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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법계사 가는 길은 순례길에서 시작됩니다.
 법계사 가는 길은 순례길에서 시작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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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자 마지막, 딱 한번뿐인 순간, 환호와 기쁨이 넘실대는 순간을 함께 한다는 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떨리는 감동이며 가슴 벅차는 기쁨입니다. 마음 떨리는 감동과 가슴 벅차는 기쁨을 두루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오는 6월 10일, 지리산 법계사에서 마련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은 언제나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매 순간 모두가 한 없이 소중하지만 반복되고 거듭되기에 순간순간 하나하나를 전부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주 가끔, 날벼락처럼 맞닥뜨리는 고난, 눈물바가지처럼 쏟아지는 슬픔, 횡재처럼 다가오는 기쁨과 함께한 순간은 언제까지나 기억됩니다.

마음 떨리는 감동으로 다가오고, 가슴 벅차는 기쁨으로 기억하게 되는 순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내내 행복한 감정을 뭉클뭉클 솟아오르게 하는 화수분이 되기도 하고, 어렴풋하게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가슴을 설레게 하는 기쁨 주머니가 되기도 합니다.

지리산 법계사로 가는 길은 온통이 연록빛깔 단청

지난 15일, 1박 2일로 하늘아래 첫 산사, 지리산 천왕봉 아래쯤에 자리하고 있는 법계사엘 다녀왔습니다. 법계사 가는 길은 온통이 연녹색 단청입니다. 타박타박 걸으며 딛는 발자국마다 연두색 싱그러움이 뚝뚝 묻어날 만큼 맑고 깨끗한 연둣빛 산길입니다.

지리산은 온통이 연녹색입니다.
 지리산은 온통이 연녹색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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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사 가는 길은 납작납작한 돌길을 토닥토닥 걸어도 좋습니다.
 법계사 가는 길은 납작납작한 돌길을 토닥토닥 걸어도 좋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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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사 가는 길에는 연녹빛 루르름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법계사 가는 길에는 연녹빛 루르름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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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닥토닥 걸을 수 있는 흙길, 납작납작 깔린 돌길, 졸졸 흐르는 계곡물, 연지곤지처럼 피어난 들풀, 간지럼을 태우듯 불어오는 산바람, 연가를 부르듯이 울어주는 산새소리… 아! 이렇게 평화롭고 좋을 수가 없습니다. 이 길이 무릉도원이고, 이 길을 걷고 있는 시간 자체가 힐링이며 마음으로 그리던 유토피아입니다. 

얼마 전, 수년 동안 계획하고 추진하던 범종불사, 많은 사람들 정성이 돌탑처럼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 범종을 드디어 법계사로 옮기게 됐다는 소식이 꽃소식처럼 들려와 지리산 길을 걸어서 법계사를 다녀왔습니다.

범종을 만드는 자체도 큰일이지만 하늘아래 첫 산사, 지리산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법계사, 여느 절들과 달리 찻길이 닿지 않는 지리산 천왕봉 직하에 자리하고 있는 법계사에서는  범종을 옮기는 일이 더 큰일입니다. 헬리콥터를 이용해야만 하기 때문에 무조건 크게 만들 수도 없고, 아무 때나 옮길 수 있는 여건도 아닙니다.

흐르고 있는 물길은 마음을 비우라 하고, 굽이굽이 높이를 낮추고 있는 산세는 무위자연을 보여주는데 청개구리처럼 물길을 거스르고 산 흐름에 저항하며 오르려니 몸뚱이는 점점 무거워지고 숨결조차 거칠어집니다.

지리산은 노란 리본 대신에 노란 야생화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해발 1400m쯤에 피어있는 노란 야생화
 지리산은 노란 리본 대신에 노란 야생화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해발 1400m쯤에 피어있는 노란 야생화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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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도 세월호 참사에 슬픔을 표하고 싶었나 봅니다. 이제는 슬픈 색깔이 된 노란색을 띤 야생화가 도심지 곳곳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노란리본들처럼 노란 군락을 이루며 촘촘하게 피어 있습니다. 저릿해진 가슴을 여미며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속계를 벗어난 법계입니다. 

