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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 시내 거리의 건물들과 트램
▲ 비오는 날의 포르투 풍경 포르투 시내 거리의 건물들과 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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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간 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식당 바에 다양한 종류의 빵과 음료수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빵은 갓 구워 낸 것처럼 맛있어 보였다. 네댓 가지의 빵과 머핀, 치즈와 햄이 군침을 돌게 했다. 딸은 하나씩 다 먹어 보겠다며 접시 가득 빵과 잼을 담아왔고 우유에 시리얼까지 말아서 가져왔다.

해리포터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렐루서점 가기로

다양한 빵과 음료수
▲ 타트바의 아침 차림 다양한 빵과 음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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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에 퍼지는 마멀레이드의 상큼함과 빵의 구수한 냄새, 씹을수록 느껴지는 빵의 쫄깃한 식감이 기분을 업시켰다. 여유롭게 앉아서 맛있는 빵과 커피로 식사하는 이 아침이 참으로 행복했다.

유럽에서 아침을 주는 호스텔은 많지만, 이렇게 여러 종류의 빵과 다양한 토핑까지 주는 호스텔은 드물다. 마드리드에서 묵었던 호스텔에서는 설탕 듬뿍 뿌린 추로스만 달랑 나왔었는데. 거기에 비하면 제왕의 식사라 해도 빈 말이 아닐 듯하다. 접시에 수북이 쌓아놓고 먹는 딸의 표정이 해맑다. 넉넉한 인심의 아침 때문에 하룻밤 더 묵고 싶어진다.

새벽에 바람 소리가 심하더니 아침부터 비가 온다. 비가 오는 바람에 어제 계획했던 와인 투어를 접고 렐루서점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렐루서점은 해리 포터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서점이다. 해리 포터가 나올 때마다 서점으로 달려가 사 읽고 또 읽곤 했었던 딸이니 그 서점에 꼭 가보고 싶었으리라.

짐을 줄이기 위해서 작은 양산과 비닐 비옷만 챙겨왔기에 딸과 나는 각자 하나씩 선택하기로 했다. 딸에게 옷이 젖지 않도록 비닐 비옷을 입으라고 했더니 모양새 빠질까 봐서인지 싫다고 한다. 비옷은 아줌마인 내가 입고 딸에게는 우산도 아닌 작은 양산을 줬다. 머리만 간신히 가려진다. "아줌마인데 모양이 뭔 상관이랴"라는 생각으로 푸른색 비닐 옷을 입고 비옷에 달린 모자까지 썼더니 내가 봐도 모양이 안 난다. 우습다.

포르투의 종합대학
▲ 포르투 대학 포르투의 종합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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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예쁜 건물들이 보인다. 클레리고스 성당과 탑, 포르투 대학 등 포르투의 주요 관광지였다. 비 오는 날 보는 풍경도 운치가 있다. 처음엔 질퍽거리며 걸을 것이 걱정스럽고 젖은 옷으로 리스본까지 버스를 타고 갈 일이 까마득했는데 젖은 채로 돌아다니다 보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오히려 재미있다. 딸과 팔짱을 꼭 끼고 길가의 가게들을 둘러보며 여유를 부리는 동안 비에 겉옷이 젖어 점점 추워진다. 

유럽에서 아름답다는 인테리어와 카푸치노
▲ 포르투의 맥도널드 유럽에서 아름답다는 인테리어와 카푸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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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녹여 줄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났다. 주위를 돌아보니 고풍스러워 보이는 건물에 맥도날드 간판이 달려 있다. 포르투에 유럽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맥도날드가 있다더니 이 건물인가 보다. 안으로 들어가서 바깥 풍경이 잘 보이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딸이 주문하러 간 동안 실내를 둘러보았다. 부드러운 조명의 샹들리에와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 일반 패스트푸드점과는 달리 우아한 레스토랑 같은 느낌을 주었다.

