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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투쟁, 억압 등을 다룬 아, 옥상' 전시회가 대구 중구 북성로의 카페 삼덕상회, 장거살롱에서 열렸다.
 한국사회의 투쟁, 억압 등을 다룬 아, 옥상' 전시회가 대구 중구 북성로의 카페 삼덕상회, 장거살롱에서 열렸다.
ⓒ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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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옥상' 전시회가 열린 대구 중구 북성로 장거살롱의 모습. 주제를 담은 현수막이 나풀거리고 있다.
 '아, 옥상' 전시회가 열린 대구 중구 북성로 장거살롱의 모습. 주제를 담은 현수막이 나풀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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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 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어오른다. 인부가 용접을 하고 있다. 그 옆으로는 고무 자재를 실은 트럭이 지나간다. 다른 한 쪽 가게에서는 '쨍쨍'거리며 고철 다루는 소리가 들려온다. 대구시 중구 북성로 공구골목의 풍경이다.

북성로 공구골목은 공사에 필요한 용접기계, 고무 자재, 각종 나사를 비롯한 공구 등을 취급하는 대구의 명물 골목이다. 허름한 건물들 사이로 부지런히 자재를 실어 나르는 사람들에게서 노동의 땀냄새가 짙게 풍겨오는 곳. 바로 이 북성로에서 한국 사회의 갈등과 투쟁, 탄압의 상징인 용산참사, 쌍용차 옥쇄파업을 소재로 한 전시회가 열렸다.

북성로 공구골목을 따라 걸으면, 즐비한 점포들 사이에 있는 특이한 카페 두 곳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식 가옥을 개조해 만든 '삼덕상회'와 자전거 공방 겸 카페인 '장거살롱'이다. 공구골목의 이미지와 쉽게 어울리지 않는 느낌의 이 두 카페 옥상에서 용산참사, 쌍용차 옥쇄파업 등을 다룬 전시회가 열렸다.

전국 5개 도시(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에서 동시에 열린 이 전시회의 큰 주제는 '옥상의 정치'다. 대구에서는 '아, 옥상'이라는 부제 아래 대구 지역의 시각예술 작가들이 모여 전시를 기획·준비했다.

흰 팬티가 빨랫줄에 걸려있는 모습은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 이기주의를 우회적으로 비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흰 팬티가 빨랫줄에 걸려있는 모습은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 이기주의를 우회적으로 비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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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쌍용차 고공농성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들이 북성로 카페 삼덕상회 2층에 전시되어 있다.
 용산참사, 쌍용차 고공농성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들이 북성로 카페 삼덕상회 2층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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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과 억압의 상징이 되어버린 '옥상'

3월 28일 찾은 삼덕상회. 카페 뒤쪽에 있는 문을 열고 나가니 빨랫줄에 팬티 수십 개가 널린 채 바람에 나풀대고 있었다. 살짝 민망한 그림이기도 하다. 옥상과 팬티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이번 대구 전시의 기획을 맡은 노아영(24) 작가는 "옛날 가옥구조는 공동체 중심이었고 옥상에 속옷이나 빨래를 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 주거사회는 도시화되면서 빨래를 외부에 잘 널지 않는 데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면서도 개인주의·이기주의적인 사회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제스처"라며 그 취지를 설명했다.

빨랫줄에 널린 팬티 오른쪽에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간 2층의 한 쪽 벽면에는 용산참사, 쌍용차 파업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 가운데 허름한 건물 옥상에서 컨테이너가 붉은 화염에 휩싸인 채 활활 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은 파란 하늘 배경과 대조되는 느낌을 이룬다. 임은경 작가가 그린 이 작품들은 5년 전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있었던 화재, 그로 인해 6명이 희생된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기자와 함께 그림들을 보던 노 작가는 "옥상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단순한 가정집의 옥상을 떠올리게 된다"라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옥상은 시위의 공간, 사람이 투신을 위해 올라가는 불안정한 공간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노 작가는 그런 측면에서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우리 사회에서 내몰리는 사람들(용산참사 희생자, 쌍용차 해고노동자 등)의 사건을 가져와 이야기를 하면 일반인들도 그 사건에 한 번 더 관심을 가지게 될 거라 생각했어요."

