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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5장 수배령

無爲刀
▲ 무위도 無爲刀
ⓒ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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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문의 장문인 연발연은 관조운 반갑게 맞이했다.

"아니? 관 소협. 어떻게 은화사에 나왔나? 그들이 순순히 보내주던가?'
"아닙니다. 웬 사람의 도움으로 탈출했습니다."
"탈출? 은화사에서 탈출을?"

연 장문인은 그게 과연 가능한가 하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제가 비밀 은거의 지하석실에서 심문을 받는 데 검은 옷을 입은 고수가 나타나서 은화사 요원들을 해치우고 나를 빼내주었습니다."
"은화사 요원들을 해치웠다는 말인가?"

연 장문인은 다시 한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은화사 사람들 중 누가 당했는지 알 수 있는가?"
"제가 알기론 저를 연행했던 사람 중 사동화가 쓰러진 걸 제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곤륜흑우 사동화가 어떻게 쓰러지던가?"
"글쎄요. 어둠 속이라 정확히는 모르겠습다만, 사동화가 휘두른 검 소리가 허공에서 들린 다음 이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검과 검이 부딪치진 않았고?"
"네, 아무 소리 없이 사동화가 낮은 괴성과 함께 쓰러졌습니다. 일격에 당한 것 같았습니다."
"흠, 곤륜흑우가 일격에 당했다……."

연 장문인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관조운은 이후 흑의인이 자기를 데리고 반대편 통로로 이끌어 통풍구로 탈출시켜준 얘기를 했다.

"그가 누군지 밝히던가?"
"아뇨, 누군지 알려주기는커녕 말 한마디조차 안 했습니다."
"호랑이굴이나 다름없는 은화사에서 공자를 빼내면서 아무런 이유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단 말이지. 거 참 괴이하군."

연 장문인은 그 정도에서 화제를 돌리려는 듯 눈앞에 있는 찻잔을 들어 관조운에게 권했다.

"그나저나 은화사에서 관 소협을 데려간 이유가 무엇 때문였나?"
"글쎄요, 저도 그 점에 대해서 딱히 답이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무극진경'의 행방에 대해서 묻더군요."
"무극진경?"

연 장문인의 안색이 변했다.  

"……."
"음, 그래서 그들이 나타난 것이군……. 그래, 뭐라 답했나?"
"저도 아는 바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장문인 어른 혹시 개진연형(開眞煉形)……, 형숙귀무(形熟歸無)…… 이런 문구를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음……,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그게 무슨 의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은화사 사람들이 저한테 물어보더군요."
"아마 내 생각엔 그 문구가 무극진경과 관계된 요결이 아닐까싶네."

연 장문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해가 가는군요. 이어 그 자들이 나에게 스승님의 마지막 유언이 뭐냐고 다그쳤습니다."
"그래, 관 소협은 뭐라 답했나?"

연 장문인이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별 게 없다고 했습니다. 스승님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길을 잘 정리해달라고 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어떻게 나오던고?"
"믿지 않더군요. 무극진경에 관계해 저에게 무슨 특별한 언약이나 지시가 있는 걸로 몰아갔습니다."

여기서 관조운은 스승님이 자신의 귀에다 대고 말한 것을 연 장문인에게 말할까 하다가 숨기기로 했다. 일단 내용 자체가 수수께끼 같고, 달리 보면 정신이 가물한 상태에서 의미 없이 내뱉는 말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스승님의 최후에 누가 될 법도 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관 소협은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은화사에서 저를 추적한다면 더 이상 금릉에 있을 순 없겠지요. 일단 다른 곳으로 피신해야겠습니다."
"그래, 그것이 현명한 길일 것 같네. 어디 갈만한 데가 있을까?"
"아직, 정해진 데는 없습니다. 관가장에는 장문인 어른께서 소식을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염려 말게. 그럼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나세. 이곳 연무장은 눈이 많으니 별채로 가세."

별채는 비영문 연무장과 마주한 요사채와 안채를 넘어 그 뒤쪽에 있었다. 연 장문인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외부인의 기습을 방지하기 위해, 비영문 제자 둘을 선발해 별채 주위를 밤새 순라(巡邏) 돌게 했다.

"관 소협, 큰일 났네."

피곤에 지쳐 떨어진 관조운이 귀에 연 장문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햇살이 환하게 창을 비치고 있는 걸 보니 동이 튼 지 한참 된 것 같았다. 
연 장문인 급히 내실로 들어왔다. 관조운이 의관을 갖추기도 전에 들어오는 것을 보니 꽤나 다급한 모양이었다.

