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살고 있는 집에는 수도가 없다. 수도꼭지는 있으나 꼭지를 돌려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룸메이트가 버려진 이 집에 살면서 수도를 설치하지 않았다. 그는 수도를 설치하는 대신 지하수를 팠다고 했다. 물을 많이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자연에서 물을 얻으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우리 집은 아침이면 펌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펌프를 돌려야만 마실 물도 씻을 물도 얻을 수 있다. '땡땡 자동 펌프~' 하며 오래전 텔레비전에서 하던 그 광고를 기억하면 안 된다. 우리 집 펌프는 자동이 아니라 수동이다. 사람이 직접 전기 코드를 꽂고 물을 가득 부어줘야만 거친 소리를 내다 말고 물을 토해낸다.

5월부터는 물이 바로 나오지도 않았다. 십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만 캭캭 소리를 내며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정도였다면 가뭄이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한 시간이 지나도 물이 나오지 않고 나와도 겨우 졸졸 흐르는 정도다.

작년에 이 마당은 꽃이며 풀이 나무 많아 돌로 만든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파우더같은 흙먼지만 날린다.
 작년에 이 마당은 꽃이며 풀이 나무 많아 돌로 만든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파우더같은 흙먼지만 날린다.
ⓒ 김윤희

관련사진보기


이러하니 물을 함부로 쓸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얼굴을 씻고 난 물에 빨래를 하고 그 물에 걸레를 빨아야 했다. 그리고 버리면 큰일 양동이에다 모아야 한다. 그러나 불편함은 없다.

초등학교 시절, 물을 아껴써야 한다는 선생님의 반복된 교육의 힘이 여기서 나타났다. 물을 재사용하고, 하수구로 물을 그냥 흘러 보내지 않고 꽃들에게 뿌려준다. 룸메이트가 그렇게 하라고 부탁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는 마실 물조차 없었다. 룸메이트가 펌프를 돌렸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점점 이글어지는 그의 얼굴에도 가뭄이 찾아오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밖을 내다보며 비가 올 것을 점친다. 그리고는 룸메이트에게 아침 인사를 한다.

"비가 올 것 같아요?"

하늘은 흰 구름으로 뒤덮여 있고, 바람도 살랑 불어오고 시원하니 좋다. 그러나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5월 중순에 이곳으로 왔으니 거의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비는 10미리 정도 내렸다. 그것도 20일 전의 일이다.

"우리라도 기우제를 지내요? 혹시 알아요, 이 집 위로 먹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리고 갈지."

룸메이트는 내 말에 대꾸도 없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얼굴에 웃음기는 사라졌고, 밖만 내다보면 한숨을 쉬거나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답답한 것이다. 마당을 거닐어도 흙먼지만 날리고 무성하게 자라던 잡초마저 자라지 않고 있으니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하니 한숨과 욕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하늘님, 제발 비 좀 뿌려주소"

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어 손수 물을 대며 수위를 조절하는 큰 연못과 달리 작은 연못은 마른지 두 달이 지났다. 그 와중에 연은 꽃을 피우고 있다.
 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어 손수 물을 대며 수위를 조절하는 큰 연못과 달리 작은 연못은 마른지 두 달이 지났다. 그 와중에 연은 꽃을 피우고 있다.
ⓒ 김윤희

관련사진보기


이 집에는 연못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주인장이 만든 것이고 또 하나는 원래부터 있던 작은 연못이다. 작은 연못은 오래 전에 말라버렸다. 그곳에 살던 우렁이들은 벌써 죽어버렸고, 개구리들은 큰 연못으로 이사를 갔다. 큰 연못에는 물고기와 우렁이, 물옥잠, 연꽃, 창포 등 이미 많은 것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그곳에 수십 마리의 개구리까지 가세를 했으니 포화 상태다.