볼일이 있어 아침에 산길을 내려가셨다는 주지 스님께서는 저녁이나 돼야 올라온다고 하셨습니다. 가방을 내려놓고, 경내를 둘러보니 몇 년 새 끊이지 않고 진행된 불사 원력이 흔적과 결과로 쌓여 수북합니다. 

범종이 올라오면 자리할 범종각도 이미 건축돼 있고, 하루쯤 법계에서 머물고 싶은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숙소도 몇 채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마음, 모래알 같은 정성을 태산만큼이나 모아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기에 다만 산승 관해 스님께서 보이신 '불사월력'을 다시금 실감하며 감탄할 뿐입니다.       

법계사는 천왕봉 아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법계사는 천왕봉 아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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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첫 산사 법계사에 범종이 올라 옵니다.
 하늘 아래 첫 산사 법계사에 범종이 올라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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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사에서 내려다 본 지리산 산하
 법계사에서 내려다 본 지리산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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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이 만발해 있는 법계사 적멸보궁
 철쭉이 만발해 있는 법계사 적멸보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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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사 3층 석탑
 법계사 3층 석탑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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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사 바위에 암각되어 있는 '천국', 법계가 천국인가 봅니다.
 법계사 바위에 암각되어 있는 '천국', 법계가 천국인가 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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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저녁은 일렀습니다. 저녁을 먹고 났지만 훤한 시간이 꽤나 남았습니다. 스님들께서연세가 80 가까이 된 노 보살님을 따라 '들미나물'이라는 것을 뜯으러 산으로 올라갑니다. 산이라고 해봐야 절이 산이고 산이 절입니다. 경계 없는 울타리를 조금 벗어나는 거리입니다. 들미나물이라고 하는 건 물푸레나무와 비슷해 보이는 나무에서 돋는 새순이었습니다. 스님들은 나무가 다치지 않게 가지치기를 하듯조심스레 나물을 땄습니다.

들미나물도 뜯고 엄나무 순도 땄습니다. 스님 한분이 무슨 나무인지를 알 수 없는 나무에서 순을 따십니다. 그건 무슨 나물이냐고 여쭈니, 엄나무순이라고 하는데 나무에서 가시가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그게 엄나무냐고 다시 여쭈니 '이놈이 참 순하네요'라고 합니다. 나무를 순하다고 표현하는 게 재밌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수령이 꽤 돼 보이는 엄나무지만 드문드문 나있는 가시들이 아가들 솜털만큼이나 잔잔하기만 했습니다.

여러 명이 뜯어서 그런지 금방 커다란 소쿠리로 한 가득이 넘었습니다. 뜯은 나물을 공양간 주방 앞으로 가져와 한곳에 쏟아 놓으니 풋풋한 산나물이 수북합니다. 뜯어온 나물들은 끼리끼리 고르고, 정갈하게 손질을 해서 살짝 데치듯이 삶는다고 하였습니다. 방문이 덜컹거릴 정도로 불고 있는 바람소리, 처마 끝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뎅그렁거리며 울려주고 있는 풍경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습니다.

