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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오솔길이 녀던길이 된 이야기

예던길의 하이라이트 지도
 예던길의 하이라이트 지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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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오솔길은 단천교에서 미천장담과 농암종택을 지나 고산정까지 이어진다. 이 길은 퇴계가 15세 되던 1515년 숙부를 따라 청량산에 들어가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후 청량산을 여러 번 오가며 걸었기 때문에 퇴계오솔길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현재 이 길의 공식 명칭은 예던길이다. 그런데 이 지역 사람들은 예던길이라는 말 대신에 녀던길이라고 부른다.

예던은 예다에서 나온 말로 가던 또는 다니던 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녀던길은 퇴계 이황 선생이 청량산을 가기 위해 다니던 길이라는 뜻이 된다. 녀던길이라는 표현은 퇴계의 도산십이곡 중 제9곡과 제10곡에 나온다. 이곳에서 보면 녀던 길은 진리를 찾아 가는 길이다. 그 진리의 길을 찾아가는 퇴계의 심정을 알아보자.

녀던길을 걸어가는 퇴계의 모습을 그린 그림
 녀던길을 걸어가는 퇴계의 모습을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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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古人)도 날 몯 보고 나도 고인 몯 뵈
고인을 몯 뵈도 녀던 길 알페 잇네
녀던 길 알페 잇거든 아니 녀고 엇뎔고.

당시(當時)에 녀던 길흘 몃해를 바려 두고
어듸 가 다니다가 이제야 도라온고
이제나 도라오나니 년듸 마음 마로리.

옛 선인들은 떠나고 없지만, 그들이 다니던 길은 여전히 우리 앞에 있다. 그 길이 앞에 있으니 어찌 아니 걷겠는가? 여기서 선인들이 다니던 길은 그냥 평범한 길이 아니라 진리의 길이다. 그 선인들이 걷던 진리의 길을 퇴계는 몇 해나 버려두었다. 그것은 그가 한양으로 벼슬하러 갔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제 다시 돌아와 딴 마음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다시 진리를 찾아 학문에 정진하겠다는 뜻이다.

예던길의 청산과 유수 풍경
 예던길의 청산과 유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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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11곡에서 더 이상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자연을 벗 삼아 항상 푸르름을 유지하며 살기로 마음먹는다. 청산처럼 푸르게,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그치지 말고 영원히. 자연 속에 묻혀 살며 청산과 물처럼, 자연스럽게 학문하며 젊게 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청산(靑山)은 엇뎨하야 만고(萬古)애 프르르며
유수(流水)는 엇뎨하야 주야(晝夜)애 긋디 아니난고
우리도 그치디 마라 만고상청(萬古常靑)호리라.

낙동강 따라 퇴계오솔길 걷기

낙동강 예던길가의 단암(丹巖)
 낙동강 예던길가의 단암(丹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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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천교는 낙동강의 이쪽과 저쪽인 단사와 백운지를 연결한다. 길은 낙동강을 따라 양쪽으로 나 있는데 우리는 서쪽의 예던길을 따라 상류로 올라간다. 이 길은 미천장담과 학소대를 지나 농암종택까지 이어진다. 전체 길이는 6㎞쯤 된다. 우리는 이 길을 걸어가기로 한다. 처음에는 낙동강을 따라 포장길이 이어진다. 지도를 보니 포장길이 3㎞쯤 이어지고, 그 다음은 건지산을 넘어 3㎞쯤 산길이 이어진다.

길 아래 물가에 붉은 바위가 보인다. 이 바위가 부서져 모래가 되면 붉은 모래가 될 것이고, 그래서 단사(丹砂)라는 마을 이름이 생겨난 것 같다. 퇴계는 상류인 고산에서 하류인 단사까지 빼어난 경치(勝景)를 감상하며 9편의 시를 남겼다. 강 건너 단천의 상류지역을 백운지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곳에는 버스정류장도 있다. 이 백운지의 옛 이름이 백운동(白雲洞)이다. 퇴계는 '백운동'을 어떻게 노래했을까? 

