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988년 총선결과를 두고 혹자들은 '황금분할'이라며 칭찬했습니다. 사실은 지역감정이 극대화 된 현실을 포장하는 '불안한 동거'였지요. 1990년 3당 합당으로 그 불안한 동거가 깨지면서 거대 괴물 '민자당'이 탄생했습니다. 2014년,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일부 언론들은 '견제와 균형'을 노린 절묘한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세월호 참사의 교훈도 없고 절박한 민심의 절규도 없는, 박근혜 마케팅만 있는, 한심스러운 정치 현실만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지방선거 총평을 싣겠습니다. 반추를 통해 교훈을 정립했으면 합니다. - 기자 말

좀 거칠게 이야기하면 선거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간의 집단 패싸움입니다. 여기에 가담하지 않는 중도층 유권자가 누구를 지지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죠. 그 중도층 유권자는 누군가를 지지할 수도, 아니면 투표를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것 역시 자신들의 정치적 결정입니다.

하지만 가장 적극적으로 앞에서 싸우는 후보자나 후미에서 그저 지켜보는 지지자나 또는 늦게 결합하는 중도층 유권자나 모두 한 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숫자를 확보해야 이기는 싸움이기 때문에 지지자의 충성도만큼이나 지지자의 확장성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어느 선거나 그 선거가 진행되기 전 정치적 지형과 벌어진 사건에 상당한 영향을 받습니다. 과거를 돌아보았을 때, 4년 전 제5회 전국동시 지방선거는 천안함 사건 이후 벌어진 북풍과 야권에서 주도한 무상급식의 싸움이었습니다. 이때는 야권이 전략적으로 띄운 '무상급식' 이슈가 '천안함 사건'이라는 정치지형을 뛰어넘어, 야권이 압승했습니다. 물론 반대 상황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전개되기 전 정치지형은 어떠했습니까? 이를 냉정하게 판단하면서 분석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라는 전무후무한 사건이 야권에 유리했다, 라는 식의 뻔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분석 포인트①] 박근혜 정권의 악재 돌출과 중진차출

첫 번째 분석 포인트는 박근혜 정권의 연일되는 악재와 중진차출입니다. 새누리-민주당-새정치추진위(안철수 신당)의 대결일 경우는 필연적으로 새누리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구도였으나 3월 2일, 민주당과 새정치추진위의 '제3지대 신당창당' 선언이 있은 후에는 새누리당의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한국갤럽에 의하면 3월 둘째 주 새누리당39%, 통합신당31%, 없음 26%를 기록했다.
▲ 3월 둘째 주 정당 지지도 추이 한국갤럽에 의하면 3월 둘째 주 새누리당39%, 통합신당31%, 없음 26%를 기록했다.
ⓒ 한국갤럽

관련사진보기


한국갤럽의 3월 둘째 주 여론조사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전의 정당 지지도를 살펴보면 최근 20주의 새누리당 지지율은 40~44%, 민주당의 경우 19~22%로 고정되었습니다. 이것이 지속되다가 2월 넷째 주 새정치추진위의 출현으로 새누리당은 별 영향을 받지 않았으나 민주당 지지율은 15%(새정치추진위는 18%)로 크게 떨어집니다. 3월 들어 신당창당 선언이 있은 후 새누리당 39%, 통합신당 31%, 부동층 26%로 조사됩니다. 만약 26%의 부동층이 혹시라도 통합신당으로 붙기라도 하면 새누리당에겐 매우 암울한 결과가 닥칠 테니까요.

