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 년 전, 이맘 때 즈음 유라시아 횡단여행을 떠났습니다. 변변한 외국어 실력 없이 오롯이 패기 하나로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배낭을 짊어지고 낯선 땅을 돌며 보낸 4개월의 시간은 하루하루가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10여개 국가를 여행했고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늦었지만 서랍 속에 간직했던 묵혀둔 일기장을 공개합니다. -기자주

러시아에서의 첫 날이 밝았다. 아침 7시, 눈이 번쩍 떠졌다. 알람이 울리기 직전이다.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 문밖으로 나선다. 도시는 아직 어둠에 뒤덮여 있다. 부스스한 얼굴로 여명이 밝아오는 블라디보스토크의 풍경을 바라본다. 어제와 달리 눈 덮인 경치가 이국적이다. 전날 밤, 거리를 헤매며 바라 본 도시와는 다르다. 코끝에 와 닿는 찬 공기에서 상쾌한 내음이 풍긴다.

오늘 저녁(16일),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는 기차에 오른다. 다음 여행지는 울란우데다. 기차로 2박 3일이 걸리는 곳에 위치한 도시다. 울란우데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순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로 가는 길이 너무 멀어 잠시 머물러 가기로 한 도시다.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앞에서 바라본 도심 풍경. 겨울, 블라디보스토크의 추위는 그야말로 살인적이었다.
▲ 도심 풍경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앞에서 바라본 도심 풍경. 겨울, 블라디보스토크의 추위는 그야말로 살인적이었다.
ⓒ 정대희

관련사진보기


블라디보스토크의 첫날이 밝다

밤사이 안내 데스크 직원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었다. 더듬거리며 러시아어로 아침인사를 건넸다.

"즈드라스부이쩨".

어눌한 말투 탓인지 반응이 없다. 무표정으로 화답하는 그를 보자 머쓱하다. 러시아회화 책을 다시 봐야 할 듯하다.

대충 씻고 어제 산 컵라면과 빵으로 아침을 해결한 뒤 짐을 챙겨 떠날 채비를 했다. 숙소를 떠나며, 연습했던 대로 손을 흔들면서 러시아어로 직원에게 "다스비다니아(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했다. 아까와 달리 살짝 웃으며, 대답한다. 괜스레 뿌듯한 기분이 든다.

어제 만난 한국인들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을 향해 걸어갔다. 오늘 한국행 배에 오르는 두 명과는 기차역 옆 육교서 작별을 했다. 뒤돌아 걸어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훗날 무사히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남겨진 나와 항근, 그리고 상일은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오늘 밤, 모두 다음 여행지로 떠나기 전까지 꽤 시간이 남았다.

시내구경을 위해 짐을 맡길 수화물 보관소를 찾았다. 상일은 "장갑이 없어졌다"며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갔다. 기차역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잠시 헤어졌다. 나와 항근은 수화물 보관소를 찾기 위해 기차역 안으로 들어갔다.

브하트(вход , 출구)란 키릴 문자가 적힌 문을 열고 역 안으로 들어서자 곧바로 검색대가 나타난다. 뒤로는 서너 명의 제복을 입은 러시아인이 서 있다. 힘들게 러시아에 입국했던 기억이 떠올라 괜히 심장이 요동친다. 다행히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수화물 보관소는 기차역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 알림판 블라디보스토크의 수화물 보관소는 기차역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 정대희

관련사진보기


친절한 러시아인을 의심한 나, 반성했다

대합실을 어슬렁거리며, 수화물 보관소를 찾아 나섰다. 곳곳을 기웃거려보지만 도통 눈에 띄지 않는다. 그때, 항근과 나를 향해 웬 중년의 러시아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는 우리가 뭘 찾는지 묻는 것 같았다. 있는 힘껏 몸으로 수화물 보관소를 설명했다. 이번엔 80리터 배낭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몸짓을 보고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눈치 챘는지 감탄사를 내뱉고는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그를 따라 다시 역 안을 빠져 나왔다.