강 건너 오른쪽으로 백운동이 보인다.
 강 건너 오른쪽으로 백운동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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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과 녹수는 이미 세속의 기운을 넘어섰고              靑山綠水已超氛
그 사이로 희고도 흰 구름이 또 다시 밀려오네.           更著中間白白雲
고향의 소리 씻어내고 타고난 성품으로 돌아 가렸더니 爲洗鄕音還本色
지령이 그 뜻을 알고 흔쾌히 허용하더라.                    地靈應許我知君

백운동을 지나자 상류 쪽으로 청량산 줄기가 조금씩 보인다. 청량산은 안동과 봉화를 경계지우는 산으로 행정구역상으로는 봉화군 명호면에 속한다. 청량산은 여섯 개의 봉우리가 낙타의 등처럼 이어진다고 해서 타자산(駝子山)이라고도 불렸다. 그 중 정상이 가장 왼쪽에 있는 장인봉이다. 높이는 870.4m다.

예던길에서 바라 본 청량산
 예던길에서 바라 본 청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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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두번째 선학봉과 세번째 자란봉을 잇는 하늘다리가 멀리서도 보인다. 이 다리는 2008년 90m의 길이로 해발 800m 가까운 높이에 설치되었다. 퇴계도 이 청량산을 젊어 오른 적이 있다. 그리고는 49년이 흘러 병이 나고 기력이 쇠해 더 이상 오를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낙동강과 청량산이 어우러진 그림 속으로 한발 두발 들어간다.

예던길의 절경을 노래한 시
 
우리는 어느덧 예던길 전망대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미천장담(彌川長潭)과 경암(景巖) 그리고 학소대(鶴巢臺)가 비교적 잘 보인다. 미천장담은 고산을 지난 낙동강이 S자를 그리며 돌아가는 곳에 만들어진 깊은 못을 말한다. 이곳은 다른 지역에 비해 험하고 물이 깊어 물고기들이 많았다. 그래서 퇴계는 어린 시절 이곳에서 낚시하던 때를 떠올린다.

미천장담 시판석(詩板石)
 미천장담 시판석(詩板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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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이곳에서 낚시하던 때를 돌이켜 보니    長憶童時釣此間
삼십년 세월동안 벼슬 때를 묻히며 살았네 그려.   卅年風月負塵寰
이제 돌아와 보니 산수의 옛 모습을 알겠네 그려.  我來識得溪山面
그렇지만 산수는 내 늙은 얼굴 알란가 몰라.         未必溪山識老顔

미천장담 위쪽으로 물가에 경암이 있다고 하는데 잘 보이질 않는다. 숲과 나무에 가렸기 때문이다. 경암 위 산자락에는 학이 둥지를 튼 학소대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학들은 떠나고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이곳 전망대에는 퇴계가 노래한 '경암' 시편이 있어, 물살에 시련을 당하는 바위의 모습을 우리에게 떠올려준다. 이 시에서 퇴계는 삶의 어려움을 노래하고 있다. 

격한 물살 천년인들 다할 날 있으련만       激水千年詎有窮
물살 가운데 우뚝 서서 기세를 다투누나.   中流屹屹勢爭雄
인생의 발자취란 부평초 줄기 같은지라     人生蹤跡如浮梗
그 누군들 여기 서서 버틸 수 있으랴.        立脚誰能似此中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 길

강 쪽으로 길이 막힌 예던길
 강 쪽으로 길이 막힌 예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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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를 지나자 포장길은 끊어지고 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타난다. 예던길 개념도를 보니 길은 산 쪽으로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산길 대신 강 쪽으로 난 길로 들어선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였다. 강 쪽으로 아무리 길을 찾아보려고 노력해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우리는 다시 후퇴해 산자락을 우회하는 길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곳도 역시 길을 개척해야 했다.

결국 우리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 보았다. 그곳에서 묘지 관리를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 역시 옛날에는 강 쪽으로 길이 있었지만 지금은 통행을 안 해 길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니 길을 헤매며 시간을 낭비해 다시 산길을 넘을 수도 없다. 힘도 빠지고 의욕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행 중에 나이든 분들도 많아 산을 넘기보다는 예던길을 되돌아가기로 한다. 원래는 강변의 미천장담, 경암을 지나 농암종택까지 걸어갈 계획이었는데 포기다.

월명담 쪽 풍경
 월명담 쪽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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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길을 되돌아 나오는 일은 정말 따분하다. 3㎞가 넘는 포장길을 다시 걸을 생각을 하니 다들 힘이 빠지는 모양이다. 결국 우리는 미리 농암종택에 가 있는 버스를 부른다. 버스 기사도 갔던 길을 다시 돌아오라고 하니 말투에 짜증이 묻어난다. 결국 우리는 버스를 타고 농암종택으로 향한다. 중간에 월명담(月明潭)이 보이는 가송리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어 그나마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다.


태그:#퇴계오솔길, #예던길, #단천교, #도산십이곡, #미천장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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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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