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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27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제65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 최종 리허설에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사열하고 있다.
 2013년 9월 27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제65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 최종 리허설에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사열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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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 대표발의로 군형법 제92조의 6폐지안(군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 상정되었습니다. 30일까지 진행된 입법예고기간에는 3만 건 이상의 글이 올랐습니다. 얼마나 급하셨는지 몰라도 군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아니라 다른 법안에 '동성애 반대'라는 의견을 달아놓는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대부분 '동성애 반대' 견해를 명확히 하는 분들의 의견이었습니다.

"군 동성애 합법화 법안에 반대한다" "군에서의 동성애는 우리나라를 동성애 나라로 만드는 것" "자식들이 군대에서 항문섹스하고 에이즈 걸리는 꼴 보고 싶냐"는 의견까지. 여기서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왜 이 법이 폐지되어야 하는지 법안 '제안 이유나 주요 내용'을 단 한 줄이라도 읽어봤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일관된 반대의견들이었습니다.

군형법 제92조의 6은 '군인 또는 준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형사처벌하는 조항입니다.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이 신청된 적은 있었지만 폐지안이 국회에 상정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 내심 반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첫 입법 발의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군형법 제92조의 6이 폐지되면 더 이상 군대에서 동성 간 성추행 사건이 발생해도 처벌하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군대에서 동성애가 만연해져 군 기강이 흔들리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들리고, 동성애가 허용된 군대에 아들을 보낼 수 없다는 어머니들의 외침도 들립니다. 유감스럽게도 법안이 발의된 다음날 대구의 한 육군부대에서 선임병이 후임병 14명을 성추행한 사건(아래 육군부대 성추행 사건)이 보도되다 보니 법안의 문제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경우 군형법 제92조의 6법안 폐지에 대한 오해가 더 많아졌습니다.

무엇이 두려워서 이렇게 반대하나요?

정말 군형법 제92조의 6이 폐지되면 이번 육군부대 성추행 사건처럼 군대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처럼 충분히 처벌할 수 있습니다.

군형법 제92조의 6을 제외하더라도 다른 군형법 조항에 의거해 강간(군형법 제92조), 유사강간(군형법 제92조의 2), 강제추행(군형법 제92조의 3), 준강간, 준강제추행(군형법 제92조의 4), 미수범(군형법 제92조의 5)까지 처벌이 가능합니다. 그 외 일반형법이나 성폭력 관련법으로도 가능합니다. 이번에 발생한 육군부대 성추행 사건은 군형법 제92조의 6이 적용된 사례가 아닙니다. '추행'이라는 표현 때문에 많은 혼란을 주고 있지만 군형법 제92조의 6은 결국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오해는 저처럼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마치 군대 내 성폭력 문제를 안일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생각 때문일까요? 하지만 동성 간 성폭력 가해자가 동성애자여서 관대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추측은 사실과 다릅니다. 오히려 동성애자들이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일 것이라고 판단하는 게 문제겠지요.

후임병 14명을 성추행한 가해 사병이 동성애가 정신질환이기 때문에 형량을 적게 받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동성 간 성폭력 문제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빌미로 형량을 적게 받은 경우를 명확히 구분해 판단해야 합니다. 덧붙여 동성애가 정신질환이라는 주장에 형량을 낮춘 군사법원의 결정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핵심은 가해사병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아니라 '동성 간 성폭력 가해자'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건은 분명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와 구분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군대 내 성폭력 문제와 군형법 제92조의 6은 아무 연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2010년 10월 레바논에 파병된 국군 동명부대 내에서 성행위를 하다 적발된 남녀 장교가 각각 정직, 감봉의 징계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해외파병부대였고 충분히 군 전투력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이성 간이었기에 군 인사법상 징계처벌을 받은 것입니다.

군형법 제92조의 6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고 2년 이하의 형사 처벌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합의에 의한 관계'가 동성 간이라고 해서 꼭 형벌로 처벌해야 하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합의에 의한 것이라면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징계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동성 간 성행위를 비정상으로 바라보는 차별적인 시선과 혐오 때문에 '헌법 상 규정된 평등'이라는 말을 잊은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군형법 제92조의 6이 폐지되면 군대 내 동성애(행위)가 허용되고 만연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답해 보려고 합니다. 이 답은 사실 국방부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은 법령 상 동성애자 군 복무를 금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대관리훈령'에서는 동성애자 사병의 인권을 보호하고 다른 병사들과 동등하게 군 복무할 수 있도록 제반여건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꽤 많은 수의 동성애자들이 군복무를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군형법 제92조의 6이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합의에 의한 관계든 성폭력, 성추행에 의한 관계든 징계벌 이상으로 강력히 처벌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동성애 행위가 만연할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동성애에 대해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군대 문화에서 동성애자 사병들은 더 자신을 숨겨야 하는데 군형법 제92조의 6 하나 폐지된다고 한들 군대가 동성애자들의 천국처럼 될 것이라고 말하는 건 조금 지나친 생각 아닌가요?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를 위한 1만인 입법청원운동 선포 기자회견 사진으로 약 2개월간의 청원운동을 통해 2013년 6월 26일 5690명의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를 위한 1만인 입법청원운동 선포 기자회견 사진으로 약 2개월간의 청원운동을 통해 2013년 6월 26일 5690명의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 차별신고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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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 보장되는 군대에서 사건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보다 덜 할 것입니다.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는 인권이 보장되는 길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기에 인권지향적인 군 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되면 되었지, 동성애(행위)가 만연해지거나 군 기강을 위협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가 두렵다고요?

모든 부모님들이 그렇겠지만, 군 입대를 앞둔 아들의 모습을 안타깝게 쳐다봤던 부모님의 표정을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효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 속에는 혹시 군 복무 중에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우려가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군형법 제92조의 6이 폐지되면 아들을 군대에 절대 보낼 수 없다라는 어머니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무사전역으로 효도해야 할 아들이 군대에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동성애 혐오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성애에 대한 혐오감만 거두고 보면 군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성폭력, 성추행 사건에 대해 부모들은 이미 알고 있고 그 사건들이 지금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군형법 제92조의 6이 폐지된다고 지금의 상황보다 더 악화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방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군대 내 성폭력,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적극적으로 예방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남성들의 성욕 운운하며 부대 내 성적문란 행위 예방을 위해서 군형법 제92조의 6을 존치해야 한다는 주장은 올바른 예방책이 아님을 다시금 상기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무런 실증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국방부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가 곧 군대 내 동성애 허용·안보위협이라는 강력한 프레임과 동성애에 대한 뿌리깊은 혐오·편견이 결합되다 보니 합리적인 토론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이제는 군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 상정된 만큼 보다 상식적 토론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물론 UN국가별보편적정례인권검토(UPR) 등 국제사회에서도 수차례 폐지 권고를 받아왔던 만큼 우리 사회 평등에 대한 가치를,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논의를 보다 발전적으로 이야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군형법 제92조의 6이 폐지되면 군대에 아들을 보내지 않겠다는 어머님들. 걱정마세요. 아드님 군대 보내셔도 여러분들이 상상하시는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인권적인 군대문화를 바꾸고 지금도 발생하는 군대 내 성폭력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라고 국방부에 요구하는 것은 어떨까요?

덧붙이는 글 | 글을 쓴 정민석씨는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차별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에서 활동합니다.



태그:#군형법제92조의6, #동성애자,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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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재단 사람,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무지개의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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