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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우리 앞에 열린 정보사회는 지난 산업사회의 유물들과의 갈등과 투쟁으로부터 시작된다. 갈등은 불가피하다. 새로운 시대의 첫 장을 위해서는 당연히 존재해야 된다.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의 본질, 논쟁의 사회적, 철학적 맥락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일이다. 논쟁을 통해 정보사회를 이해한다는 것은 현실 속에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정보사회학을 전공한 필자가 매주 하나씩 주요 쟁점들을 분석·정리해서 올린다. 독자 여러분의 논쟁적 참여를 기대한다. – 기자 말

비트코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비트코인 홈페이지
 비트코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비트코인 홈페이지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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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터넷 신문 <뉴스원코리아> 3월 26일자에 재미있는 기사 하나가 실렸다. 미국 정부가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자산으로 규정하고 과세하겠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미 국세청(IRS)이 비트코인을 화폐가 아닌 자산으로 규정하면서 비트코인을 매개로 이뤄지는 거래에 과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IRS는 25일(현지시간) 성명에서 '가상통화는 자산으로 간주되며 자산 거래에 적용되는 일반 과세 원칙이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만일 임금이 비트코인으로 지불되면 소득세와 급여세 등이 과세되며 세금보고(W-2) 대상이 된다는 의미다."

비트코인이 '법정화폐'는 아니지만 금, 주식, 채권 등과 같은 실질적 자산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비트코인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행위, 예를 들어 증여, 임금 지불, 투자 등에 대해서는 관련법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국가가 발행하지 않은 화폐, 관리 기관도 없고 언제 없어질지도 모르는 가상의 화폐, 여기저기서 계속 만들어지고 있고 또 그만큼 소리 없이 소멸되기도 하는 가상 화폐를 자산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가상화폐 비트코인이란 무엇일까

전자화폐와 가상화폐의 차이점, 뭘까

우선 흔히 오해하기 쉬운 전자화폐와 가상화폐의 차이점을 알아보자. 가상화폐를 전자화폐의 한 종류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구분하여 설명하기로 한다. 구분하여 설명하면 가상화폐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유럽중앙은행(ECB)에서 정의한 둘의 차이점을 보자.

위 표에서 말하려는 내용은 단순하다. 전자화폐는 국가에서 발행하고 관리하는 법정화폐고 가상화폐는 누구라도 만들 수 있는 '가짜 화폐'라는 것이다. 통신 네트워크가 발달하기 이전에 사람들은 상거래를 위해서 '물리적 돈'이 있어야 했다. 지폐나 동전이 그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등이 발달하면서 '물리적 돈'을 매개하지 않고도 상거래가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은 돈을 만져볼 일이 없게 되었다.

화폐는 이제 전자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 신용카드로 음식을 먹을 때, 교통카드로 버스를 탈 때 우리는 지폐나 동전을 내지 않는다. 돈은 보이지 않는데 거래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돈이 물리적 형태로 존재하지 않고 전자적 거래를 통해서 확인된다. 전자적 거래를 통한 일련의 화폐의 흐름을 전자화폐라고 한다.

전자금융거래법 제2조 15항에 의하면 "이전 가능한 금전적 가치가 전자적 방법으로 저장되어 발행된 증표 또는 그 증표에 관한 정보"가 전자화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전 가능한 금전적 가치"다. 즉 통장에 먼저 돈이 있고 그 돈을 서로 합의 하에 전자적으로 주고받는 시스템이 전자화폐다. 전자화폐의 구체적 형태는 여러 개가 있지만 본질은 같다. 정부가 발행하고 보증하는 화폐의 유통방식의 하나다.

근대적 화폐시스템 부정하고 새로 등장한 가상화폐

가상화폐는 전자화폐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가상화폐는 특정한 국가가 발행하는 법정화폐가 아니다. 근대 자본주의 성립 이후 국가는 중앙은행에 의한 화폐의 독점 발행과 관리를 통해 시장의 균형을 유지해왔다. 적절한 통화정책을 통해 금리를 조절하고 때로는 외환시장에 개입하면서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강력한 중재자 역할을 해왔다.