기차역 바로 옆,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가자 단층 건물이 나타났다. '카메라 흐라네니야(камера хранения)', 수화물 보관소를 알리는 영문표기 위로 적힌 키릴 문자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다. 그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내부는 한국의 전당포와 닮았다. 요금을 계산하고 배낭을 맡겼다. 밤 12시 이전까지 수화물을 찾아간다면 추가요금은 없단다. 어제(15)일 만난 재러 교포의 충고가 떠올라 지갑서 몰래 돈을 꺼내 요금을 지불했다. 그런 모습이 우스운지 주변에 있던 대여섯 명의 러시아인들이 웃는다. 도움을 준 러시아인도 소리를 내 웃으며, 손으로 눈을 가린다. 민망한 상황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배낭을 맡기고 보관소를 빠져나왔다.

친절을 베푼 러시아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그는 맥주 한 잔을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의 호의가 불편하다. '혹시나 해코지를 당하는 게 아닌지'하는 의심이 든다. 그렇다고 무작정 제안을 뿌리치고 갈 수도 없어 고민이다. 애매한 상황에 항근과 마주보며,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고심 끝, 일단 항근이 그와 함께 대합실로 갔다. 난 자처해 "상일을 데리고 오겠다"는 핑계로 그 자리를 피했다. 혼자 상황을 모면해 보자는 얄팍한 심리가 작용한 거다.

기차역 매표소에서 상일을 만났다. "보관소는 찾았어?"란 상일의 질문에 "따라와"라며 으스대며 아는 척을 한다. 수화물 보관소로 향하는 길, 상일과 헤어진 후 일어난 상황을 수다스럽게 설명했다. 상일의 짐을 맡긴 후 대합실서 항근과 러시아인과 조우했다. 매점 근처서 둘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맥주 하나를 사 곁에 앉았다.

넷 사이, 침묵과 외침을 반복하는 어색한 상황이 이어진다. 만국공통어인 '바디 랭귀지'만이 유일한 대화수단으로 그와의 거리를 좁혀 주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도 기껏해야 그가 1966년생이고 기차역 직원이라는 것밖에 알 수 없었다. 생각보다 언어의 장벽이 크다.

보는 시각도 달랐다. 그는 셋 다 대학생으로 봤지만, 한국에서 난 언제나 '아저씨'로 불렸다. "서른 넷"이란 나의 말에도 못 믿는 그를 향해 여권을 코끝까지 들이밀었다. 그제야 그는 놀라며, 날 바라본다. 기분 좋은 경험이다.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는 항근과 자신을 놔두고 도망치듯 상일을 찾아나 나선 이야기를 우스꽝스레 표현했다. 내 속내를 뚫고 있던 거다. 돌이켜보면, 누가 봐도 부자연스런 행동이었다. 부정할 수 없어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가 웃음으로 대답한다. 그런 모습에 나는 더 작아졌다. 이 일을 계기로 여행을 하는 동안 타인에게 먼저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이후 수많은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됐다.

아쉬움을 남긴 채 그와 헤어졌다. 제복을 입은 한 군인이 그에게 다가와 타박을 했고 그는 서둘러 일터로 향했다. 허기를 느낀 우리는 간단한 요깃거리를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패스트푸드점서 만난 러시아 청년 파벨은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장차 러시아에 있는 한국기업에 취직을 하고 싶단다.
▲ 단짝 친구 패스트푸드점서 만난 러시아 청년 파벨은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장차 러시아에 있는 한국기업에 취직을 하고 싶단다.
ⓒ 정대희

관련사진보기


패스트푸드점서 한국어 공부하는 러시아 대학생을 만나다

상일이 구글 맵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패스트푸드점을 발견했다. 천만다행이다. 추위에 볼이 시리다 못해 아파왔다. 장갑을 두 개나 겹쳐서 꼈는데도 손이 시렸다. 자꾸만 달라붙는 속눈썹, 안경에 서린 입김이 얼어 앞을 보는 것조차 어렵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추위다.