'아, 옥상' 전시를 기획한 노아영 작가는 옥상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노동자, 인권, 투쟁, 극단 등으로 정의했다.
 '아, 옥상' 전시를 기획한 노아영 작가는 옥상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노동자, 인권, 투쟁, 극단 등으로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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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옥상'전시의 기획자인 노아영 작가가 옥상이 갖는 메시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아, 옥상'전시의 기획자인 노아영 작가가 옥상이 갖는 메시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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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카페에서 나오면 벽에 '투쟁, 학살, 억압' 등의 키워드들이 나란히 붙어 있다. 옥상이 사회·정치적으로 가지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하는 단어들이다. 키워드를 하나하나 타이핑하고 디자인 한 노아영 작가는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옥상에서 일어나는 극단적인 사회현상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해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대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인 도시로 꼽히기도 한다. 이런 대구에서 정치적, 그것도 진보 정치에 대해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에 노 작가는 "지금까지 미술계열이 사회와 유리돼왔던 게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작가들이 이런 사회현상을 외면하기보다 반영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대구라고 해서 망설일 필요는 못 느꼈다"라고 말했다.

연탄, 장갑, 운동화 등은 노동자를 상징하지만 그 위에 덮인 비닐은 노동자를 억압하려는 국가를, 테이프는 단절을 상징한다.
 연탄, 장갑, 운동화 등은 노동자를 상징하지만 그 위에 덮인 비닐은 노동자를 억압하려는 국가를, 테이프는 단절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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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인터뷰 내용을 담은 종이가 빨래줄에 걸려 있다.
 용산참사,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인터뷰 내용을 담은 종이가 빨래줄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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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 사람이 있다"

이번에는 삼덕상회에서 약 330m 떨어진 장거살롱을 찾았다. 자전거 공방이자 카페인 장거살롱의 2층과 옥상은 미술작가들의 작업실이기도 하다. 장거살롱 옥상에는 용산 철거대책위원회 소속인 이충연씨, 쌍용차 해고노동자인 고동민씨의 인터뷰 글이 빨랫줄에 걸려 있다.

저희 삶이 파괴되는 것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폭력을 피해서, 우리의 얘기를 들어달라고 옥상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저희의 얘기는 들어보려고 하지 않고 한 번의 대화 없이, 살인적으로 진압했다는 것은 국가의 폭력이고 국가의 범죄입니다. - 이충연

옥상에서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붉은색 깃발을 휘두르는 것밖에 없었어요. 우리 여기 있다고! - 고동민

이충연씨와 고동민씨는 각각 자신들이 '옥상'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 국가폭력에 대해 분노하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황성원 작가는 이들과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인터뷰 내용이 적인 종이는 빨랫줄에 걸린 채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댔다.

그 종이들 아래에는 연탄, 장갑 등이 한 무더기씩 쌓여 있었고 그 위로는 대형 비닐이 덮여 있었다. 노아영 작가의 말에 의하면 연탄은 노동 현장을, 장갑은 노동자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 위로 덮인 비닐은 노동자를 탄압하고 그들의 분노, 투쟁의 현장을 은폐하려는 국가를 나타낸다. 비닐을 고정시키기 위해 붙여진 테이프는 '단절'을 의미한다.

'아, 옥상' 전시의 기획자인 노아영 작가.
 '아, 옥상' 전시의 기획자인 노아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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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영 작가는 "삼덕상회 쪽에서, 윤순영 중구청장도 몇 번 다녀갔다는 소식을 전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사전취재 할 때도 윤 구청장은 삼덕상회에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기도 했다. 노 작가는 "공공기관의 수장이 이런 전시에 관심 가져주는 게 조금 놀랍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중구청장이 '이런 형태의 전시가 대구에는 잘 없는데 새롭고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는데, (이 전시가) 다소 정치적, 공격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좋게 봐주니 우리도 뿌듯했다"라며 소회를 밝혔다.

노 작가는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며 '국가폭력'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그는 "국가라는 거대한 집합체 안에 국민이 있는 건데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는커녕 지금 벌어지는 폭력 사건에 비쳐지는 걸로 봐서는 오히려 그들을 짓밟는 것 아니냐"라며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내내 마음 한편이 쓰리고 안타까웠다"라며 "이번 전시를 함께한 우리 다섯 명의 작가들은 앞으로도 사회적 이야기를 시각예술로 풀어내겠다"라며 계획을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장거살롱은 전시를 끝냈고, 삼덕상회 전시는 4월 3일까지 계속된다.



태그:#노아영, #아, 옥상, #북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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