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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개의 조용한 혁명> 책표지
 <백만 개의 조용한 혁명>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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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바란다. 하지만 변화의 열망에 부응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뛰어넘는 용기와 끈기가 필요하다. 생각이나 말에 그치는 게 아니라, 현실에 발 딛고 서서 '대안'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 경제 사회 전문기자 베네딕트 마니에가 쓴 책 <백만 개의 조용한 혁명>은 세계 곳곳에서 '작은 기적'을 일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대규모 비정부기구나 협회·재단에 속하지 않은 평범한 시민들이다.

출신도 각양각색이고 심지어 일부는 문맹이기까지 한 이들이 어떻게 인류 진보의 최일선에 서게 됐을까. 마니에는 이들의 활동을 '독립선언'이라고 표현한다.

'죽음의 땅'을 바꾸는 사람들

인도의 라자스탄 지역은 심각한 물 부족 지역이었다.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메마른 땅에서 농업과 목축을 주업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은 생존수단을 잃은 지 오래다.

1985년 이 지역 보건 담당 공무원으로 부임한 젊은 라헨드라 싱(Rajendra Singh)은 '죽음의 땅'을 '생명의 땅'으로 바꾸기 위한 거대한 도전을 시작한다. 그는 13세기부터 시냇물을 모아 땅속에 스며들게 하기 위해 초승달 모양으로 진흙 제방을 쌓아 만든 '조하드'(Johad)라는 토착민들의 물 관리 방식을 부활시켰다.

하루에 10~12시간에 걸쳐 땅을 파는 고된 노동을 3년이나 벌인 끝에 첫 조하드가 완성됐다. 이후 마을 주민들은 1년 만에 50여 개의 조하드를 팠다. 26년 후 그곳은 물길과 저수지를 포함해 1만 개의 수로망을 갖춘 비옥한 땅이 됐다.

이 수로망은 라자스탄 지역 1000여 개의 마을, 70만 명에게 용수를 공급한다. 다시 물이 흐르면서 생태계가 복원되고 경작 가능한 땅이 넓어져 생산량이 늘어나는 등 지역 경제도 활기를 맞았다. 마을 사람들은 조하드 수로망에 관한 모든 사항을 마을 회의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하며, 중요한 결정은 마을의 합의에 따르는 민주적 물 관리체제를 만들었다.

인도와 같이 물 부족을 겪는 많은 나라들에서 앞으로 물을 둘러싼 대립과 역학 관계의 재편은 더욱 빈번해질 것이다. 필수 자원인 물의 수거와 이용은 점점 더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문제 해결의 관건은 '시민들이 어떻게 해야 소수에게 집중되는 권리를 분산시켜 공동으로 물 자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인가'이다. 라헨드라 싱은 현지의 오래된 지혜와 마을의 잠재력을 살려내고 공동체의 힘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기적을 창조했다. 그는 "기후 변화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그것은 이 같은 유형의 지역적이고 탈중심화된 방식으로만 해결이 가능할 것"(본문 37쪽)이라고 강조한다.

탈소비주의 시대의 '문화 창조자들'

세계자연보호기금(WWF)에 따르면, 인류는 매년 지구가 제공하는 것보다 50%나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한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2030년에는 인류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두 개의 지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본문 122쪽).

화석연료 시대의 종식에 따른 제로 성장 시대의 개막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을 요구한다. 성장에 제동이 걸린 자본주의 경제는 지속가능한 고용 창출에 실패했다. 소득과 구매력의 하락은 더 이상 자본주의식 대량 소비 방식으로는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 강력한 경고다. 탈소비주의, 탈물질주의로의 삶의 방식 변화의 기저에는 현재의 경제모델이 사실상 수명을 다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대두되고 있는 새로운 소비의 경향, 즉 '피어 투 피어'(peer-to-peer : 개인 대 개인) 교환 방식은 내 것과 네 것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재화의 공동체화, 혹은 공동 소비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소비자들은 물건을 소유하는 대신 물건의 이용 방식(물물교환·대여·바꿔 쓰기 등)을 결정함으로써 자율권을 갖게 된다. 중요한 것은 소유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폴 H. 레이(Paul H. Ray)와 심리학자 세리 루스 앤더슨(Sherry Ruth Anderson)은 소비·노동·생활의 새로운 방식을 창안해내는 능력을 갖춘 이 사회 집단에 '문화 창조자(cultural creatives)'라는 별칭을 붙였다(본문 116쪽). 이들은 부를 축적하는 대신에 삶의 의미를 중요시하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자발적인 단순함을 선택한다.

이처럼 선택적이고 참여적이고 지역 회귀적인 구매방식은 새로운 행동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동시에, 유통업자-구매자 사이의 수직 관계를 약화시킴으로써 대규모 트러스트를 피하고 교환에 다시금 인간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또한 땅과 지구의 미래를 염려하는 네트워크 안에서 사람들 사이의 수평적인 상호작용을 강화한다.

그리고 이렇게 지방 분산화되고 공생과 연대를 추구하는 교류가 늘어나면서 영리한 방식의 협력들도 점점 더 많이 모색되고 있다. 이제는 기부와 협력, 공유가 '돈이면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대신한다.

작은 기적... 역동하는 세계

현장에서 단독으로 혹은 비공식적 집단으로 움직이며 경제·농업·소비·노동·주거에 대한 권리를 다시 조용히 장악하기 시작한 이름없는 수천 명의 활동은 더 인간 중심적인 '다른 세계'의 윤곽을 보여준다.

이들의 시도를 하나의 '-이즘'으로 딱 잘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에 기초하지 않고 정치적 프레임 없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이야말로 작은 기적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철의 여인'이라 불리었던 마거릿 대처는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며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라고 공언한 바 있다. 앞글자만을 따 'TINA'라고 약식 표기되는 이 발언은 신자유주의만이 진리라는 것을 주장할 때 종종 인용되는 경구이기도 하다. 과연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인류가 택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지일까.

책 속에 나와 있는 백만 개의 조용한 혁명은 '대안은 있다는 걸 현실로 보여주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막다른 길에 처한 자본주의가 서서히 사라져가는 가운데, 바야흐로 더 참여적이고 연대적이고 인간적인 사회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대안의 출발점이며 미래의 시작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백만 개의 조용한 혁명>(베네딕트 마니에 씀 / 이소영 옮김 / 책세상 / 2014-02-17 / 1만8000원)
이 글은 제 블로그 http://blog.yes24.com/xfile340 에도 게재했습니다.



백만 개의 조용한 혁명

베네딕트 마니에 지음, 이소영 옮김, 책세상(2014)


태그:#자본주의, #협동조합, #공동체, #탈소비주의, #지속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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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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