"지금, 관병들이 성문을 지키며 드나드는 사람들을 일일이 검문하고 있다네. 그리고 금의위 복장을 한 자들도 저자거리를 기찰하고 다니고."
"저 때문인가요?"

연 장문이 소매에서 너덜너덜한 종이를 꺼냈다. 저자거리에 붙어 있는 방문(榜文)이다. 거기엔 관조운의 이름이 적혀 있고 그의 인상착의가 적혀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이 관가의 부름에 불응한 죄라고 만 적혀 있다. 맨 밑엔 금릉 응천부 군정을 담당하고 있는 도지휘첨사(都指揮使僉使) 동기승(童基丞)의 인장이 찍혀있다. 아마 화공을 시켜 그림까지 그리기에는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만 지나면 그림까지 붙은 현상방문이 붙여 질 게 뻔하다.

방문을 손에 쥔 관조운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관가장의 형수와 조카가 걱정되었다. 그러나 특별히 역모나 민심을 어지럽힌다는 죄목이 붙지 않은 걸로 보아 당장 가문에 날벼락이 떨어지진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관가장이 비록 이대에 걸쳐 관직에 오르지 못했다지만 향리로서는 제법 무시하지 못할 뿌리가 금릉에 뻗어 있는 가문이다.

또한 방문의 명이 문관인 안찰사(按察使)가 아닌 무반인 도지휘첨사인 것으로 보아 가문이 뿌리 뽑히는 최악의 경우까진 가진 않을 같다. 누대에 걸친 지역의 향당(鄕黨)이 일개 도지휘위첨사의 몽니로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안위에만 집중하면 될 일이다. 어차피 이 상황을 벗어나는 것 외엔 자신이 해결해야 할 일이 없는 것 아닌가.

"제가 어찌 관에 의해 수배가 된 걸까요?"
"아마 은화사가 관에 연락을 취한 것 같네."
"금의위 무사들까지 나섰다는 게 이상하군요. 제가 심문을 받을 때 보니 은화사와 금의위와는 서로를 견제하고 알력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은화사에서 자네를 놓친 이상 더 이상 은밀히 진행할 수 없다 판단하고 그들의 작전을 표면화시킨 것 같네. 관병을 활용하기 위해서겠지. 그러자면 당연히 금의위에도 통보를 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이고."

관조운은 의관을 정제한 후 생각에 잠겼다.

"일단 자네가 금릉을 빨리 빠져나가는 게 상수네."

연 장문인이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연 장문인은 무림인도 아니고 서생도 아닌 관조운에게 왠지 모를 정이 갔다. 비록 정식 무학 제자는 아니지만 비영문의 종사(宗師)인 일운상인의 인가를 받고 스승의 말년을 기쁘고 보람 있게 만들어 준 이 젊은 서생의 서글서글함에 자기도 빠져든 것이다. 그가 지금 위험에 처해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서호에 은거하고 있는 삼사숙(三師叔) 장강편운(嶂江片雲) 습평(習坪)에게 편지를 써 그에게 의탁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은화사나 금의위의 촉수가 거기까지 미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저희 관가장과 관계된 뒷일은 장문인 어르신께 신세를 지겠습니다."
"염려 말게. 그나저나 당장 갈 곳이 있나?"
"글쎄요. 소주(蘇州)로 갈까 싶습니다."
"소주에 연고가 있나?"
"혁련지(赫連芝) 사매가 소주에 있지 않습니까?'
"오, 혁련 제자가 지금 소주에 있단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관가장과 관계 되는 친인척은 모두 은화사의 촉수가 미치지 싶습니다. 그러나 혁련 사매라면 누구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오, 그렇지 누구도 혁련 소저를 연결시킬 순 없겠지."

연 장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덧붙이는 글 | # 미리 보는 다음회

“강호의 예에 따라 먼저 양해를 부탁했지만 장문인께서 저희의 듣지 않으신다면
저희로서도 강호의 도(道)에 따라 해결하는 수밖에 없소이다.”
온철빈이 허리에 찬 도(刀)에 손이 가자,
옆에 있던 요명과 장대한 기골의 무사도 각자의 병장기에 손을 대었다.

-월, 수, 금, 주3회 면재합니다.



태그:#무위도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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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디고』, 『마지막 항해』, 『책사냥』, 『사라진 그림자』(장편소설), 르포 『신발산업의 젊은사자들』 등 출간. 2019년 해양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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