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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에 한눈파는 사이, 세월호에 올라탄 국민들

유병언 전세모그룹 회장이 숨진채 발견되었고, 7.30 보궐선거도 끝났다. 어느덧 8월이다. 선거에 참패한 새정치민주연합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당을 혁신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당의 혁신만큼이나 국회에서 제1야당으로서의 역할이 시급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책임을 유병언 일가로 떠 넘겼고, 정부는 언론이 유병언 일가에 집중한 사이 엄청난 정책들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지난 두세 달 사이 정부는 쌀 수입개방 선언과 의료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원전과 석탄에 기반을 둔 전력생산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쌀, 의료, 원전 안전과 같은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정책을 한꺼번에 밀어붙인 것이다. 각기 다른 세 가지 정책을 발표하고 추진하는 방식이 놀랍도록 닮아 있다. 행정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하면서 국회의 입법과 감시 기능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독단적인 행정부 무시당하는 국회

7월 18일,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쌀 관세화'를 선언했다. 쌀 시장을 개방해 관세만 내면 어떤 쌀이든 수입해 판매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주식인 쌀의 생산기반을 지키기 위해 허가 없는 쌀 수입을 양곡관리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양곡관리법 개정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9월말까지 양허표 수정안을 WTO에 통보한다는 발표했다. 쌀 수입개방을 기정사실화하고, 농민들도 국회도 농식품부 일정에 맞춰 절차대로 따라오라는 식이다.

6월 11일, 보건복지부는 의료법인의 사업범위를 여행업·종합체육시설업·건물임대업 등으로 대폭 확대하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법인병원에 '영리자회사'를 허용하는 가이드라인도 발표했다. 현행 의료법으로 의료기관은 '비영리법인'으로 규제돼 있어 영리자회사를 운영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행규칙을 개정해 의료민영화를 밀어붙이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도 복지부가 추진하는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확대와 자회사 허용은 의료법과 충돌한다고 의견을 낸 바 있다. 법조인들은 의료법 위임범위를 넘은 사안을 시행규칙 개정으로 처리하는 것은 행정부가 위법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7월 18일, 쌀 시장 전면 개방에 반대하는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 회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삭발을 했다. 강다복 전여농 의장은 집회후 세월호 진상규명 동조단식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 쌀수입 전면개방 반대를 위해 삭발을 한 강다복 전여농 의장 7월 18일, 쌀 시장 전면 개방에 반대하는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 회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삭발을 했다. 강다복 전여농 의장은 집회후 세월호 진상규명 동조단식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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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산업통상자원부는 제7차 전력수급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수요전망, 수요관리, 발전소 건설 및 송배전계획을 포괄하는 계획이다. 발전사들이 건설의향서를 제출하면 산업부가 이를 평가해 발전소 건설 여부를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담는다. 그런데 최근 산업부는 전기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해 발전소 건설의향평가제를 폐지하고 정책계획으로 전환한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되면 산업부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원전과 석탄 중심의 전력시스템이 공고해질 가능성이 높다. 산업부는 재생가능에너지에는 관심이 없다. 지난 7월21일 산업부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의 의무이행목표 달성시기를 2022년에서 2024년으로 2년 연장하고, 석탄화력발전소의 온배수를 신재생에너지로 편입하는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세월호 사건 이후 대통령은 '관피아'를 척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상은 행정부가 독단적인 정책을 밀어붙이는 형국이다. 소통행정은 찾아볼 수 없고, 국회를 대놓고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기에 국회에서 야당이 국민의 생존이 걸려있는 중대 현안에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매우 중요한 시점이 되었다.

쌀, 정부-농민-국회 협의체 구성해야

쌀을 지키려면 먼저 정부가 9월말까지 양허표 수정안을 WTO에 통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내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수입이후 대책에 부실하다는 것을 적극 제기해야 한다. 국제통상전문가 송기호 변호사는 쌀개방을 하더라도 내년 1월부터 자체적으로 국내조치를 시행하고, 3월에 통보하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9월말 통보는 WTO 규정에도 없는 정부가 자체적으로 정한 시안이라는 것이다.

국회는 정부가 일방적인 쌀 시장개방 선언을 철회하도록 압박하고, 정부-농민-국회 협의체를 구성해 현안을 논의해야 한다. 일본과 대만도 쌀시장을 개방했지만 정부가 농민들과 대화와 합의를 통해 쌀개방에 대비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정부는 농민을 통보의 대상으로만 대하고 있다. 쌀 대책, 농업 대책 없이 쌀시장을 개방하는 것은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일이다.

