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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정치, 왜 중요한가?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세월호로 인해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있지만 우리의 정치인들은 이미 선거체제로 돌아섰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은 측근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국민 앞에 눈물을 보였고, 곧이어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순방 외교길에 올랐다. 정당들과 정치인들 역시 세월호 사건 앞에 한껏 몸을 낮추고 있지만 뒤로는 선거에 미칠 영향을 저울질하느라 바쁘다.

한국 사회에서 선거는 매우 이중적으로 이해된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냉소 속에 한바탕 정치쇼로 다루어지는 측면과 몇 표 되지 않는 0.1%의 격차라도 어떻게든 이기기만 하면 모든 권력을 가질 수 있는 통로가 되기 때문에 '정치=선거'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정글이다. 최저 출산율과 최고의 자살률, 출생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경쟁과 불안이 똬리를 틀고 있다. 아이들은 다른 나라의 2배가 넘는 공부시간으로 세계에서 가장 불행해졌지만 그렇게 공부해서 들어간 대학은 등록금과 주거비로 허덕이는 잔혹한 현실이다.

부자부모를 둔 대학생과 알바를 해야만 하는 학생은 스펙경쟁부터 차이가 나, 들어갈 수 있는 회사부터 달라진다. 대기업은 수출과 국내 독점으로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지만 성장의 열매는 밑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소수에게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고용을 줄이고 중소기업의 이윤을 가로채니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희망이 없다. 그 결과 내수경기가 침체되어 영세자영업과 비정규직은 기본 생활비도 벌지 못하고, 생계형 가계대출은 고리의 이자를 내야하는 제2금융권으로 몰리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이런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과 취약한 사회안전망, 그로 인한 사회불안과 삶의 불행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투명한 경제체계 내에서 존재하는 순수한 시장결과가 아님을 누구나 알고 있다.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감세, 규제완화, 각종 기업지원제도, 노동자나 시민들의 분배와 경제활동 감시에 대한 규제 등 곳곳에 숨어있는 '정치적'제도들이 경제적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다. 문제는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대다수 국민들의 이해와 상반되는 정치적 결정이 내려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다. 

한국 중하위층은 보수화되었는가?

중하위층의 정치성향, 바람직한 사회상, 현재 불평등의 수준과 해결방식, 불평등의 원인 등에 대한 자료를 통해 한국인, 특히 중하위층이 원하는 사회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한국복지패널조사에서 국민들의 복지의식을 조사해왔다. 2013년 복지인식 부가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복지, 정치의식의 일단을 살펴보자.

한국인이 스스로 생각하는 정치성향에서는 저소득층의 보수화경향을 찾아보기 어렵다. 전 계층에서 일관되게 높은 비율은 중도층이며 오히려 선택할 수 없다는 비중이 줄고 있다는 점과 일반가구의 진보→중도성향증가와 저소득층의 진보성향 증가가 눈에 띈다. 특히 저소득층의 경우, 진보적 입장이라는 비율이 크게 증가했으며 보수적이라는 입장은 그만큼 줄었다. 저소득층을 제외한 계층에서는 보수화보다는 중도를 선택한 비율이 증가한 것이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정치성향(10년 13년 비교 %)
▲ 그림1. 한국인이 생각하는 정치성향(10년 13년 비교 %)
ⓒ 복지의식 부가조사. 한국복지패널. 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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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생각하는 복지 책임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이런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누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한국인들은 압도적으로 현재 불평등은 너무 심하며, 이 불평등의 원인은 정부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실업자들에게 적정 수준의 생활을 보장해주어야 하며, 빈곤층에 대한 정부지출을 줄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2010년에 비해 소득이 매우 불평등하다는 응답은 76.94%에서 91%로 크게 늘었고 소득격차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의견은 67.64%에서 70.2%로 증가했다.