딸은 카푸치노 한 잔, 에스프레소 한 잔에 마카롱 하나를 쟁반에 들고 왔다.

"춥다더니 웬 조그만 에스프레소야?"
"에스프레소, 마카롱 세트가 한국보다 엄청 싸길래 샀어요"

마카롱 한 개를 반으로 잘라서 나눠 먹었다. 달달 하니 입에서 사르륵 녹는 맛이 에스프레소의 진한 맛과 잘 어울린다.

문닫힌 렐루서점 아쉽지만 리스본으로...

해리포터의 영감을 받았다는 포르투의 아름다운 서점 렐루 서점
▲ 렐루서점 해리포터의 영감을 받았다는 포르투의 아름다운 서점 렐루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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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녹이고 렐루서점을 향해 밖으로 나갔다. 딸의 관심사는 온통 렐루서점에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 집필에 영감을 준 서점이라니 어떻게 생겼기에 그런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나도 덩달아 호기심이 생겼다. 하얗게 빛나는 서점을 향해 힘들게 언덕 위로 올라갔으나 아뿔싸! 문이 닫혀 있다.

일요일이라 휴무인 모양이다. 아쉽다. 해리 포터 서점으로도 유명하지만, 세계에서 아름다운 10대 서점으로 뽑혔다기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건물의 외부밖에 볼 수 없었다. 높이가 제법 높고 주변 건물과는 달리 하얀 칠 위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화려한 건물이었다. 아쉬운 대로 사진을 몇 장 찍고 돌아선다.

리스본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숙소를 나왔다. 아직도 비는 내린다. 그칠 기미가 없다. 바닥이 패어 물이 고인 웅덩이가 드문드문 있다. 돌 바닥이라 길이 울퉁불퉁하고 비도 튀어서 조심스럽게 캐리어를 끌고 가는데 뒤에 따라오던 딸이 말한다.

"엄마, 이번 여행은 편해서 여행기 쓸 내용이 없겠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퀴가 덜거덕거리더니 캐리어가 기울어진다. 캐리어를 살펴보니 바퀴 한쪽의 나사가 풀려 바퀴가 제멋대로 움직인다. 오던 길을 되짚어 봤지만, 조그만 나사를 찾을 길이 없었다. 힘겹게 캐리어를 끌고 갔지만, 결국 바퀴는 완전히 박살이 났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다행히 버스 출발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다.

터미널 밖으로 나갔더니 운 좋게도 터미널 바로 옆에 기념품과 함께 캐리어를 파는 상점이 있었다. 바로 하나 사서 짐을 옮기는데 사람들이 모두 쳐다본다. 이게 무슨 망신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바로 해결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망가진 캐리어는 상점 주인에게 물어보고 재활용통에 버려서 깔끔하게 마무리한 다음 버스에 올랐다.

포르투 전철역에서조차  소지품을 조심하라는 문구를 보여준다.
▲ 전철역의 안내 문구 포르투 전철역에서조차 소지품을 조심하라는 문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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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후 리스본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전철역을 찾아가는데 전광판 문구가 눈에 띈다.

"Take care of your belongings."

소지품을 조심하라고? 일요일 저녁이라 전철역 안의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고 역내는 한산했지만, 그 문구를 보니 마드리드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가방을 한 번 더 살폈다. 유럽 내에서도 소매치기가 많은 곳이 마드리드와 리스본이라더니 전광판 안내 문구까지 주의하라고 한다.

한산한 역과는 달리 전철 안에는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인 것 같았다. 전광판 문구를 떠올리며 짐에 모든 신경을 기울이다가 바이샤 시아두 역에 내렸다.

