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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6·4 지방선거 개표방송을 보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잠을 청했다. 아무래도 새벽닭이 우는 시점이 돼야 주요 접전 지역의 당락이 확정될 것 같아서였다. 이미 결과는 투표함 속 표로 결정이 나 있는 것이고, 우리는 개표과정을 통해서 그것을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누구를 응원하는 것도, 한 표 한 표에 일희일비하는 것도, 결과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브라질 월드컵을 응원하는 것만큼도 의미가 없기에 그냥 잠을 청했다.

자고 일어나니 광역단체장 새누리당 8석, 새정치민주연합 9석이라는 성적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야권의 승리라고 할 만한데, 자세히 보니 새누리당이 경기와 인천을 가져갔다. 특히 인천은 시장이 현역인데도 새누리당이 승리했다. 전체 지방선거 판세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선방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야당의 입장에서도 4년 전 지방선거와 비교했을 때 인천시장을 내줬다 하더라도, 서울시장을 가져오고 강원도를 수성했으며 충청권을 싹쓸이한 점을 생각하면 새정치민주연합의 승리라고 손을 들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구원투수 박근혜'의 존재감

6.4지방선거 선거운동 마지막날인 지난 3일 오후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권영진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 거리유세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 사진이 포스터에 사용되고 있다.
▲ 대구시장 선거에 등장한 '박근혜 눈물' 6.4지방선거 선거운동 마지막날인 지난 3일 오후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권영진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 거리유세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 사진이 포스터에 사용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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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결과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2010년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220여 곳의 단체장 중에서 불과 82석만을 차지했으나, 이번에는 117석 정도를 얻었다. 반면 새정치민주엽합은 80곳을 얻는 데 머물렀다. 특히 새누리당은 충청권에서 광역단체장을 내줬지만, 기초자치단체장을 상당부분 가져갔다. 광역 선거는 인물 경쟁력에서 밀렸으나 정치적 기반은 여전히 강고히 존재한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또 한편으로는 기초자치단체장 결과와 관련해 이런 평가도 나올 수 있다. 민심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서울에서는 강남·서초 등 이른바 수도 서울 내에서도 새누리당의 텃밭이라고 할만한 곳을 제외하고는 새정치민주연합이 기초자치단체장을 싹쓸이했다. 새누리당은 4년 전에 비해 경기와 인천 지역에서 기초자치단체장 자리를 많이 가져왔으나, 수원과 성남·고양·부천 등의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매머드급 도시의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대부분 패배했다. 수도권 대도시급에서는 박근혜 정권이 철저하게 심판을 당한 모양새가 됐다.

그렇지만 광역과 다른 기초자치단체장의 전국 판세 결과 중 상당 부분은 김한길-안철수 체제가 떠안아야 할 부담으로 평가된다. 왜냐하면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도 지도부가 공천 여부를 놓고 갈팡질팡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공천을 하지 않겠다는 비현실적 결단으로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 나갈 후보들의 동력을 상당 부분 갉아먹었다. 꼭 이것만으로 기초선거에서 패배했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냉혹한 정치적 평가를 피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렇게 본다면 각 당 지도부가 받아들 성적표에 미묘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청와대를 살펴보자.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인 유정복 새누리당 인천시장 후보는 인천에서 현직 시장을 물리쳤고, 부산에서 서병수 새누리당 후보는 오거돈 무소속 후보의 끈질긴 추격을 따돌리고 당선했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유세에 나서진 못했지만, '눈물 흘리는 사진' 한 장으로 새누리당의 '도와주세요' 읍소 전략에 일조하며 지지층 결집에 한몫 했다.

