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순절을 맞아 '이웃의 아픔을 품는 기도회'를 열고 있는 대전 빈들감리교회 남재영 담임목사
 사순절을 맞아 '이웃의 아픔을 품는 기도회'를 열고 있는 대전 빈들감리교회 남재영 담임목사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12일 오후 8시. 한국 수자원공사(대전 대덕구 연축동) 정문 앞에 우산 70여 개가 모여들었다. 바람결이 싸늘하고 빗발까지 흩뿌렸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대전에 있는 빈들감리교회(담임목사 남재영)신도들 이었다. 51일째 노상 농성을 해오던 수자원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장한 얼굴로 이들을 맞았다.

남재영 담임목사가 임시로 만든 예배상 촛불에 불을 붙인 후 종을 울렸다. 그는 "사순절을 맞아 비를 맞으며 길거리에서 지내시는 분들의 아픔을 품는 빈들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수자원공사 농성장에서 기도회를 갖게 됐다"라고 운을 뗐다.

사순절은 교회에서 부활절을 준비하는 참회기간으로 불린다. 주일을 제외한 예수 부활전 40일 전(3월 5일-4월 19일)까지다. 이 교회에서는 이 기간 수자원공사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를 시작으로 매주 수요일 고통 받는 삶의 현장을 직접 찾아 '이웃의 아픔을 품는 기도회'를 열기로 했다.

수공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00여 명이다. 용역회사가 바뀌면서 시설관리, 청소 부문에서 10명(노조원 9명)이 새해 첫날 해고됐다.

새 용역업체(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두레비즈)가 노조원만을 해고대상으로 삼았다는 의혹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실 고용주인 수자원공사 측은 용역업체와 노동자간의 문제라며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지난 1월 6일부터 '고용승계'와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51일째 길거리 농성을 벌이고 있다.

남 목사는 이날 '수자원공사에 계신 예수'를 주제로 설교했다. 그는 "망루를 오르거나 싸늘한 길바닥에 잠자리를 깔지 않으면 말할 길 없는 이웃들에게 사순절 당신을 보는 눈을 열어 달라"라고 말했다. 신도들도 "제 몸뚱이를 찌르며 사람대접 받고 싶다는 저들의 눈물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게 해 달라"라고 기도했다.

내주 수요일에는 대전시청 앞 택시노동자들 찾아 기도회

이날 기도회에는 해고 노동자들도 참석했다.
 이날 기도회에는 해고 노동자들도 참석했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기도회에 참석한 신도들이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기도회에 참석한 신도들이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해고 노동자들도 기도회에 참석했다. 대부분 해고 노동자들은 우산도 쓰지 않고 비를 맞으며 십자가 앞에 두 손을 모았다. 한 해고 노동자는 "막막한 때에 교회 신도들이 손을 맞잡고 따뜻한 기도를 해줘 큰 힘이 된다"라고 말했다.

"정의가 강-물처럼, 평화가 들-불처럼, 사랑이 햇-빛처럼…". 찬송가 '희년을 향한 우리의 행진'이 울려 퍼졌다. 

이날 기도회는 1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빈들감리교회는 내주 수요일에는 대전시청 앞 택시노동자들의 농성 현장을 찾아 기도회를 가진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대전지회 소속 노동자들은 대전시에 전액관리제 위반 택시사업주들의 처벌을 요구하며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여러분이 우리시대의 예수"
[남재영 담임목사 설교전문] 수자원공사의 예수


수자원공사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노숙 농성이 지난 12일 현재 51일째를 맞고 있다.
 수자원공사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노숙 농성이 지난 12일 현재 51일째를 맞고 있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마태복음 25장30~40절] 35~40)○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오늘 마태복음서의 성경말씀은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가 되시는 하나님이자,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고 존엄하시고 높이 찬양받으실 하나님이시지만-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는 몸을 낮추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사람의 자리가 아닌 사람 이하의 자리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33년을 사람으로 사시다-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됩니다. 돌아가시고 난 다음 여느 사람의 죽음처럼 무덤에 장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사람으로서 겪을 수 없는 온갖 고난을 당하십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그 얼굴에 침을 밷는 사람들까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고난을 기억하는 절기가 사순절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예수가 누구신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스스로 답을 알려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 <우리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한 것이 예수님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난 12월31일 수자원공사에 문자메시지 하나로 해고를 당하시고, 오늘 여기에 앉아 계시는 수자원공사의 비정규직 해고자 여러분들을 해고 한  그 당사자가 보기에는 여러분들이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니 함부로-인간에 대한 예의 없이, 비인격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날려 해고 했을 겁니다. 그들은 여러분들을 그렇게-비인격적으로 취급했지만-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과 여러분들을 동일시하십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예수님은 여러분들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수자원공사에 오셨다면 예수님은 오늘 여러분들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이 길거리의 움막 같은 비닐텐트 속에 여러분들과 함께 계셨을 겁니다. 이것이 예수가 누구인가를 질문하는 이 시대의 지성과 양심과 상식에 대한 성경의 대답입니다.

해고는 죽음입니다. 수자원공사는 문자 한통으로 여러분들을 죽였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차마 해서는 안 될 방법으로 여러분들을 해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수자원공사에 의해서 해고되고, 직업적으로 죽은 것 같으나 여러분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온갖 멸시와 모멸과 능욕과 고난을 당하시고 로마의 권력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는 죽은 것 같았으나 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입니다. 그 예수님은 죽음의 세력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저들은 결코 예수님을 죽일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여러분들도 억울하게 해고를 당하고 죽은 것 같으나 반드시 예수님처럼 다시 사는 날이-부활의 날이 반드시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여러분들이 궁색하고 처참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고 있는 것 같으나-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 시대의 지성과 양심과 상식의 가치가 사람의 사람다움을 지향하고 있다면 그 지성과 양심과 상식은 반드시 여러분들이 앉아 계신 이 길거리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오늘 이 시대의 지성이고, 여러분들이 오늘 이 시대의 양심이고, 여러분들이 오늘 이 시대의 상식이요, 여러분들이 이 시대의 생명의 가치를 세우는 <우리시대의 예수>라고 믿습니다.

고난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능력입니다. 수천도의 용광로에 꿇는 풀무불은 금광석에서 불순물을 없애고 정금을 만들어 냅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고난은 그동안 여러분들이 받은 인생의 서러움을 씻어내고, 여러분들의 삶을 새롭게 거듭나게 해주시는 은총의 기회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외롭다고 생각하실지 모르나 결코 홀로 외롭게 투쟁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싸워주지는 못하지만 늘 여러분들의 배후에서 여러분들을 응원하고, 여러분들의 승리를 위해서 기도하는 여러분의 따뜻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우리 빈들공동체도 여러분의 그 친구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러분들과 늘 함께 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아픔을 품고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해고자 여러분!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로 오늘 수자원공사에 오신 예수님은 수자원공사에서 여러분의 모습으로 여기 차가운 땅에 앉아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듯이, 여러분들도 고난의 시절을 이기고 반드시 승리하는 날이 있음을 믿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이 인류를 구원하셨듯이-여러분들의 승리는 자본이라는 악마에 사로잡혀있는 이 세상이 구원시키는 길입니다.

여러분들을 승리하게 하셔서 세상을 구원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들의 투쟁과 여러분들의 가정과 가족들과 함께 여러분들의 투쟁에 함께 연대하는 모든 선한 세력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태그:#사순절, #수자원공사, #해고 노동자, #빈들감리교회, #수요 기도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