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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무가 길을 내줍니다. 어떤 놈은 왼쪽으로 비켜섰습니다. 다른 놈은 오른쪽으로 비켜 있습니다.
 나무가 길을 내줍니다. 어떤 놈은 왼쪽으로 비켜섰습니다. 다른 놈은 오른쪽으로 비켜 있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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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저께 무주구천동 길을 걸었습니다. 아주 넓은 길이 나 있습니다. 워낙 많은 이들이 가고 오고합니다. 가는 이들의 까닭이나 오는 이들의 사연은 어찌 보면 하나일 겁니다. 이미 갔으니 내려오는 것이지요. 입때 못 갔으니 올라가는 것이지요. 그렇게 사람들은 길을 갑니다. 길을 옵니다.

사람의 발걸음이 만든 길엔 가멸찬 나무의 인심이 자국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떤 놈은 왼쪽으로 비켜섰습니다. 다른 놈은 오른쪽으로 비켜 있습니다. 나름 자신들의 울안을 잃지 않으면서 양보의 미덕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그걸 느끼기나 하는 걸까요. 이기와 아집으로 똘똘 뭉친 채 그냥 나무가 내미는 손도 잡아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홍단풍은 그냥 나무일뿐입니다

한여름에 일본이 원산지인 홍단풍이 가을인가 의심할 정도로 붉습니다.
 한여름에 일본이 원산지인 홍단풍이 가을인가 의심할 정도로 붉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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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송이 같은 것을 달고 있는 느티나무가 미친 걸까요? 미친 것은 아닌 것 같고 아마 병이 들어도 단단히 든 것 같습니다.
 포도송이 같은 것을 달고 있는 느티나무가 미친 걸까요? 미친 것은 아닌 것 같고 아마 병이 들어도 단단히 든 것 같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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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가을인가 하고, 홍단풍이 그 위용을 뽐내는 걸 보고 혹 속을 수 있습니다. 이놈은 원래 붉습니다. 일명 노무라[野村] 단풍이라고도 합니다.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기고, 위안부관련 고노담화를 한일 간 정치적 협의에 의한 것으로 희석시키려 하는 일본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사뭇 일본산 홍단풍 이파리들은 곱기만 합니다. 하기야 식물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잘못은 노다지 인간에게 있지요.

그런데 얘들은 또 왜 이런데요? 느티나무인 듯싶은데 온통 잎들에 작은 포도송이들을 달고 있으니 말입니다. 말 안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세상이라 느티나무가 미친 걸까요? 미친 것은 아닌 것 같고 아마 병이 들어도 단단히 든 것 같습니다.

정치인이 이권이나 공천에 개입하고 돈 챙겨 병들 듯, 교육자가 제자의 논문을 훔치거나 자기표절로 돈을 챙기며 병들듯, 종교인이 신성한 강단에서 하나님의 뜻 운운하며 기득권자들 편드는 것으로 병들듯, 나무도 병이 들었습니다.

오뉴월에 걸맞지 않게 농부들의 가슴에 멍을 들이며 AI 걸려 가축들이 병들듯, 두 달이 지나도록 먼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오지 않는 임을 향하여 눈물지으며 실종자 가족들이 화병에 들듯, 그렇게 나무도 이 나라에선 병이 드나 봅니다. 언제나 이 병든 세상이 치유될까요?

물은 제 갈 길을 갑니다. 워낙 조금씩이지만 앞으로 앞으로. 유유히 자신의 길을 갑니다.
 물은 제 갈 길을 갑니다. 워낙 조금씩이지만 앞으로 앞으로. 유유히 자신의 길을 갑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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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바위와 자갈길을 지나, 산들바람에 이파리 출렁이는 나무들이 생존을 위해 뻗은 뿌리들을 지나 그렇게 여기까지 왔겠지요.
 물은 바위와 자갈길을 지나, 산들바람에 이파리 출렁이는 나무들이 생존을 위해 뻗은 뿌리들을 지나 그렇게 여기까지 왔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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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물은 제 갈 길을 갑니다. 워낙 조금씩이지만 앞으로 앞으로. 한 곳에 한참을 머무는 것 같지만 벌써 물은 바위와 자갈길을 지나, 산들바람에 이파리 출렁이는 나무들이 생존을 위해 뻗은 뿌리들을 지나 그렇게 여기까지 왔겠지요. 그래도 올곧게 제 길을 가고 있는 게 있으니 흔흔합니다.

