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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인 지난 2013년 3월.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통해 필자가 일하는 박원석 의원실로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영종도에 카지노를 지으려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만나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보좌진들이 만난 외국인 투자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기업인 시저스 엔터테인먼트의 해외부문 사장과 아시아담당 부사장, 그리고 화교계 부동산개발기업 리포그룹 CEO의 고문이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18일 발표한 영종도 카지노 사전심사 적합판정 보도자료
▲ 문화부 보도자료 문화체육관광부가 18일 발표한 영종도 카지노 사전심사 적합판정 보도자료
ⓒ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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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영종도 복합리조트(IR)가 한국에 매우 큰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니 국회에서 적극적으로 도와달라'는 뜻을 전했습니다. 물론 저희는 "한국에서는 외국인 투자자의 카지노 허가가 날 가능성이 낮으니 혹시 카지노는 빼고 호텔과 전시장, 리조트만 지으면 안 되겠느냐"고 제의했으나 그들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카지노는 나머지 모든 시설을 위한 파이낸셜 엔진(Financial Engine)입니다. 우리는 카지노 허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8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리포-시저스 컨소시엄(LOCZ코리아)가 청구한 카지노 사전심사에 대해 적합 판정을 내렸습니다. 사실상 카지노 허가권을 내준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박근혜 정부의 영종도 카지노 허가는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돼 박근혜 정부까지 걸쳐 이뤄진 무려 2년간의 특혜로 점철된 것이며,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도 부풀려진 '신기루'라는 것이 필자와 여러 중립적인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MB 질책으로 추진된 '카지노 사전심사제'

리포-시저스 컨소시엄의 영종도 미단시티 복합리조트 조감도
▲ 카지노 리포-시저스 컨소시엄의 영종도 미단시티 복합리조트 조감도
ⓒ 리포-시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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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2년에 걸친 특혜의 핵심인 '카지노 사전심사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카지노는 국내업계 평균으로 매출액 대비 약 20%에 가까운 수익을 올리는 알짜사업이지만, 사행성과 사회적 부작용으로 인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가 허가를 법률로 엄격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카지노 허가권을 얻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관광진흥법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가 카지노 허가신청 공고를 내면 업체들이 신청하는 방식입니다. 공모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허가조건이 매우 까다로워서 1995년 이후 지금까지 단 한 곳의 민간업체나 개인에게도 카지노 허가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2005년에 예외적으로 공기업인 한국관광공사의 자회사인 그랜드코리아레저(GKL)에만 3개의 카지노를 허용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외국인 투자자가 경제자유구역에 카지노를 설립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2007년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경제자유구역법)을 개정해 외국인 투자금액이 5억 달러 이상인 경우 카지노 허가 신청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2012년 이전까지 어떤 외국인 투자자도 카지노 허가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특혜가 시작됩니다.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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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시겠지만 이명박 정부는 서비스규제완화와 외국인투자활성화 대책도 연이어 내놓았습니다. 마침 해외 카지노업계도 한국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아시아 카지노 시장의 큰손인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시 경제자유구역법상 카지노 허가신청을 위한 투자금액이 너무 높다고 판단한 외국 카지노업계는 5억 달러였던 투자금액 조건을 대폭 낮춰줄 것을 정부와 지자체에 요구했습니다.

2012년 4월 26일 리포-시저스 컨소시엄은 인천광역시에 사전심사제 도입을 요구하며 영종도 복합리조트 개발을 위한 MOU(업무협약)를 체결했습니다. 참고로 카지노 허가 사전심사제는 카지노 천국으로 불리는 라스베이거스, 마카오, 홍콩 등에도 없는 제도입니다.  

청와대는 카지노 사전심사제 도입을 위해 줄기차게 노력했습니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속적으로 반대했지만, 리포-시저스 컨소시엄이 MOU를 체결한 2012년 4월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지식경제부는 카지노 사전심사제 도입을 '경기활성화 대책'으로 제안했습니다.

당시 정부 관계자는 "비상경제대책회의가 열리기 전 청와대에서 '사전심사제를 도입하라'는 오더가 내려왔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카지노 업계에서는 "경제자유구역 외국인투자 유치에 목마른 정부와, 외국 카지노 자본의 집요한 로비의 결과"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이코노미스트> 2012.5.28).

