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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28일 오전 10시 45분]

영화 또 하나의약속 김태윤 감독
 영화 또 하나의약속 김태윤 감독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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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백혈병 문제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만든 김태윤 감독.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는 현재 '삼성이 가장 주목하는 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또 하나의 약속>은 개봉 초기 예매율 1위를 기록했다.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관객들의 평가도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관객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의 상영관 수는 눈에 띄게 적었다.

'삼성이 광고를 미끼로 영화관에 외압을 가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거세게 제기됐다. 보수 성향의 인터넷 언론사는 삼성전자를 의식해 자신들이 보도했던 영화 관련 기사를 스스로 삭제하기도 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집계에 따르면(2월 26일 기준) 악조건 속에서도 전국적으로 46만 명의 관객이 영화를 봤다.

"사람들이 정말 대기업을 무서워한다는 걸 알았다"

"관객 1000만 명 시대라 별거 아닌 것 같지만, 3만 명을 수용하는 야구장을 10번 채우고도 몇 번을 더 채울 많은 관객이 들어온 거다. 야구장에 가본 사람들은 잘 알 거다. 야구장에 들어찬 3만 명의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26일 김태윤 감독은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지하 강당에서 시민들과 만나 영화와 노동건강권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건강세상네트워크가 주최한 행사였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아래 반올림)의 활동가 공유정옥(산업의학전문의)씨가 함께 했다.

김 감독은 "멀티플렉스의 방해나 공중파의 무관심이 없었다면 벌써 100만이 넘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이후 IPTV 등의 다른 서비스로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볼 것이라며 영화의 미래를 낙관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주최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김태윤 감독과 공유정옥씨
 건강세상네트워크 주최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김태윤 감독과 공유정옥씨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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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의 사회자 이은비 아나운서가 "이 영화가 마지막이면 안 된다"고 농담을 건넸다. 실제 영화를 시작할 때 김 감독의 주변 사람들은 그의 신변 안전을 걱정했다. '삼성을 비판하는 영화를 찍는다면 이후 감독으로서 앞길이 막힐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였다.

김 감독은 "겉으로는 소비자가 왕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정말 대기업을 무서워한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실체적 위협보다 "우리들 마음 속에 삼성이라는 대기업을 두려워하는 자기검열이 더 두려웠다"고 했다.

자기검열은 배우 캐스팅 과정에서부터 벽으로 다가왔다. 김 감독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배우들이 모두 영화에 대해 걱정했다"며 "가진 것이 많은 스타들이었기에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아울러 "황상기(극중 한상구)씨 역할을 선뜻 수락한 배우 박철민이 고마웠다"고 말했다.

캐스팅과 스태프 구성을 마치고 닥친 시련은 제작비였다.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SNS 등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자금을 조달하는 투자방식)을 통해 제작비를 마련했다. 2만 원부터 5만 원, 10만 원까지 8000명이 뜻을 보탰다. 1억2000만 원을 가지고 시작한 촬영은 5회차에서 멈췄다. 위기였다.

"대기업 제약회사의 대리, 부장, 과장이 7000만 원을 들고 왔다. 당신이 만든 영화에 투자하고 싶다고 하더라. 속으로 '미친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는 개인투자자가 영화를 살렸다. 영화제작에 힘을 보탠 이들 중에는 반도체 회사의 엔지니어들도 있었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을 접하고 마음 속으로 죄책감을 느끼던 차에 영화제작 소식을 듣고 용기를 냈다고 했다. 평범한 자영업자와 "배낭여행을 가고 싶어 모아둔 1000만 원 중 500만 원을 선뜻 내놓고 자기는 반만 돌겠다"던 학생도 힘을 보탰다. 그렇게 120명이 모아준 돈으로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영화가 만들어 낸 오해가 안타깝다고?

삼성전자 블로그에 올라온 삼성전자 홍보팀 부장의 영화 <또 하나의 약속> 비판글
 삼성전자 블로그에 올라온 삼성전자 홍보팀 부장의 영화 <또 하나의 약속> 비판글
ⓒ 삼성전자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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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공식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홍보부장이 삼성전자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영화에 대한 삼성의 속내를 짐작할 뿐이다. 최근 삼성전자 홍보팀 김아무개 부장은 삼성의 공식 블로그 '삼성투모로우'에 '영화가 만들어낸 오해가 안타깝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글에서 "영화가 삼성을 범죄 집단으로 그리고 있는 것에 대해 말 한 마디 못하는 것이 너무도 답답하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공유정옥씨는 영화에서 한상구(박철민 분)를 돈으로 회유하며 딸의 산재포기를 종용한 이보근 실장의 실제 모델인 삼성 인사담당자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공감의 몸짓과 인간의 얼굴을 하고 그 이면에서 상대방의 권리를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받아가겠다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차라리 대놓고 때리지. 그러면 당사자는 굉장한 영혼의 상처를 받는다."