이로써 '차떼기 정당'으로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박근혜가 나선 이래, 그녀가 나선 선거에서는 모두 이기고, 그렇지 않은 선거에서는 패배한다는 공식이 이번 선거를 통해 어느 정도 확인됐다. 다시 말해 새누리당이 청와대를 향해 권력 투쟁을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역대 대다수의 정권은 지방선거 참패 이후 급속한 레임덕을 겪곤 했는데,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볼 때, 그런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의 저력이 확인된 이상, 여권 내 권력의 균형추는 여전히 청와대 쪽으로 기울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좀 복잡미묘하다. 일단 안철수 대표는 전략공천을 밀어붙였던 윤장현 광주시장 후보가 압도적으로 당선됨으로써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만약 이곳에서 패배했다면 안철수 대표의 입지는 돌이킬 수 없이 좁아졌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준수한 성적을 얻었기에 당장의 책임론에서는 멀어졌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조성된 집권여당 심판론을 살리지 못했고, 여전히 낮은 당 지지율이 강원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패배를 가져오고 충청권 기초단체장 선거 성적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단 지도부는 당장의 정치적 책임론에서는 비켜나갈 수 있으나 앞으로 헤쳐나갈 정치적 경로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당장 7·30재보선에서 또 한 번의 시험을 치러야 한다. 더구나 재보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과반수에 육박하는 박근혜 고정 지지층과 낮은 정당 지지율 등의 부담을 안고 선거에 뛰어들어야 한다. 압도적인 인물을 내세우지 않고는 선거 상황을 낙관하기 힘들다는 것을 감안하면, 김한길-안철수 체제의 앞날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야 '잠룡'들의 희비 교차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인이 5일 새벽 서울 종로5가 선거캠프에서 지지자들에게 꽃다발 대신 선물받은 신발을 목에 걸고 있다.
▲ 꽃다발 대신 신발 목에 건 박원순 당선자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인이 5일 새벽 서울 종로5가 선거캠프에서 지지자들에게 꽃다발 대신 선물받은 신발을 목에 걸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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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당 지도부가 손익 계산을 한 다음에 두들겨야 할 정치적 계산기는 여야의 잠룡들에게 향한다. 잠룡 중에서 가장 큰 이익을 남긴 것은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인이다. 여권의 강력한 차기 대권 주자였던 정몽준을, 그것도 압도적인 표차로 꺾음으로써 가장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다는 평가다. 물론 박원순 당선인은 시장 임기를 채우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그로 하여금 시장직을 계속 수행하게 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앞으로의 정치 상황에 달려있다고 본다.

반대로 가장 큰 내상을 입은 것은 정몽준 후보다. 그는 온갖 네거티브 선거 운동을 펼쳤음에도 지난번 선거에서 패배한 나경원 후보가 얻은 46%보다 못한 득표율(43.1%)로 낙선했다. 물론 선거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 때 지더라도 다음에 대한 희망을 갖고 패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몽준 후보는 다음을 기약하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자신의 경쟁력만을 실증하고 쓸쓸히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 할 처지가 됐다.

다음으로 큰 정치적 지분을 차지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새정치민주연합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충남에서 재선에 성공한 안희정 충남도지사 당선인이다. 그는 20%대의 낮은 정당지지율에도 개인적 경쟁력을 바탕으로 충남 도지사로서 도민들에게 신임을 얻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정치적 이력이 없었던 안희정 당선인은 이번 선거를 통해 명실상부한 야권의 대표 대권 주자가 될 정치적 자산을 쌓았다. 더구나 지역 인구 규모가 날로 증가하고 있는 충청남도라, 상징하는 바가 클 것이다.

이는 친노(친 노무현) 세력 내부에서 문재인 의원과 미묘한 경쟁 구도가 펼쳐지게 됐다는 측면을 주목하게 만든다. 그동안 친노 세력은 야권 내에서 문재인을 중심으로 비주류 지역인 부산에 지역 기반을 두고 있었는데, 충청 지역에 안희정을 중심으로 새로운 비주류 야권의 기반이 형성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대권 구도의 측면에서만 봤을 때 안희정의 부각이 뼈아픈 후보는 송영길 현 인천시장이 될 것이다. 인천에서 현직 시장으로서 재선에 도전했지만 시민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했다. 이로인해 그는 적지 않은 정치적 상처를 입게 됐다. 같은 386세대 주자로서 안희정이 날개를 단 것을 지켜봐야 하는 송영길의 정치적 입지는 극도로 축소됐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여권에서는 상대적으로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인과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인이 부상했다. 여기에 김무성이 부산 지역을 수성함으로써, 나름대로 지역적 기반을 두고 정치적 비상을 펼칠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특히 남경필 당선인은 경기 지역에서 김진표라는 거물을 상대로 신승을 거둠으로써 나름대로 차기 대권을 향한 큰 발판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대중 민주주의에서 대권 주자로 커나가기 위해서는 선거를 통해서 나름대로 스토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점에 있어서는 야권 주자들에 비해 임팩트가 약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앞으로 남경필·원희룡 당선인은 광역행정을 통해서, 김무성은 당권 장악을 통해서 차기 대선 주자로서의 입지를 구축하는 노력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진보교육, 안정화의 길로 갈 수도


이번 6·4지방선거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현상은 진보 교육감의 약진이다.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진보 교육의 시대가 시작됐다면, 이번 선거를 통해 진보 교육감의 시대가 활짝 만개했다.

