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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역사, 70억의 기억' 라이프사진전에 전시되었던 작품으로 전쟁을 보는 사람과 직접 겪은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하나의 역사, 70억의 기억' 라이프사진전에 전시되었던 작품으로 전쟁을 보는 사람과 직접 겪은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 안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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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연적인 절대자의 힘에 의존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한다'(출처: 다음 백과사전)는 '종교(宗敎)'의 정의가 무색해지고 있는 이 때다. 오히려 현실의 모습을 보거나 역사적 사실 등을 되돌아보더라도 종교가 '분쟁의 씨앗'이라는 비관론이 더 부각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로 인해 온 나라가 시끄럽다. 구원파 지도자로 알려진 유병언 전 세모그룹회장의 그간 행태를 보면 그가 종교지도자라기 보다는 종교를 빙자한 사업가에 불과하다는데 이의를 달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종교를 빙자한 사업은 구원파 뿐 아니라 '정통'을 자처하는 대형교회 목회자나 다수 불교사찰의 승려 등 종교인들에게 광범하게 해당되는 내용이라는데도 큰 이견이 없다는 평가다.

아들 회사의 주식을 적정가보다 배 이상 비싸게 사들여 교회에 131억 여원의 손해를 입히고 실형을 받은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나 논문표절과 재정유용 등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서초동 대형교회인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 등의 사례는 구원파 유병언 전 회장의 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종교라는 이름 아래 모인 신도들이 종교지도자들, 아니 종교를 빙자한 사업가들로 빚어진 사건들에 의해 분노와 저주, 울분에 휩싸여 있는 현실의 모습은 종교의 사전적 정의를 무색케 만든다는 지적이다.

'하나의 역사, 70억의 기억' 라이프사진전에 전시되었던 작품으로 전쟁은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과거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역사, 70억의 기억' 라이프사진전에 전시되었던 작품으로 전쟁은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과거임을 보여주고 있다.
ⓒ 안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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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돌이켜보면 종교와 종교인들이 얼마나 '비평화적'이며 '호전적'이어서 인간에게 큰 고통을 안겨줬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인류 전쟁의 근원을 따져보면 최소 50% 이상이 종교에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선 대표적인 종교전쟁인 11~13세기의 십자군 전쟁은 지금도 종교, 정치,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거룩한 전쟁'으로 호도되고 있다. 하지만 이 전쟁이 유럽의 봉건영주와 하급 기사들의 새로운 영토지배의 야망과 상인들의 경제적 이익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됐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종교가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전쟁을 불러온 셈이다.

1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인간의 손에 주물러진 가톨릭은 중세 유럽에서 이미 기득권 세력과 결탁한 '부조리' 그 자체였다. 16세기 독일과 프랑스에서 일어난 독일농민전쟁이나 위그노 전쟁은 가톨릭과 개신교 간 전쟁이었지만 기득권 세력에 저항하는 민중봉기에 가까운 전쟁이었다. 이러한 신·구교 간 갈등은 '구원과 평화를 위한 경쟁'이 아닌 신·구 권력 간 치열한 '밥그릇 싸움'의 양상을 띠며 수백 년간 이어진다.

이러한 종교에 기인한 전쟁은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간디라는 세계적 위인을 배출했지만 독립 이후 인도는 힌두교의 인도와 이슬람교의 파키스탄으로 분리돼 지금도 대립관계에 있다. '인종청소'라는 현대 인류사의 비극을 만들어낸 보스니아 내전, 코소보 사태 역시 동방정교와 가톨릭, 이슬람 3교의 세력 갈등이 내재돼 있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으로 요약될 수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불교 역시 갈등과 전쟁의 구심점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불교 파시즘'(출판사 교양인·박광순 옮김)을 지은 브라이언 D. 빅토리아는 군국주의 일제 당시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파시스트들에 동조한 일본 선승들이 천황주의를 옹호하며 종교를 내팽겨쳤음을 비판하고 있다. 빅토리아는 당시 선승들이 속세의 가치관과 개념의 초월을 의미하는 '선'의 가치를 나를 초월해 국가에 모든 걸 바치도록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로 활용했다고 일갈했다.

지난 2004년 학내 종교자유 투쟁으로 유명한 강의석 사건 당시 해당 고등학교의 교목실장이었던 류상태 전 목사의 최근 '종교인권 시민강좌'의 내용이 눈길을 끈다. 류 전 목사는 '신의눈물, 신은 전쟁을 좋아한다?'란 제목의 강연에서 9.11 테러를 언급하며 "당시 테러를 자행한 탈레반 무장세력에 대해 비판하는 기독교인은 많았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똑같이 전쟁을 통해 보복하려는 미국을 비판하는 기독교인은 미국에도, 한국에도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류 전 목사는 "(지난 1998년 종권다툼에서) 스님들은 조계사에서 각목과 쇠파이프를 들고 서로 죽일 듯이 싸웠다"며 종교적 호전성이 기독교만의 전유물은 아니라고 설명하기도 했다.(출처 : 다음 카페 '류상태 글방')

'모임에 가면 종교와 정치 얘기는 하지 말라'고 한다. '얘기해봐야 싸움 밖에 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정치는 어차피 정권을 잡기 위해 겨루는 집단들의 얘기니 그렇다 치지만 종교가 싸움만을 유발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결국, 종교는 호전적인 인간의 본성을 깨우치는 역할에 그치는 것인가? 아니면 인류는 종교인에 의해 가려진 종교의 본질을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종교의 사전적인 의미가 더욱 아쉬운 이 때다.

덧붙이는 글 | 다른 매체에 송고하지 않은 기사입니다.



태그:#종교, #전쟁,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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