범종을 설치 할 범종각도 마련 돼 있었습니다.
 범종을 설치 할 범종각도 마련 돼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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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 현판
 범종각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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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 소리를 더 큰 울림으로 만들어 줄 음통
 범종 소리를 더 큰 울림으로 만들어 줄 음통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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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을 매달을 천정
 범종을 매달을 천정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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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에서바라 본 삼층 석탑. 법계사 주변은 이제야 새싹이 돋는 연둣빛입니다.
 범종각에서바라 본 삼층 석탑. 법계사 주변은 이제야 새싹이 돋는 연둣빛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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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도량석을 도는 목탁소리에 잠에서 깼습니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일어났지만 정말 오랜만에 아주 잘 잤다는 느낌이 물씬할 만큼 몸과 마음이 개운합니다. 양치와 세수를 하고 아침 예불을 올리고 있는 적멸보궁으로 내려가 참배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산사에서는 저녁도 일찍 먹었지만 아침도 일찍 먹습니다. 아침 공양을 알리는 목탁소리를 듣고 공양간으로 들어섭니다. 지난 저녁에 뜯어온 나물에 갖은 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묻혀서 내놓으셨습니다. 들미나물, 돌나물, 솎아 낸 상추무침, 김장김치, 고추절임… 처음 먹어보는 들미나물이 너무너무 맛납니다. 입맛이 호강을 하니 식욕이 요동을 칩니다. 나물 뜯어 먹고, 좋은 물 마시며 연둣빛 산하를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텃밭을 둘러보러가는 주지 스님을 따라 걸으며 겉으로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게 이룬 불사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관해 스님께서 10여년에 걸쳐 이룬 불사 중 가장 근본적이고 큰 불사는 그동안 임대료를 지불하며 점유하고 있던 법계사 부지를 법계사 부지로 소유함으로 불국토화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 따로 없습니다. 스님께서 법계사 부지를 마련하는 10년 세월이 지성이고 감천입니다. 지극한 기도가 곧 원력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걸 여쭈고 설명 듣다, 오후에 올라올 범종에 대해서도 몇 가지 여쭸습니다. 이번에 만들어 올라오는 범종은 그 무게가 1080관(4050Kg)이라고 하였습니다.

1080관 무게의 범종이 지리산 천왕봉으로 올라간 까닭은

사람들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묻듯 법계사 주지 관해 스님에게 범종 무게를 1080관으로 맞춘 까닭을 여쭸습니다. 수비학(数秘學)까지는 아닐지라도 스님께서는 1080이라는 숫자에 담은 의미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습니다. 1080관(貫)을 킬로그램(Kg)으로 환산하면 4050Kg(1080관 x 3.75Kg/관)이 됩니다.

시주로 받은 기와는 한 장도 허투르 쓰이지 않았습니다.
 시주로 받은 기와는 한 장도 허투르 쓰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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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쯤 법계에 머물 사람들이 베고 잘 목침
 하루 쯤 법계에 머물 사람들이 베고 잘 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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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보궁 앞에 피어있는 매발톱 꽃
 적멸보궁 앞에 피어있는 매발톱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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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어온 나물을 끼리끼리 정리하는 스님들
 뜯어온 나물을 끼리끼리 정리하는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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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데쳐서 말리는 나물
 살짝 데쳐서 말리는 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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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배, 108염주, 108번뇌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108이라는 숫자는 불교를 상징하는 대표적 숫자 중 하나입니다. 스님께서는 범종 불사를 발원하시면서 108이라는 숫자에 담긴 의미를 원력으로 담으셨다고 하셨습니다.   

108번뇌는, 중생들은 어떤 사물을 여섯 감각기관(눈, 귀, 코, 혀, 몸, 마음)으로 접할 때 한결같지 못하고 '좋다, 싫다, 그저 그렇다' 이렇게 세 가지로 분별함에서 오는 번뇌(6x3=18)와, 여섯 감각기관이 '괴로움, 즐거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으로 분별함에서 오는 번뇌(6x3=18)를 합해 36가지 번뇌를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이 36가지의 번뇌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어지니(36번뇌 x 3세대) 108번뇌가 됩니다.

1080이라는 숫자는 108에 10배가 되는 수입니다. 2500여 년 전, 부처님 재세시보다 훨씬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고 세분화되니 중생들이 느끼는 세월의 무게 역시 10배쯤은 다양해지고 무거워 졌을 것이며, 삼세(과거, 현재, 미래)뿐만이 아니라 십방(사방팔방에 땅과 하늘을 포함한)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유정과 무정들도 범종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피를 고루 나누며 함께 하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1080이라는 숫자에 새기셨다고 하셨습니다.  