특히 농촌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자체장들이 나서야 한다. 이번 기회에 청년농민 활성화, 안정적인 농지확보, 우리 먹거리를 기반으로 하는 농업정책 수립 등을 논의해야 한다. 도시민들도 나서야 한다. 쌀이 무너지면 유전자조작식품(GMO)확대 등 먹거리 안정성도 위협받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 철회해야

7월 22일 단 하루만에 67만 명이 의료민영화를 위한 의료법 시행규칙 반대 서명에 참여했다(총 120만명 서명). 의료법 시행규칙 입법예고 종료일을 앞두고 복지부 입법예고 의견쓰기란에는 6만 8백 개의 항의 글이 달렸다. 국민들은 병원이 생명을 담보로 한 돈벌이 산업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의료민영화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보건복지부는 민의를 반영해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과 영리자회사 가이드라인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 법제처도 의료법을 위반한 보건복지부의 의료법 시행규칙을 반려해야 한다.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의료법인이 상법상 회사에 출자하거나 지분을 소유할 수 없도록 부대사업 범위를 제한적으로 열거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현 여대야소정국에서 개정안이 통과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당론을 의료민영화 저지를 내걸고 싸움을 벌여야 할 판이다.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공의료 확대가 답이다.

고리1호기 폐쇄에 관한 국민대토론회 열어야

청도 삼평리 345kV 송전탑공사 현장에서 주민들이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3주째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정치권의 현장 방문과 중재가 절실히 필요한 현장이다.
▲ 8월4일 오전 청도 삼평리 송전탑 공사 현장 청도 삼평리 345kV 송전탑공사 현장에서 주민들이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3주째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정치권의 현장 방문과 중재가 절실히 필요한 현장이다.
ⓒ 청도345kV 송전탑반대 공동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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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부산시민들이 달라졌다. 고리1호기 즉각 폐쇄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산업부의 7차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삼척과 영덕의 신규핵발전소 건설 기수와 고리1호기, 월성1호기 폐쇄 여부가 담길 예정이다. 삼척에서는 핵발전소 반대를 공약한 시장이 당선되어 주민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청도에서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가 지나가는 345kV송전탑 반대로 주민들이 3주째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신규핵발전소 반대 현장, 수명다한 고리1호기 현장, 송전탑으로 고통받는 밀양과 청도. 국회의원들이 현장으로 가야 한다. 고통 받는 국민들과 함께 싸우는 정치인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지난 6월 30일 정의당 김제남 의원은 신규원전을 건설과 수명연장시 지방자치단체장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은 원전 수명연장 금지법안을 발의했다. 녹색당도 고리1호기 폐쇄와 밀양·청도 송전탑 공사중단을 위한 정당연설회를 꾸준히 열고 있다. 탈핵과 에너지전환을 위한 야당의 정책연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7월21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원전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고리 핵발전소를 방문해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의 즉각 가동중단과 국민 대토론회"를 제안했다. 녹색당은 이러한 제안를 환영하며, 야당이 협력해 탈핵을 위한 국민 논의의 장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세월호특별법, 진실을 밝혀야 안전이 온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한국사회는 달라져야 한다. 세월호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털끝만큼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쌀시장 개방과 의료민영화, 원전확대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기고만장한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노숙자'에 비유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돈을 위해 생명을 포기하고, 이윤을 위해 안전은 여전히 뒷전이다. 세월호 이후에 벌어진 고양시 버스터미널 화재 사건, 장성 요양병원 화재, 광주 소방헬기 추락, 태백열차 충돌 사건 등 국민의 일상을 불안케 하는 사고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요즘처럼 한국사회에 사는 일이 불안했던 적이 있을까 싶다.

진실을 밝혀야 안전이 온다. 새월호 특별법 제정을 필두로, 생존을 지키기 위해 쌀, 의료, 탈핵과 에너지전환 분야의 야당 정책정책 공조가 필요하다.
▲ 7월 24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문화제에 모인 시민들 진실을 밝혀야 안전이 온다. 새월호 특별법 제정을 필두로, 생존을 지키기 위해 쌀, 의료, 탈핵과 에너지전환 분야의 야당 정책정책 공조가 필요하다.
ⓒ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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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하는지 이유를 알아야겠다. 생존 학생들이 "왜 내 친구들이 그렇게 죽어갔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이 핵심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은 우리 사회가 안전한 사회로 가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려면 국회에서 야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와 새누리당에 의해 우리는 세월호에 올라탄 형국이 되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나서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필두로 '생존'을 지키기 위해 쌀, 의료, 탈핵과 에너지전환을 패키지로 묶어서 싸우는 것도 방법이다. 몇몇 국회의원들의 개인기가 아니라 일사분란하게 싸우는 제1야당의 모습을 기대한다. '생존'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녹색당도 함께 하겠다. 현장에서 싸워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 시기를 놓치고 우물쭈물 하다가는 우리사회가 세월호와 같이 침몰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녹색당 홈페이지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쌀 시장 개방, #의료민영화, #원전 확대, #새정치민주연합, #야당 정책공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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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기후위기 대응과 지역에너지전환을 중심으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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