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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장 어물전 풍경. 전형적인 재래시장의 모습이다.
 동창장 어물전 풍경. 전형적인 재래시장의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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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을 따라 양철 슬레이트를 얹은 장옥들이 줄을 맞췄다. 잿빛 지붕에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번들거리는 출입문에는 촌로들의 손때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동창오일장(2, 7일)이다. 영암과 군계를 이루고 있는 전라남도 나주시 세지면 봉오리 동창교 부근에 있다.

지난 2일 장터를 찾았다. 초입은 어물전이 점령하고 있다. 깊숙한 내륙에서 맡는 비릿함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물전은 칠게가 주름잡고 있다. 난장의 함지박마다 갯가에서 갓 잡아온 칠게로 가득하다. 다슬기와 우렁이도 매끄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내가 냇가에서 잡아온 것들이여. 이런 놈들은 나이 깨나 먹었제. 봐바, 때깔이 틀리잖여. 나이를 먹을수록 때깔이 짙어져. 한 5년쯤 먹었겄그만."

다슬기와 우렁이를 갖고 나온 최씨 할머니의 말이다. 다슬기와 우렁이를 잡다가 물풀에 씻겼다며 상처 입은 손등도 보여준다.

동창장에서 만난 함지박 안 칠게들. 이맘때 밥도둑 가운데 하나다.
 동창장에서 만난 함지박 안 칠게들. 이맘때 밥도둑 가운데 하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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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배' 주산지에 선 재래시장 동창장의 어물전. 옛 모습 그대로의 장터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나주배' 주산지에 선 재래시장 동창장의 어물전. 옛 모습 그대로의 장터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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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한낮으로 향하면서 햇살이 더 강렬해진다. 장터 안쪽으로 발길을 옮기니 낡은 장옥이 서로 기댄 채 줄지어 있다. 지붕에 올려진 비가림 탓에 어두워진 장옥을 백열등이 밝히고 있다. 간간이 들려오는 흥정소리가 장터임을 알려준다.

"집에서 놀믄 머하겄소? 운동하는 셈 치고 나오제. 여그가 우리 놀이터여. 새끼덜한티 손도 안 벌리고, 푼돈도 만지고. 그것만으로도 어딘디."

좌판을 펴고 앉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큰 재미'를 못보더라도 장날이면 장터에 나오는 이유다. 겉보기에 장터가 많이 낡았지만 규모는 꽤나 크다. 그릇전, 잡화전, 건어물전, 채소전도 있다. 젓갈을 파는 점포도 있다. 장판과 벽지를 파는 곳도 있다.

조기 꾸러미 사이로 오가는 정담. 나주 동창장 풍경이다.
 조기 꾸러미 사이로 오가는 정담. 나주 동창장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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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데서 못판 괴기를 여그로 갖고와서 다 떨고 갔어." 동창장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 주는 윤씨 할머니.
 "다른 데서 못판 괴기를 여그로 갖고와서 다 떨고 갔어." 동창장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 주는 윤씨 할머니.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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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을 따서 '세지장'으로도 불렸던 동창장은 오래 전부터 큰 장이었다. 팔지 못해서 되가져가는 물건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물건도 사람도 아주 많고 잘 팔렸다고 해서 장꾼들 사이에선 '허천장'으로 통했다.

"아마 6·25가 끝나고부터 서기 시작했을거여. 당시만 해도 무지하게 컸제. 그때는 냉장고가 없을 때 아녀? 다른 장에서 다 못판 괴기들을 여그로 갖고와서 다 떨고 갔어. 장꾼들이."

화투를 만지작거리며 손님을 기다리던 윤씨 할머니의 말이다. 길손에게 건네는 커피 한 잔에 정이 듬뿍 담겨있다.

동창장의 잡화전. 생필품이 다 모여 있다.
 동창장의 잡화전. 생필품이 다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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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장의 어물전. 내륙 깊숙이 자리한 장터지만 어물전이 푸짐하다.
 동창장의 어물전. 내륙 깊숙이 자리한 장터지만 어물전이 푸짐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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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채 장시로 시작했는디. 여름에 부채를 한 200개 갖다가 놓으믄 금방 동이 났어. 그만큼 사람들이 버글버글했제. 그때가 젤로 좋았어."

어물전에 난장을 펴놓고 있는 한 할머니의 얘기다. 재래시장을 활성화시키겠다며 추진되고 있는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40년 터줏대감이라는 김씨 할아버지가 푸념부터 한다.

"빈 가게가 많응께, 싸악 다 철거해 불고 새로 짓자는 얘기도 나오는 모양인디. 우리는 환영 안허요. 요대로 (장사)하다가 (시장과) 같이 죽었으면 좋겄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욕심을 내겄소. 사용료나 오르겄지."

"대형마트 다 허가해서 전통시장 죽여 놓고. 인제 와서 전통시장 살리네 마네 하는 꼴이 우습소. 다 사후약방문이여. 하나마나하는 짓거리여."

그릇전을 운영하는 박 할아버지의 말에는 정부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 정부정책에 대한 오랜 불신도 바탕에 깔려 있다.

동창장 풍경. 장옥이 오래돼 낡고 헐었다.
 동창장 풍경. 장옥이 오래돼 낡고 헐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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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동창장, #세지장, #전통시장, #재래시장, #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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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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