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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대추마을 할머니들이 짜장면과 우동을 먹고 있다. 이 면은 조장옥 씨가 마을을 찾아와 직접 뽑아 만들어준 것이다.
 담양 대추마을 할머니들이 짜장면과 우동을 먹고 있다. 이 면은 조장옥 씨가 마을을 찾아와 직접 뽑아 만들어준 것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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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여러분께 알려 드립니다. 담양읍에서 금농반점을 운영하고 있는 조장옥 사장이 올해에도 마을 어르신들께 짜장과 우동으로 점심을 대접한다고 합니다. 시간 맞춰 한 분도 빠짐없이 마을 회관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지난 11일, 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 대추마을이었다. 마을 방송이 고요하던 농촌 마을의 정적을 깬다. 방송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트럭 한 대가 마을회관 앞에 들어와 멈춘다. 트럭은 커다란 솥단지와 갖가지 음식재료를 가득 싣고 왔다. 짜장면 봉사를 나온 이들임을 직감할 수 있다.

봉사자들이 재료와 기구를 내렸다. 곧바로 음식 만들기에 들어간다. 불을 켜서 짜장을 볶는다. 한쪽에 있는 기계에선 면발이 술-술- 뽑혀져 나온다. 손놀림이 능수능란하다. 분주한 모습에 말을 걸기가 머쓱해진다.

조장옥 씨가 기계에서 면발을 뽑고 있다. 조 씨는 농촌마을을 돌아다니며 어르신들에게 짜장면과 우동을 직접 만들어 대접하고 있다.
 조장옥 씨가 기계에서 면발을 뽑고 있다. 조 씨는 농촌마을을 돌아다니며 어르신들에게 짜장면과 우동을 직접 만들어 대접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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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짜장면과 우동을 먹고 있다. 지난 11일 담양군 봉산면 대추마을에서다.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짜장면과 우동을 먹고 있다. 지난 11일 담양군 봉산면 대추마을에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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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 만드는 것보다 고기를 푸짐하게 넣어요. 식당에서 한 근을 넣는다면 여기서는 서너 근을 넣죠.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일인데, 아낄 이유가 있겠습니까? 팍-팍- 넣어야죠."

시종 웃음 머금은 얼굴로 면을 뽑고 있던 조장옥(57)씨의 말이다.

점심 때가 가까워졌을까. 주민들이 하나 둘 마을회관으로 모여든다. 보행기에 의지한 채 힘겨운 발걸음을 하는 할머니도 보인다. 경운기를 같이 타고 온 사람들도 있다. 우편 배달을 하던 집배원도 멈춰 짜장면 한 그릇을 받아든다.

고물을 모으던 아저씨도 가던 길을 멈춘다. 할머니 손을 잡고 온 예쁜 손녀도 우동 한 그릇을 폭풍 흡입한다. 사람들이 모인다는 소문을 들은 지방선거 예비후보들도 합세해 부산스럽다.

"기똥차게 맛있네", "배가 터지도록 먹었네", "한두 번도 아니고 너무 고마운 일이네", "담양의 효자네" 등등 여기저기서 조씨에 대한 찬사가 쏟아진다. 이렇게 짜장면과 우동으로 점심을 한 주민들이 200여 명. 마을잔치나 진배없었다.

조장옥 씨가 끓는 물에 넣었던 면을 건져내고 있다. 조 씨는 이렇게 짜장면과 우동 200여 그릇을 만들어 마을 어르신들에게 대접했다.
 조장옥 씨가 끓는 물에 넣었던 면을 건져내고 있다. 조 씨는 이렇게 짜장면과 우동 200여 그릇을 만들어 마을 어르신들에게 대접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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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과 우동. 조장옥 씨가 대추마을에서 직접 만들어 내놓은 것이다.
 짜장면과 우동. 조장옥 씨가 대추마을에서 직접 만들어 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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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어르신들 덕에 살았죠. 지금은 아들과 딸도 다 커서 떳떳하게 살고 있고요. 지금까지 받은 은덕을 이제는 제가 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짜장면 봉사를)시작했습니다. 어르신들이 맛있게 드셔 주시니 제가 더 감사하죠."

조씨의 말이다. 이렇게 조씨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짜장면 봉사를 시작한 게 벌써 15년째. 장애를 겪어 불편한 몸인데도 담양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이렇게 살고 있다. 부인 김금덕(56)씨도 늘 함께 한다.

조씨 부부의 선행을 듣고 함께하는 자원봉사자도 있다. 교직에서 정년을 한 김정자(65)씨를 비롯 김정오(60) 효사랑봉사회장, 이홍석(50)씨도 동행한다. 국수집을 운영하는 이재호(52)씨는 아예 가게 문을 닫고 함께 한다.

"아이들에게 항상 남을 배려하면서 살라고 가르치고 있어요. 부모가 실천하지 않고 자식한테만 말한다는 게 부끄러워서요. 그래서 시작한 게 벌써 15년이 됐네요. 봉사도 처음에는 제가 베푸는 것이라 생각했는데요. 그게 아니더라고요. 최근에야 알았는데요. 봉사는 베풂이 아닌 상생이더라고요. 봉사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또 베푼 만큼, 아니 그 이상 나한테도 돌아오더라고요."

조씨의 얘기다. 그의 봉사활동은 여름에 잠시 쉬어간다. 더운 날씨에 자칫 식재료가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담양 대추마을의 짜장면과 우동으로 한 점심식사. 마을주민들이 모두 모여 조장옥 씨가 만들어준 면으로 식사를 했다.
 담양 대추마을의 짜장면과 우동으로 한 점심식사. 마을주민들이 모두 모여 조장옥 씨가 만들어준 면으로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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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봉사 풍경. 한쪽에서는 그릇에 담긴 면을 배달하고 한쪽에선 빈 그릇을 치우고 있다.
 짜장면 봉사 풍경. 한쪽에서는 그릇에 담긴 면을 배달하고 한쪽에선 빈 그릇을 치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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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 소재지와 가까운 마을은 찾지 않는 것도 그의 철칙이다. 소재지에서 10㎞ 이상 떨어진 마을만 찾아다닌다. 짜장면을 맛보기 어려운 어르신을 한 번이라도 더 찾기 위해서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세심한 배려도 담겨 있다.

"얼마 전, 용면 용추리에 갔을 때였죠. 한 할머니한테 '짜장면 얼마 만에 드셔보는지' 물었는데, 4년 전에 제가 마을을 찾아 만들어 드린 이후 처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마음이 짠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 사이 짜장과 우동이 모두 나갔다. 준비한 식재료도 바닥을 드러냈다. 봉사자들도 서서히 마무리 청소를 시작한다. 언제까지 짜장면 봉사활동을 계속할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돌아온 그의 대답이 질문자를 부끄럽게 만든다.

"기약은 없어요. 힘이 닿을 때까지는 계속하려고요. 아직도 젊어요. 저는. 다만 저의 뒷모습이 부끄럽지 않도록 하려고요. 봉사하고 돌아서는 모습이 언제까지나 떳떳하도록 노력하렵니다."

지난 11일 담양 대추마을의 짜장면 봉사에 참여한 봉사자들. 왼쪽부터 이재호, 김정자, 이홍석 씨. 그리고 김금덕·조장옥 씨 부부다.
 지난 11일 담양 대추마을의 짜장면 봉사에 참여한 봉사자들. 왼쪽부터 이재호, 김정자, 이홍석 씨. 그리고 김금덕·조장옥 씨 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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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조장옥, #김금덕, #짜장면봉사, #담양, #금농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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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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