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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사막에서의 점핑샷
▲ 사하라의 비상 사하라사막에서의 점핑샷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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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담요를 두 장이나 덮고 잤는데도 마치 한데서 잔 것 같이 춥다.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더니 다들 밤에 안 추웠느냐고 묻는다. 자리를 잡고 앉아 추위를 달래 줄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빵에 잼을 발라서 입에 넣었는데 무화과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신선한 잼, 투박하지만 씹을수록 고소한 빵, 향긋한 커피와 함께 하는 아침. 이런 소소한 행복감이 여행의 피곤함을 한방에 날려주는 듯하다.

차를 타고 사막을 향해 달린다. 이번에 멈춘 곳은 작은 마을이다. 어제와 다른 가이드가 마을로 안내한다. 마을 길을 따라 걸어가며 주변 식물들을 소개해 준다. 우리나라의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비슷해 보이는 나무들도 많이 있었다. 가이드가 말해 주는 단어를 검색해 보니 정말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였다.

들판에 심어진 밀을 보니 우리네 농촌과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올리브와 대추야자도 많이 있었는데 대추야자는 건조된 상태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고 했다. 사막으로 가는 여정이었지만, 가는 길목에는 다양한 수목들이 우거져 있다. 물도 풍부하고 식생의 종류도 다양해서 또 다른 아프리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 처자의 우상이 된 캐나다 노부부

풍부한 물과 비옥한 땅에서 자라나는 다양한 수목
▲ 모로코의 식생 풍부한 물과 비옥한 땅에서 자라나는 다양한 수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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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지나 마을로 들어갔다. 가이드는 좁은 골목 안에 있는 한 상점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상점 안에는 굉장히 많은 종류의 양탄자가 진열되어 있었고, 한쪽에서 한 여인이 실을 잣고 있었다. 그녀는 양털로 실을 잣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양털을 넓적한 쇠빗에다 올려놓고 다른 쇠빗으로 훑은 다음, 실을 뽑아 내는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뽑아낸 실로 만들었다는 양탄자에는 기하학적 문양들이 다양한 색으로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었다. 양탄자에 쓰인 여러 색상은 자연에서 추출한 천연염료로 만들어 낸 것이며 다양한 문양은 각각의 고유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사막에서 반드시 필요한 생명수를 상징하는 무늬, 여행자를 상징하는 무늬 등이 양탄자에 새겨져 있었다.

실을 잣는 모습, 완성된 양탄자, 양탄자를 구입한 캐나다 부부의 인증샷
▲ 핸드메이드 양탄자 실을 잣는 모습, 완성된 양탄자, 양탄자를 구입한 캐나다 부부의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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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탄자가 하나씩 펼쳐질 때마다 감탄사가 터진다. 화려한 색상과 독특한 무늬들, 예쁘기도 하지만, 만드는 데 들었을 그들의 노고가 떠올라 더욱 대단하게 느껴진다. 가이드는 끊임없이 양탄자를 보여 주며 설명했는데 그 중 하나가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가이드의 어머니가 7개월에 걸려 짠 작품이었다. 호기심 많은 캐나다 여인이 물었다.

"내가 짠다면 얼마나 걸릴까요?"
"우리 어머닌 숙련된 기술자이기에 7개월이 걸렸지만, 당신은 평생 짜도 힘들 거예요."

이 말을 들은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손을 잡더니 정색하며 말했다.

"당신은 여기서 이런 일 하지 않아도 돼요. 집으로 갑시다."

그녀를 생각하고 아껴주는 말 한마디에 모두가 감동했다. 노부부의 사랑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양탄자의 여러가지 문양과 다양한 색감이 아름답다
▲ 양탄자 양탄자의 여러가지 문양과 다양한 색감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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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것이 있었지만, 저 무겁고 큰 양탄자를 들고 한국으로 돌아가기엔 부담이 되었다. 캐나다 여인은 사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녀의 마음을 알아챈 남편이 다정히 말했다.

"우리 400유로 정도의 여유는 있으니까 그 안에서 당신이 알아서 해요."

그의 말에 그녀는 작은 양탄자 하나를 샀다. 부인을 배려하고 존중해 주는 그 모습이 참 멋있다. 캐나다 부부는 한국 처자들의 우상이 되었다. 부부의 사랑을 짧은 기간이나마 가까이서 지켜본 한국 처자들은 그에게 아직 미혼인 아들이 있는지 물었다. 이러한 부모라면 분명 아들도 아버지의 모습을 물려받았을 거라며.

이번에도 가이드가 안내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겉모습은 허름해 보였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분위기가 좋다. 정원에 식탁이 놓여져 있고 편안한 소파에 쿠션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식당 밖에는 개울이 있어서 먹거리를 따로 준비해 온 일행 몇 명은 물가로 나가 식사를 한다. 빙 둘러앉아 즐겁게 도시락을 먹는 모습이 마치 소풍을 나온 것 같다.