마침내 패스트푸드점에 도착했다. 주문을 하기 위해 메뉴를 살펴보지만 알아볼 수 있는 문자가 없다. 그림을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문을 했다. 쉬운 게 하나도 없다. 허기를 채우며, 가볼 만한 곳을 논의했다. 순간, 옆 테이블에서 "안녕하세요"란 한국어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젊은 러시아인이 쳐다보며, 웃는다. 깜짝 놀라 한국말로 물었다.

"한국어 할 줄 아세요?"

어눌한 말투로 그가 답했다.

"조금 할 수 있어요."

말을 걸어온 러시아 청년의 이름은 파벨, 그는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으며, 나이는 21살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낯선 땅에서 일어난 신기한 경험에 놀라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그가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중앙광장에 들어서자 기념상이 보였다. 파벨은 "전쟁으로 죽은 사람"이라며 폭탄 소리를 냈다. 훗날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찾아보니 1917-1922년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구 소련을 위해 싸웠던 병사들을 위한 기념물이란다. 광장 주변을 구경하는데 파벨이 다시 한국어로 물었다.

"술 마시러 갈래요?"

그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했다. 날씨가 너무 추워 바깥구경을 하는 자체가 힘들 정도였다. 파벨도 추운지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는 도심 속 빌딩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꽤 넓은 공간에 러시아의 젊은이들이 가득했다. 유리창 너머로는 블라디보스토크의 도심 풍경이 내려다보였다.

파벨은 근사한 술집으로 일행을 이끌고 가더니 보드카를 샀다. 어찌나 독하던지 한 잔 술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 보드카의 추억 파벨은 근사한 술집으로 일행을 이끌고 가더니 보드카를 샀다. 어찌나 독하던지 한 잔 술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 정대희

관련사진보기


또 한 번의 반성... "영어 그만하고 한국말 해"

빈 테이블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파벨은 보드카를 주문했다.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계산도 했다. 상일과 항근은 술을 못 마신다며, 커피를 주문했다. 나만 파벨과 각자 나라의 말로 건배를 하며, 술잔을 주고받았다. 술이 들어가자 기분이 알딸딸하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파벨이 느릿느릿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면 러시아에 있는 한국기업에 들어가고 싶어요. 한국말을 배우고 싶어서 말을 건 거예요."

손에 낀 반지를 보고 물었다.

"결혼했어요?"

파벨이 답했다.

"네, 두 살 조금 안 된 딸도 있어요."

어린 나이에 결혼해 딸도 있다는 그의 말에 항근과 상일도 흠칫 놀라는 표정이다. 결혼이야기가 나오자 대화는 자연스레 각 나라의 경제상황으로 이어졌다. 내가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을 늦게 해. 결혼하려면 상당히 많은 돈이 들거든. 가장 큰 장애는 집값이야. 엄청 비싸거든."

파벨이 대답했다.

"러시아의 평균 임금이 600불 정도예요. 한국기업의 임금이 높아 많은 러시아 청년들이 러시아에 있는 한국기업에 취직하길 희망하죠. 블라디보스토크는 집값은 싼 편인데, 나머지는 비싸요. 반대로 모스크바는 집값이 10만불 정도로 아주 비싸지요. 하지만 나머지는 싸요. 내가 태어난 노보시비리스크가 모든 게 적당해 살기 좋아요. 대학도 싸게 다닐 수 있고요."

느리고 때론 듬성듬성 말을 못 이어갔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한국말로 설명을 했다. 반대로 한국인 셋은 house(하우스, 집), Korea(코리아), money(머니, 돈), marry(메리, 결혼) 등 한국어과 영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자 파벨이 말했다.

