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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7일 서울고등법원은 2009년의 쌍용차 정리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재판을 방청한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은 힘들었던 지난 5년을 생각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해고 통지서를 찢으며 기쁨을 나눴다.

동아일보 2월18일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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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 외에도 이 판결을 들으며 "가슴으로 피눈물을 흘렸"던 이가 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18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칼럼 <'쌍용차 해고자 복직' 판결은 잘못됐다>에서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자동차 산업과 인연이 깊고, 쌍용차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오랫동안 지켜 보아온 필자 역시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가슴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기뻐서가 아니었다. 판사의 따뜻한 마음과 결합한 '짧은 생각'이 일파만파 초래할 '진짜' 사회적 약자들과 청년들의 피눈물이 눈에 밟혀서다.

김 소장은 이 판결이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는 우리나라 정리해고 요건을 더욱 까다롭게 만들었다"며 "기업 완전 파산-해체 외에는 정리해고를 인정하지 않는 논리"라고 말한다. 이는 결국 고용이 안정된 세금소득자와 대기업 등 경제활동인구 20%를 위해 나머지 80%의 진입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래서 김 소장은 이 판결을 "20%의 인권만 주목하고 80%의 인권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희한한 정의감의 산물"이라 비판한다.

한국에서의 정리해고가 까다롭다고?

그러나 김 소장의 주장은 전제부터 틀렸다. 그의 말과 달리 한국의 정리해고 요건은 까다롭지 않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관련 국제적 흐름'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노동자의 집단 정리해고가 두 번째로 쉬운 법과 제도를 갖고 있다.

2013년 OECD 회원국 집단해고에 대한 고용보호입법지수. 한국은 2013년 기준 '1.9'를 기록해 OECD 회원국의 평균치인 '2.28'을 밑돌았다. 회원국 가운데 핀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2013년 OECD 회원국 집단해고에 대한 고용보호입법지수. 한국은 2013년 기준 '1.9'를 기록해 OECD 회원국의 평균치인 '2.28'을 밑돌았다. 회원국 가운데 핀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 은수미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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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도 한국에서는 정리해고가 쉽게 이뤄지고 있다. 2013년 민주노총 법률원이 15개 사업장을 분석한 결과 절반을 넘는 8곳이 영업흑자를 기록하는데도 정리해고를 실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한국은 정리해고가 어렵기는커녕 너무 쉬워서 문제인 나라다.

또한 김 소장은 이번 판결의 핵심이었던 회계조작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반박하지 못한다. 서울고등법원이 정리해고 무효 판결을 내린 것은 정리해고의 근거였던 회계보고서가 조작됐고, 그에 따라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소장은 재판부의 이런 판단을 아무 근거 없이 '여론을 받아들인 것'으로 치부한다.

"그런데도 진보 정당과 일부 매체는 쌍용차가 '해고 살인'을 위해 회계를 조작했다고 몰아붙였고, 2심 재판부는 이런 여론을 상당 정도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다"는 문장이 회계조작 문제에 대한 설명의 전부다. 한 발 양보해서 김 소장의 말처럼 재판부가 여론을 받아들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 여론이 옳은지 혹은 그른지를 입증해야 하지만, 김 소장의 글에서는 그런 설명을 찾을 수 없다. 한마디로 그의 글은 핵심을 비켜나고 있다.

현실의 폭력에 둔감한 김 소장의 글

지난 7일 2009년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는 무효라는 판결을 받은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 변호인단이 서울고등법원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지난 7일 2009년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는 무효라는 판결을 받은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 변호인단이 서울고등법원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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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김 소장의 칼럼에는 여기서 모두 짚기 어려울 만큼 많은 문제가 있다. 회계조작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쌍용차가 정리해고를 피하고자 충분히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논란거리고, 상당 부분 경영진의 잘못에서 비롯된 위기를 일방적으로 노동자에게 떠넘긴 것이 정당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정리해고가 어려워진다고 그것이 곧 80%의 진입 기회를 뺏는 일이 될지도 의문스럽다.

그러나 김 소장 칼럼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설령 김 소장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가 비판하는 '짧은 생각의 긴 폭력'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폭력, 가상의 폭력이다. 하지만 쌍용차 노동자들이 지난 5년간 겪었던 고통은 현실의 폭력이다.

2009년 파업 이후 거리로 몰린 해고자들을 기다린 것은 100억 원이라는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였다. '쌍용차 출신'이라는 멍에는 재취업을 가로막았고, 파업 당시의 기억은 깊은 정신적 외상으로 남아 그들을 괴롭혔다. 생활고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던 해고자와 가족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24명이 죽었다.

하지만 김 소장은 쌍용차 자본이 휘두른 현실의 폭력에 침묵한다. 일어날지도 의심스러운 가상의 폭력에는 그토록 민감한 그가 24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명백한 폭력에 대해서는 어떤 비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 소장이 이번 판결을 두고 한 '희한한 정의감'이라는 말은 김 소장에게 더 어울린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어나지도 않은 가상의 폭력을 걱정하는 게 아니다.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5년 동안 지속된 현실의 고통,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을 위로하고 이 폭력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태그:#쌍용차,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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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2024.3 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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