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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낯선 도시의 누군가가 당신에게 무료로 집 소파와 안락한 하룻밤을 제공한다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여행자와 현지인은 제법 끈끈한 우정과 믿음의 울타리가 생긴다. 어느덧 세계인의 여행법으로 급부상한 카우치 서핑을 소개한다.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

소파보다 긴 의자를 뜻하는 말, 카우치. 이는 돈을 내야 마련할 수 있는 침대와 대조되는 상징이다.
▲ 카우치서핑 소파보다 긴 의자를 뜻하는 말, 카우치. 이는 돈을 내야 마련할 수 있는 침대와 대조되는 상징이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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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휴가철이다. 하루에도 수천수만 명의 사람들이 공항을 들고 나며 서로의 여행담을 늘어놓는다. 한해 여름 성수기의 출입국자가 500만 명을 넘는 요즘 시대에, 높은 경쟁을 뚫고 어렵사리 항공권을 구한 후에도 준비해야 할 것은 많다. 하지만, 일행이 없어 홀로 떠나는 여행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아무래도 숙소다.

호텔은 혼자 떠나는 처지에 과하고 민박이나 게스트 하우스는 어색하다. 만약 당신이 모르는 사람들 틈에 홀로인 것이 달갑지 않다면, 여기 색다른 대안이 있다. 소파보다 긴 의자를 뜻하는 말,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이다.

카우치 서핑은 한국어도 지원한다. http://www.couchsurfing.com/
 카우치 서핑은 한국어도 지원한다. http://www.couchsurfing.com/
ⓒ 카우치 서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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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치 서핑은 2004년 미국 보스턴에 살던 대학생 케이시 펜턴(Casey Fenton)이 만든 여행자들의 소셜 네트워크다. 직역하면 '소파 찾기' 정도인 카우치 서핑은 자기 집의 빈 소파를 여행자에게 기꺼이 내줄 수 있는 '호스트'와 그런 호스트와 인연을 맺고 머물면서 함께 여행하는 '게스트'로 이루어져 있다.

쉽게 말해 처음 보는 외국인의 집에서 잘 수 있는 셈이다. 이렇게 말하면 도대체 누가 왜라고 하겠지만, 카우치 서핑은 이미 전 세계 231개국, 6만여 도시에 133만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는 검증된 커뮤니티다.

'비영리'를 내세우는 카우치 서핑이 이렇게까지 세계적인 호응을 얻는 것은 단순히 무료로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여행자를 세계 각국의 문화 한가운데로 끌어들이는 친구이자 안내자이기 때문이다.

첫 카우치서핑, 농담 반-진담 반의 마음으로 시작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의 생애 첫 카우치 서핑. '신라면' 티셔츠는 신의 한수였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의 생애 첫 카우치 서핑. '신라면' 티셔츠는 신의 한수였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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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관련된 서적이 꽤 여럿 출판될 정도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지만, 내가 스페인을 방문했던 2012년만 해도 한국에서 카우치 서핑은 아주 낯설었다. 세계일주 도중에 방문했던 바르셀로나에서 재워 줄 호스트를 구하노라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농담 반, 진담 반의 마음이었지만, 답장을 보내온 사람은 무려 10여 명에 달했다.

그렇게 알게 된 이드리스는 전혀 알아 먹을 수 없는 메뉴로 가득 찬 식당과 후미진 골목 속 바와 아지트로 나를 안내했다. 그렇게 내가 선물한 '신라면' 티셔츠를 입은 그녀와 여행책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소소하면서 흥미진진한 며칠을 보냈다.

밤부터 낮까지, 춤과 노래가 끊이지 않는 리우를 오롯이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두번째 호스트였던 프리실라 덕분이었다.
 밤부터 낮까지, 춤과 노래가 끊이지 않는 리우를 오롯이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두번째 호스트였던 프리실라 덕분이었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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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을 얻은 나는, 곧 이어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다시 카우치 서핑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당시에 같이 여행하던 친구와 함께였다. 리우의 이민국에서 근무하는 프리실라는 게스트를 위한 간이 침대를 구비할 만큼 카우치 서핑에 있어서는 꽤 베테랑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소위 '파티 피플'이었다.

매일 매일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들 수 없다는 그녀와 함께 지낸 2박 3일 동안, 술을 마시지 않는 그녀를 본 것은 만났을 때와 헤어질 때뿐이었다. 브라질 최고의 해변 코파카바나를 거쳐 이파나마까지 이어지는 밤바다를 걸으며 우리는 매일매일 다른 펍을 찾아 함께 어울렸다. 그리고 혼자서는 엄두도 나지 않았을 산타테레사의 뒷골목과 라파의 길거리 파티를 즐겼다. 얼마전 브라질이 독일과의 월드컵 4강전에서 무참히 패배한 날 아침에도 나는 프리실라의 페이스북에서 엄청난 양의 맥주를 들이켜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아미가 아니었다면 멕시코 시티는 끝내 마약과 범죄의 도시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른다. 국립대학의 한 해 등록금이 30달러인 교육 선진국인데 말이다.
 아미가 아니었다면 멕시코 시티는 끝내 마약과 범죄의 도시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른다. 국립대학의 한 해 등록금이 30달러인 교육 선진국인데 말이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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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사정이 여의치 않은 호스트들이 숙박을 제공하는 대신 도시의 가이드를 자처하기도 하는데 멕시코 시티에서의 세 번째 카우치서핑이 그랬다. 방학을 맞아 시 외곽의 부모님 집에서 머물던 아미는 나와 단 하루를 여행하기 위해 기꺼이 가이드를 자처했고, 그 덕분에 나는 멕시코 제 1의 대학인 UNAM 대학을 방문하는 행운을 맞았다.

