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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는 주민들의 삶을 담은 책 <밀양을 살다>가 출간되었다. 농사 짓고 밥을 나눠 먹고 가족의 안녕을 염려하는 이들의 평범한 이야기, 그러나 국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파란만장한 이야기. 이들의 이야기는 침몰해 온 한국사회의 모습을 증언한다. 그리고, 그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는 무엇일지 스스로 보여준다. 책이 전하는, 밀양을 함께 살 사람들을 기다리는 목소리에 대한 응답을 들어보자. 그리고 응답하자. 이 연재는 밀양구술프로젝트와 오마이뉴스 십만인클럽이 공동으로 기획했다 [편집자말]
한국전력공사는 밀양시 단장면 동화전마을 쪽 산에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95번(오른쪽)과 96번 철탑을 완료해 세워 놓았다.
 한국전력공사는 밀양시 단장면 동화전마을 쪽 산에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95번(오른쪽)과 96번 철탑을 완료해 세워 놓았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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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할 일은 하지 않고, 엉뚱한 일만 하고 있다. 기업의 이윤을 보장해주기 위해 선박 규제를 완화하고, 엉터리 안전점검과 부실한 운항관리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 정부가 존립해야 할 최소한의 근거이지만, 그것조차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국가'의 이름으로 횡포를 부린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지난 4월 16일 정부는 고리1호기를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설계수명인 30년을 훌쩍 넘겨 36년이 넘게 가동중인 원전이 고리1호기다. 이 원전을 재가동할 때, 밀양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고리-신고리 원전단지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76만 5천 볼트 송전선 때문에 산속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벌써 9년이다. 어느 날 갑자기 마을로 들어온다는 송전탑에 반대하기 시작한 게. 그동안 두 분의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많은 주민들이 다치고 연행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작년 10월 이후 경찰력을 앞세워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경찰병력이 상주하면서 공사를 막으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끌어내는 일이 반복되었다. 2013년 연말부터는 '지금 합의하면 개별보상금을 지급하고, 합의하지 않으면 한 푼도 없다'면서 주민들을 겁박했다.

이 모든 것이 국가의 이름으로, 국책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이뤄졌다. 수백 명의 목숨들은 단 한명도 구해내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가 타당성 없는 공사를 강행할 때에는 너무나 민첩했다.

9년째 밀양 송전탑을 반대하는 사람들... 이들은 왜?

그렇다면, 9년째 밀양 송전탑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들은 왜 이토록 끈질기게 송전탑에 반대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가질 만하다.

<밀양을 살다(오월의 봄)>는 밀양 송전탑에 반대하는 열일곱명의 밀양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구술한 책이다.

'열일곱에 시집와 여든 여섯이 된 할머니(상동면 도곡마을 김말해)'는 "우린 저거(76만 5천 볼트 송전탑) 들어오면 못 사는데. 땅 손바닥만한 거 사 놨는데 물거품 되는데. 언제 누가 살아도 여긴 물 좋고 공기 좋고. 손주들 와서 살고 누가 와도 다 잘 살낀데"라고 말한다. 이런 심정으로 삶과 마을, 땅과 산을 지키려고 험한 산을 오르내리며 송전탑을 반대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처음에는 송전탑만 반대했다. 그런데 그 송전탑의 끝에는 원전이 있었다. 정부와 한전은 원전을 건설하기 때문에 송전탑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정부와 한전은 계속 말을 바꾸었고, 주민들은 스스로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처음에 신고리 1,2호기 전기 보낸다. 이거 안 세우면 못 보낸다... 이제 알고 보니까 1,2호기는 전기를 다 보냈어요. 그라마 3,4호기 때문에 송전탑해야 한다... 최근에 와서 5,6호기 때문에 그렇다.(안영수)"

새로운 원전만 건설하지 않아도 밀양 송전탑은 필요없다는 사실을 주민들은 알게 됐다. 고리1호기 같은 낡은 원전만 폐쇄해도 송전탑은 필요가 없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피해자 등이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주민들을 방문했다.
▲ 밀양 찾은 일본 원전사고 피해자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피해자 등이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주민들을 방문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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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주민들은 원전도 반대하기 시작했다. 밀양 송전탑은 '원전 송전탑'이다. 오로지 고리-신고리의 원전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보내기 위한 송전탑이다. 밀양을 지나간 전기는 경남 창녕, 경북 청도를 거쳐 대구 쪽으로 간다. 주민들은 '밀양에서 쓰는 전기도 아닌 대구주변에서 쓰는 전기를 위해 왜 우리를 이렇게 못 살게 구느냐'고 호소한다.

밀양 주민들은 송전탑 반대를 하면서 충남 당진에도 가 보았다. 당진에는 이미 76만 5천 볼트 송전선이 깔려 있다. 그리고 송전선이 지나가는 주변마을 주민들은 암 등의 질병을 앓고 있었다. 이미 송전탑 피해를 입고 있는 타 지역 주민들은 밀양 주민들에게 '꼭 막아야 한다. 못 막으면 우리처럼 된다'고 얘기했다.

