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진도 팽목항 풍경. 항구에 노란 리본이 나부끼고 있다. 그 앞에서 실종자 가족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진도 팽목항 풍경. 항구에 노란 리본이 나부끼고 있다. 그 앞에서 실종자 가족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바람이 거칠다. 노란 리본을 매달고 있는 후박나무가 몸부림친다. 세월호 참사를 맞딱뜨린 희생자·실종자의 마음 같다. 우리네 마음과도 다를 바 없다. 간절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지도 벌써 오래 전이다. 세월호에 몸을 실은 사람들의 모습만 선명하게 남아있다.

잠시 가라앉아 있던 울분이 또다시 치밀어 오른다. 지난 2일 진도읍에 있는 조금시장으로 가는 길. 조금시장은 매 2일과 7일에 장을 여는 오일장이다. 조금시장을 찾은 것도 이태 만이다.

시장은 그 사이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너저분한 옛 장터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 2층 건물로 단장한 현대화된 시장이 들어서 있다. 겉모습은 바뀌었어도 장터는 여전했다. 사람들 북적이고 늘어놓은 물건도 풍성하다.

진도 팽목항으로 가는 길. 도로변 후박나무가 노란 리본을 매달고 있다.
 진도 팽목항으로 가는 길. 도로변 후박나무가 노란 리본을 매달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진도 조금시장 입구. 5일 만에 장이 열렸지만 분위기가 무겁기만 하다.
 진도 조금시장 입구. 5일 만에 장이 열렸지만 분위기가 무겁기만 하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청정바다에서 건져 올린 문어·낙지·장어·칠게·톳·서대 등이 보인다. 진도를 대표하는 갯것들이다. 남녘의 따스한 햇살이 키운 검정쌀과 양파·마늘 등 농산물도 장터의 한쪽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장터 입구를 주름잡던 뻥튀기의 소리도 변함없다. 새끼 진돗개를 파는 김정수 할아버지도 예전 그대로다. 대장장이 조규현 할아버지도 여전히 망치를 들고 뜨거운 불과 씨름을 하고 있다. 듬뿍듬뿍 담아주던 장꾼들의 인심도 한결같다.

이태 전과 다를 바 없는 장터 풍경. 하지만 허전하고 짠한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다. 난장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표정도 별반 차이가 없다. 장터를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던 호객 행위도 들을 수가 없다.

모두들 말을 아끼고 있는 표정이다. 그 얼굴로 맑은 하늘만 쳐다본다. 난장의 한 할머니한테 말을 붙여봤다. 자연스레 이야기는 세월호 참사로 이어졌다.

"생떼 같은 자식 먼저 보내놓고... 환장할 일이제"

조금시장의 노점 할머니. 바닥에 주저앉은 할머니의 표정도 어둡다. 자나깨나 세월호 관련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조금시장의 노점 할머니. 바닥에 주저앉은 할머니의 표정도 어둡다. 자나깨나 세월호 관련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조금시장의 어물전 풍경. 손님을 기다리는 아주머니의 얼굴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조금시장의 어물전 풍경. 손님을 기다리는 아주머니의 얼굴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환장할 일이제. 생떼 같은 자식을 먼저 보내놓고, 부모들은 어떻게 살거여? 그 생각만 하믄 잠이 안 와."

이 할머니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할아버지와 할머니·아주머니도 동감했다. 심지어 우울증에다 불안감으로 고통을 바고 있다고 한다. 밤이면 불면증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한 것도 예삿일이라고.

조금시장의 곡물전. 사람이 가끔 오갈 뿐 한산하다. 오가는 사람도 외지인은 보이지 않고 대부분 진도사람이다.
 조금시장의 곡물전. 사람이 가끔 오갈 뿐 한산하다. 오가는 사람도 외지인은 보이지 않고 대부분 진도사람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세월호 참사 이후 진도는 온 국민의 관심지역으로 떠올랐다. 한편으로는 '찾아가면 안 되는 지역'으로 변하기도 했다. 정부의 '방문 자제' 요청도 이에 한몫했다. 실제 진도를 찾는 방문객은 빠르게 줄었다. 운림산방·진도타워 등 진도의 관광지를 찾는 방문객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방문 기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외지 사람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여. 관광객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 아마 여기 있는 사람들도 다 진도 사람들일 걸."

시장에서 만난 한 할머니의 말이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손자가 친구들과 내려오겠다는 것도 막았다고도 덧붙였다. 시장 주변 상가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진도를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한 음식점도 매한가지였다.

한산했다. 점심시간인 데도 손님 두 명이 넓은 식당을 전세 내고 앉아 있었다. 개점 휴업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했다.

"수입이 뚝 떨어졌어... 하소연할 데도 없고"

조금시장의 어물전. 진도의 청정바다에서 건져올린 수산 건어물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재래시장의 활기를 찾을 수 없다.
 조금시장의 어물전. 진도의 청정바다에서 건져올린 수산 건어물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재래시장의 활기를 찾을 수 없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조금시장에서 만난 사람들. 소줏잔을 기울이면서도 화제는 세월호로 시작돼 세월호로 끝난다.
 조금시장에서 만난 사람들. 소줏잔을 기울이면서도 화제는 세월호로 시작돼 세월호로 끝난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수입이 뚝 떨어졌어요. 수입이라고 할 것도 없어. 어디에다 대놓고 하소연할 곳도 없고. 실종자 가족들한테 누가 될까봐 애만 태우고 있소."

식당 주인이 긴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이다. 여름철 관광특수를 기다리던 대부분의 상가도 마찬가지다. 생계를 걱정하면서도 하소연 데를 찾지 못한 채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뿐만 아니다. 청정해역에서 건져 올린 수산물도 팔리지 않고 있다. 끝도 없는 침체다.

"아, 그래야제. 하루라도 빨리 나머지 실종자들을 찾았으믄 좋겄어. 언제까지 슬픔에 잠겨 있을 수만도 없고. 인자 산사람은 먹고 살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인디."

진도 조금시장 사람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조금시장 풍경. 장꾼들만 부산할 뿐 손님들의 발길이 뜸하다.
 조금시장 풍경. 장꾼들만 부산할 뿐 손님들의 발길이 뜸하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조금시장, #진도, #세월호, #재래시장, #진도오일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