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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5년 계획으로 세운 나의 꿈 목록에는 유기동물 입양하여 기르기가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다른 목록에 비해 달성 년도가 가장 길다는 것이다. 2017년! 왜 올해가 아니고 2017년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따지며 최대한 계획을 미루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워낙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기도 했지만, 유난히 학교 오가는 길에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동물들을 많이 만났다. 거짓말처럼 하늘에서 떨어져 내 품에 안긴 날개 다친 오리, 다리를 다쳐 날지 못하고 학교 계단에 앉아 있던 이름 모를 새, 엄마 잃은 참새, 아이들에게 돌을 맞고 있던 눈병 걸린 새끼 고양이, 집 마당 뒷편에 모여있던 새끼 생쥐, 비닐봉지안에 담겨 있던 수십 마리의 병아리까지. 병원에도 데려가고 정성껏 돌보았다.

아쉬운 점은 당시의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처럼 정보가 공유되지 않았던 시절 어렸던 학생은 동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현재의 나는 성인이 되어 동물을 키울 수 있는 경제적 능력도 웬만한 동물에 대한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임에도 차일피일 우연한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제 순수함을 잃은 걸까? 동물들이 내 마음을 알고 있어서 그런 걸까? 진짜 내 마음은 어떤 걸까? 희한하게도 어린 시절 같은 우연찮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우연찮게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동물을 만난다 해도 잠시의 도움을 줄 수 있을지언정, 어린시절의 나처럼 키울 자신은 없는것 같다. '그래. 2017년까지만 이루면 되지'란 마음으로 유기동물센터 홈페이지와 관련 카페들을 검색해 나갔다.

이렇게 귀여운 토끼를 어떻게 버릴 수 있지?

 성토가 된 우리 미미
ⓒ 공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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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발견한 것은 바로 토끼였다. 개와 고양이만 있는 줄 알았는데, 유기동물 카페에는 토끼부터 햄스터까지 다양한 동물들이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토끼의 수가 제법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토끼를 버릴 수가 있지?'

토끼 관련 카페에 가입하여 정보를 얻은 결과 토끼의 몸값이 문제였다.

토끼의 몸값은 개나 고양이에 비해 싸다. 흔히 말하는 마트 토끼는 2만 원 가량 한다. 만약 토끼의 귀여움만 보고 토끼를 데리고 왔다가는 곧 '어떻게 해야 하나?'란 고민에 빠지게 될것이다. 생후 2주된 새끼 토끼의 귀여움은 금방 사라지고 급격한 성장으로 성토가 되어 순한 줄 알았던 토끼가 공격을 해오고 오줌 냄새에 털까지 날린다.

엄청난 번식력을 갖고 있어 중성화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고 토끼 전문 병원이 별로 없어 아프면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다. 또한 한 달에 사료값이 3만 원정도 들어갈 만큼 먹성이 좋아 똥의 양도 어마어마 하다. 게다가 스트레스에도 취약하고 유대 관계 측면에서 개에 비해 함께 놀기가 용이하지 않다. 많은 정보를 분석한 결과 왜 토끼가 버려지는지 알 수가 있었다.

토끼가 버려지는 이유를 알게 될수록 나는 토끼를 키워야만 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어느 날 카페에 누군가 올린 글을 읽게 되었다. 작은 원룸에 사는데 방학이 끝나면 토끼를 키울 수 없게 된 대학생의 사연이였다. 며칠이 지나도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았고, 토끼는 절차를 거쳐 안락사의 길로 가게 될 상황이었다. 토끼의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나날이 토끼에게 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번씩 카페에 들어가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반려동물로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토끼가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최대한 천천히 운전해서 토끼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잔뜩 긴장한 토끼는 자기집 한쪽에 움크리고 있다. 그래도 건초는 잘 먹는 걸 보니 다행이다. 토끼에게 우리집 막내딸은 자기 동생이라며 나이는 5살이고 이름은 미미라고 지어주었다.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정말 토끼를 잘 데리고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하나 둘씩 토끼를 키워야만 하는 이유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 달, 두 달, 석 달, 네 달 토끼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새롭게 토끼를 키워야만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미미'가 우리 집에 왔다

첫 번째, 아이들의 정서에 도움을 준다. 운동심리학에서 에르고 요법이라고, 유럽에서는 노년층의 촉감 자극을 위해 토끼를 선호한다. 아이들 역시 매일 토끼를 만지며 동물과의 교류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갖게 된다.

