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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웠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의 약속들은 모조리 거짓이었다. (중략) MBC 사장 공모 안내에 나온 '공영방송을 지킬 사람'이라는 자격조건은 도대체 왜 달았던 건가?"

다섯 달에서 조금 모자란 지난 2월 21일,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낸 성명이 지금의 KBS에 그대로 옮겨 붙은 형국이다.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안광한 사장을 3년 임기의 MBC 새 사장으로 선임하자 노조는 '도로 김재철 체제'가 됐다며 실망과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 출범이후 첫 공영방송사 사장 선임이라는 점에서 많은 기대와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와 방문진은 이명박 정부 내내 구성원들과 대립각을 세우며 최장기간 파업을 본체만체 하는 등 공영방송의 경쟁력을 떨어뜨린 김재철 후임에 그와 성향이 흡사한 인물을 보란 듯이 앉혔다.   

안 사장은 정치적 독립은 고사하고 방송의 공영성과 공정성, 경영의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관제방송을 만드는데 혼신의 역할을 다한 전임사장 '아바타'로 지칭돼 온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숱한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김재철 아바타'로 불렸던 그를 기어이 새 사장에 선임했던 그때와 지금의 KBS 상황이 점점 닮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KBS 이사회, 특별다수제·사추위 거부

KBS이사회에서 길환영 사장 해임 제청안이 가결된 가운데 지난달 9일 오전 KBS본관 민주광장에서 양대 노조 공동총회가 열리고 있다.
 KBS이사회에서 길환영 사장 해임 제청안이 가결된 가운데 지난달 9일 오전 KBS본관 민주광장에서 양대 노조 공동총회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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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평가 보고서를 통해 2012년의 상황, 즉 MBC 김재철 체제가 비정상적이었음을 인정한 방문진이 '도로 김제철 체제'를 만들어 준 것은 다시 생각해 보아도 영 석연치 않다. 이 때문에 세월호 참사 이후 KBS를 '권력의 방송', '청영방송'으로 만든 길환영 전 사장의 후임으로 누가 오는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비상하다. 그 어느 때보다 나락에 빠진 공영방송, 특히 KBS를 구해내고 또 지켜나갈 인물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5개월 전 MBC가 억지로 선택해야만 했던 그 길로 안내하거나 유도하려는 세력이 있다. 그들은 다름 아닌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공영방송을 지킬 사람'을 입버릇처럼 외쳐온 박근혜 정부와 KBS 이사회 등 KBS 사장을 선임하고 임명하는 이들이다. 지난달 30일 마감된 KBS 차기 사장 공모에 30명이나 지원한 것은 다양(다원)성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후보 중에 정치적 독립과 공정성 측면에서 논란거리가 될 만한 인사가 다수 포함돼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KBS 이사회가 후보 가운데 어떤 인물을 새 사장에 선임할지, 자신들의 결정을 밀어붙이기 위해 어떤 담합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이는 5개월 전 사장이 바뀌었음에도 전혀 달라지지도,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MBC를 보면, 쉽게 간과할 사안이 아니다. 더구나 KBS는 국민이 내는 시청료로 운영되는 '국민의 방송' 아닌가.

만약 KBS가 '제2의 길환영' 또는 '길환영 아바타' 체제로 빠져들게 된다면 더 이상 희망은 없다. 그런데도 다수의 친정부·친여 인사들로 짜여진 KBS 이사회는 사장 선임을 앞두고 고집과 오만을 뽐내고 있다. 또 많은 이들이 제언한 특별다수제와 사장추천위원회 도입을 끝내 거절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KBS 구성원들과 많은 국민들이 그토록 애타게 바랐던 정치적으로 독립된 사장 선임을 위한 고민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죽했으면 언론노조 KBS본부가 노보를 통해 KBS 사장에 지원한 30명 중 8명을 부적격자로 선정하고 이들에 대한 임명 반대 의사를 표하고 나섰을까. 언론노조 KBS본부가 지난 6월 19일부터 23일까지 KBS 전 직원을 대상으로 '차기 사장 선임 기준'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77.1%에 달하는 구성원이 '정치적 독립성'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노조는 강동순 전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 고대영 전 KBS 보도본부장, 권혁부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부위원장, 류현순 현 KBS 방송부문 부사장, 이정봉 전 KBS 비즈니스 사장, 이화섭 전 KBS 보도본부장, 조대현 전 KBS미디어 사장, 홍성규 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은 KBS의 정치적 독립과 거리가 먼 인물들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KBS 이사회가 2일 이사회를 열어, KBS 사장에 지원한 전체 30명을 대상으로 서류심사를 하여 면접대상자 6명을 압축했는데, 이 중 4명이 노조가 지목한 부적격 후보였다. 우려가 점점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고대영, 류현순, 조대현, 홍성규가 그들이다.

