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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도보순례단
 세월호 도보순례단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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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서 팽목항까지 도보순례 4일째인 6월 30일. 충남 천안의 허름한 모텔에서 밤새 모기에 시달리다가 겨우 잠들었던 것 같은데 오전 6시 알람이 시끄럽게 울어 제낀다. 집 떠나 낯선 곳이라 전날 피곤이 다 풀리지도 못한 눈을 비빈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내려간 숙소 입구에는 벌써 어르신들이 나와 계신다.

오늘 걸어야 하는 곳은 천안에서 세종시 조치원역까지 34km. 산업도로를 끼고 좁은 갓길을 걸어야 하는 위험하고 어려운 코스다. 14명의 순례단은 오전 7시 천안삼거리공원 고가차로 밑에서 휴식 겸 김밥으로 아침을 간단히 마치고 서로를 격려하며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관련 기사: 발가락 터져도 걷는 사람들..."세월호 잊으면 안돼").

세월호 도보순례단의 늘 앞자리를 팔순의 어르신이 이끌고 계신다. 천안 시내를 걷고 있다.
 세월호 도보순례단의 늘 앞자리를 팔순의 어르신이 이끌고 계신다. 천안 시내를 걷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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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도보순례단이 세종시로 접어들고 있다.
 세월호 도보순례단이 세종시로 접어들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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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에 깃발을 힘차게 치켜들고 흐트러짐 없이 씩씩하게 길잡이를 자청하던 이상수(남·32) 씨에게 참여 동기를 물었다. 이씨는 "세월호 사고가 나고 팽목항을 9일 정도 다녀왔다"며 "그곳에서 청소도 하고 배식도 하면서 유가족을 지켜보다 돌아와 늘 빚진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도보순례 소식을 접하고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같이 함께 하던 애인과 떨어진 것이 최고로 힘들어 하루에 7~8차례 통화를 하고 있다"며 "참고 또 참는다"고 웃었다.

순례단의 뒷자리를 지키던 유경균(남·22)씨는 3살, 2살 딸을 둔 아이 아빠다. 다음 달 입대를 앞두고 있는 그는 순례단 보도대장 송정근 목사의 이야기를 듣고 도보순례에 참여했다고 한다.

"안산에 살고 있는데 세월호 사고가 터졌다. 슬프고 안타까운 생각에 걷고 있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서 터트렸는데 또다시 물집이 잡힌 것 같다. 할아버지, 아버지 같은 분들과 같이 걷다 보니 배우는 점도 많지만, 아이가 눈에 밟혀 하루에 3~4차례 영상통화를 한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도록 노력 중이다."

일행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후 1시 20분이 되어서 식당을 찾았다. 밀려오는 배고픔에 청국장 한 그릇 후다닥 말아 넣고서 수저를 놓기가 무섭게 하나둘 그 자리에 쓰러져 쪽잠을 청한다.

하지만 오늘은 어제보다 10km 이상을 더 걸어야 한다. 순례단은 서둘러서 걸었다. 다행인지 산업도로를 벗어나 지방도로는 차량이 덜하다. 논과 밭을 끼고 부지런히 걸었던 덕분인지 오후 6시가 되어서 세종시 조치원역에 도착했다.

세월호 도보순례단이 세종시 조치원역을 찾아 최교진 교육감 당선자와 함께.
 세월호 도보순례단이 세종시 조치원역을 찾아 최교진 교육감 당선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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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최교진 교육감 당선자가 세월호 도보순례단을 맞아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세종시 최교진 교육감 당선자가 세월호 도보순례단을 맞아 인사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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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세종시 교육감으로 당선된 최교진 당선자와 참여연대 회원들,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을 비롯한 세종시 시민들이 순례단을 박수로 격려해 줬다. 이들은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지와 음료수를 건네며 "미안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순례단은 서둘러 천만 서명에 돌입했다.

송정근 목사는 "21세기인 지금도 잠수사의 두 손에 의지해 찾아야만 하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수색 작업을) 하는 정부를 믿을 수 있겠는가? 남은 (실종자) 11명의 조속한 발견과 진상규명을 촉구한다"며 "지금 전국을 돌면서 각지에서 시민들을 만나는데 우리가 오는 것을 미리 알고서 서명용지를 가져와 주신 시민들이 이렇게 많은 곳은 세종시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이동인 단장은 "기독교계 송정근 목사님과 불교계 원정스님이 4일째 매일같이 순례단과 함께하고 계신다. 항상 두 분이 챙겨 주심에 감사하고 세월호 아이들을 위해서 땀을 흘려주심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 단장은 "천만 서명운동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데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부탁했다.

최교진 교육감 당선자는 "더운 날 고생하는 순례단에 죄송하다"면서 "2014년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낱낱이 진실이 밝혀져야 희생된 우리 아이들이 그나마 눈감을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 다시는 이런 부끄럽고 참담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세종시 한솔동 첫마을 90살 구서희 할머니가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며 찾아와 서명하고 있다.
 세종시 한솔동 첫마을 90살 구서희 할머니가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며 찾아와 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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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은 1시간 가량의 서명을 마치고 마지막 종착지인 한솔동 첫마을 중앙공원광장으로 이동했다. 순례단을 기다리던 아흔의 구서희 할머니는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며 서명을 하면서 "자식 잃은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느냐?"고 한숨을 쉬신다.

순례단의 저녁과 숙박을 준비해준 민경일 첫마을 주민은 "신도시라 숙박이나 목욕탕이 없어서 불편함이 크겠지만, 편안히 쉬어 가셨으면 한다"며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멀고도 험한 길 꼭 끝까지 완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순례단은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헬스클럽 사우나와 주민회의실에 숙소를 침낭을 깔고 잠자리에 들었다. 7월 1일은 오전 8시 30분 정부종합청사를 방문하여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조속한 진상촉구를 요구하는 항의서한을 전달한 뒤, 대전광역시 옛 충남도청으로 5일째 도보순례를 진행할 예정이다.


태그:#세월호, #도보 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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