처음에는 76만 5천 볼트 송전탑이 마을에서 얼마나 가까이 세워지는지도 잘 몰랐다. 한전은 주민들에게 충분한 설명도 하지 않았고,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밀양에 없었다.

"뒷산을 올라가 보니까 너무 가까운 거예요. 바로 뒷산. 그때부터 큰일났다 그러더라구요. 바로 뒷산이다. 마을사람들이 뭘 잘못 알고 있다... 한 200~300미터 거리밖에 안 됐는데 한전에서 뒤로 물려주겠다 그랬대요. 그러면서 이 동네에서 도장을 좀 찍어준 모양이라. 한전의 거짓말이죠. 조금 물려줘놓고 많이 물려준 것처럼 핸 거죠. 그래서 많이 안 물러갔다. 너무 동네하고 가깝다. 동네 분들이 다 놀랜 거죠.(단장면 용회마을 구미현)"

처음 해 본 반대운동은 무척 힘들었다. 서울도 많이 올라왔고, 국회와 정부종합청사, 한국전력 본사앞도 여러 차례 왔다. 비오는 날 국회 앞에서 절도 했고, 강남의 한국전력 본사 앞에서 죽은 분의 영정을 들고 울부짖기도 했다. 올 때마다 서울의 환한 불빛은 밀양 주민들을 힘들게 했다.

이 불빛들 때문에 원전을 계속 짓고 있고, 수명이 끝난 원전도 계속 가동을 하고 있다. 시골주민들의 눈에 피눈물을 나게 하는 초고압 송전탑 건설도 강행하고 있다. 반대를 하면서, 주민들은 국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됐다. 정의, 인권 같은 단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진정한 국책사업이면 힘 있는 사람이 오히려 아, 우리 땅으로 세워라. 우리 동네 세워라. 피해 없다 카는 걸 보여주께... 힘없는 사람들한테 아 너거 피해없다. 세워도 된다. 저거는 아, 나는 아이다(안된다). 그게 무슨 국책사업입니까.(산외면 골안마을 안영수)"

"이 싸움이 여기서 멈출 것 같진 않아요"

"왜 서울에는 원전을 짓지 않나? 원전이 그렇게 필요하면 서울에 짓지."

이것이 밀양 주민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다. '왜 서울에는 송전탑 뿐만 아니라 전봇대까지도 지중화하면서 밀양에는 69개나 되는 초고압 송전탑을 세우려 하는지?'도 밀양 주민들이 가지게 된 의문이다. 그래서 밀양 주민들의 분노는 커져갔다.

그러나 국가의 물리력은 엄청났다. 산을 오르내리며 송전탑을 막았고, 추운 겨울에도 산속에서 노숙을 하며 송전탑을 막았지만, 작년 10월부터 진행된 공사는 막을 수 없었다. 경찰 3천 명이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시골 노인들이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바깥에서 연대하는 사람들이 희망버스로 오고, 당번을 정해 지키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공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주민들은 이제 올라가는 송전철탑을 보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남은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단지 자신의 권리만을 위해 송전탑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싸움의 와중에 '송전탑을 반대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아내고 정리해 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싸움이 여기서 멈출 것 같진 않아요... 내 지역의 미래를 보면 우리 지역에 송전탑이 안 들어서는 게 맞죠. 우리나라의 미래를 보면 탈핵이 되는 게 맞는 것 같아요(상동면 여수마을 김영자)."

후쿠시마 사고가 나자 독일의 시민들 30만 명이 전국 곳곳에서 시위를 했다. 대한민국에서는 가장 많이 모였을 때 3천여 명이 모였다. 고리1호기 같은 낡은 원전이 바로 옆에 있는 부산이나 울산에서도 대규모 집회나 시위는 없었다.

이런 속에서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원전 전기'를 보내기 위한 송전탑 건설에 맨몸으로 맞서 왔다. 이것은 세계역사상 전무한 일이다. <밀양을 살다>는 그 생생한 기록이다. 그래서 아프고, 안타깝고, 분노가 일어난다. 우리는 원전을 이렇게 마구 지어대고, 송전탑으로 시골 주민들을 고통에 빠뜨리라고 정부에 권력을 준 것이 아니다. 시골노인들을 힘으로 제압하라고 경찰을 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정부가 문제다. 권력이 문제고 정치가 문제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이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고 반 인간, 반 생명의 현실, 민주주의와 정부의 책임성이 사라진 현실의 근본원인은 여기에 있다.

<밀양을 살다>의 마지막에는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의 이계삼 사무국장이 쓴 글이 있다. 이 글에서는 이 생생한 기록을 우리가 읽어야 할 이유에 대해 말한다.

"주민들이 마주서야 했던 것은 국가폭력이었고, 시대의 모순 그 자체였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와 안락이 감추고 있는 비참하고도 서글픈 맨얼굴이었다. 주민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배워야 한다. 아픈 이야기 속에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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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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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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