연못 크기에 비해 개체수가 많아져 죽어가는 물고기가 생겨났다. 이것은 개체수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비가 오지 않아 물이 점점 줄어들었고 이끼도 많이 끼어 물속의 공기가 부족했다. 그는 횟집 어항에 설치하는 펌프를 사서 달았다. 그 뒤로 죽어나는 물고기는 생기지 않았다. 방안에 있으면 물 흐르는 소리가 제법 운치있게 들린다.

그래도 운치를 운운하기에는 비가 너무 안 온다. 마당을 거닐며 노래도 불렀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빨간 우산..."

이슬비라도 내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하늘은 전혀 반응이 없다. 제주도에는 장마도 시작됐고 비가 수시로 온다고 하는데 왜 이곳에만 비가 오지 않는 것일까. 세월호 참사 이후로 바람만 불어대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다. 바람이 없고 뜨거운 볕만 내리쬐었다.

"그 일 이후로 불지 않던 바람만 불고 비는 오지도 않고 이상한 일이야."

룸메이트는 이상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방안을 서성였다. 매사에 진중하던 그가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걱정이 앞서고 불안하기까지 했다.

5월부터 지금까지 마을 곳곳에서는 지하수를 퍼 올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논에 물을 대랴, 고추밭에 물을 주랴, 복분자에도 물을 주랴, 펌프는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물로 그것들이 잘 버티어 준다면 그들의 근심이 좀 누그러지겠지만 물을 주어도  흙은 금세 말라버리고 잎들은 곧 아래로 축 쳐쳤다.

빈통이 있으면 일단 물을 채우고 본다. 물이 갑자기 안 나올 수 있으니까. 물이 있어도 함부로 버릴 수 없다. 마지막은 마당의 꽃들에게.
 빈통이 있으면 일단 물을 채우고 본다. 물이 갑자기 안 나올 수 있으니까. 물이 있어도 함부로 버릴 수 없다. 마지막은 마당의 꽃들에게.
ⓒ 김윤희

관련사진보기


오늘은 옥수수를 심었다. 땅이 메말라 삽이 들어가지도 않아 지난주에 모종을 했다. 씻는 횟수를 줄여 그 물을 옥수수 모종에 부어 주었더니 제법 자랐다. 양파를 수확한 그 자리에 깔려 있던 비닐을 뜯으려다 그 자리에 옥수수를 심기로 했다. 오전 내내 받아둔 물을 들고 모종한 옥수수를 뽑았다. 간격을 두고 옥수수를 심은 뒤 아껴 둔 물을 조심스레 부었다.

"일주일 안으로 비가 안 오면 얘들도 다 죽어."

룸메이트의 한숨 섞인 말에 심어둔 옥수수를 다시 쳐다보게 되었다. 며칠만이라도 샤워를 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물을 옥수수에게 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서다. 나는 룸메이트에게 말했다.

"요강이라도 사야겠어요. 오줌이라도 모아야지. 그냥 변기에 버려지는 것이 아깝네. 어때요?"
"예전에 엄마가 쓰던 것이 아직 있는데... 쓸텨?"

나는 그의 말에 놀랐다. 내가 내어놓은 의견이지만 쉽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써보고 아직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요강을 다시 쓴다는 것이 왠지 어색하고 쑥스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한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으니 어쩌랴. 내 몸에서 나오는 물이라도 식물에게 필요하다면 줘야지.

새삼 물의 중요함을 느낀다. 옛 방식으로 살아가다보니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런데 비는 언제 내리는 걸까? 왜 이곳만 피해서 비가 내리는 걸까?

"하늘님, 비 좀 뿌려주소. 여기 저기 다 사람 사는 곳인데 이곳도 비 좀 뿌려주고 가소. 너무하네. 원하면 내 제라도 지내리다. 제발, 비 좀 뿌려주고 가소."

비를 온 몸으로 맞으며 마당을 뛰어다니고 싶다. 어릴때 물을 튀기며 친구에게 치던 장난도 다시 쳐보고 싶다. 비를 바라보며 그때 그 사람도 떠올려 보고 싶다. 빨리 와라 비야!


태그:#가뭄, #재사용, #요강, #연못, #비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의 경의로움에 고개를 숙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