새누리당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악재가 쌓였기 때문입니다. 지난 1년 내내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에 끌려 다니다보니 박근혜 정권으로서는 해 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며 총력을 기울였던 '창조경제' 역시 201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토머스 사전트 교수로부터 "Bullshit(허튼 소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2014년 들어서 부산외대 경주 리조트 붕괴사건, 여수 앞바다 원유 유출사건, 돌봄 교실 공약후퇴 논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 대한 증거조작 논란 증폭 등 눈만 뜨면 사건과 사고가 터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과 새정치추진위의 신당창당으로 새누리 지지도가 위협을 받게 되자 새누리당으로서는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지요. 결론은 '중진차출'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컨설팅에 능한 새누리당은 '중진차출'에만 기대지 않았습니다. 3월 9일, 국정원이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자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은 증거조작 논란에 대해서 유감을 표시했고 검찰은 전격적으로 국정원을 압수수색합니다. 3월 20일에는 규제개혁 끝장토론을 TV로 방영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네덜란드 헤이그의 핵안보정상회에 참석해서 평화통일 구상발표(드레스덴 선언)를 합니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야당이 기초선거 무공천으로 시끄러운 틈을 타 4월 1일, 전격적으로 무공천 철회를 공식 선언합니다. 사회적으로 의사협회의 집단 휴진이나 '황제노역' 논란이 있었지만 새누리당의 정치시계는 오로지 지방선거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분석 포인트②] 새정치민주연합 창당과 기초선거 공천배제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이 계속되는 악재를 덮고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여러 뉴스를 만들어 내고 있는 사이에 새정치민주연합의 존재감은 바닥을 쳤습니다. 우선 같은 배를 타기로 했던 민주당과 안철수 측의 화학적 결합은 참 어려웠습니다. 특히 '기초선거의 정당공천 배제'를 두고 커다란 논란이 되었습니다. 비록 대표인 안철수-김한길 합의였기는 했으나 기초단위까지 동의하기에는 너무나 먼 현실이었지요.

안철수 대표는 4월 4일, 청와대 민원실을 방문하면서까지 기초공천 관련 단독회담을 요구했으나 청와대로부터 거절당했다. 일주일여 뒤 새정치민주연합은 여론조사와 당원투표 결과를 토대로 무공천 철회를 결정합니다. '룰' 문제에 집중하다보니 자연히 선거에 힘을 쏟기는 어려웠습니다. 여기에 새정치민주연합 정강정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불거진 잡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줬습니다.

한국갤럽에 의하면 4월 둘째 주 새누리당44%, 새정치민주연합26%, 없음 26%를 기록했다.
▲ 4월 둘째 주 정당 지지도 추이 한국갤럽에 의하면 4월 둘째 주 새누리당44%, 새정치민주연합26%, 없음 26%를 기록했다.
ⓒ 한국갤럽

관련사진보기


4월 둘째 주 여론조사 결과입니다. 부동층은 여전히 변함없이 25~26%였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정당 지지도는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동층은 변동이 없고 31%로 시작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도는 계속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어떤 전략과 어떤 전술로 임할 것인지에 대한 당내 동의도 없었으며 들려오는 소리는 내부의 불협화음뿐이었습니다.

제도권 밖에서는 지속적으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문제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며 촛불시위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좀처럼 동력이 붙지 않았습니다.

2014년, 박근혜 정권의 첫 번째 전국단위 선거에서 사전 정치상황은 이리도 지지부진 했습니다. 대선에서의 부정선거를 거론조차 못하는 야당의 무능과 무기력함은 지지자들을 끌어들이지 못했습니다. 야당이 야당답지 못하다는 비판이 들끓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정부와 집권여당이 아무리 헛발질을 하고 실수를 해도 분위기가 완벽하게 야당 쪽으로 넘어오지 않았습니다.

민주당과 새정치추진위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신당을 창당하기로 했다면 그에 어울리는 계획을 짜고 미래의 청사진을 보여 줘야 했습니다. 이는 리더십의 문제였습니다. 정국을 주도하고 비전을 보이면서 문제를 헤쳐 나가는 리더십이 없다보니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 새누리당에 끌려 다니기만 했습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선거는 지지하는 사람을 끌어 모아서 상대방과 맞대결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편을 믿어야 합니다. 혼자 앞서 나가서 싸우다가는 당한다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든든한 배경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배경이란 바로 '국민적 지지'이고, 선거판 용어로 사용하자면 중도층이 더 많이 우리 진영에 가담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중도층을 우리 쪽으로 끌고 오기 위해서는 "저쪽 놈들이 나쁜 놈들이다"라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실제로 저쪽 놈들이 나쁜 놈들이라 하더라도 우리 편이 얼마나 좋은 대안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를 지지하게 될 때 앞으로 개개인의 삶이 얼마나 더 많이, 더 좋게, 더 현실적으로 좋아질 것인지에 대해 알려주고 설득해야 합니다.