경제활동은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글로벌 기업들도 계속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가를 기본 단위로 국제적 조약들이 체결되고 있고 외환거래 역시 개별 국가를 전제로 하고 있다. 어느 경우에도 특정 국가가 경제적 주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경우는 없으며 자국의 법정화폐를 폐기하는 경우는 없다. 특정국가가 인정하는 화폐는 자국의 법정화폐와 중앙은행이 용인하는 거래 상대국의 법정화폐뿐이다.

가상화폐는 이런 근대적 개념의 화폐시스템을 부정하고 새로 등장한 화폐다. 가상화폐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발행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달러, 엔, 위안화, 원 등은 각각 특정 국가를 대표한다. 그 국가에서 발행했고 최종적으로 그 국가에서 책임지고 보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가상화폐는 이런 발행주체가 없다. 따라서 책임질 기관도 없고 관리하는 주체도 없다. 유일한 주체는 거래하는 당사자들이다.

이 거래 당사자들이 많아지면 화폐로서 인정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조용히 사라질 수도 있다. 또 발행주체가 없다는 이야기는 누구라도 만들어 유통시킬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가상화폐 역시 전자적으로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전자화폐와 혼동되고 있지만 전통적 개념에서 볼 때 '가짜 돈'에 불과하다.

은행도 무너질 수 있단 불안감에서 시작

전자화폐는 국가에서 발행하고 관리하는 법정화폐고 가상화폐는 누구라도 만들 수 있는 '가짜 화폐'라는 것이다.
 전자화폐는 국가에서 발행하고 관리하는 법정화폐고 가상화폐는 누구라도 만들 수 있는 '가짜 화폐'라는 것이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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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은 2009년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나카모토 사토시가 만든 가상화폐다. 거래는 금융기관이나 지정된 중개자 없이 개인 간에 이루어지고 수수료가 들지 않거나 매우 적으며 익명성이 보장된다. 총 발행량은 2100만 비트코인이다. 그 이상은 발행될 수 없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정부나 거대한 은행도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비트코인이 시작되었다.

견고하다고 믿었던 미국연방준비위원회(FRB)가 지급 보증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세계 금융 시장을 공포 분위기로 만들었고 미국 정부는 이 금융 위기를 막기 위해 달러를 마구 찍어내는 상황이었다. 이런 불안감에서 태어난 비트코인은 달러와 달리 필요하면 마구 찍어내는 화폐가 아닌 총 발행량이 이미 정해진 화폐이기 때문에 발행이 충족되면 인플레이션이 없다. 

비트코인 외에도 여러 종류의 가상화폐가 있지만 현재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거래하는 가상화폐는 비트코인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 대부분에서 실제 거래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거래 사이트가 개설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법정화폐에 익숙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무척 이상한 행태로 보이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 <시카고 선타임즈>가 미국 신문 매체 가운데 처음으로 구독료를 디지털 화폐인 '비트코인'으로 받는다.
-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을 오프라인에서 사고 팔 수 있는 거래소가 세계 최초로 홍콩에 문을 연다.
- 키프로스 일간지 키프로스메일은 22일 "니코시아대학교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등록금을 비트코인으로 받는 대학교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 국내 부티크호텔 호텔 더 디자이너스가 호텔 업계 최초로 비트코인 결제를 시작한다.
- 국내 첫 비트코인 ATM 등장…"현금으로 사고판다"

현재로선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질지 미지수다. 비트코인에 환호하는 사람들만큼이나 반대하는 이들 역시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주요 국가의 경제 정책 의사 결정자들은 비트코인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화폐로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소리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왜, 가상화폐가 거래되는 걸까

각국 정부가 가상화폐를 '정상적 화폐'로 인정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통화 발행을 책임지는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가상화폐가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미국 통화정책의 후유증에서 나타난 것처럼, 대부분 사람들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실질임금이 하락되는 고통을 겪어 왔다.