"왜 영어로 말 해? 난 한국 사람에게 한국말 배우고 싶어서 너희에게 다가간 건데. 영어 그만해. 한국말 해."

그의 말에 뒤통수가 번쩍했다. 다들 무의식적으로 영어를 사용해야만 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거다. 또 한 번, 내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을 느낀다. 더욱이 '러시아어 회화책을 꺼내놓고 대화를 했다면 파벨이 이렇게까지 짜증을 내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한 두 개의 러시아어도 공부하지 않고 여행 온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갑자기 취기가 사라지고 다시 한 번, 반성을 하게 된다. 보답으로 이번엔 내가 그에게 술을 샀다. 항근과 상일도 함께 건배를 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점인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철로에 서 있는 열차 모습.
▲ 철로에 선 열차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점인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철로에 서 있는 열차 모습.
ⓒ 정대희

관련사진보기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오르다

내가 탈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 다가와 모두 술집을 빠져나왔다. 파벨이 울란우데까지 가려면 열차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먹을거리를 사야 한다고 해 근처 마트로 향했다. 간단히 음료와 컵라면, 소시지, 빵 등을 고르자 파벨이 "모자라"라며 카트에 이것저것을 더 넣었다. 너무 많은 양을 산 것 같아 그를 제지했다. 물론 나중에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기차로 2박 3일간 이동하려면 상당히 많은 양의 식량이 필요했다.

마트를 나와 파벨과 헤어졌다. 아내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고 그는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차역까지 바래다주지 못해 미안해 하는 그를 등 떠밀듯 보낸 뒤 다시 기차역으로 향했다. 수화물 보관소에서 짐을 찾아 열차에 올랐다. 항근과 상일은 먼저 떠나는 날 위해 승강장까지 배웅해 주었다. 러시아는 승강장까지 출입이 자유로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많은 정이 쌓여 헤어짐이 아쉬웠다. 서로의 여행을 응원하며, 열차에 올랐다.

열차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각 좌석마다 짐을 싣느라 어수선했다. 이름 모를 러시아인의 도움으로 기차표에 적힌 숫자 '12'를 찾았다. 2층 침대칸이다. 배낭을 3층 짐칸에 올려놓고 창문 너머 손을 흔드는 상일과 항근을 향해 똑같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이윽고 열차가 서서히 움직인다. 승무원이 다가와 열차표를 확인하고 베개와 이불덮개 서너장을 건넨다. 같은 침대칸에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딸로 보이는 세가족이 탔다. 통로 칸에는 배가 불룩한 임산부가 힘들게 짐을 싣고 있다. 사방이 죄다 서양인이다. 동양인은 나 혼자다. 이제부터가 진짜 여행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기차표 보는 법
러시아의 기차표.
▲ 열차표 러시아의 기차표.
ⓒ 정대희

관련사진보기


(1) 기차번호-(133 ЗА)
(2) 출발 날짜(16. 01. 12. 34-모스크바 시간을 기준으로 표시. 블라디보스토크 +7)
(3) 객차 번호 및 종류- (06 П)
П-쁠라츠카르타(개방형)
К-쿠페(4인실)
Л -룩스(일등석 2인실)
(4) 출발지-도착지(ВЛАДИВОСТ-ЧЛАН ЧДЕ)
(5) 침대번호-(МЕСТА 012)
(6) 여권번호 및 승객 이름-(33М91970612/ JEONG=DAEHEE)
(7) 기차표 가격-(Н-3542.8)
(8) 도착날짜-(19.01 06.43-모스크바 시간을 기준으로 표시. 울란우데 +5)

덧붙이는 글 | 여행과 관련한 자세한 사항 및 담지 못한 이야기는 오블(http://blog.ohmynews.com/kaos80)에 올립니다. 러시아 철도청을 방문해 기차표를 예매하는 방법 등을 알고 싶은 분들은 오블을 방문해 주세요.



태그:#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시베리아 횡단열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