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하부정관 과전불납리(李下不整冠 瓜田不納履),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고, 외밭에서는 신발 끈을 매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해를 살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얘기쯤으로 정리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숭례문이 복구돼 준공식까지 마친 지 오래지만 뒤탈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복구와 관련한 뒷말들이 무성하더니 관련자들이 수사기관에까지 불려 다니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책 한 권이 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이 책의 저자 최종덕은 문화재청 문화재정책국장에서 직위해제되었습니다. 최종덕은 숭례문 복구와 복원 전반을 총괄하던 복구단장이었습니다. 

숭례문 복원과정에 이런 일들도... <숭례문 세우기>

<숭례문세우기>┃지은이 최종덕┃펴낸곳 돌베개┃2014.2.3┃2만 2000원
 <숭례문세우기>┃지은이 최종덕┃펴낸곳 돌베개┃2014.2.3┃2만 2000원
ⓒ 돌베개

관련사진보기

<숭례문 세우기>(지은이 최종덕, 펴낸곳 돌베개)는 숭례문을 복구하는 과정에 있었던 애로사항, 공식·비공식적인 일화들을 뒷담화처럼 정리하고 있습니다.

다 지나놓고, 별 탈이 없을 때 나온 이야기라면 순수하게 뒷담화처럼 들릴 수도 있는 내용들입니다. 하지만 때가 때인지라 어찌 읽으면 자기변명을 대신한 상황설명 같고, 어찌 새기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내막에 대한 폭로 같기도 합니다.

숭례문복구단장에게 요구되는 최우선 역량은 5천만 국민이 연주자이자 방청객인 무대에서 5천만 국민 모두를 감동 시킬 멋진 하모니를 연출해 내는 이상적 지휘자에 버금갈 정도로 무겁고 난해한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연주자 모두의 역량이 뛰어나고, 연주자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지휘에 따라준다면 완전한 지휘가 불가능하지만은 않겠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숭례문이 복구되는 과정 또한 일사천리로 처리되지도 않았고,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지도 않았다는 걸 책에서는 아주 다양한 사례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화재 직후 소나무를 기증하겠다고 알려온 사람은 모두 166명이다. 숭례문복구단은 기증자들의 나무가 숭례문 재목으로 적절한지를 두고 다양한 검토를 거친다. 기증의시가 계속 유효한지가 첫 번째다. 확인하자마자 86명은 곧바로 기증의사를 철회한다, 마음이 바뀐 사람도 있고, 자세히 확인한 결과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경우도 있다. 연락이 안 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대가를 요구하기도 한다. (중략) 이러한 와중에 한 사람이 모든 조건이 맞는 나무를 추가로 기증해와 최종 기증자는 열 명이 된다. -<숭례문세우기> 58쪽-

조직의 논리다. 운영지원과장이 서둘러 자리를 뜬다. 나는 의아해 하면서도 한쪽 구석에 짚이는 것이 있다. 현판 수리를 두고 청장과 의견이 달랐던 것이 마음에 걸린다. 지금 교육 가자니 숭례문 복구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숭례문 복구는 놓치고 싶지 않은 프로젝트다. -<숭례문세우기> 249쪽-

출근 후, 나는 곧바로 숭례문복구단 직원들과 함께 신문기사를 읽어보면서 대책을 논의했다. 성동격서聲東擊西라더니 정신이 없다. 돈이 적어 일을 못하겠다고 파업했다가, 돌연 기부하겠다고 하더니, 다시 노임단가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고 언론에 흘린 뒤, 이제는 또 다시 기부하겠다고 한다. 진의가 무엇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신문기사를 보면 S목수의 주장이 다분히 선동적이다. -<숭례문세우기> 264쪽-

복구단장이 고위직공무원이긴 하지만 최고 결정권자는 아닙니다. 관계자들과의 입장에서 보면 '갑'이긴 하겠지만 특정사안(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명성을 떨치고 있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상황에서는 도리어 그의 눈치를 봐야할 때도 있었을 게 분명합니다. 

책에서 저자는 그런 입장을 신세타령이라도 하듯 구구절절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단장'은 그냥 완장이나 차고 있으라는 감투가 아닙니다. 다양한 관계자들을 선정하고, 그들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잘 아우르는 게 단장이 책임져야 할 역할이자 의무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오후가 되자 각황전 방화사건이 국정감사장에 있는 국회의원들에게까지 알려진다. 의원들은 앞을 다투어 숭례문에도 각황전처럼 방염제를 도포하라고 한다. 천연안료에는 방염제의 부작용이 염려된다는 답변도 무용지물이다. 불에 타버리는 것보다는 부작용을 감수하는 것이 더 낫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마치 곧 숭례문에 방화가 다시 일어날 것을 확신이라도 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의원들의 요구대로 무턱대고 '방염제를 뿌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는 없다. -<숭례문세우기> 362쪽-   

책임과 의무를 다 하려면 권리(권력)가 전제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조직의 논리에 밀려 교육을 떠나야 하고, 윽박지르듯 하는 의원들 주장에 눌려 아닌 걸 아니라고 하지 못하는 게 대한민국 공직 세계의 실상입니다.때문에 이해 못할 바도 아니고 그럴 수밖에 없겠다고 이해되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어떤 달 가리키고 있을지도

배나무 아래서 갓 끈을 고쳐 쓰고, 외밭에서 신발 끈을 매도 상관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쉽습니다. 아주 간단하게는 따 먹을 배와 외가 없는 초봄이나 겨울이라면 설사 배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고, 외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신어도 구설수에 오르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배와 외가 주렁주렁 달린 철, 그 주변에서 꼭 갓을 고쳐 쓰고 신발 끈을 매야 한다면 더 큰 목소리로 갓을 고쳐 쓰는 이유와 신발 끈을 매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외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문화재를 복구하거나 관리하는 데 반드시 개선되거나 제거되어야 할 비현실적 요소 등을 좀 더 낱낱이 제시했더라면 문화재에 대한 저자의 마음이 사즉생의 각오로 독자들에게 전이 되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저자가 손가락질을 하듯 <숭례문 세우기>를 통해 가리키고 있는 건 숭례문 복구와 관련된 뒷담화 같은 일화들입니다. 하지만 독자들이 봐야 할 것은,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달처럼 보이지 않는 어떤 구조적 비리나 모순일지도 모릅니다.

눈으로 보이는 숭례문은 준공식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미 만천하에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의혹 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숭례문은 조금 더 기다려봐야 한다는 현실이 답답할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숭례문세우기>┃지은이 최종덕┃펴낸곳 돌베개┃2014.2.3┃2만 2000원



숭례문 세우기 - 숭례문 복구단장 5년의 현장 기록

최종덕 지음, 돌베개(2014)


태그:#숭례문세우기, #최종덕, #돌베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