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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을 찾아서> 표지
 <변방을 찾아서> 표지
ⓒ 돌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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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천 둔치는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사람이 적어서다. 사람이 드물고 외진 곳은 편안하다.

사람이 빽빽이 들어찬 번화가는 그곳에 들어가는 순간 답답함을 느낀다.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래서 나는 양산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닿을 수 있는 여백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생활하는 부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요즘 이런 마음을 흔드는 일들이 많다.

최근 프레시안 협동조합이라는 곳에 가입했다. 프레시안은 일종의 인터넷 신문이다. 언론에 관심이 많고 협동조합이라는 것도 궁금해서 가입했다.

그런데 조합원으로 가입해서 받을 수 있는 혜택들은 다 서울이나 수도권에만 있으니 뭘 할 수가 없었다. 지방의 서러움이란, 소외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라는 부산에 살면서도 변방에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큰 박탈감이 들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 서울에서 몇 년간만이라도 살고 싶다는 생각을 버릇처럼 하고 다닌다. 서울, 단어만 들어도 뭔가 빽빽이 들어찬 느낌을 받는다. 서울은 우리나라의 모든 것이 집중되는 곳이다. 정치, 경제, 문화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도 있을 만큼 사람도 서울로 몰린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니만큼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도 다 모여 있다. 내가 주로 좋아하는 것들이나 하고 싶은 것들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다 몰려 있으니 말이다. 부산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서울

서울은 친구들과의 관계까지도 침투한다. 지금 부산 소재의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이런 나와는 달리 학부 때 같이 공부를 했던 친구들은 전부 서울에 있는 대학원에서 공부하기를 원한다. 서울에 가야만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취업준비를 하는 친구들도 부산에 있기보다는 서울에 있는 기업에 취직하기를 바랐다. 그것 때문에 남들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더 많은 준비를 한다. 그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과 서울로 가야 하는 것이 옳은가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은 가득 찼다. 그럼에도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은 대한민국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권력이 그곳에 있다. 돈이 그곳에 있다. 일자리도 가장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그곳에 몰려 있다. 하고 싶은 것도 서울 외에는 간헐적이다. 박탈감은 서울로 가야 한다는 욕망으로 바뀐다. '서울에 가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의 서울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서울에 가야만 제대로 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음에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은 가득 찬 것에서 오는 답답함 때문이다. 서울에 대해 생각하면 '백제동월륜, 신라여신월(百濟圓月輪, 新羅如新月)'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백제는 보름달이라 이미 가득 차 앞으로 기울고, 신라는 초승달이라 앞으로 가득 찰 것"이라는 뜻이다. 가득 찼다는 것은 물론 좋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서울에 반해 부산은 아직 채울 것이 많은 도시라고 본다.

또한 서울과 같은 문화의 집결지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것은 천편일률적이 될까 두려워서다. 우리나라의 모든 것이 집결되는 곳이니 만큼 빠른 것은 당연하다. 서울의 빠름에 휩쓸려 중심을 잃고 흔들릴까 무섭다. 자칫 휩쓸려버리면 빠름을 쫓아가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뱁새가 가랑이 찢어지듯 허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성은 사라지고 서울에 사는 그저 그런, 아무런 특징이 없는 사람이 될까 두렵다.

변방도 아직 기회가 있다

부산은 비었고, 상대적으로 느린 도시다.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신영복의 <변방을 찾아서>를 보면 중국의 역사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중국은 황하 유역을 중심부로 삼아 공간적 이동이 없다고 반론하지만 중국역사 역시 고대의 주, 진에서부터 금, 원, 청에 이르기까지 변방이 차례로 중심부를 장악한 역사였다.

그러한 변방의 역동성이 주입되지 않았다면 중국 문명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변방과 중심은 결코 공간적 의미가 아니다. 낡은 것에 대한 냉철한 각성과 그것으로부터의 과감한 결별이 변방성의 핵심이다."

신영복의 말처럼 부산도 변방의 역동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신영복은 책에서 이런 말도 한다.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한 결정적 전제는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심부에 대한 환상과 콤플렉스가 청산되지 않는 한 변방은 결코 새로운 창조 공간이 될 수 없다. 중심부보다 더욱 완고한 아류로 낙후하게 될 뿐이다."

부산에 있으면서 서울의 아류로 존재하기는 싫다. 부산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의 의미는 충분히 가지고 있다. 서울 중심의 우리나라 사회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는 변방의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

나 역시 부산에 살고 있기에 변방의 존재다. 변방의 역동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공이산'의 성어와 같은 마음가짐이 있어야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기는 것처럼, 우직하게 문학이라는 한 우물을 파는 것이 나중에 큰 성과를 이루리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본 기자의 블로그 http://picturewriter.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지음, 돌베개(2012)


태그:#변방, #탈주, #주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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