두 번째, 토끼의 인기로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새로 이사를 와서 밖에 나가도 친구가 없던 아이 옆에 슬쩍 가서 동네 아이들에게 "00네 집에는 토끼를 키운다!" "같이 놀러올래?"고 말해 주었다. 동네 아이들이 토끼를 보고싶다고 모두 집으로 데리고 왔다. 나는 동네 아이들에게 토끼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자주 놀러오라고 했다.

다음부터 우리 아이들은 동네 아이들의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중간 중개자 노릇을 톡톡히 한 토끼 덕분에 집에 놀러온 아이들에게 간식도 함께 먹으며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들의 친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더욱이 남매사이도 토끼로 인해 더 좋아진듯 하다.

세 번째, 동물에 대한 생생한 체험 학습을 할 수 있다. 토끼에 대해 배워가며 동물의 먹이사슬이며, 초식동물의 특성을 아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으며, 토끼의 치아가 어떻게 생겼고, 사람의 치아구조가 초식동물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등 동물에 대한 생생한 체험을 통한 학습을 시켜줄 수 있다.

네 번째, 각종 꽃과 잎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얻게 된다. 토끼를 키우며 알지 못했던 콩잎, 칡잎, 클로버 등 다양한 잎에 모양을 알 수 있게 되고, 토끼가 먹을 수 있는 풀과 독풀을 구분하기 위한 노력은 약초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게 한다. 더욱이 봄날 가족과 함께 산행을 같이 하며 토끼먹이를 구하는 것은 온 가족의 이벤트가 된다.

다섯 번째, 무언가를 돌보는 연습을 할 수 있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책임을 필요로 하고 특히 동물을 키우고 돌본다는 것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밥을 챙겨주고 똥을 치워줘야 하는 일상적인 일들은 통해 인내심을 배워가고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힘이 키워지는 듯하다. 하루는 토끼에게 무심하던 아들이 민들레꽃을 잔뜩 따와서 토끼에게 먹이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돌보는 데 마음을 쓰는 것을 배워감을 알 수 있었다.

여섯 번째, 마음이 너그러워 진다. 한 번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인사를 하고 어린이집에 보낸 후 중요한 회의에 참석했는데, 말끔히 차려입은 정장에 밥풀이 묻어 있었다. 당황하기 보다는 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밥풀이 여기 묻어있지?' 요즘은 말끔히 차려입은 정장옷 구석에 토끼털이 묻어 있었다. '언제 나와서 여기 털을 묻혀 놓았을까?'

또한 상상하지 못한 공간에 떨어져 있는 토끼의 똥을 보고 놀라곤 한다. '어떻게 나와서 여기 똥을 싸놓았을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마음을 너그럽게 만든다. 그렇지 않다면 스트레스 받아서 토끼보다 내가 먼저 일이 생길테니, 사실 적응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정말로 대상을 사랑하게 되면 내 아이의 똥냄새가 구수하듯이. 내가 키우는 반려동물의 똥도 구수하게 느껴진다.

일곱 번째, 면역력이 증가 한다. 토끼를 키우고 한 달이 지나서 얼굴이 달아 오르듯 간지럽고 붉어지는 현상이 있었다. 하루 이틀 지나면 없어질 줄 알았는데 2주 이상 계속 갔고, 병원 처방을 받기까지 이르렀다. 털 알레르기가 원인 중 하나로 지목이 되었다. '불쌍한 토끼를 다시 입양보내야 하나?' 고민 끝에 그냥 키우기로 결정 후 병원에도 가지 않고 피부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간지러우면 '간지러운가 보다.' '그래도 토끼는 계속 키울거야.'

