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역 인근 빌딩 숲 사이 사이 가장 그늘 진 곳...서울역 쪽방촌 사람들의 표심은?
 서울역 인근 빌딩 숲 사이 사이 가장 그늘 진 곳...서울역 쪽방촌 사람들의 표심은?
ⓒ 조혜지

관련사진보기


지방선거가 진행되는 4일 오전 10시 35분, 남대문 경찰서 뒤편 회현동 제2투표소 밖으로 60대 노인이 불편한 다리를 이끌며 나왔다.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더 힘들어" 투표소인 남대문5가 경로당부터 서울역 대로까지 이어진 언덕길을 한참 바라보던 할아버지는 맞은편 슈퍼마켓 플라스틱 의자에 털썩 앉았다. 말이 슈퍼지 판자로 얼기설기 엮은 구멍가게다. 

"박원순이가 여기는 지원 많이 해. 늘 쪼달리긴 해도. 예전 여당 시장일 때보단 나으니까."

아랫니가 서너 개밖에 남지 않은 백발의 김아무개(52)씨는 언뜻 보기에도 70대 노인처럼 보였다. 1년간의 노숙생활과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느라 급격하게 늙었다고 했다. 그는 다음 시장 후보가 누가 되든 "선거 때마다 찾아오려고 하지 말고 평소에 좀 와서 자기도하고, 먹기도 해라"라고 당부했다.

6.4 지방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회현동 제2투표소를 찾는 유권자 중 대다수는 최소 50대 이상의 고령이자 남대문과 서울역 인근 빌딩 틈 후미진 언덕길에 위치한 쪽방촌 거주민들이다. 투표를 마친 11명의 쪽방촌 거주민 중 7명은 모두 박원순 시장 등 야권 후보를 지지했다고 밝혔다.  

"난 무조건 권력 잡은 사람들 반대에 있는 사람들 찍는다. 다 있는 놈들이겠지만 그나마 덜 가진 쪽이 우리 생각 조금이라도 더 해주겠지 하는 마음이다."

방금 투표를 마치고 나온 한아무개(59.남)씨가 말했다. 그는 서울역 인근 쪽방촌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다. 한씨는 "원래부터 정권은 불신하고 있었다. 세월호 사건 봐라. 여당이 하는 것 보면 욕밖에 안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파지를 줍는 리어카를 구청에 수거됐다가 다시 찾는 과정을 겪으면서  기존 구청장과 철천지원수가 됐다고 했다. 덧붙여 "범칙금 5만원인가 내고 겨우 찾았다. 자기들은 붙였다고 하는데 경고장도 못 봤다. 재산이라고 생각 하지 않는 것"이라며 "야당 구청장일 땐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역 인근 쪽방촌 주민들 "의료비 지원 많이 해준다는 후보 지지"

기존 행정가를 그대로 지지한 주민도 있었다. 당뇨로 눈이 충혈 돼 흰자위가 거의 보이지 않는 신아무개(57.남)씨는 "서울시장은 새정치 박원순, 구청장은 새누리 최창식 찍었다. 하던 사람이 잘하겠지"라고 말했다. 옆에서 담배 불을 빌리던 60대 중반의 한 남성은 "우리 동네는 유세차가 와도 5분 정도 둘러보다가 그냥 간다. 표 나오는 거 보면 뻔하니까. 그냥 하던 사람들 찍었다"라고 귀띔했다.

주민 중 대부분은 '의료비지원'여부에 따라 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경북 영양이 고향이라는 성아무개(58.남)씨는 "박원순이 노인들한테 잘 하겠다고 하길래 찍어줬다. 의료비 지원 계속 늘려주면 좋겠다.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큰 돈 드는 병은 걸리는 즉시 죽는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회현동 제2투표소 앞, 쪽방촌 주민이 투표장으로 향하는 언덕길에서 빨래를 널고 있다
 회현동 제2투표소 앞, 쪽방촌 주민이 투표장으로 향하는 언덕길에서 빨래를 널고 있다
ⓒ 조혜지

관련사진보기


쪽방촌 인근 슈퍼마켓 앞, 한 시민이 투표 후 선거공보물을 보고 있다
 쪽방촌 인근 슈퍼마켓 앞, 한 시민이 투표 후 선거공보물을 보고 있다
ⓒ 조혜지

관련사진보기


여당 후보를 지지한 주민도 있었다. 회현동에서 50년 넘게 살아왔다는 쪽방촌 토박이 박기만(68.남)씨는 "전부 여당 지지했다. 늘 그랬다. 정치는 보수가 잘한다"고 말했다. 나이키 커플 운동화를 맞춰 신은 노인 부부는 내외 모두 정몽준 후보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힘 실어줘야한다. 지금 너무 약해져서 문제다. 기강이 흔들리면 안돼."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고쳐 잡고 말했다. 옆에 선 할머니는 "난 잘 모른다. 할아버지 말 듣고 하는 거지뭐"라고 말했다.  수염이 덥수룩 한 50대 후반의 한 남성은 "1번으로 다 찍었다. 1번이 돈이 제일 많지 않나. 돈이 많아야 풀기도 잘하지 싶어서 찍었다"고 밝혔다.

"남의 집 앞에서 뭐 하는 거야!" 쪽방촌 건물 유리창을 열고 한 할머니가 소리를 버럭 지른다. 할머니가 선 창문 바로 앞에선 맞은 편 숙박업소 공사를 위해 건축 자재들이 재단 돼고 있었다. 텁텁한 먼지들이 할머니의 얼굴을 어렴풋이 가렸다.

"아니, 너무 심하다. 신고해야지 저래갖고 안돼. 그나저나 언니! 투표했어? 투표해야 더 젊어져."

할머니를 향해 슈퍼 주인이자 쪽방촌 통장인 최둘이(50대 중반.여)씨가 외쳤다. 최 통장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더 목숨 걸고 투표해야한다. 누굴 찍으라는 말은 안한다. 대신 투표는 꼭 하라고 아침부터 주민들에게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그:#6.4 지방선거, #쪽방촌, #서울시장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