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러분은 섹스(Sex)와 젠더(Gender)를 구분하실 수 있으십니까? 섹스와 섹슈얼리티(Sexuality)는요?

트렌스젠더 하리수씨가 연예계 활동을 활발히 하고 홍석천씨가 커밍아웃을 한 덕분에 많은 분들이 우리 주위에 제법 많은 성적 소수자들의 존재를 알게 됐지만, 아직 그들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소개할 조현준 교수의 <젠더는 패러디다>를 읽기 위해서는 이미 알고 있던 배경 지식이 독해에 오히려 방해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섹스, 젠더 그리고 섹슈얼리티의 차이를 구분하는 대중의 수가 적은 판국에 이 경계를 허물겠다는 의도가 담긴 주디스 버틀러의 이론서 <젠더 트러블>이 국내에 출간됐던 때는 2008년입니다. 이 책의 성공을 점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초판이 모두 판매되며 출판계에서는 '사건 아닌 사건'으로 기록됐습니다. 하지만 국내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주제인데다가 주디스 버틀러 특유의 난해한 문체까지 결합되며 마치 암호문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으신 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에 <젠더 트러블>의 역자 조현준 교수가 독자들을 위한 소위 '애프터 서비스'를 실시했습니다. <젠더 트러블>을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원 텍스트의 다섯 가지 논쟁적 쟁점을 중심으로 내용을 재배치하고 각 장의 끝 부분에 요즈음 대중문화 속에 등장하는 실제 사례를 분석해 철학적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도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해설서 <젠더는 패러디다>를 출간한 것이지요.

난해한 <젠더 트러블>의 해설서

<젠더는 패러디다> 책 표지
 <젠더는 패러디다> 책 표지
ⓒ 현암사

관련사진보기

번역된 이론서가 읽히지 않는 데는 크게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을 것 입니다. 번역이 엉망이거나, 원서 자체가 난해하거나. 아마 이 책을 읽지 않고 <젠더 트러블>을 바로 읽었다면 조현준 교수의 번역 실력을 의심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하지만 독자들을 위해 친절하게 풀어서 책을 재구성한 저자의 노력을 보건데, 저자는 원서를 완벽하게 이해한 듯합니다. 다만 주디스 버틀러의 원글이 너무 난해해서 번역을 하건 원서로 보건 이해하기가 어려웠을 뿐….

저자는 난해한 원저를 다섯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장을 새로 나눴습니다. 각각 이원론과 일원론 너머, 가면의 전략, 젠더 우울증, 몸의 정치학 그리고 행복한 회색지대의 쾌락과 정치적 레즈비언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기존 성담론들에 대한 버틀러의 비판들과 그녀의 이론에 대한 설명 또한 조현준 교수가 덧붙인 대중문화 속에서 나타난 실제 사례들에 대한 분석이 담겨있습니다.

섹스(Sex)는 선천적이자 자연적인 우리의 신체적 성기의 모습에 의해 규정되고, 젠더(Gender)는 후천적이자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는 우리의 배경 지식과는 달리 주디스 버틀러는 섹스 또한 지금까지 줄곧 젠더였다는 것을 밝히고자 합니다. 섹스라 불리는 것은 젠더만큼이나 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섹스는 언제나 이미 젠더라는 주장이지요.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가 모두 '자유롭게 떠다니는 인공물'이자 언제나 생성되는 과정 중의 구성물이라는 점에서 모두 젠더와 같다면 그런 젠더는 어떤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할까? 어떤 사람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완전한 의미가 될 수 없다. 누군가를 여성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물학적 구조상의 여성적 특질을 지칭할 뿐 아니라, 그 사람이 여성성이라는 당대의 특정한 이상을 구현하고 있다는 의미인 동시에, 다른 여성이 아닌 어떤 다른 남성에게 욕망을 느낀다는 함의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본문 26쪽 중)

이와 같은 논의를 받아들이고 나면 <젠더는 패러디다>라는 책의 제목에 대한 이해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즉, 여장남성이 여성을 모방하는 행위에서 모방되는 '여성'이라는 개념은 여성 자체가 아니라 여성이 가지고 있다고 가정되는 당대의 이상적 관념일 뿐이며, 패러디는 본디 원본의 희화화나 조롱을 목적으로 원본을 모방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장남성은 짙고 풍성한 속눈썹, 길고 부풀려진 헤어스타일, 화려한 메이크업, 과잉 노출과 과장된 에스라인 등 여성스럽다고 이상화 된 인공적 자질을 과장해서 모방하게 되는 것이죠.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폐쇄 사회, 이대로 괜찮은가

우리 사회는 갓 태어난 아기에게도 '씩씩한 왕자님'이라거나 '예쁜 공주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나아가 남자 아이들에게는 장난감 로봇이나 장난감 총을 사주며, 여자 아이들에게는 인형이나 소꿉놀이 세트를 사주며 '사회적 성'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남성스러운 여자아이나, 여성스러운 남자아이는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아이마냥 걱정의 대상이 되고 이를 남들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부모의 관심이 집중됩니다. 물론 이 성향이 또래 아이들에게 놀림과 괴롭힘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걱정에 따르는 선행적 조치이겠지요. 하지만, 사회적 성을 강요하지 않는 사회라면 애초에 걱정할 필요가 없는 문제가 아닐까요?

대중문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성애자들과 성전환자들 덕분에 예전보다는 성적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그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젠더 규범이 본디 구성된 행위이고 반복적으로 고정된 전형이 축적된 결과에 불과함에도 우리 사회는 이런 규범을 위반 했을 때 따르는 강력한 제제 수단으로 사회적 호모포비아라는 강력한 반작용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남녀차별, 미인 지상주의, 동성현자들에 대한 차별, 모성애의 강요 같은 다양한 현대 사회의 문제는 사실 남들과 다른 이들을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이는 사회적 성 관념에 대한 강요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지요.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폐쇄적인 우리 사회,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요? 성 관념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철학적 주제를 던져준 <젠더 트러블>과 그 해설서 <젠더는 패러디다>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 [서평] <젠더는 패러디다> (조현준 씀 / 현암사 / 2013.04 / 13,000 원)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mimisbrunnr.tistory.com)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젠더는 패러디다 -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 읽기와 쓰기

조현준 지음, 현암사(2014)


태그:#젠더는 패러디다, #조현준, #젠더 트러블, #주디스 버틀러, #현암사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