공유정옥씨에 따르면, 백혈병 피해자 중 한 명인 박지연(극중 백주연)씨가 투병 중일 때 삼성에서는 24시간 병원을 감시했다. 공유정옥씨는 "그때 만난 삼성전자 직원들은 영화에서 돈을 미끼로 산재포기를 종용하던 진성의 인사팀 직원처럼 못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씨의 어머니의 끼니를 챙기고, 대화하며 술잔도 기울였다. 공유정옥씨도 정말 그가 인간적이라 느낄 정도였다.

그 삼성의 직원은 산재소송 포기 각서를 대가로 큰돈을 약속했다. 지연씨의 장례비며 보상금, 그리고 빚을 갚고도 남을 만큼 큰돈이었다. 지연씨를 화장하고 유골을 뿌리러 바다로 가는 차 안에서 지연씨 어머니는 입금문자를 받았다. 공유정옥씨는 "지연씨 어머니가 자신이 딸을 판 것 같아 반올림을 못 보겠다고 마냥 울었다"고 말했다. 공유정옥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영화 속에서 회사 상사들이 백혈병으로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진성반도체의 작업장 안전소홀을 증언하기로 마음먹은 엔지니어 종대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실제 국정감사에서 있었던 실화를 김태윤 감독이 극중에서는 재판 장면으로 바꾼 것이다.

"하루 종일 이야기하다 보니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 모시던 부장님은 백혈병, 차장님은 피부암으로 돌아가시고 과장님도 희귀병에 걸렸더라. 엔지니어 4명으로 돌아가는데 너무 무섭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몇 달 뒤 양복을 입고 국회의원 앞에서 삼성이 유독한 화학물질 쓰는 것 없다고 증언했다. 그때 너무 비참했다."

공유정옥씨는 "삼성은 왜 나쁜 인간들이 아니라 이렇게 진심을 가진 이들을 앞세워 영혼을 팔게 하는 것일까 정말 답답했다"고 분노했다. 그리고 "자신도 그 자리에 가면 그 짓을 했을 것"이라며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 삼성을 욕하거나 비호하는 것이 아니라 야누스와 같은 본질을 보고 구조의 문제를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왜 삼성은 진심어린 이들의 영혼을 팔게 하는 것일까"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씨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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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김태윤 감독은 "이 영화가 작위적"이라는 일부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았다. 촬영 당시 황윤미씨 가족에게 산재포기를 협박하는 진성반도체 인사팀 이보근 실장 역의 배우가김 감독에게 연기톤을 물었다.

"내 대답은 그냥 회사가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묘사하라는 것이었다. 제 주변에도 그 회사 다니는 친구들이 많다. 그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평범하다. 그런데 그런 사람도 어떤 위치에 가면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영화 속에서 묘사하고 싶었다."

김 감독은 선과 악의 명확한 구도로만 그들을 비판할 수 없었다. 아직도 삼성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의 약속>의 이보근 실장은 영화 <변호인>에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곽도원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회사와 자신을 한몸으로 생각해 백혈병에 걸리고도 회사를 배신할 수 없었던 교익(이경영 분)도 이들을 대변하는 캐릭터였다.

"썩어도 준치라고, 아무리 힘없는 노동조합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 노동조합이 없는 곳은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일한다. 서비스 유통업체나 대형마트 휴게실이나 식당메뉴를 비교해보면 그 업체가 노동자를 사람으로 대하는지 가축만도 못하게 대하는지 알 수 있다."

공유정옥씨는 영화 속 윤미씨의 죽음과 같은 일을 막기 위해서는 노동자들 스스로 건강권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가 제시하고자 하는 메시지인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묻는 보건대 학생 청중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또한 과학의 이름으로 현실을 외면하는 전문가의 반성을 촉구했다.

"전 세계 반도체 공장에서 젊은 노동자들에게 백혈병과 암이 발생하고 있다. 여기 죽어가는 사람들이 근거인데, 보수적 학자와 기업들은 근거 논문을 가져오라고 한다. 실사구시적으로 해야 하는데 훈고학을 하려 한다."


태그:#또하나의 약속, #삼성백혈병,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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