적멸보궁 천정에 달려있는 연등
 적멸보궁 천정에 달려있는 연등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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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사 적멸보궁 내부
 법계사 적멸보궁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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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법계사 극락전에 모셔진 아미타 부처님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법계사 극락전에 모셔진 아미타 부처님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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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梵鐘)은 단순히 여느 종보다 크기가 큰 종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범종 할 때 '범梵' 자에는 '불경'이라는 뜻과 '더러움이 없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연꽃이 진흙에서 자라면서도 오염되지 않듯이, 범종 또한 어떠한 잡음도 섞지 않고 오직 커다란 울림만을 전하기에 불음을 상징하는 4물(범종, 법고, 목어, 운판) 중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1080관이라는 무게를 킬로그램으로 환산하면 4050Kg이 됩니다. 법계사는 지리산 해발 1450미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리산 길을 걸어 해발 1400m 높이까지 올라가야만 법계사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법계사까지 가는 길은 마음을 비워야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타박타박 걸어도 좋을 만큼 잘 다듬어져 있어 그리 험하지 않지만, 비탈진 산길을 걸어 올라가야하고 계곡물들이 졸졸 거리며 속삭여 주는 자연의 소리에 마음 씻고, 주변 산세의 아름다움에 눈길 가다듬으며 걷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비워지는 길입니다. 

그렇게 마음 비우며 1400m까지 오르다 보면 부지불식간 마음에 덕지덕지 쌓였던 오욕칠정, 실타래처럼 얽혀있던 온갖 번뇌가 사라지며 공(0)한 상태가 되니 어느새 속계를 벗어나며 법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1400미터까지 오르면 마음이 공(0)해지고, 공해진 마음으로 50m 정도를 더 올라가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범음(梵音)을 울려 줄 종이라는 의미도 함께 새기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텃밭을 가꾸고 있는 법계사 주지 관해 스님. 냉해 때문에 상추 정도를 키우는 게 제격이라고 했습니다.
 텃밭을 가꾸고 있는 법계사 주지 관해 스님. 냉해 때문에 상추 정도를 키우는 게 제격이라고 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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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크기 정도의 상추가 소복하게 자라고 있는 법계사 텃밭
 동전 크기 정도의 상추가 소복하게 자라고 있는 법계사 텃밭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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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만들어 올리는 범종 모형
 이번에 만들어 올리는 범종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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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역사적으로 볼 때 1080년은 우리나라 불교계에 커다란 획을 그은 대각국사 의천을 낳은 문종, 문치정책으로 고려사에서 '황금기'로 평가받고 있는 문종이 불교문화를 크게 중흥시킨 시대이기도 하니 그때처럼 한국 불교가 크게 중흥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새겼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의미뿐만이 아니라 1080이라는 숫자는 디지털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인 풀에이치디(full hd, 1920x1080)를 대표하는 숫자이기도 이니 미래지향적 의미까지도 함께 새겼다고 하셨습니다. 시비를 거는 마음으로 들으면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거스르지 않는 마음으로 새기면 시방삼세에 살고 있는 유정과 무정 모두를 기꺼이 아우를 수 있는 깊고도 넓은 의미라 생각됩니다. 