우리에겐 마약과 범죄의 온상인 멕시코조차 한 학기 등록금이 3만~4만 원인 교육선진국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일정 때문에 멕시코 최고의 쇼인 레슬링을 보지 못하는 나를 위해 방문했던 박물관도 흥미진진했다.

이처럼 카우치 서핑은 별의 개수에 따라 숙소의 명성이 평가되는 21세기에, 단지 하룻밤으로 숫자로 평가할 수 없는 인생의 추억과 경험을 체득할 수 있는 고유의 가치를 제공한다. 이용방법도 복잡하지 않다.

홈페이지에 접속해 회원 가입을 하고 여행할 국가와 도시를 선택하기만 하면 숙소 제공자들의 정보가 화면 가득 펼쳐진다. 이름, 도시, 성별, 사용언어, 자기 소개와 카우치 서핑 이용횟수, 친구 수, 다른 사람의 평가, 여행했던 국가 등등, 낯선 사람과의 체류에서 오는 막연한 불안감을 방지하기 위해 제법 상세한 정보가 제공되니 게스트는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최근에는 자체적으로 'Verified(검증됨)' 마크를 붙여 더 신뢰도가 높은 호스트들을 구분하기도 한다.

나라마다 친구 한 명씩 두는 것도 꿈만은 아니다

등록된 친구가 무려 59명이나 되는 어느 호스트의 프로필.
 등록된 친구가 무려 59명이나 되는 어느 호스트의 프로필.
ⓒ 카우치 서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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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카우치 서핑을 단순히 무료 숙박의 개념으로만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호스트의 집에서 자는 것 자체는 무료지만, 게스트에게는 그들과 어울리며 교류해야 할 일종의 의무가 존재한다.

같은 공간에서 자고, 먹고, 생활하고, 이야기하면서 현지인의 명소나 음식점을 다니다 보면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이 들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호스트의 안내를 받아 다니다 보면 정작 내가 가고 싶은 유명 관광지를 못 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며, 지나치게 무관심한 호스트의 경우 그저 방치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전세계의 수많은 여행자들이 오늘도 빈 카우치를 찾아 헤매는 이유는 '나 브라질에 친구 있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카우치서핑과 함께라면 나라마다 한명씩 친구를 두는 것도 꿈만은 아니다.

자, 이만하면 충분히 호기심과 고민이 생기지 않는가? 그런 사람을 위해 몇가지 가이드를 아래에 정리했다.

초보자를 위한 카우치서핑 가이드
1. 카우치를 제공할 호스트를 고를 때에는 상대의 프로필을 자세히 읽어봐야 한다. 담배는 피는지 안피는지, 애완동물이 있는지 없는지, 위치가 시내에서 가까운지 등을 잘 확인해야 나중에 도착해서 당황할 일이 없다. 특히 호스트가 출근하는 경우, 빈집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호스트의 퇴근시간에 맞춰서 같이 집에 들어와야 한다.

2. 대부분의 호스트들은 기본적으로 두 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지만, 당연히 한국어를 구사하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영어실력은 필수다.

3. 해당 호스트와 만난 후 소감이나 후기를 적어 놓은 것을 '레퍼런스(References)'라고 하는데, 이를 통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간접적으로 알 수있다. 과거 카우치 서핑을 통해 위험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를 방지하는 최고의 방법은 리뷰를 꼼꼼히 읽고 레퍼런스가 많은 호스트를 선택하거나, 가족과 함께 기거하는 호스트를 선택하는 것이다.

4. 내가 호스트들의 레퍼런스를 보는 것처럼, 호스트들도 나의 레퍼런스를 본다. 만약 당신이 레퍼런스가 없는 신규 유저라면 그들은 당신의 프로필을 보기 때문에 가입시에 작성하는 프로필은 최대한 상세하게 적어야 성공률이 높다.

5. 카우치 서핑은 기본적으로 무료이지만, 단순히 '무료 숙박'의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점원과 손님의 관계가 아니라 일반 가정집에서 머무는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그들의 문화, 그들의 생활에 맞춰서 지내겠다는 열린 마음이어야만 당신이 꿈꾸던 기억을 만들 수 있다. 물론 그들도 우리에게 최대한 많은 배려를 해줄 것이다.

6. 호스트를 위한 작은 선물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이제는 일반화 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지만 가장 빠르고 쉽게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은 음식이다. 무엇이든, 한식을 손수 요리한다면 당신의 호스트는 영원히 당신을 잊지 못할 것이다.



태그:#카우치서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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