그래도 문화체육관광부가 말을 듣지 않자 이명박 대통령은 2012년 7월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회의에서 "카지노 사전심사제를 언제부터 얘기한 것인데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나. 한두 달 안에 고칠 것은 고치고 정비하라"고 최광식 문화부 장관을 질책했습니다. 결국 9월 18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이 의결됐습니다(<신동아> 2013.1)

시행령의 골자는 기존 경제자유구역 내 카지노 허가신청 요건을 기존 투자 금액 5억 달러에서, 5000만 달러만 납입하면 허가심사를 청구할 수 있는 사전심사제를 도입한 것입니다. 법률에서 정하지 않고 졸속으로 시행령만 고친 것인데, 이는 '법에서 위임하지 않은 사항'을 시행령에 담은 것으로 헌법상 포괄위임금지 원칙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나타난 '보이지 않는 손'

드디어 사전심사제를 얻어낸 리포-시저스 컨소시엄은 2013년 1월 카지노 사전심사를 청구했습니다. 그런데 유진룡 신임 문화부 장관은 3월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카지노 사전심사제가 외자 유치에 꼭 필요한 방법인지 심각하게 회의하고 있다"고 말해 전통적인 문화부의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결국 2013년 6월 문화부는 리포-시저스 컨소시엄에 대해 투자자 신용등급 부적격을 근거로 사전심사 부적합 판정을 내렸습니다. 유 장관은 당시 "세계 어디에서도 카지노를 쉽게 내주는 나라는 없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명박 정부 때처럼 '보이지 않는 손'이 상황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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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사전심사 부적합 판정이 난 지 한 달 만인 2013년 7월 17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 주재 '1차 관광진흥확대회의'에서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 개발 지원체계 마련이 핵심과제로 선정됐습니다. 갑자기 카지노가 박근혜 정부에서도 주요 정책과제로 떠오른 것입니다.

이어 지난해 11월 28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3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갑자기 "외국업체가 투자 신청하였으나 신용등급 요건 경직성으로 무산"된 것이 문제점이라고 지적하고 개선대책으로 "외국 투자자 신용등급 관련 규정을 개선하여 외국업체들의 참여 확대"를 제시했습니다. 바로 6월에 리포-시저스 컨소시엄이 사전심사 부적합 판정을 받은 원인인 투자자의 신용등급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월 17일 리포-시저스 컨소시엄은 사전심사를 재청구 했습니다.

해가 바뀌어 지난 2월 3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2차 관광진흥확대회의'에서는 종합적인 자금능력만 있다만 투자자의 신용등급을 따지지 않겠다는 내용의 카지노 허가 규제완화를 담은 '관광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이 발표됐습니다. 곧바로 기획재정부는 외국인투자자의 신용등급 규정을 완화했습니다.

그리고 18일 리포-시저스 컨소시엄은 사전심사 적합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제 리포-시저스 컨소시엄은 국내 외국인전용 카지노 중 최대 규모인 7700㎡에 달하는 카지노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정부는 리포-시저스가 1단계 사업(2014~2018)에 7437억 원을 복합리조트를 건설하고 이 안에 카지노가 들어설 예정이며, 2018년 정식허가 뒤에는 2023년까지 총 공사비 2조3000억 원을 투자해 복합리조트를 완공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일부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복합리조트에는 카지노뿐만 아니라 다른 시설도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복합리조트'라는 고유명사 자체가 싱가포르에 진출한 마리나베이-샌즈로 유명한 카지노 기업 '샌즈'가 현지에서 카지노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개발한 '카지노 리조트'의 완곡어법입니다.

사전심사 적합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리포-시저스 컨소시엄은 이제 자기자본 한 푼 없이도 차입을 통해 수천억에서 수조 원을 마련해 카지노와 복합리조트를 세우는 자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정부의 사전심사 적합 판정이 투자자들에게 보증수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규제장치 없이 의문스러운 경제효과만 홍보하는 정부

