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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해 죽겄어. 그래도 한 명은 살아 나올 줄 알았는디..."

2일 오후 8시께 진도읍의 한 식당. 진도에 사는 50대 남성이 '세월호 침몰사고' 이야기를 하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 남성과 함께 있던 진도읍 청년회 소속의 다른 남성도 "오늘도 자원봉사를 하고 왔다"며 막걸리잔을 쥐었다.

기자가 신분을 밝히고 "이번 사고와 관련해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까지 정부의 초기대응에 쓴소리를 하던 이 남성은 "어디가서 이런 이야기도 못해. 이런 데서나 살짝 이야기 하제"라며 말을 아꼈다. 봉사활동을 하는 진도군민들의 분위기를 물었다.

"리아카 끌면서 목도 마르고 한디, 물도 대놓고 못 먹제. 웃도 못하고. 미안하자네. 살짝 이빨만 보여도 뜨끔허고."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전남 진도의 진도군청 입구에 "온 국민이 세월호 피해자분들의 슬픔을 위로합니다. 진도군민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붙어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전남 진도의 진도군청 입구에 "온 국민이 세월호 피해자분들의 슬픔을 위로합니다. 진도군민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붙어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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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타고 2시간' 사고 현장... 평생 안 가봤어도 '내 일'

지난 4월 16일부터 진도에 머물고 있는 기자에게 많은 외지인들이 "팽목항에서 사고 현장이 보이나"라고 묻는다. 하지만 사고 현장 인근인 맹골도는 진도에서 남서쪽으로 53km 떨어져 있다. 일반적인 배를 타면 2시간, 빠른 속력의 행정선을 타고도 1시간을 가야 하는 섬이다. 평생 맹골도에 가보지 않은 진도군민도 많다.

그럼에도 진도는 이번 사고를 자신의 일인양 함께하고 있다. 스스로 죄인이 돼 쓰레기 하나, 뱉는 말 하나까지 조심한다(관련기사 : 쓰레기 하나도 안 돼... 진도 사람들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묵묵히 '상주'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진도군실내체육관에 차려진 천주교 천막. 서울, 안산, 광주 등에서 꾸린 천막이지만 안에는 진도의 교인들도 많다. 진도성당 소속의 교인들은 이곳에서 밤을 새우기도 하며 실종자 가족과 아픔을 함께하고 있다.

2일 오후 천주교 천막을 찾은 허아무개씨는 "교인이든 아니든 실종자 가족들이 천막을 많이 찾아온다"며 "수녀님과 함께 앉아 기도를 하며 마음을 나누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초 신고를 한 최아무개군의 어머니가 쓴 편지가 천막에 붙어 있어 읽어 내려가는데 눈물이 나 끝까지 못보겠더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비슷한 또래의 진도 학생들도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2일 오후 한 편의점 앞에서 진도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을 만났다. 기자가 다가가기 전까지 재잘대던 이들은 '세월호'라는 말을 꺼내자 이내 말을 멈췄다. 남학생 이아무개군은 "세월호 이야기를 일부러 잘 안하는 편"이라며 "잊고 지내다가도 가끔 (세월호) 생각을 하면 쓸쓸해진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사고 10일째인 4월 25일 오후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지나가는 해경 구조함을 바라보고 있다.
▲ 살아오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 세월호 침몰사고 10일째인 4월 25일 오후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지나가는 해경 구조함을 바라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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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공무원, '12시간 3교대' 군청·체육관·팽목항 지켜

진도군 공무원은 '비상사태'를 맞았다. 사고 이전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로 24시간 불이 켜져 있던 진도군청은 이번 사고까지 더해져 이중 밤샘 근무를 하고 있다. 사고 당일인 4월 16일과 다음날인 17일에는 진도군 공무원이 381명 24시간 근무를 했다.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3교대로 진도군청, 진도군실내체육관, 팽목항을 지키고 있다.

