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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자루에 희망을', 대학 청소노동자와 함께한 하루
ⓒ 빗자루에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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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전 5시 여러분은 무얼 하시나요. 저도 그렇듯 많은 분이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간입니다. 위 영상은 그 어두컴컴한 오전 5시에 집을 나서 대학 곳곳을 쓸고 닦는 대학 청소노동자의 하루를 담고 있습니다. 특이한 건 웬 학생들이 그들의 청소를 돕고 있다는 거죠.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24일. 각자의 남자친구를 팽개친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 김수지(27)·김진경(27)·배민신(30)·조가연(25)씨는 컴퓨터와 씨름 중이었습니다. 위 영상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전날인 23일 오전 5시에 집을 나서 24일 오후 4시까지, '청소-촬영-편집'의 과정을 거쳐 무려 35시간 만에 영상을 완성했습니다.

뒤돌아서면 또 가득 차 있는 쓰레기를 모아 17층 건물을 엘리베이터 없이 내려오고, 전선이 얼기설기 지나는 한 평 휴게실에서 쪽잠을 청하는 대학 청소노동자. 변기를 닦느라 허리를 펼 새 없고, '있어도 없는 존재' 취급 받는 대학 청소노동자를 따라다니며 네 학생이 고생을 자처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들을 22일 오후 전남대에서 만났습니다.

"청소노동자 문제가 낡은 이슈? 문제가 심각하면 알려야"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연구회 학생으로 구성된 '빗자루에 희망을'이 22일 오후 광주 북구 전남대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연구회 학생으로 구성된 '빗자루에 희망을'이 22일 오후 광주 북구 전남대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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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문제제기가 됐지만 여전히 심각한 게 대학 청소노동자 문제잖아요. 그런데 당사자인 청소노동자가 목소리를 내면 사회가 덜 관심을 갖더라고요. 사회구성원이 관심을 갖고 함께 문제의식을 느껴 풀어나갔으면 해요."

네 학생은 전남대 로스쿨 인권법연구회 소속입니다. '인권'이란 공동 관심사로 만난 넷은 지난해 7월 재단법인 동천(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만든 공익재단)에서 로스쿨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전에 참가하기로 하고 대학 청소노동자 문제를 주제로 정했습니다. 아동문학가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따와 '빗자루에 희망을'이란 팀 이름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주제를 두고 우려섞인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주변에서 신선하지 못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어쨌든 공모전 당선이 목적이었으니까요. 원래 있던 팀원 한 명이 빠졌고, 자문을 구한 교수님은 당선이 어려울 거라고 말했더라고요. 내부적으로도 이 주제로 당선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죠."

그럼에도 이들은 주제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사전조사를 통해 본 대학 청소노동자의 삶은 너무 열악했기 때문이죠. 이른바 '낡은 이슈'라도 문제가 심각하면 알려야겠다는 의지가 동한 겁니다.

그래서 '발'을 믿었습니다. 전에 없는 자료를 만들기 위해 광주·전남 6개 대학캠퍼스를 돌며 실태조사를 진행하기로 합니다. 결과는 공모전 당선. 이들은 당선 지원금을 받아 지난해 8월 한 달 동안 ▲ 각 대학 청소노동자의 임금 ▲ 휴게시설 및 공간 ▲ 육체적 부담 정도 및 업무량 ▲ 식대 해결 방법 ▲ 산업재해·부당대우 사례까지 꼼꼼히 조사했습니다. 이들이 만난 대학 청소노동자만 230명에 달합니다(자세한 내용은 아래 박스기사).

'빗자루에 희망을' 팀장인 김수지씨는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땐 홍익대 청소노동자 문제가 이슈였고, 지금은 또 중앙대 청소노동자 문제가 주목을 받고 있다"며 "(대학 청소노동자 문제는) 홍익대, 중앙대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터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를 보여줄 수 있는 자료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습니다.