독자 여러분들 중에는 사전심사 특혜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관광객을 끌어다 수조 원의 경제효과만 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부는 영종도 카지노의 경제효과와 관련 공신력을 인정받기 어려운 리포-시저스 컨소시엄 측의 자료를 인용하거나, 국내 일부 연구결과를 인용해 영종도에 카지노를 허가할 경우 경제효과를 과장해 왔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18일자 보도자료 중
▲ 보도자료 문화체육관광부 18일자 보도자료 중
ⓒ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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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18일 문화부의 사전심사 적합 판정 보도자료만 봐도 약 8900억 원의 관광수입, 총고용효과 8000여 명, 직접세수효과 1270억 원을 적시해 놨습니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청구인', 즉 리포-시저스 측이 자의적으로 계산한 것입니다. 물론 정부는 '청구인' 측의 경제효과를 강제할 어떠한 수단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정부가 자주 인용해 왔던 또다른 국내 연구 결과(송학준 배재대 교수 연구팀)는 영종도 복합리조트 개발로 생산효과 7조6000억 원, 소득효과 1조1000억 원, 부가가치 효과 3조5000억 원, 고용창출 5만4000명이 발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내국인도 출입할 수 있는 '오픈 카지노'인 싱가포르 복합리조트의 경제효과를 그대로 대입한 연구결과입니다. 입지조건이 상이하고, 또한 오픈 카지노도 허용되지 않는 영종도 복합리조트의 경제효과를 과연 제대로 예측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정부가 영종도 카지노 허가의 경제적 효과를 홍보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연구결과를 내놓은 송학준 교수조차 "랜드마크와 같은 대규모 시설이 들어서야 하는데 지금 리포-시저스 컨소시엄의 계획처럼 2조 원 정도 투자해서는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월간 <이코노미 조선> 2014.3).

더 큰 우려는 현행 카지노 관련 규제로는 그나마 이러한 경제적 효과마저 얻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투자자-국가 분쟁(ISD) 제소와 이른바 '먹튀' 가능성 입니다.

정부는 사전심사 적합 판정이 정식 허가는 아니며, 2018년까지 투자계획 이행 결과를 보고 정식 허가판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미국인 투자자(시저스)가 ▲ 사전심사 적합 이후 적합 판정이 취소된 경우 ▲ 사전심사 적합 통보 뒤 정식 영업허가를 받지 못한 경우 ▲ 영업허가 이후 취소된 경우 모두 ISD제소가 가능하다는 것이 카지노 업계의 입장입니다.

한 카지노 업계 관계자는 "국내 로펌에 문의한 결과 '설립 전 투자'(사전심사-정식허가)를 ISD 중재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는 FTA 체결국이라면 사전심사제를 둘러싼 일체의 분쟁에 대해 ISD 중재를 제기할 수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이코노미스트> 2012.5.28).

뿐만 아니라 문화부 차관을 지낸 박양우 중앙대 교수 역시 "사전심사는 일종의 특혜고, 한 번 해주면 취소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국내 투자자의 역차별, 먹튀 문제, 내국인 우회투자 문제, ISD 문제 등 심각한 폐해를 안고 있는 제도를 정부가 왜 이렇게 서둘러 결정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신동아> 2013.1).

정식허가를 받은 뒤 카지노 허가권을 다른 투자자에게 양수도 할 경우에도 이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박원석 의원실의 문의에 대해 "현재 관광진흥법 상으로는 미국인 투자자의 카지노 허가권 양수도를 금지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미국인 투자자의 외국인전용 카지노업 양수도 금지 수단이 없으므로, 경제자유구역법에 카지노업 취소사유를 추가해야 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사실상 어떠한 양수도 방지장치도 없이 외국인투자자의 카지노 영업을 허용하게 된 것입니다.

다른 문제는 정식허가를 받은 리포-시저스 컨소시엄이 수익성 제고를 이유로 내국인 출입 허용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2011~2012년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 카지노기업인 샌즈, MGM, 윈(Wynn)의 고위 관계자들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내국인 출입 허용, 즉 오픈카지노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습니다. 아시아에서 베트남과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내국인 출입을 허용하고 있으며, 이는 수익의 전제조건이다시피 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문화체육관광부는 박원석 의원실의 문의에 오픈카지노 추가 허용은 고려대상이 아니며, 외국투자자의 오픈카지노 요구도 거부할 법적 근거가 있다고 답했으며, ISD 소지가 전혀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업계와 전문가들은 관련 법률에 따라 강원랜드의 오픈 카지노 영업권이 2025년에 종료될 경우 오픈 카지노 영업권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하게 되고, 결국 외국 자본의 요구도 거세질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제 정리를 하겠습니다. 위에서 보셨듯이 필자는 카지노에 대해 사행성 우려나, 도덕적 근본주의 시각에서 나온 우려를 표명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외국인투자자에 대한 맹목적인 반감이나, 괴담에 근거해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것도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2년에 걸쳐, 특정 외국투자자에 대해 주무 부처의 의견을 묵살한 채, 명백한 특혜인 카지노 사전심사제를 도입하고, 결국 적합판정을 내린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법적인 규제장치도 갖추지 못한 채, 그저 장밋빛 경제효과 전망을 홍보하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정부가 할 일인지도 의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조태근 기자는 박원석 의원실(정의당)에서 비서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박원석, #영종도 카지노, #사전심사, #리포-시저스, #경제자유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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