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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중소기업이 독과점 업체라니 말도 안 됩니다."

지난 16일 금속소재업체인 A사 직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 하소연했다. 그동안 주력 품목인 아연분말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덕에 대기업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왔는데, 최근 독과점 분야로 꼽혀 해지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독과점 품목, 적합업종 해지 움직임에 반발

유장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반포동 팔래스호텔에서 위원회를 마친 뒤 2013년 동반성장지수 평가 결과와 적합업종제도 개정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유장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반포동 팔래스호텔에서 위원회를 마친 뒤 2013년 동반성장지수 평가 결과와 적합업종제도 개정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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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성장위원회(위원장 유장희, 아래 동반위)는 지난 11일 올해부터 3년 기한이 만료되는 중기 적합업종 재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대기업이 철수해 중소기업 피해가 없거나 중소기업 독과점 문제가 발생한 경우, 산업경쟁력이 약화된 경우 적합업종 지정 해지를 검토하겠다는 내용이었다.(관련기사: 차 떼고 포 떼고... 중소기업 적합업종 축소 불가피 )

특히 김종국 동반위 사무총장은 "세탁비누의 경우 LG생활과학이 철수한 뒤 중소기업인 무궁화가 독과점 상태"라면서 구체적 사례까지 들었고, 기자의 추가 질문에 '아연분말'도 중소기업 독과점 품목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독과점 사례로 지목한 A사 직원은 "아연분말 시장은 현재 연간 600~650억 원 규모로 크지 않아 업체 수가 3개 뿐인데 독과점으로 보는 건 억울하다"고 밝혔다.

아연분말은 컨테이너, 선박 등 철구조물에 바르는 부식방지 페인트 원료로, 그동안 중기 고유업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한창산업, SBC 등 중소기업에서만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아연괴 시장에는 연매출 5조 원에 육박하는 비철금속제련 대기업인 고려아연이 버티고 있어 언제라도 아연분말 시장 장악이 가능한 상황이다.

A사 관계자는 "우리 매출에서 아연분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65%에 달해 고려아연 같은 대기업이 진출할 경우 타격이 엄청나다"면서 "앞으로 알루미늄공업협동조합을 통해 대기업쪽과 협상을 해야 하는데 독과점 업체로 지목돼 걱정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들은 이번 동반위의 중기 적합업종제도 개선 및 재합의 방안을 '큰 후퇴'로 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특히 중소기업중앙회(회장 김기문)는 지난 11일 논평에서 "그간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은 적합업종제도를 흔들려는 대기업계의 거짓 주장을 근거로 한 왜곡된 내용이 끝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현실에 억울함을 넘어 분노를 느껴왔다"면서 "이번 적합업종 가이드라인도 일각의 왜곡된 주장으로 인해 변질되어 무리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기업이 두부를 생산 못해 국산 콩 수요가 줄었다거나, 대기업이 없는 새 발광다이오드(LED)와 재생타이어 시장을 외국계 기업이 잠식했다는 주장을 사례로 들었다. 이에 중소기업 관련 단체들은 17일 오후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간담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한다.

경제민주화단체 "박근혜정부-전경련, 중기 적합업종 무력화시켜"

'대상·씨제이 식자재 도소매업 진출저지 전국대책위'가 지난 2012년 4월 중소상인 적합업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 중소상인 '대상·씨제이 식자재 도소매업 진출저지 전국대책위'가 지난 2012년 4월 중소상인 적합업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 김갑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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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들과 시민단체도 박근혜 정부가 중기 적합업종제도 무력화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참여연대와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전국유통상인연합들은 이날 오후 2시 청와대가 있는 종로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중기 적합업종제도 후퇴와 더불어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 지명을 비판했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가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 속에서도 그나마 시행되고 있던 중기 적합업종제도를 시행 3년 만에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는 품목이나 영역이 줄어들고, 새로 지정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식자재도매업이나 학습 문구용품 적합업종 지정 지연 사례를 들었다.

아울러 "지금 이 순간에도 재벌·대기업들의 탐욕과 문어발식 골목상권 장악이 확산되고 있는데 오히려 중소기업·중소상공인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후퇴시키겠다는 건 '동반성장위'를 '재벌·대기업 일방 성장위'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동반위는 지난 2011년 재벌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에서 중소기업과 중소상공인 생존 영역을 보고하고 대-중소기업 상생 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중기 적합업종제도를 도입했다. 지금까지 장류, 탁주, 떡, 세탁비누, 두부, LED등, 전자제품 금형 등 82개 품목이 적합업종으로 '권고'됐고, 세탁비누, 포장두부 등 일부 품목에선 대기업이 철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대기업들은 올해 3년 만기 시점을 앞두고 제도 무력화를 시도해왔다. 중소기업계에선 이번 동반위 방안 역시 이들 대기업 주장을 거의 대부분 반영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야당과 시민단체에선 '중소기업적합업종보호특별법' 제정을 시도했지만 현재 국회 상임위에서 계류 상태다.

이들 경제민주화단체는 이날 "앞으로 비상한 각오로 박근혜·새누리당 정권의 경제민주화 폐기, '줄푸세'로의 퇴행, 중소기업·중소상공인 죽이기 정책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리면서 "그 첫 번째 행동으로 중기 적합업종제도 지키기와 강화·확대,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 퇴행적인 행태를 강력하게 규탄하고 반대하는 캠페인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태그:#동반성장위, #중기적합업종, #참여연대,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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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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