정실주의의 상징인 '우리가 남이가?'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외피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

지역주의 욕망을 넘어 국회의원의 헌법적 권한 생각해야

권력자와의 친소(親疎)에 의해서 국가사업이 결정되고 국민의 혈세가 배당되는 이런 행태는 민주주의에서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하는 적폐(積幣)다. 지역일꾼론, 지역개발론이라는 포장으로 미화해서는 안 된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지역을 잘 챙기는 정치인'이란 말이 지역 행사에 잘 참여하고 중앙정부 예산 잘 따오는 국회의원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극단적으로, 국회 본회의와 지역구 체육대회가 있을 때 국회가 아닌 지역구 행사에 참가하는 것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것이 바람직한 지역일꾼, 지역구 국회의원의 상이 맞나? 이런 지역일꾼이라는 의미가 어디서 태어났느냐, 어느 학교를 다녔느냐, 어디서 살고 있느냐 하는 연고지 개념과 결합되어 사용되는 한 결코 민주주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능할 수 없다.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일꾼'을 뽑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여 법을 만들고 나라 일을 할 '나라일꾼'을 뽑는 것이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나 지방의원 선거와 구분되어야 한다. 국회의원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은 누가 우리 지역에 대기업 공장을 유치할 수 있고, 어떤 후보가 중앙정부 예산을 더 많이 받아낼 수 있는가(중앙권력과 누가 더 가까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이슈인 '세월호 특별법 관련 입장이 무엇인가', '쌀시장 개방에 따른 관세화를 어떻게 보는가', '4대강 사업에 쓰인 국가 예산을 어떻게 보는가', '쌍용차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국가보안법 문제, 남북통일 문제에 대한 비전은 무엇인가' 등 국가정책에 대한 입장과, 나아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하는 국제정책에 대한 입장이 국회의원 선거의 판단 근거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우리 국회의원 선거에는 이런 것이 없고, 있어도 쟁점이 되지 않는다. 국회의원이 해야 하는 일이 자기 고장으로 돈(중앙정부 예산) 끌어오는 것이라는 생각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이 말처럼 정말로 국회의원이 전부 지역발전, 예산 가져오기에 몰두하면 어떻게 될까? 국회는 아비규환이 될 것이다. 머지않아 국민의 대변자가 아니라 중앙권력의 하수인으로 완전히 전락한 국회를 보게 될 것이다. 지금보다 더.

'동작의 외손자', '3대째 김포 토박이', '400km 철새' 등의 말에 나타난 변종지역주의, '예산폭탄', '강남4구' 등의 금전적 욕망을 자극하는 정치로는 이 나라가 한 치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헌법에 규정된 국회의원이 권한과 의무를 여야가 함께 돌아보기를 바란다.


태그:#7.30, #이정현, #나경원,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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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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