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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 수사 실무책임자였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2013년 5월, '국정원 대선개입·정치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에서 10시간 넘게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고 있다.
▲ 참고인 조사 받은 권은희 수사과장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 수사 실무책임자였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2013년 5월, '국정원 대선개입·정치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에서 10시간 넘게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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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저녁,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한 식당.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을 돕기 위해 만든 '장진수와 함께 하는 사람들(아래 장함사)'의 모임이 있었다. 장함사의 총무격인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과 공익제보자 지원 단체인 호루라기 재단의 이영순 사무국장을 비롯해 열 명 남짓한 사람이 모였다.

장 전 주무관은 지난 2012년 민간인 불법 사찰 증거 은폐에 청와대가 개입했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아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 사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장 전 주무관을 돕고자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장 전 주무관은 지난 5월 책 <블루게이트>(오마이북)를 냈다.

이날 모임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채 일부 사람만 초대됐다. 특별 손님이 있어서였다. 바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주인공이었다. 참석자들의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권 전 과장의 7·30 재보선 출마 여부에 쏠렸다.

전략공천이 확정되기까지 권은희 전 과장은 언론 접촉을 극도로 꺼렸다. 연일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 소문이 흘러나왔으나 그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는 이날 모임에서도 "길가다 알아보는 이들이 많아서 가방에는 선글라스와 모자를 들고 다닌다"고 토로했다.

집요한 물음에 그는 "이미 (사직 소감문에서) 다 밝혔다"며 말을 아꼈다. 그는 지난달 30일 발표한 소감문에서 "7·30 재보선 출마에 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관련기사 : 권은희 "재보선 출마 안 해... 진실 알리기 위해 사직") 하지만 지난 9일 새정치민주연합은 권 전 과장을 광주 광산을에 전략공천했다.

그의 공천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본질이 흐려진다, 국기 문란 사건이 정치적 논쟁으로 격하된다 등이 그것이다. 불익을 감수하고 진실을 밝히려 애쓴 노력과 진정성도 훼손된다고 했다. 이런 우려에도 그는 정면 돌파 의지를 밝혔다.

도대체 무엇이 그의 결심을 바꾸게 한 것일까? 이날 모임에서 만난 권 전 과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공익제보, 사회적 책임 그리고 정의와 공평을 화두에 올렸다.

장진수와 권은희의 인증샷

모임을 시작하면서 안진걸 처장은 참석자들에게 "(공익제보자로서) 권 전 과장과 장 전 주무관이 동병상련을 느끼는 것 같아서 초대했다"며 "권 전 과장의 사직을 위로하기 위해 불렀다"고 설명했다.

권 전 과장은 지난해 참여연대의 의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시상식에서 2012년 수상자인 장진수 전 주무관 등 역대 수상자들을 만났다. 권 전 과장은 시상식에서 "공익 제보를 하시는 분들이 이면에 고통을 겪고 계시다는 걸 이 자리를 통해 절절히 느꼈다"고 말했다.

권 전 과장은 이날 장함사에 금일봉을 전달했다. 장 전 주무관과 권 전 과장은 사이좋게 '인증샷'도 찍었다.

이 자리에서 장 전 주무관은 권 전 과장에게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는 언제 처벌받느냐"며 "같은 공무원이었는데 나는 처벌 받고 김씨는 안 받았다, 형평성 차원에서 김씨를 기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전 주무관은 "지난해 의인상 시상식 때 같이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더니 1500명이 공유를 할 만큼 권 전 과장 인기가 좋다"며 "이 자리에 함께해줘서 고맙다, 힘내서 큰 활동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안진걸 처장이 "큰 활동은 7·30 출마를 뜻하느냐"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권 전 과장의 출마에 대해 한 전직 시민단체 간부는 "장진수 전 주무관을 비롯해 대다수 공익제보자들은 오랜 소송과 실직으로 생활고에 시달린다"면서 "권 전 과장이 국회에서 공익제보자의 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한다면 다른 공익제보자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학 시절의 회상

지난해 10월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왼쪽)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앞)이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권은희-김용판 지난해 10월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왼쪽)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앞)이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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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은 화기애애했다. 권 전 과장은 술을 못 마신다며 사양했다. 하지만 주변의 권유로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술)' 한 잔을 마시자 얼굴이 붉어졌다. 사람들은 7·30 선거 출마 여부를 물었지만 그는 '호호호' 웃음을 지으며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 권 전 과장은 국정원 대선 개입에 사건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기자회견장에서 들었던 것보다 더 깊숙이 그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는 초기 수사 책임자로서 사건을 총괄했다. 하지만 수사 도중 전보조치를 당했고 경찰은 수사를 마무리하며 "국정원 직원, 정치에 관여했지만 선거 개입은 아니다"라는 황당한 결과를 내놓았다. 발표 직후, 권 전 과장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수사 외압 의혹을 폭로했다. 검찰이 김 전 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지만 1심, 2심 법원은 김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3심인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으나 이 역시 무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권 전 과장은 대학 시절을 회상했다. 선배 손에 이끌려 공장 앞에서 선전물을 돌렸던 일을 떠올렸다.

"저는 처음 봤어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거리였는데 오후 6시가 되니까 사이렌이 울렸어요. 갑자기 일하는 분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처음 보고 놀랐죠. 우리 아버지 같은 분들이었어요. 제가 선전물을 드리니까 한 아저씨가 하는 말이, '미안해, 너를 생각해서 내가 읽어야 하는데 내가 글을 못 읽어'라고 했어요." 

그는 "그만 민망했다"면서 "너무 슬펐다"고 말했다. 이후 한글 모르는 어른들을 생각해 야학을 찾아 갔으나 잘 나가지 못했단다. 그는 "미안함이 아직도 남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슬프게 사는 게 싫었는데, 이번 대선 개입 사건을 보면서 저도 슬펐어요. 이 사건은 대한민국 사람들을 슬프게 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나머지 사람들은 그를 위해 "울지마, 울지마"를 외쳤다. 이어 그는 "슬퍼하지 말자고 생각해서 경찰을 그만두게 됐다"고 말했다.

"슬프게 사는 사람들 위로해 달라"... 사훌 뒤 직접 출마

권 전 과장은 지난달까지 경찰이었다. 그는 2004년, 33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변호사로 개업했다가 2005년 특채로 경찰에 입문했다. 사법고시 출신의 첫 여성 경정이었다.

그는 이날 모임에서 "경찰서 동료가 경찰에 남으면 안 되느냐고 했는데, 경찰에 있으면 사건의 의미가 없어지고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았다"며 "이 사건이 정말 우리를 슬프게 하는 사건이라는 것을 잊으면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을 향해 "슬프게 사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임 3일 뒤, 권 전 과장은 광주시의회에 나타났다. 그는 출마를 선언하며 "경찰에 입문할 때, 힘없는 사람들이 부딪히는 수많은 현실의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되고 싶은 소박한 마음을 가졌다"며 "이 시험을 통과한다면 초심을 잊지 않고 늘 사람 사는 현장에서 사람의 문제를 듣고 풀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 국민의 선택 앞에 서게 됐다.


태그:#권은희, #국정원 대선 개입, #장진수, #공익제보,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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