지리산을 품은 범종, 천왕봉을 닮은 울림

포행을 하듯 천천히 걸으며 범종 무게를 1080관으로 한 의미를 새기다 보니 어느새 범종 견본이 놓여있는 곳까지 자리를 옮겼습니다. 법계사 범종은 지금껏 여느 절에서 봐왔던 범종들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종형, 음통과 용뉴, 유두와 당좌 등은 여느 절에서 볼 수 있는 범종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종 표면을 장식하고 있는 문양만큼은 유일무이한 법계사만의 문양이었습니다. 대개의 범종들은 종 표면에 비천상 문양이 양각 돼 있는 게 보통인데 법계사 범종 표면에는 '지리산'과 '지리산 산신' 그리고 '법계사 3층 석탑' 문양이 너무도 선명하게 양각돼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대신해 법계사에 머물고 있는 불상들
 누군가의 마음을 대신해 법계사에 머물고 있는 불상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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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절에서 볼 수 있는 범종들과는 달리 지리산을 품고 있는 법계사 범종 표면에는 지리산 산신 할머니가 양각으로 문양 돼 있습니다.
 여느 절에서 볼 수 있는 범종들과는 달리 지리산을 품고 있는 법계사 범종 표면에는 지리산 산신 할머니가 양각으로 문양 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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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범종소리보다도 더 큰 울림이 될지도 모를 발원문 '법계에 울린 이 종소리, 사바세계를 구원하는 반야의 지혜로 드러나고, 천왕의 위신력과 제석천왕의 정법수호로 대한민국 국운이 융성하고 모두의 가정이 행복하여 지이다'라는 글귀도 양각돼 있었습니다. 

종 위쪽, 대나무처럼 매듭이 있고 구멍이 뚫려있는 부분을 흔히들 음통이라고 하지만, <에밀리종의 비밀>(푸른역사> 저자 성낙주는 이를 만파식적(천하의 파란을 잠재우는 피리)으로 해석하고 있음에 빗대어, 법계사 범종에 달린 음통에서는 천왕봉에 세워져 있는 표지석,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글을 품고 서있는 표지석이 연상되었습니다.

성낙주는 용뉴(종 위쪽에 있는 용 형상) 또한 문무대왕을 상징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음을 떠올리니 법계사 범종 위쪽에 조각돼 있는 용 형상은 영산 지리산에 깃들어 있는 산신이 기운차게 승천하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억측도 떠올려 보게 됩니다.

지리산에서는 나무가 나무를 품고 있습니다.
 지리산에서는 나무가 나무를 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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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물론 법계사도 온통이 연녹빛 입니다.
 지리산은 물론 법계사도 온통이 연녹빛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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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장이 처럼 밤새 뎅그렁 거리던 풍경
 수다장이 처럼 밤새 뎅그렁 거리던 풍경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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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 '반야', '천왕', '제석' 등은 지극히 불교적인 용어이기도 하지만 지리산 줄기에서 한껏 솟아오른 봉우리들 명칭이기도 하니, 지리산은 법계사를 품고, 법계사는 범종을 통해 지리산전체를 품고 또 품었습니다.

종도 그렇고, 목탁도 그렇고, 이맘때쯤이면 물오른 버들가지를 비틀어 불 수 있는 호드기조차도 속을 비웠기에 그런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범종은 그 크기만큼이나 속도 크게 비웠기에 그 울림 또한 천왕봉과 제석봉은 물론 반야봉과 노고단도 넘어설 만큼 커다랗게 울려 퍼질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어쩌면 법계사서 울린 범종소리는 일석선상에 놓여있는 일본 미야자키까지도 울릴지 모릅니다.

버럭 큰 소리를 지른다고 해서 커다란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듯 범종의 울림 또한 세게 쳐 큰소리를 낸다고 해서 커다란 울림을 주는 건 아닐 겁니다. 귀엣말처럼 살짝 울려도 지극함과 간절함, 진심이 가득한 기도, 정성과 애절함이 가득한 바람을 실어서 내는 울림이라면 시방삼세에 걸쳐 감동을 전할 수 있는 커다란 울림이 될 것입니다.

'1080관 범종이 하늘아래 첫 산사, 법계사까지 올라 간 방법'이 다음 글(기사)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법계사 가는 길

대전-통영고속도로, 단성IC-지리산 중산리(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619-12) 주차장에 주차 - 주차장서부터 칼바위쪽으로 보행을 시작하거나, 지정 시간에 운행하는 법계사 버스를 이용해 ‘경상남도 환경교육원’까지 올라간 후 교육원서부터 보행(약 1시간 30분 소요). 자세한 사항은 법계사(055-973-1450)로 연락하시면 안내 받을 수 있습니다.



태그:#지리산, #법계사, #범종, #천왕봉, #타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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