치킨타진, 미트볼타진, 소고기케밥(꼬치요리)
▲ 모로코요리 치킨타진, 미트볼타진, 소고기케밥(꼬치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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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와 우리도 함께 테이블에 앉았다. 메뉴판을 보고 어떤 음식인지 물어본 끝에 미트볼타진, 치킨타진, 소고기케밥(꼬치 요리)을 주문했다. 햇살 고운 정원에 앉아서 먹는 점심 식사는 꽤 근사했다. 메뉴 선택이 탁월했는지 맛도 좋아서 싹싹 긁어 먹었다. 향신료도 강하지 않고 고기 누린내도 나지 않아 정말 맛있게 먹었다.

관광지라 다른 곳보다 훨씬 비싸게 받는다고 먹거리를 준비해 오는 사람도 있지만, 1인당 70디르함(한화 만 원)을 내고 이 정도의 식사라면 훌륭하다는 생각이다. 기회가 되면 다시 먹어보고 싶었다.

절벽의 높이가 160m에 달한다는 토드라협곡
▲ 토드라계곡 절벽의 높이가 160m에 달한다는 토드라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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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차를 타고 달려 토드라 협곡에 내렸다. 개울 양옆으로 펼쳐진 암벽은 하늘에 맞닿을 정도로 높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높이가 160미터나 된다고 한다. 예전에 얼마나 많은 물이 흘렀길래 이렇게 깊은 협곡이 생겼을까.

가이드는 우리 일행이 다 도착하지 않았는데도 밝고 기운 넘치는 캐나다 여인만 데리고 설명한다. 우린 뒤를 따라가며 가이드비를 깎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수군거렸지만, 열심히 쫓아다니며 설명을 들었다.

차를 타고 달린 지 세 시간쯤 지났을까? 주변의 풍경이 달라졌다. 마을도 집도 보이지 않는다. 간간이 나무가 한 그루 정도 보일락 말락 한다. 붉은 흙은 사라지고 대신 검은 자갈들만 보인다. 이게 검은 사막이라는 건가?

자갈과 흙이 섞여 있는 비포장도로로 들어서서 얼마쯤 달렸을까. 천막이 몇 개 보이더니 호스텔 앞에 내려준다. 그곳에서 머무르나 했는데 꼭 필요한 짐만 챙기란다. 사막에서 하룻밤 자는 데 필요한 것만 작은 배낭에 넣고 나머지는 우리가 타고 온 차 트렁크에 넣어 두었다.

사하라사막 입구는 검은 자갈들로 덮혀 있다
▲ 검은 사막 사하라사막 입구는 검은 자갈들로 덮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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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사진이 된 사막에서의 점핑샷

짐을 챙겨 나오니 낙타가 줄지어 앉아 있다. 여기서부터 낙타를 타는 모양이다. 예전에 실크로드를 따라가며 탔던 낙타는 매우 커서 일어섰을 때 높이가 2미터도 넘었다. 낙타 위에 타고 낙타가 일어날 때 흔들림이 커서 불안했었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여기 있는 낙타들은 자그마해서 좀 안심이 되었다. 낙타가 작아서 위에 타는 것이 무섭지는 않았으나 내 무게에다 짐까지 싣게 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이드는 총 두 명이었는데 우리 일행 열세 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안내했다. 우리의 가이드는 제일 앞에서 낙타를 몰며 조용히 사막을 향해 걸어갔다. 딸은 처음 보는 사막이 신기한지 쉴 새 없이 사진을 찍는다. 이리저리 움직여서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낙타가 워낙 순하고 얌전해서 다행히 떨어지진 않았다. 가이드는 우리의 카메라를 받아서 낙타 위에 올라탄 우리를 찍어준다.

석양에 비치는 숨막힐 듯한 붉은 사막을 기대했지만, 해는 구름에 가려져 그 빛을 뿜어 내지 못한다. 붉은 사막 위의 낙타 그림자를 보고 싶었는데 하늘은 우리 편이 아닌가 보다. 가이드는 높은 모래 언덕 위에서 낙타를 멈추더니 여기서 사진을 찍으라 한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위의 모래 언덕들과 모래 위에 새겨진 바람의 흔적이 보인다.

드디어 사하라 사막에 들어왔구나. 비록 태양이 내리쬐는 붉은 사막을 보지는 못했지만, 말로만 듣던 사하라 사막에 오다니 꿈만 같다. 나는 모래 위에 글씨를 썼다.

"2014년 1월 20일 사하라에 오다. 진숙"

이 감동 오래도록 기억하며 돌아가서도 힘들 때마다 꺼내 보리라.

모두들 각자 사하라에 온 것을 기념하고 추억을 남기기 위해 분주했다. 딸은 모두를 모아놓고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총 열세 번을 찍어서 모두에게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다들 아이처럼 좋아한다.