물은 언제나 제 갈 길을 갑니다

다 제 갈 길을 잊은 것 같지만 여전히 자기 길을 가는 놈이 있군요. 혹자는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가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고 하겠지요. 그러나 부모자식 간에도 그 자연의 이치조차 사라진 세상입니다. 정치인과 국민 사이에서도 사라졌고요. 심지어는 세상의 최후 보루라 할 수 있는 종교인들까지 허튼소리, 쉰 소리, 신소리 고래고래 질러대는 세상입니다.

듬쑥하니 그래도 나무는 자기 위치에 박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듬쑥하니 그래도 나무는 자기 위치에 박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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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오리나무가 물오름을 뽐내고 있습니다.
 싱그러운 오리나무가 물오름을 뽐내고 있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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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쑥하니 그래도 나무는 자기 위치에 박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누가 치고 지나가도 아파하지 않습니다. 누가 흔들어도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차라리 작은 바람에 이파리를 흔들며 안녕을 인사할 뿐입니다. 그건 아파서가 아니고, 그건 줏대 없어서가 아니고, 다만 반갑다는 인사일 뿐입니다.

참 올곧은 진리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참 선한 정치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참 백년대계의 교육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잎싱아는 이리도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으니 행복하겠습니다. 자신의 전신에 흐르던 수분을 다 내주고도 곧추서서 여전히 꽃이라고 위용을 과시하는 들꽃은 차라리 순교자입니다. 우리 시대는 이런 순교자를 원하는 게 아닐까요?

그 곁으로는 싱그러운 오리나무가 물오름을 뽐내고, 그 옆으로는 층층나무가 자신이 가장 높은 층의 아파트 소유자라고 겸연쩍게 고개를 내밉니다. 때죽나무는 겸손하게 흰 꽃잎을 대롱대롱 달고 땅으로 향하며 다소곳하더니 꽃잎이 지자 이내 고개를 바짝 들고 성을 냅니다.

자신의 전신에 흐르던 수분을 다 내주고도 곧추서서 여전히 꽃이라고 위용을 과시하는 들꽃은 차라리 순교자입니다.
 자신의 전신에 흐르던 수분을 다 내주고도 곧추서서 여전히 꽃이라고 위용을 과시하는 들꽃은 차라리 순교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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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죽나무는 겸손하게 흰 꽃잎을 대롱대롱 달고 땅으로 향하며 다소곳하더니 꽃잎이 지자 이내 고개를 바짝 들고 성을 냅니다.
 때죽나무는 겸손하게 흰 꽃잎을 대롱대롱 달고 땅으로 향하며 다소곳하더니 꽃잎이 지자 이내 고개를 바짝 들고 성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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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정치인들이 선거 전 유세할 때의 자세와 선거 후 한 자리 차지했을 때의 자세가 다른 걸 나무가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품새는 밉지가 않습니다. 정치인들의 변화는 밉기 그지없는데 말입니다. 돈과 명예가 관련되지 않기 때문일까요.

독초를 알아야 합니다

길가 늪에는 비록 질컥거리는 구덩이에 빠져 있지만 동의나물이 자신의 존재를 그 푸름으로 알리고 앉아 있습니다. 누가 곰취로 오인이라도 하라는 뜻일까요, 여낙낙하게도 벌레 한 마리에게 안락한 의자를 내주고 있군요. 벌레에게 안전하다고 동의나물을 먹었다간 큰일 납니다. 독초니까요.

잎싱아는 이리도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으니 행복하겠습니다.
 잎싱아는 이리도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으니 행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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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 늪에는 비록 질컥거리는 구덩이에 빠져 있지만 동의나물이 자신의 존재를 그 푸름으로 알리고 앉아 있습니다.
 길가 늪에는 비록 질컥거리는 구덩이에 빠져 있지만 동의나물이 자신의 존재를 그 푸름으로 알리고 앉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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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우리 주변에서 약인 줄 알고 덤볐다가 독인 걸 깨닫고 후회하는 일이 많죠. 저 높은 자리들이 대부분 그런 거 아닐까요? 저 호화찬란한 직함들이 그런 거 아닐까요? 저 그럴싸한 부귀영화들이 그런 거 아닐까요? 독초라는 것을 아는 게 참 중요합니다.

이렇게 하여 숲의 길은, 숲과 길은, 그리고 물과 나무는 우리에게 한 가르침을 주는군요.


태그:#워킹, #덕유산, #무주구천동, #포토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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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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