8월 한 달 실태조사 진행... 작업반장 "조사 필요없다" 외면도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연구회 학생으로 구성된 '빗자루에 희망을' 팀이 22일 오후 광주 북구 전남대에서 자신들이 만든 책인 '빗자루에 희망을-대학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실태 보고 및 지침서'를 들고 있다. 왼쪽부터 배민신, 조가연, 김수지, 김진경씨.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연구회 학생으로 구성된 '빗자루에 희망을' 팀이 22일 오후 광주 북구 전남대에서 자신들이 만든 책인 '빗자루에 희망을-대학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실태 보고 및 지침서'를 들고 있다. 왼쪽부터 배민신, 조가연, 김수지, 김진경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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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가 마냥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노조가 있는 대학은 비교적 수월했지만 그렇지 않은 대학은 청소노동자들이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한 대학 안에서도 관리자 격인 '작업반장'이 있는 건물과 없는 건물에서 완전히 다른 답변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직접 실태조사를 다닌 배민신씨는 "(실태조사를 하기 위해) 청소노동자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행정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하고, 다시 행정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청소 용역업체 관리자에게 물어보라고 하더라"며 "뻔하지 않나. 결과적으로 그 관리자는 '실태조사 같은 거 필요없다'며 차갑게 돌아섰다"고 말했습니다.

김수씨는 "한 대학은 A건물에선 청소노동자 분들이 '문제를 알려야 한다'고 성심성의껏 답변을 했는데 바로 옆 B건물에선 '모든 것에 다 만족한다'는 답변이 나왔다"며 "알고보니 B건물엔 작업반장이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만큼 대학이나 용역업체의 권한과 감시가 심하다는 걸 느꼈다"고 말하더군요.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빗자루에 희망을'은 대학 청소노동자의 속마음을 하나 둘 이끌어 냈습니다. 이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정말 황당한 사례도 많습니다. 몇 가지 소개합니다.

노조 설립을 이유로 에어컨 전선 절단 =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13년 8월. 전남대 여수캠퍼스에서는 사실상 '청소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을 이유로 에어컨 실외기 전선을 절단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장애인들 정리해라" = 소속 용역업체에서 계약만료로 해고된 청소노동자 A씨는 좌측 손에 장애(3급)를 갖고 있습니다. 이를 이유로 용역업체 변경 과정에서 해고 통지를 받았지만 다른 신규 용업업체가 장애사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하여 지금은 학교는 같지만 다른 용역업체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안 대학본부 관계자가 신규 용역업체에 한 말. "장애인들 정리했더니 다시 쓰면 어떡해요. 빨리 정리하세요."

반값등록금 하려고 미화원 해고 = B대학은 2013년 3월 말일자로 용역업체를 변경하면서 미화부 18명을 감원하고 조경팀과의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조경팀 업무는 미화부에 이양한다는 단서 조항과 함께요.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눈물이 날 만큼 고상하고 품격있습니다. "학생들 반값등록금 하려고…."

실태조사 묶은 지침서 500부 전국에 배포... "진심 느껴져" 문자 받기도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연구회 학생으로 구성된 '빗자루에 희망을' 팀이 '빗자루에 희망을-대학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실태 보고 및 지침서'를 발간한 뒤 한 청소노동자가 보낸 문자다. '빗자루에 희망을'은 8월 한 달 동안 6개 대학캠퍼스의 230명 청소노동자를 만나 실태조사를 벌였다.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연구회 학생으로 구성된 '빗자루에 희망을' 팀이 '빗자루에 희망을-대학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실태 보고 및 지침서'를 발간한 뒤 한 청소노동자가 보낸 문자다. '빗자루에 희망을'은 8월 한 달 동안 6개 대학캠퍼스의 230명 청소노동자를 만나 실태조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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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실태조사 내용을 책으로 묶어 '빗자루에 희망을-대학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실태 보고 및 지침서(기사 하단 PDF 첨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총 500부를 찍어 전국 대학에 뿌렸습니다. 조가연씨는 "책을 받은 분이 문자를 보내왔다"며 휴대폰을 내보였습니다.