이번엔 내가 제안을 했다. 점핑샷을 찍어 보자고. 노부부 네 명을 빼고 모두들 재미있겠다며 흔쾌히 동의했다. 그런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 아홉 명이 동시에 점프하는 순간을 찍는다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사진 한 장을 건졌다. 사진을 보여주자 다들 감탄한다. 원더풀을 외쳤다. 그렇게 하나가 되어갔다.

낙타를 타고 들어가는 사하라사막. 사하라사막에서의 인증샷
▲ 사하라사막 낙타를 타고 들어가는 사하라사막. 사하라사막에서의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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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낙타를 탔다. 저 멀리 천막이 쳐져 있는 곳이 오늘 우리가 묵을 곳이란다. 낙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천막 안에서 쉬고 있으니 가이드 둘이서 식사를 준비해 왔다. 사막에서의 식사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따뜻하고 푸짐한 식사가 차려졌다. 감자와 완두콩 치킨이 넉넉하게 들어간 치킨타진은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사막 한가운데서 먹는 식사이기 때문일까. 모로코에 와서 먹은 것 중 가장 맛있는 식사였다. 주위가 어두워지자 가이드들은 식사를 정리하고선 모닥불을 피운다.

우리가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자 공연을 시작한다. 가이드 둘이서 일당백의 역할을 해 낸다. 그들이 젬베를 치면서 부르는 노래는 멜로디가 쉬운 것이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 붙어 따라 부르게 되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마라케시에서 사 온 로제 와인을 꺼냈다. 모두들 이걸 어떻게 준비해 왔냐며 신기해한다.

내가 준비해 온 와인 한 병으로 열세 명이 나누어 마시려니 좀 부족하였지만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충분했다. 다 같이 '건배', '치얼스'를 외치며 사막에서의 밤을 즐겼다. 나는 와인 한 병으로 아프리카에서까지 인기를 끌었다.

어린 철학자 사이드에게 감동하다

공연이 끝나자 노부부 네 명은 천막으로 들어갔다. 아직 젊은 한국인 처자들과 나, 일본인 두 명은 아쉬움에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런 우리를 본 어려 보이는 가이드가 타악기 연주하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며 해 보란다. 쉽지 않아서 이리저리 해 보는데 이번에는 신기한 구경을 시켜준다며 자기를 따라오란다. 그는 모래 위에 나 있는 마른 풀에 불을 붙이더니 불 위를 뛰어넘는 재주를 선보인다.

낙타를 몰 때도 노래를 부르며 가고, 사진을 찍을 때도 옆에서 웃긴 표정을 짓던 그는 장난기가 넘쳤다. 이번에는 날랜 걸음으로 모래 언덕을 올라간다. 나도 따라가려 했으나 모래 언덕을 오르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발이 푹푹 빠지고 미끄러져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어렵게 올라왔더니 그는 미끄럼을 타 보라며 뒤에서 밀어준다.

사막에서의 낮과 밤. 사막 한가운데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공연하는 모습
▲ 사막의 두 얼굴 사막에서의 낮과 밤. 사막 한가운데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공연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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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신나게 놀다가 모래 위에 누웠다. 빛 한 오라기 없는 까만 하늘에 떠있는 별은 쏟아져 내릴 듯했다. 컴퍼스로 그린 듯한 반구를 이루고 있는 하늘 위에 촘촘히 박힌 별을 보고 있으니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고요한 사막 속에서 하염 없이 별을 바라보고 있으니 별똥별이 하나씩 떨어진다. 이곳에 다시 오리라 하는 소원을 비는 사이에 달이 떠올랐다. 쏟아질 듯하던 별빛은 달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천막으로 돌아왔다. 장작불은 아직 남아 있었고 잠이 오지 않았던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유쾌하고 장난기 많은 가이드의 이름은 사이드. 어느새 우리는 사이드에게 궁금한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그는 아까와는 달리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에 선선히 대답을 한다. 25살인 그는 7개 국어를 할 줄 안다고 했다. 베르베르족의 세 가지 언어를 할 수 있으며 영어와 아랍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외에도 다른 언어들도 조금씩 할 수 있다고 했다.

사막투어를 함께 하는 일본인 남자에게 일본어로 계속 장난을 치길래, 한국어도 할 수 있냐고 했더니 한국어는 어렵다고 한다. 학교에 다녀 본 적이 없는 그는 가이드일을 하며 외국인들을 상대하며 언어를 익혔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는 유목민 생활을 했고 지금은 가이드 외에도 다양한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한다고 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고 물질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면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또래에 비해 성숙해 보였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으며 항상 깊게 사고하려고 노력한다는 가이드. 진지한 이야기 중에도 장난스럽게 핑 소리를 내며 시간을 맞히는 그는 별의 흐름을 읽는다고 한다.

사막에서의 삶이 그를 철학자로 만든 것일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누구에게서든 배움을 찾는 그에게 감동했다. 그의 삶이 아름다워 보인다.


태그:#모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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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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