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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사회. 2014년 4월처럼 잔인했던 기억이 또 있을까. 쉬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세월호 참사. 대다수 국민의 애타는 바람과 기다림 속에서도 생존자 구조라는 '현실에서의 기적'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다.

사고 발생 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유족과 실종자 가족의 한숨과 눈물은 멈추지 않고 있는 상황. 사망자와 실종자만이 아니라 사고 현장에서 구조된 이들의 정신적·육체적 고통 또한 결코 가볍게 넘어갈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절대다수의 국민을 우울증과 무력감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 24시간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제작·방영해온 온북TV 역시 이런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시인 오봉옥이 진행하는 온북TV 프로그램 '책치冊治(책의 지혜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에서 '세월호 참사 추모 특집'을 마련한 것은 앞서 언급한 한국사회의 참담한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지난 4월 25일. 진행된 '오봉옥 시인의 책치' 녹화 현장에는 한국상담심리학회 재난상담위원회 이지영 부위원장이 출연해 '상처를 직시하고 그 상처를 넘어서는 방법'을 조심스레 조언했다.

진행자 오봉옥은 먼저 "시를 써온 30년 세월 동안 이처럼 막막했던 적은 처음"이라는 말로 현재의 심경을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에 관련된 시를 청탁받은 오 시인은 그 막막함 탓에 아직까지도 시를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지영 부원장에게도 '2014년 4월'은 끔찍하고 긴 악몽 같은 것이었다.

"가슴이 먹먹하고, 슬프고, 울분이 치밀어 오른다"는 말로 지금의 심정을 드러낸 이 부위원장은 "국민 대부분이 비슷한 심정일 것"이라며, "지금은 모두가 불편하고 혼란한 상태이지만 예상 밖의 큰 비극을 접한 사람들이 이런 반응 보이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진단했다. "참사의 아픔을 극복해내는 게 더 큰 문제"라는 것 역시 그의 진단.

오봉옥 시인(좌)과 한국상담심리학회 재난상담위원회 이지영 부위원장이 '세월호 참사'가 남긴 상처의 치유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온북TV의 '책치' 특집 방송.
 오봉옥 시인(좌)과 한국상담심리학회 재난상담위원회 이지영 부위원장이 '세월호 참사'가 남긴 상처의 치유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온북TV의 '책치' 특집 방송.
ⓒ 온북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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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상처를 공감하고 치유할 수도

이 부위원장은 "인간은 고통에 직면하면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라는 절망감을 느낀다"며 "심리치료에 있어서는 유사성과 보편성을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즉 고통을 나만 겪는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도 그런 상황에 처해있단 걸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사실.

이와 관련해 책을 읽는 행위가 고통의 공감 과정에 쉽게 가닿을 수 있다는 것을 더불어 이야기했다. 특히 다른 사람의 상처 극복과정을 다룬 책을 읽는 건 내 감정을 누군가가 받아주고 아픔을 나누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드러낸다는 게 이 부위원장의 설명이다.

프로그램 진행자인 오봉옥 시인 역시 "우울증 또는, 조울증에 빠져있는 사람들과 책읽기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것을 통해 상처가 많은 부분 치유되는 것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는 말로 이지영 부위원장의 해석에 공감을 표시했다.

이에 이 부위원장은 "독서만이 아니라 글쓰기도 심리치유 효과가 크다"며, ▲힘든 감정을 느낀 그대로 표현했을 때 상처의 많은 부분이 사라진다. ▲감당하기 힘든 큰 충격을 받았을 때의 불안함과 무력감을 소화시키는 과정에 글쓰기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글쓰기란 제자리 맴돌기가 아닌 인간을 진전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라 게 이 부위원장의 부연.

오 시인과 이 부위원장은 세월호 참사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 위로를 전하며, 주위 사람들에게는 이런 조언을 남겼다. "슬퍼하고 통곡하더라도 그것은 자식을 잃은 사람의 자연스런 반응이니 개입하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라"고, 여기에 더해 "그들이 말을 하고자 할 때는 애정을 가지고 어떤 말이건 실컷 털어놓을 수 있도록 경청해주라"고.

방송에선 지난 4월 23일 '문학다방 봄봄'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추모 낭독회'도 소개됐다. 낭독회에 참여한 주부와 일반 독자들은 "세상은 고통스런 곳이지만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소리 내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정신적인 해독을 도와줄 수 있을 듯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 중 일부는 낭독 중 목이 메어 차마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안타까움을 부르기도 했다.

방송의 말미, 이 부위원장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한국의 '재난·위기 개입 시스템'의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났다"며 "이를 제대로 보완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사고가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관계당국에 일침을 놓았다. "재난은 언제 닥칠지 모른다. 평화 시에도 위기관리 시스템을 가동 시켜놓아야 한다"는 게 이 부위원장의 마지막 충고였다.

이날 방송에선 시인 이재무의 세월호 참사 추모시가 낭독됐다. 책 또는, 문학이 고통과 상처로 얼룩진 인간의 심리상태에 어떤 위로를 줄 수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기에 아래 그 시의 전문을 인용한다.

약속 / 이재무

자주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리.
하늘에는 갑자기 생겨난
별들이 보석처럼 반짝이겠지
가장 일찍 떠서 가장 늦게 질 하늘의 아이들아,
욕된 이름들이
지상을 떠날 때까지 그들을 잊지 말고
굽어보고 지켜보렴.
흐르지 못한 시간들이 쌓이고
고여서 썩어가는 골목과 거리와 집과 강물과 늪에
너희 아픈 빛을 오래오래 비추어다오
폐허의 가슴에
떠나버린 사랑이 다시 찾아올 때까지
약속을 되새기리.
자주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리.


태그:#세월호 참사, #책을 통한 치유, #책치, #오봉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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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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