내용적으로 봐도 보수 교육이 추구하는 최고의 성공물이라 할 수 있는 고승덕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높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좌초했고, 전교조 명단 공개를 통해서 강성 보수 교육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조전혁 경기도교육감 후보도 낙선했다. 또한 부산에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것은 보수 후보가 분열됐다는 점을 감안해도 진보 교육의 압도적 승리라고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그동안 교육은 10년의 민주정부를 지나면서도 내용적으로 보수적인 틀을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교육 관료들 자체가 거의 대부분 보수적인 인사들로 채워졌고, 교육감이 이들 중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진보 교육 자체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가 되면서 한동안 대한민국 교육의 흐름을 좌우하게 됐다.

이번 지방선거의 혁명적 변화는 교육감 선거에서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서울과 경기도교육감을 진보가 차지함으로써 질적으로 승리했다는 평가를 얻었지만, 이번에는 단순 숫자로도 압도적 승리를 거둬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진보 교육의 승리로 평가된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교육 정책은 상당 부분 진보와의 조율을 거치면서 추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교육 정책의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경기와 서울을 비롯하여 많은 지역이 진보교육감의 영향으로 교육적 변화가 이뤄져 왔고, 박근혜 정부 역시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진보적 교육 정책을 공약으로 많이 받아 안았기 때문이다. 진보교육감의 대거 당선으로 교육 정책에 대한 방향이 확실해졌기 때문에 안정화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 상징이 바로 경기도교육감 후보로 나섰던 조전혁 후보의 낙선이다. 이번 선거 결과로 교육 쪽에 뜻을 둔 인사가 극단적인 적의와 분노로 한쪽을 배제하려는 행태는 유권자들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수 측도 인지했을 것이다.

이제 '싸가지 있는 진보'가 필요하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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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진보 세력의 일원으로서 이번 선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적 평가를 해보고자 한다. 너무나 많이 들어온 지겨운 이야기이지만, 한국의 정치 지형은 기울어진 축구 경기장과 같다. 진보세력이 실정을 할 때는 만방으로 지지만, 보수세력이 실정을 해도 어지간히 선방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 지금까지의 선거 결과다.

'차떼기'라는 오명을 쓰고 탄핵 역풍이 불었을 때에도 '선거의 여왕' 박근혜를 앞세운 한나라당은 선방했고,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선전했다. 부산에서 선전한 오거돈 무소속 후보는 의미있는 득표율에 만족해야 했고, 광역단체장을 석권한 충청과 강원지역에서도 기초자치단체장은 여전히 새누리당의 차지가 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따라서 진보는 이러한 정치지형을 감안하고 '실력 있는 진보' '싸가지 있는 진보'를 지향해야 한다. 충청남도에서 안희정이 재선에 성공한 것은 성공적인 도정을 바탕으로 보수적인 어르신들에게 다가가는 정치적 스탠스를 취했기 때문이다. 박원순이 압도적인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한 것도 결국은 '일 잘하는 서울시장'이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과거의 민주화 투쟁기처럼 바람만으로 진보가 승리할 수는 없다. 이번 선거에서도 인물 경쟁력이 없었다면 정권 심판 바람에도 엄청난 패배를 안을 수도 있었다. 천만다행인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땅의 진보세력을 이끌어가는 정치지도자들은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여전히 진보세력은 기울어져 있는 정치지형을 바탕으로 총선과 대선을 치러야 한다. 이런 불리한 환경에서 총선과 대선 승리를 이끌었던 김대중과 노무현은 이제 떠나고 없다. 작금의 정치지도자들이 다시 그만한 승리를 이끌어낼 정치 리더십을 꿈꾼다면, 정말로 치열한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정치 지형은 기울어져 있어도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실력만 좋다면 언제나 진보에게 표를 줄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지역주의가 강고해도 실력만 있다면 진보 역시 해볼 만하다는 것을 이번 선거에서 보여줬다. 그만하면 김대중이나 노무현 앞에 놓여있던 장애물보다는 훨씬 넘기 쉽지 않겠는가.


태그:#6.4 지방선거, #진보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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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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