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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속의 여성 그리고 이슬람>
 <베일 속의 여성 그리고 이슬람>
ⓒ 시대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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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18일 아프가니스탄에선 한 여성 비디오자키가 명예살인을 당한다. 그녀가 죽음을 당한 이유는 부르카, 즉 베일을 벗고 방송을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살해 당한 여성은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방송인인 샤이마 레자위. 그녀는 당시 팝송과 이란 음악을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아프가니스탄의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기 절정의 프로그램이었다.

샤이마 레자위는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인기 진행자답게 전통적 이미지를 탈피, 서구적인 이미지로 호감을 얻었다.

그런데 이는 탈레반 정권 이후 철저한 통제로 일관해 온 이슬람 율법을 과감하게 무시한 행동이었다. 얼굴을 드러내선 안 된다는 규율을 어긴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특히 보수 세력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생전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다가, 결국 살해당하고 만 것이다.

샤이마 레자위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는 분분하다. 가족의 명예를 위해 오빠가 죽였을 것이라는 것과 이슬람 원리주의자가 죽였을 것이라는 것부터 샤이마 레자위를 죽음으로 몰고 간 베일에 대한 의견까지.

'명예살인'으로 희생 당하는 여성, 매년 5000여 명

여하간 분명한 것은 '샤이마 레자위'가 누군가에 의해 '명예살인'을 당했다는 것이고, 수많은 이슬람 문화권 여성들이 이 '베일' 때문에 죽음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 사회에서 혈통과 가문은 남성만의 것이므로, 여성의 몸은 재생산의 도구일 뿐이다. 그러니 가분의 명예를 위해 여성이 목숨을 바치는 것쯤이야 너무나 당연하다. 아내나 누이가 성폭행을 당하거나 혼외 성관계를 가졌을 경우, 그녀들은 명예살인의 대상이 된다. 곧바로 아버지나 오빠, 남편이 처벌의 임무를 수행한다.

이때 가문의 명예를 위해 여성을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고 마땅한 결과다. 더구나 여성의 처형을 집행한 살인자 남성을 국가권력이 그다지 심하게 통제하지 않으니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다. 명예살인은 대체로 가족 내부의 문제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 <베일 속의 여성 그리고 이슬람>에서

<베일 속의 여성 그리고 이슬람>(시대의 창 펴냄)은 샤이마 레자위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슬람 여성의 상징인 '베일'을 통해 만나는 이슬람이다.

한국 최초의 터키·유라시아 투르크 전문가인 저자(오은경)에 의하면 중동 사람들의 의식에는 '여성은 기본적으로 남성 구성원에게 종속되며, 여성의 과오가 아버지나 남자 형제 또는 남편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생각이 뿌리박혀 있다. 이런지라 가족 구성원인 여성이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생각하면 살인하고 만다. 아주 드물게 남성도 명예 살인을 당하곤 하지만, 대부분은 여성이 그 대상이다.

그렇다면 명예살인으로 희생되는 여성들은 얼마나 될까? 유엔활동기금(UNFPA)은 전 세계에서 명예살인으로 희생되는 여성은 매년 5000여 명, 국가별로는 파키스탄과 그 인근지역에서 가장 많은 명예살인이 일어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건 공식적인 통계에 불과할 뿐이다. 명예살인이 가족 내부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데다가, 정부의 무관심까지 겹쳐져 명예살인으로 사라지는 여성들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조차 알기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여성들이 베일을 쓴 것은 자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남성 가부장 권력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한 남성에게 속한 여성인지 아닌지 표시하기 위해서 여성에게 베일을 쓰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나치 집권 시기 유대인에게 붉은 완장을 차게 함으로써 폭력과 차별에 노출되도록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분 차이나 결혼 여부에 따라 베일을 쓰지 못한 여성이 남성의 성폭행이나 폭력 혹은 다른 사회적 차별에 시달렸을 수도 있다는 추측이 충분히 가능하다.