어느 날 나는 간지러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고, 토끼를 안고 얼굴에 대고 뽀뽀를 해도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면역력이 증가되어 평상시 먼지 있는 곳에만 가도 벌개지던 피부가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미국국립보건원에서도 10여 년간 연구한 결과, 집안에 애완동물과 함께 생활해온 아이들의 경우 아토피 피부염, 알레르기 천식, 알레르기성 비염이 반으로 줄어들고 각종 알레르기 요인으로 부터 해방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여덟 번째,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토끼를 키우는 데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비싼 사료값이다. 성토 한마리를 키우는 데 평균 드는 한 달간의 비용은 3만 원 정도라고 한다. 사료와 알파파 티모시 등의 건초를 무한공급해야 하고 간식으로는 당근, 브로콜리, 클로버 등 다양하게 공급한다. 이러한 비용을 줄이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이 있다.

보통 양배추를 사면 겉에 파란잎은 다 버리고 흰색의 속만을 사용하는데 마트같은 데 얘기해 파란잎을 다른 봉지에 모아달라고 부탁하면 파란잎을 공짜로 얻을 수 있다. 이걸 식초물에 깨끗이 세척해 말리면 훌륭한 토끼 간식이 되고, 참외 같은 껍질도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지 않고 잘 씻어 말려 토끼에게 주면 된다.

나는 길에서 야채를 파는 아줌마에게 멀쩡한 부분이지만 보기 좋지 않고 딱딱하다는 이유만으로 버리는 잎파리를 따로 모아달라고 부탁해서 토끼에게 먹인다. 조금 수고를 한다면 더 신선하고 깨끗한 먹이를 공급해줄 수도 있고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를 활용할 수 있다.

아홉 번째, 토끼똥은 지구를 살리는 자연비료이다. 사실 토끼똥을 활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너무나 양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은 버려진다. 하루는 가만히 토끼똥을 보니 동그란 게 너무나 귀여워 토끼똥을 모아 화분에 가득 채워 넣었다. 그 위로 상추가 잘 자란다. 더욱이 토끼똥은 딱딱해서 치우기 용이하다.

어느 날 초등생 권장도서로 아이에게 <지구를 살려라>라는 책을 읽어주고 있는데,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연비료를 사용하라는 문구가 나왔다. 아이는 "엄마! 우리 토끼똥 비료로 사용하잖아!"라면서 반가워 한다. 사실 기대하고 했던 행동은 아니었는데, 아이가 나의 행동을 보고 인식하고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그래서 나도 더욱 동기부여를 받아서 더 적극적으로 토끼똥을 활용해 하나씩 화분을 늘려가고 있다.

열 번째, 가족이 더 행복해 진다. 토끼에 대한 고정관념 중 하나가 토끼는 애교가 없어서 정서적 유대감을 개나 고양이에 비해 갖기 힘들 거라 생각한다. 의외로 토끼는 눈치가 빠르고 이뻐해 주면 혀로 손을 핥고 애교도 잘 부린다. 다만 겁이 맣은 편에 속할 뿐이다. 모든 반려동물과 마찬가지로 토끼를 키우며 가족이 똘똘 뭉치게 되고 토끼를 돌보며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반려동물은 책임을 갖고 끝까지 함께 해줘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아니면 섣불리 시작하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갖는다면 주는 사랑 이상을 것을 받게 되는 기쁨을 얻게 되는 것 같다. 나는 2017년 보다 일찍 나의 꿈목록을 달성했고, 역시 미미를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온 가족의 관심은 그 전보다 덜하고 모든 돌봄의 몫은 엄마인 나의 몫이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

▲ 민들레따주는 아이들 우리집에 처음 미미가 왔을때, 봄날 아이들과 토끼
ⓒ 공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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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토끼, #반려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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