호스텔은 역에서 50미터도 안 되는 곳에 있었다. 허기가 져서 짐만 내리고 바로 식당을 찾아갔다. 숙소에서 알려준 맛집은 문을 닫았기에 눈에 띄는 곳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손님도 적당히 있고 가격도 저렴해 보이는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포르투갈의 대표 음식인 대구 요리 '바칼라우'와 문어밥을 주문했는데 바칼라우는 맛있었지만 문어밥은 너무 짰다. 우리의 국밥같이 생겼지만, 소금 맛 밖에 안 나는 것 같았다. 배가 고팠음에도 참고 먹을 수준이 아니었다. 점원을 불러 짜다고 했더니 다시 해주겠다고 했는데 국물만 빼고 가져온 것이었다. 그냥 먹을 수밖에.

루소 카페에서 파두공연
▲ 루소카페 루소 카페에서 파두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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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에서 울려 나오는 파두

포르투갈에는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라는 유명한 여자 가수가 있다. 포르투갈의 전통음악인 파두 가수다. 우연히 음악방송에서 들었던 구슬프기도 하고 어딘지 한이 서린 노래 같기도 한 '파두'는 그 날 이후 내 가슴 한쪽 구석에 각인되어 있었다. 우수에 찬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때로는 감상적이 되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집을 떠나 객지에서 대학을 다니던 그때는 외로움을 많이 탔던 것 같다. 해질 무렵이나 혹은 비가 오는 날에 홀로 그녀의 흐느끼는 듯한 노래를 듣고 있으면 슬퍼지면서도 왠지 감정의 찌꺼기들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파두 공연을 보고 싶었다. 파두는 포르투갈의 전통 음악이라는 것, 파두 가수인 아말리아 로드리게스, 이것이 내가 아는 파두의 전부였다.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까마득한 젊은 날 라디오 음악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우연히 알게 된 파두. 몇 번 듣지 않았는데도 곡명과 가수가 잊히지 않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 노래 파두. 그랬던 파두의 본고장을 찾아오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리스본에 유명한 파두 공연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어두운 숙명'과 '검은 돛배'가 떠올랐다. 파두 공연을 본다는 기대감에 설렜지만, 딸은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누구인지 파두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젊은 사람들에겐 낯선 이름일 수도 있겠다.

숙소에서 정보를 얻어 괜찮은 공연을 한다는 파두 레스토랑에 갔다. 입장료 대신 음료나 식사를 시키면 된다고 한다. 10시부터 공연이 시작된다고 하여 와인 한 잔을 주문하고 파두 공연을 기다렸다.

카페는 동굴 속에 들어온 것처럼 어두웠고 조명은 작은 무대만을 겨우 비출 정도였다. 악사 3명이 먼저 나와 연주를 하니 검은 빛깔의 옷을 입은 풍채 좋은 여자 가수가 무대에 등장했다. 그녀는 구슬픈 목소리로 한이 서린 듯한 노래를 불렀다. 우리네 판소리처럼 속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듯한 허스키한 음색의 노랫소리. 그 노랫소리는 나를 비롯한 관객의 감정을 사로잡았다.

세 곡의 노래가 끝나고 가수와 악사가 내려갔다. 쉬는 시간이 30분을 넘어갈 때쯤 다른 가수가 등장했다. 이번엔 남자 가수다. 한층 더 깊고 울림있는 음색이었다. 역시 가사는 알 수 없었지만 애절한 감정만은 느낄 수 있었다. 요즘엔 밝은 가사와 경쾌한 리듬의 파두도 있다고 하지만 단조의 슬프고 애틋함을 느낄 수 있는 파두가 더욱 와 닿는다. 뭔가 토해내는 듯한 슬프지만 시원한 듯한 노래가 마음을 울린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Barco Negro(검은 돛배)', 'Maldição(어두운 숙명)'을 들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리워하던 파두를 듣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파두를 들으며 여행의 노곤함을 푼다.

덧붙이는 글 | 2014년 1월 7일부터 29일까지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를 다녀온 모녀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몇차례에 걸쳐 실을 생각입니다.



태그:#포르투, #렐루 서점, #리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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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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