휴대폰에는 "'빗자루에 희망을' 잘 받았습니다. 어제 받고는 '뭐지?' 했는데 받아보니 알겠네요. 꼭 필요하고도 참 좋은 일 하셨습니다. 내용도 짜임새 있고 무엇보다 한 분, 한 분 만나면서 느꼈던 진심이 전해지는 거 같아 아침부터 기분이 좋네요"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빗자루에 희망을'은 "뭔가 찝찝하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출발점은 공모전이었고 실태조사, 책 출판 등에 당선 지원금을 사용하면서 활동이 마무리됐기 때문입니다. 김진경씨는 "실태조사만으로 대학 청소노동자 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 순 없을 것"이라며 "앞으로 활동이 지속돼야 무언가 바뀔 수 있을 거 같은데 아쉽다, 아직 숙제가 많은 느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네 학생은 6개월 남짓의 활동 소감을 자신들이 만든 책에 담았습니다. 그 내용을 들여다봤습니다.

김수지 = "활동이 끝나도 대학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뿐만 아니라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름다운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빗자루가 '빛자루'가 될 때까지 노력하겠습니다. 우리들의 꿈에 희망을!"

김진경 = "열심히 한 만큼 대가가 가야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현실이 되기가 참 힘들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과 힘이 모이면 그 당연한 현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배민신 = "아직 법을 배워가는 입장이지만 존재하는 법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존재하는 법이 잘 지켜지고 있으리라 쉽게 믿지도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청소노동자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 사회의 노동과 행복에 관한 일이기에. 빗자루에 희망을 좀 더 주렁주렁 매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조가연 = "늘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아주던 청소노동자 분들, 그리고 설문지 마지막에 '우리를 위해 애써주셔서 감사하다'는 어느 청소노동자의 한마디. … 다들 정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누리는 멋진 근로자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꼭 훌륭한 변호사가 돼 여러분들의 편에 서고 싶습니다."

'빗자루에 희망을', 광주·전남 6개 대학캠퍼스 청소노동자 실태조사
'빗자루에 희망을', 광주·전남 6개 대학캠퍼스 청소노동자 실태조사
 '빗자루에 희망을', 광주·전남 6개 대학캠퍼스 청소노동자 실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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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자루에 희망을' 팀이 2013년 8월 한 달 동안 광주·전남의 6개 대학캠퍼스(전남대 광주·여수캠퍼스, 조선대, 광주대, 광주교대, 동강대)의 230명 청소노동자를 상대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4개 대학캠퍼스에서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임금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월 대학 청소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전남대 여수캠퍼스 101만원, 광주대 90만 1000원, 광주교대 88만원, 동강대 99만 3400원으로 2013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4860원, 월 101만 5740원인 것과 비교했을 때 부족한 액수이다.

또 '빗자루에 희망을'에 따르면 6개 대학캠퍼스 청소노동자 평균임금은 115만 7280원으로 이는 2012년 고용노동부 자료 기준 전체 임금 근로자 평균인 256만 7000원은 물론 전체 청소 노동자 평균 월급인 123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휴게 시간'과 관련해서는 전체 응답자 중 80% 이상이 보통 이상(매우 만족 5.2%, 만족 25.7%, 보통 49.6%)이라고 말했으나 '휴게 공간'을 두고는 절반 가까이가 '충분히 휴식 가능한 공간이 아니다'고 답했다.

휴게 공간의 문제점으로는 '주위의 소음으로 휴식에 방해(30.3%)', '냉난방시설 부재(24.1%)', '비좁은 휴게실(22.1%)', '남녀가 함께 사용(8.2%)', '다른 용도의 공간을 휴게실로 사용(7.7%)' 등이 거론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 청소노동자 대부분의 임금에 식대가 포함돼 있지 않았다. 전체 응답자 중 96.4%가 '도시락을 싸오는 등 자비로 식비를 지출한다'고 답했다. '마스크, 안전화 등 도구 제공' 여부를 묻는 질문에도 47.1%가 '본인이 직접 구입', 5.5%가 '동료의 것을 함께 사용'한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 230명은 모두 용역업체 단기 계약직이었다. 이들은 '고용 불안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60.9%가 '그렇다'고 답했다. 또 고용 형태에 만족하는 이는 5.3%에 불과했으며 65.5%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답했다. 원하는 고용 형태로는 89.8%가 직접 고용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그:#빗자루에 희망을, #대학 청소노동자, #전남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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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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