이렇듯 한국인의 의견 그 어디에서도 불평등을 인정하는 태도와 정부책임을 확대해야 한다는 부분을 부정하는 보수화의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더구나 저소득층의 경우, 전 계층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실업자에 대한 인간적 삶의 보장을 정부가 해야 한다는 비중은 저소득층이 70.94%로 전체 계층 64.52%에 비해 훨씬 높게 나타났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복지책임
▲ 그림2. 한국인이 생각하는 복지책임
ⓒ 복지의식 부가조사. 한국복지패널.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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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생각하는 빈곤의 원인

마지막으로 한국인들은 빈곤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는지를 살펴보자. 흔히, 빈곤의 원인을 개인의 능력이나 나태에서 찾는 나라의 경우, 재분배정책을 지지하는 비율이 낮아진다고 한다. 조사결과는 절제력이나 노력, 관리 능력 등 개인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설문이 우선순위를 묻는 것이 아니고 각 항목에 대한 중요도를 묻는 방식이기 때문에 상대적 우선순위로 보기는 어렵다.

주목할 만한 내용은 질병이나 장애, 낮은 임금과 질 낮은 일자리, 태어난 가족환경 등 구조적 원인이나 태생적 불운을 원인으로 보는 비율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특히 낮은 임금과 일자리, 교육기회는 두 번째로 중요하다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다. 개인의 측면도 있지만 구조적 원인으로 일자리와 교육기회를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사회복지를 위해 세금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전 계층의 41.27%, 저소득층 45.72%가 찬성한 반면, 반대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전 계층의 29.6%, 저소득층의 24.01%만이 반대하고 있다(본 조사는 2010년에 실시되었다).

여기에 나보다 돈을 더 벌면서도 세금을 덜 내는 사람이 많은지에 대해 전 계층 88.2%, 저소득계층 90.37%이 그렇다고 응답해(2013년 조사), 세금이 정당하게 걷히고 있지 않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과반수정도가 복지를 위한 세금확충에 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조사와 마찬가지로 저소득층의 복지 지향이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음은 물론이다.

복지원인(중요도 높은 순)
▲ 그림3. 복지원인(중요도 높은 순)
ⓒ 복지의식 부가조사. 한국복지패널.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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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원인(이어서. 중요도 높은 순)
▲ 그림4. 복지원인(이어서. 중요도 높은 순)
ⓒ 복지의식 부가조사. 한국복지패널.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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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준 유권자를 배신하는 정치인

대의민주주의 체계에서 부유층을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의 이해는 왜 반영되지 못하는가? 이 질문이 본 글의 핵심적 의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한국의 중하위층은 실제 불평등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문제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의 중하위층은 불평등 문제를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 부가 평등하게 분배되고 약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있는 사회를 희망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한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을 만들어낸 범인은 누구인가? 투표를 통해 선출된 정치인들이 자신들을 뽑아준 유권자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왜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의 저자들은 두 가지 원인을 제시한다. 중하위층은 정치참여도 돈도 지식도 없다는 점과, 부유층은 매우 열심히 한다 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중하위층은 불평등에 대해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으며 재분배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거가 대규모의 서커스쇼가 되어가면서 돈과 조직력, 충분한 지식과 정치참여의 시간이 없는 중하위층의 의견은 정책에서 완벽하게 배제되고 있다.

저자들은 선거뿐만이 아니라 그 이후의 복잡한 정책결정과정이 전부 정치이며 이 과정에서 돈과 조직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를 역사적 사실을 들어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부자들과 기업에 대한 감세정책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재계의 막대한 돈과 강력한 로비의 힘을 앞세운 정치인들이 어떻게 감세정책을 통과시킬 수 있었는지, 노조의 정치적 활동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사용자측의 로비가 어떻게 워싱턴과 지역 상하원을 장악해 들어갔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 결과는? 미국 정치의 양극화이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정부기능 회복과 규제도입, 증세, 사회보장확대는 공화당에게 모두 사회주의 정책이고 민주당의 정책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실제 들어보지도 않고) 반대하는 문화가 구축된 것이다. 또한 양극화 문제는 민주당이 좌로 방향을 튼 것이 아니라 공화당의 극심한 보수화의 결과이다. 공화당은 7-80년대 공화당원들까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보수화-다시말해 친 기업, 반복지, 작은 정부, 규제완화, 감세의 신봉자들이 되어갔다.

