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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던 로션이 다 떨어졌다. 따로 로션을 사러 매장에 들를 시간이 없었다. 강아무개(27)씨는 컴퓨터 앞에 앉아 온라인 오픈마켓에 접속했다. 로션을 주문하기 위해 사이트 회원가입 창에 들어갔다.

회원가입 버튼을 누르자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에 동의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약관이 등장했다. 이름, 나이, 성별, 생년워일,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번호 등을 수집한다는 내용이었다. 회사는 "최적화되고 맞춤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수집한다고 약관을 통해 설명했다.

강씨는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각종 보이스피싱, 스미싱 같은 범죄가 일상처럼 벌어지는 게 요즘 세상 아닌가. "일부 서비스 이용이 제한된다 해도 아무에게나 사생활 정보를 노출해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동의하지 않습니다'에 체크했다. "기본 서비스 사용을 위해 반드시 동의해야 한다"는 메시지 창이 떴다.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면 아예 회원가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강씨는 "사실 물건을 구입하는 사이트에서 성별과 생년월일을 필수 정보로 취급한다는 자체가 의문"이라면서 "제공하기를 원치 않는 정보가 있는데도 무조건 동의부터 하라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성별·생년월일이 '최소한의 개인정보'?

KT 개인정보유출 여부 확인 사이트. 정보유출 확인 과정에서 입력한 신원 정보를 다른 기관이 공유하도록 하는 절차를 또 다시 밟게 해 소비자들의 원성을 샀다.
 KT 개인정보유출 여부 확인 사이트. 정보유출 확인 과정에서 입력한 신원 정보를 다른 기관이 공유하도록 하는 절차를 또 다시 밟게 해 소비자들의 원성을 샀다.
ⓒ KT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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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여파가 가라앉기도 전에 또 다시 KT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터지면서, 기업들의 개인정보 취급 방침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포괄적으로 수집·이용하면서 소비자의 자기정보결정권을 제약하는 기업들의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기업들이 소비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근거는 '개인정보보호법'이다. 기업이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을 경우 합법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다만, 개인정보보호법 16조에 따라 목적에 필요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만 수집돼야 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최소한의 개인정보' 수집 범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우려한다. 현행법에 따라 기업들이 스스로 최소한의 범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정보가 과잉으로 포함된다는 것이다. 가령, 커피전문점에서 무료로 무선인터넷을 제공할 때 주민번호를 요구하거나 백화점 온라인 쇼핑몰에서 성별·생년월일을 필수정보로 규정하는 것을 두고 '수집이 불가피한 정보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특히 혼인 여부·학력 같은 선택정보 수집·제공이나 '개인정보 제3자 제공' 동의를 회원가입 필수 요건으로 두는 문제 역시 심각하다는 의견이 많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최소한의 정보가 아닌 개인정보 수집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그럼에도 부가적인 정보 수집·이용이나 개인정보 제3자 제공에 동의하지 않으면 가입 자체를 못하도록 하는 기업들이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부터 용역 의뢰를 받은 광운대 산학협력단이 금융사를 이용하는 20대 이상 62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개인정보 처리에 동의하지 않아 서비스 이용 불가 등의 불이익을 받았다고 응답한 경우가 48%나 됐다.

불필요한 '개인정보 수집·이용', 소비자 '선택적 동의'로 제동 걸어야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현행법에 따라 소비자에게 합당한 개인정보 수집 동의를 요구하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현재는 민원 신고 등에 의존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여부를 점검하지만, 앞으로는 당국이 직접 나서 과잉 정보 요구 실태를 감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기업들이 수집할 수 있는 개인정보의 범위를 줄여 소비자가 선택적으로 동의 할 수 있는 정보의 폭을 넓히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미국 '아마존' 같은 사이트처럼 이름과 이메일 주소 등을 제외한 정보 수집 동의 여부는 소비자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처럼 기업들의 기본 개인정보 수집 범위가 최소화되는 방향으로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며 "소비자들이 자기정보결정권에 따라 개인정보 수집·이용을 개별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기업을 압박하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태그:#개인정보유출, #KT, #카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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