그러나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형식적 사과는 하겠지만 이미 고통을 겪은 뒤에 일어난 일이다. 국가가 중앙은행을 통해 통화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했으면 그 결과에 따른 책임 역시 감당해야 되지만 감당할 능력도 없고 현실적인 구제책도 없다. 이미 시장은 국가가 조정하는 차원을 넘어섰으며 대기업 위주의 통화정책의 희생자는 늘 서민일 수밖에 없다.

비트코인의 정보사회학적 의미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나의 자유로운 상거래에 국가가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국가가 만들어 놓은 화폐를 사용하지 않겠다. 국가의 법정 화폐를 사용하는 순간 나는 국가의 통화정책에 의해 규정될 수밖에 없다. 그런 구속적 규정을 거부하고 나와 뜻이 같은 사람들끼리 합의되는 통화를 사용하겠다. 그 사람은 여기 한국에도 있지만 전 세계 도처에 있다.

우리는 늘 가상공간에서 만나고 있다. 이제 국가라는 제한된 공간은 필요 없다. 나는 국가가 만들어 놓은 법정화폐의 폐쇄적 공간을 초극하여 우리 모두가 만들어 놓은 공간, 계속 우주적으로 확산되는 가상공간에서 자유롭게 가상화폐를 사용하면서 모든 사람들과 네트워킹하겠다. 비트코인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비트코인이 던지는 메시지는 이렇게 분명하다.

근대이후 국가는 공간에 대한 헤게모니를 통해 자기 존재를 입증해 왔다. 경제적 관점에서 헤게모니를 대표하는 것은 중앙은행이고 정치적 측면에서는 법을 통한 권력의 행사다. 가상화폐는 이 둘을 부정하는 교차점에 존재한다. 국가와 네트워크간의 투쟁은 이미 인터넷 발달에 의한 가상공간이 만들어지면서 시작되었지만 가상화폐의 등장은 이 싸움을 더 치열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미래에 비트코인이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비본질적이다. 비트코인은 살아남을 수도 있고 생각보다 빨리 소멸될 수도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사라진다고 해도 가상공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상공간이 존재하는 한 국가가 만들어 놓은 공간의 담벼락은 계속 균열이 날 수밖에 없다. 현대까지는 비트코인이 그 역할을 잘 하고 있다.

이제 다음 두 기사를 보자.     

"영국 국세청, 비트코인 VAT(부가세) 폐지... '사실상' 화폐로 인정, 영국 금융당국이 비트코인에 부과되던 부가가치세(VAT)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VAT가 부과되는 상품권으로 취급받던 비트코인을 사실상 화폐로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 <이데일리> 2014.3.2

"국내에서 전세계에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독도로 이름 붙여진 비트코인이 개발됐습니다. (중략) 현재 독도코인을 캐간 이용자는 대략 100여명, 거래량은 하루 평균 수십 만 원 정도로 걸음마 수준입니다. - <SBSCNBC> 2014.4.2

첫 번째는 영국이 비트코인을 사실상 화폐로 인정한다는 내용이고 두 번째 기사는 국내 가상 화폐의 재미있는 사례 중 하나다. 영국의 위와 같은 결정은 향후 법정화폐와 가상화폐의 구별이 지금처럼 견고하지 않게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화폐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을 일부 양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두 번째 기사는 앞으로 계속 다양한 가상화폐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사다.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근대적 공간은 붕괴되고 있고 새로운 공간은 구축 중에 있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이다.

덧붙이는 글 | 김홍열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독문학, 국문학을 공부했고 성공회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 박사 과정 후 <정보네트워크 변화에 따른 가상공간의 확장과 권력관계의 재구성>으로 학위 취득했다. 저서로는 <축제의 사회사> (2010. 한울), <디지털 시대의 공간과 권력>(2013, 한울)이 있고 현재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성공회대와 명지대에서 '과학기술의 사회학'과 '정보사회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태그:#비트코인, #갈등의 정보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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