아닌 게 아니라 KBS를 구하겠다며 사장자리에 도전한 인물들 중에는 지난 이명박 정권에 의해 자행된 방송장악의 대표적 기획자이자 부역자가 있는가 하면, 정권의 낙하산 사장 아래에서 보도본부장을 지내며 KBS를 'MB방송'으로 만드는데 적극 앞장선 인물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 치욕의 '이명박근혜호' 탈피 절호 '기회'

KBS이사회가 2일 KBS 사장 후보를 6명으로 압축했다. 이중에는 이날 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가 발표한 '사장 부적격 대상자' 4명(사진)도 포함돼 있어, 논란이 일 전망이다. 왼쪽부터 고대영 전 KBS 보도본부장, 류현순 현 KBS 방송부문 부사장, 조대현 전 KBS 부사장, 홍성규 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
 KBS이사회가 2일 KBS 사장 후보를 6명으로 압축했다. 이중에는 이날 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가 발표한 '사장 부적격 대상자' 4명(사진)도 포함돼 있어, 논란이 일 전망이다. 왼쪽부터 고대영 전 KBS 보도본부장, 류현순 현 KBS 방송부문 부사장, 조대현 전 KBS 부사장, 홍성규 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
ⓒ 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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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앞선 길환영 전 사장 체제에서 불공정 편파보도의 중심에 함께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인물도 있다. 그 뿐인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라디오 주례연설 100회를 KBS 1TV에 편성하며 '청영방송'의 기틀을 놓았다고 평가받는 인물도 눈에 띈다.

이들이 향후 압축과정과 면접 등에 포함돼 최종 사장에 선임된다면 KBS는 '도로 길환영 체제'로 돌아설 것이 불 보듯 뻔하다. KBS 이사회에 일차적으로 공이 넘어갔지만 압축된 6명 가운데 면접을 거쳐 최종 1명이 대통령에게 임명제청 되는 절차로 진행된다. 결국, '국민의 방송' 사장의 최종 임명 결정권은 대통령이 쥐고 있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문제는 KBS 노조가 지목한 '부적격자' 중 한 명이 사장이 된다면 MBC에 이어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미래는 참으로 암담해 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길환영 전 사장이 해임된 후 KBS가 최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검증에 관한 단독보도에서 보여준 모습 등은 우리사회에 공영방송의 존재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일깨워 주었다.

그런데 다수의 힘을 빌려 여당 추천 이사들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제2의 길환영을 새로운 사장으로 밀어붙이고 대통령이 이를 수락한다면 공영방송의 존재가치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나락에 빠진 국민의 방송이 또 다시 절망과 혼란에 휩싸일 것이 자명하다. 물론 언론역사에 길이 남을 또 하나의 참담한 기록이 될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사태의 최종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박 대통령이 내세웠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약속이 더 이상 거짓이 아니고, 유권자들의 마음을 산 뒤 쓰레기통에 처박힌 싸구려 포장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일 절호의 기회다.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이 방송장악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아직도 치욕의 항해를 하고 있는 '이명박근혜호'에서 탈피할 수 있는 기회란 점도 부디 잊지 말기 바란다.


태그:#KBS 사장후보, #길환영 아바타, #제2 길환영, #김재철 아바타, #박근혜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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