물론 6·4 지방선거를 민주당과 새정치추진위는 새정치민주연합이란 한 배를 타는 지혜를 보여주었습니다. 분열되어 싸우면 필연적으로 지게 되어 있는 상황을 '연합'을 통해 "이제는 싸워볼만 하다"라는 자신감을 심은 것이지요.

여기까지는 참 잘했습니다. 문제는 당의 지도력이 개개인 병사들의 노력을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기초선거의 정당공천 배제'라는 문제는 국민들에게 "그 문제가 나의 미래 삶에 어떤 영향이 있는가?"에 대하여 구체적인 답을 주지 못하는 어젠다였습니다. 기존 국회의원의 지역에 대한 지배력 확장이냐 지역토호 세력의 정치시장 확산이냐의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것이 유권자의 투표행위를 적극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결국 '기초선거의 정당공천 배제' 문제에 지방선거 준비 시간을 거의 다 써버린 겁니다.

누가 어떤 전략으로 선거에 임했는가?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은 지난 3월 2일 국회 사랑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6.4 지방선거 기초선거 '무공천'을 선언하며 2017년 정권교체를 위한 신당 창당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 김한길-안철수, 지방선거 무공천... 신당 창당 합의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은 지난 3월 2일 국회 사랑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6.4 지방선거 기초선거 '무공천'을 선언하며 2017년 정권교체를 위한 신당 창당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정리해 봅시다. 어차피 이번 지방선거의 성격은 명확하게 '박근혜 정권 심판' 선거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새누리당도 무척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를 임하기 전 새누리-민주-새정치추진위 삼각구도에서 새누리-새정치민주연합의 일대일 구도로 바뀌었을 때 재빨리 이름이 있는 중진을 차출하고 이에 응했던 것입니다. 나중에는 선거법 위반을 각오하고 '박근혜 마케팅'까지 과감하게 실행합니다. 기민하게 대처했던 새누리당의 전략적 승리입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의 선거 전략은 너무나 느슨했습니다. 신당창당으로 일대일 구도가 되고, 지난 1년간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독선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를지라도 이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정당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정권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정당은 선거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그 국민적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선거의 전략을 제대로 수립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습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인에 대해서 "서생적(書生的) 문제의식과 상인적(商人的) 현실감각을 갖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상과 현실의 조화 속에서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상에만 집착하면 공허해지고 현실적으로 좌절할 가능성이 많다. 반면에 현실에만 집착하면 이상은 힘을 잃고 인생을 값없이 낭비하게 된다. 따라서 이 두 가지가 반드시 조화롭게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김대중, 한신대학교 개교 65주년 초청강연, "한반도평화와 민족의 미래", 2004.5.12.)

새정치민주연합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야기 한 '서생적(書生的) 문제의식'은 갖추었을지 몰라도 '상인적(商人的) 현실감각'을 갖추지는 못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니면 상인적(商人的) 문제의식과 서생적(書生的) 현실감각이라는, 지극히 오류가 날 수밖에 없는 거꾸로 된 길을 걸은 것은 아닌가, 의심이 됩니다.

이렇게 지지부진함이 이어지다가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납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눈물을 흘리는 대참사로 인해 선거는 전체의 판이 흔들립니다.

(2편으로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지방 선거 전 정치지형을 살펴 보았다면 다음은 비극의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난 다음의 각 정치세력의 전략, 행태 등에 대해서 톺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박근혜의 눈물을 비롯해서 제가 지난 연재에서 우려했던 '새누리당의 1인시위'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국민들에게 어필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태그:#6.4 지방선거, #선거평가, #선거 전 정치지형, #최요한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최요한, 1969년 서울 산(産), 2000년부터 방송에 관심 있어 주변을 맴돌다 2005년 우연히 얻어 걸린 라디오 전화인터뷰부터 시사평론 방송시작, 2014년부터는 경제 Agenda에 집중, 시사경제평론을 하면서 몇몇 경제채널 출연하고 있음, 어떻게 하면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지 종일 고민함.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