여기에서 저자들이 또 제시하는 정치적 파워는 '표류'이다. 공화당이 재계와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면 민주당은 이들의 '보험'이 되었다는 것이다. 감세와 규제완화 정책을 추진하는데 반대하지 않는 민주당, 규제도입과 증세, 사회보장확대를 위한 정책을 표류시키는 민주당을 만든 것이다. 그 결과 민주당은 90년대 들어 공화당의 절반수준으로 선거자금을 모을 수 있었지만, 그 결과로 미국 정치는 표류하게 되었다.

결론은 이렇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만든 것은 대다수 중하위층이 아니다. 우리들은 소득의 정당한 분배와 안전한 사회보장, 그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며 상황의 개선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선택한 정치인들은 유권자를 배신하고 있다. 선거철이면 표를 호소하지만 선거를 위한 돈을 지불하는 부자들과 기업만이 그들의 유권자일 뿐이다. 더 나아가 스스로 선택한 정부이니 무엇을 해도 국민의 뜻임을 내세우며 책임을 떠넘기기까지 한다. 전형적인 희생자 비난하기이다.

"너희들이 뽑았으니 우리가 무엇을 하든 국민의 뜻이다. 결과 역시 국민의 책임이다."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들은 정치를 바로잡는 것이 불평등을 줄이는 핵심 과제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정치를 바로잡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정치제도 역시 경제 권력의 힘으로 왜곡되어 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한 분권장치가 다양하다.

결정을 위한 최소 득표기준과 상하원의 복잡한 절차, 의사진행방해 등이 그것으로 권력의 독주를 막는 기능보다는 개혁적 정책을 표류시키고 대중들에게 숨기는 역할로 변해왔다. 복잡한 선거제도와 상하원제도 역시 중하위층 유권자의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여기에 막대한 선거자금을 통한 TV유세와 광고, 이데올로기 공격으로 선거는 한바탕 정치서커스가 된지 오래이다. 정치를 경제 권력이 장악해온 것 역시 부유층의 힘이었다.

민주주의 수호자는 누구인가?

한국은 어떠한가? 간략히만 보면, 미국과 가장 다른 것은 시민들의 정치의식과 핵심 정책에 대한 이해도, 참여의지가 매우 높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미국은 대공황 이후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강력한 뉴딜정책추진과정에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강력한 노조, 시민운동 등 진보적 경험이 있었다.

공화당 역시 현재와 같지 않은 모습을 가졌다가 70년대 이후 급격하게 우경화되었다. 반면, 한국은 과거 진보적 정책을 추진한 경험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 글은 한국 정치를 분석하는 글은 아니다. 현재의 정치구도는 대다수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검토한 것이다. 따라서 선거와, 선거를 넘어 정치 영역에 대다수 국민들의 영향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민주주의 수호자는 누구인가? 그 누구도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다. 투표는 그 출발이다. 투표를 넘어 지속적인 참여만이 우리의 이익을 수호할 수 있는 길이다. 노동조합, 건강한 시민단체, 감시기구를 만들고 참여해야 한다. 정책을 개발하고 이슈화할 수 있는 진보연구소와 어려운 사회경제적 이슈들을 대중적으로 해설하고 힘을 모아낼 수 있는 언론과 연구 집단이 필요하다. '그들'은 성실하며 돈도 많고 조직도 탄탄하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항상 성공해왔다. 이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다수'라는 것 밖에는 없다. 대한민국의 대다수인 우리가 바로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은경 기자는 새사연 연구원입니다.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www.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선거, #민주주의, #복지, #중하위층 보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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