때문에 여성들은 차츰 베일을 선망하게 되고 이를 자발적으로 착용하여, 스스로 '정숙한' 혹은 마땅히 다른 남성의 눈길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여성이라는 것에 자긍심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그렇다면 '존중받을 만한 그리고 보호받을 만한'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의 이분화가 왜 그렇게 필요했을까? 무엇보다도 남성들 간의 분쟁을 막고 가부장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성질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 <베일 속의 여성 그리고 이슬람>에서

오늘날 이슬람 여성들의 베일은 종종 인권문제와 연결되어 이야기 되곤 한다. 특히 서구 언론들은 이슬람의 베일은 인권 탄압의 기제라며 강력히 비판한다. 비판으로 끝나지 않고 공공장소에서 베일의 일종인 부르카나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나라들도 있다. 

베일, 인권탄압인가? 문화적 특성인가?

샤이마 레자위의 경우처럼 현실적으로 베일이 이슬람 여성들의 인권을 억압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터키의 한 종교 학교에선 여학생 모두 베일을 써야 하는데, 친구와 저녁을 먹으려고 베일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딸을 본 아버지가 순결검사를 하겠다며 딸을 협박한 사건이 발생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에선 화재가 발생했는데 '베일을 쓰지 않은 여성은 집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이유를 앞세운 소방관들이 건물 속 여성들을 구출해 주지 않아 모두 사망한 사건도 발생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문화적 상대성을 인정하여 일종의 문화적 차이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슬람 여성 스스로 베일 착용을 여성으로서 마땅히 보호받을 수 있는 도구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한 예로 2011년 6월, 히잡을 착용했다는 이유로 몰수패 당한 이란의 여자 축구선수들이 히잡 착용은 종교적 신념에 의해 자신들 스스로 원한 것이라 밝히자, 종교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렇듯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규정하는 기호이자 종교적 의무였던 이슬람 여성의 베일은, 근대 초기에 이르면 서구와 식민 국가의 정체성 사이의 갈등의 표상으로 얽히기도 했고, 서구화나 근대화의 척도로 읽히기도 했다. 각국 상황에 따라 베일의 존폐 문제가 각각 다르게 표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해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 이면에는 여성의 권익 향상이라는 목적보다는 민족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이슬람 여성의 베일 착용을 바라볼 때 같은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고통 받는 여성들을 구원해주었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최초로 여성 앵커를 고용하고 여성들이 부르카를 벗도록 조치했다. 서구 언론은 무시무시하고 폭력적인 이슬람 원리주의자 정권인 탈레반이 물러가고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 지상낙원이 펼쳐진 것처럼 떠들어댔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앵커는 "부르카를 벗었다고 해서 우리에게 해방이 온 것은 아니다"라고 울부짖었다.
- <베일 속의 여성 그리고 이슬람>에서

"부르카를 벗었다고 해서 우리에게 해방이 온 것은 아니다"라고 울부짖은 여성 앵커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여성들에게 베일을 벗게 하는 것으로 문명화의 선전도구로 이용하려 했던 미국이나 이슬람 정체성을 강화하고자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 베일 착용을 강제한 탈레반 정부나 이슬람 여성들 입장에서 과연 무엇이 다를까? 이 여성 앵커의 울부짖음은 이슬람 여성들의 베일을 제3자의 시각으로 섣불리 정의해선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종종 전혀 다른 시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슬람 여성들의 베일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이슬람 여성들은 언제부터, 왜 베일을 쓰기 시작했을까? 이슬람 여성들에게 베일은 과연 무엇일까?

이 책은 오늘날 이슬람의 상징이 되어 버렸으나 실은 이슬람 이전부터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되어 온 '베일 쓰기' 전통을 역사, 정치,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다룬다. 그와 함께 베일과 관련된 이슬람 여성들의 인권 침해 사례, 베일 논쟁에 얽힌 다양한 시각들을 들려줌으로써 이슬람 여성들의 베일과 이슬람의 실체에 가까이 닿게 한다.

덧붙이는 글 | <베일 속의 여성 그리고 이슬람>| 오은경 (지은이) | 시대의창 | 2014-03-10 | 13,500원



베일 속의 여성 그리고 이슬람 - 베일을 통해 본 이슬람 문화

오은경 지음, 시대의창(2014)


태그:#이슬람, #무슬림, #베일, #히잡, #차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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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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