근무 이외 시간에는 진도군청에서 본래 맡은 업무를 하거나 휴식을 취한다. 현재 팽목항에서 비상근무를 하는 진도군 공무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군청에서 근무를 하고 난 뒤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팽목항에서 또 다시 근무한다. 이후 오후 1시까지 짧은 휴식을 취하고 또 다시 군청에 나와 근무를 하는 형태를 반복하고 있다.

특히 팽목항에서 밤샘 근무를 하면 핫팩과 담요에만 의지한 채 추운 밤을 견뎌야 한다. 밥을 먹을 때도 한 번에 여러 명이 가서 먹으면 보기 안 좋을까 싶어 두 명, 세 명씩 조를 짜 자원봉사 텐트에서 조용히 먹고 온다.

실무를 전담하고 있는 진도군은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에서 결정된 사안을 직접 준비하고 실행한다. 1일 늦은 오후 진도읍 식당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상급 기관에서 아주 추상적으로 정해진 사안을 진도군이 하나하나 검토해 시행한다"며 "텐트 하나를 치더라도 진도군 공무원이 직접 장비들고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정구조 진도군 농업지원과장은 "팽목항에서 밤샘 근무를 하다보면 마치 알람과 같이 매일 오전 5시쯤 흐느껴 우는 실종자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데 보고 있으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면서도 "하루에도 눈물이 몇 번이나 나려 하지만 거기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 순 없지 않나"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어 "이번에 진도군을 포함해 국가적으로 큰 일을 치르고 있는데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부터 진도군까지 이번 사고에서 한 역할을 정확히 조사해 데이터베이스화 했으면 한다"며 "그래야 다음부터는 이번 사고와 같이 초기에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진도군 공무원은 '비상사태'를 맞았다. 사고 이전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로 24시간 불이 켜져 있던 진도군청은 이번 사고까지 더해져 이중 밤샘 근무를 진행 중이다. 사고 당일인 4월 16일과 다음날인 17일에는 381명 진도군 공무원이 24시간 근무를 했다.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3교대 근무로 진도군청, 진도군실내체육관, 팽목항을 지키고 있다. 사진은 '팽목항 비상근무 명단 및 운영내역'을 적은 문서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진도군 공무원은 '비상사태'를 맞았다. 사고 이전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로 24시간 불이 켜져 있던 진도군청은 이번 사고까지 더해져 이중 밤샘 근무를 진행 중이다. 사고 당일인 4월 16일과 다음날인 17일에는 381명 진도군 공무원이 24시간 근무를 했다.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3교대 근무로 진도군청, 진도군실내체육관, 팽목항을 지키고 있다. 사진은 '팽목항 비상근무 명단 및 운영내역'을 적은 문서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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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현수막 대신 노란 리본... "진도도 심리치료 필요"

전국적으로 그렇듯 진도 역시 선거 분위기보다 애도 분위기가 더 짙다. 한창 선거 현수막이 나붙고, 선거 운동이 벌어질 진도읍내 거리에는 노란 리본과 추모 현수막이 가득하다. 선거 사무소를 제외하곤 선거 관련 현수막을 찾아볼 수 없다. 이름을 감춘 채 자원봉사에 나선 후보들도 만날 수 있었다.

이번 6월 지방선거에서 진도군의원에 도전하는 한 예비후보는 "어제(2일)까지 자원봉사를 하다가 이제 막 선거 사무소에 들락날락 한다"며 "이번 사고로 마음을 다친 이들을 위해 진도는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의료 전문가들은 진도군민을 위한 심리치료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진도군실내체육관에 재난의료지원단으로 나와 있는 한 대학병원 의사는 "'내 잘못인 거 같다'며 사고 초기부터 지금까지 굉장히 불안해하는 진도군민들을 봐 왔다"며 "사고 수습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릴 진도군민을 위해서도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월호 침몰사건' 나흘째인 4월 19일 오전 전남 진도군 진도체육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실종자 가족들에게 구호물품을 나눠주고 있다.
▲ 실종자 가족들에게 구호물품 지원 '세월호 침몰사건' 나흘째인 4월 19일 오전 전남 진도군 진도체육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실종자 가족들에게 구호물품을 나눠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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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침몰사고,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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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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