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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7명에 대한 첫 공판일인 지난해 11월 12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이 의원이 재판을 마치고 호송차량에 올라타고 있다.
▲ 호송차 타고 법원 떠나는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7명에 대한 첫 공판일인 지난해 11월 12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이 의원이 재판을 마치고 호송차량에 올라타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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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정장에 넥타이를 매지 않은 채 증인석에 앉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입을 뗐다.

"검찰 질문에 앞서, 저는 이 사건이 처음부터 국정원에 의한 조작 날조 사건이라 검찰 신문에 대한 진술을 거부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27일 '내란음모사건' 43차 공판(수원지방법원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김정운)에서는 이 의원을 상대로 검찰과 변호인의 피고인 신문이 진행됐다. 이날 검찰은 오전 공판 두 시간 동안 이 의원에게 200개 가까운 질문을 던졌다. 이 의원이 2013년 5월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 청소년 수련원과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마리스타교육수사회에서 '비밀지하조직 RO' 모임을 열어 내란을 음모했다는 공소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물음들이었다.

하지만 이 의원은 단 한 마디도 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오후에 진행된 변호인 쪽 신문에는 답했다. 주요 쟁점별로 이 의원의 답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RO 총책?] "합정동 모임은 '강연 요청'으로 간 것... 이후엔 의정활동"

이 의원은 자신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고, 'RO 총책'으로 내란을 음모했다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우선 곤지암 모임에서 '오늘 장소는 적절하지 않다'며 강연을 미룬 까닭은 "당 간부에게서 (설비 부족 등) 강연을 연기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정작 중요한 것은 (당시) 정세에 대한 안목 등인데 안일한 게 아닌가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이 흐지부지 끝나 "머쓱한 것도 있고 해서 쉽게 풀려고" 이틀 뒤 합정동 강연 초반에 "지난 곤지암은 우리가 불리하다고 봤다"는 얘기를 꺼냈다고 했다.

자신이 곤지암(5월 10일)과 합정동 모임(12일)을 주도했다는 검찰 쪽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곤지암 행사 전 강연 요청을 받았고, 곤지암 모임 때 김홍열 피고인(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으로부터 '정세강연을 12일로 미뤘다'는 얘기를 듣고 수락했다는 것이었다.

이 의원은 '지휘원'이란 말도 모른다고 했다. 검찰은 그가 'RO 총책'이기 때문에 합정동 모임 때 김근래 피고인(경기도당 부위원장)을 '지휘원'으로 불렀다고 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왜 검찰이 여기에 집착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며 "지휘원이란 말 자체를 모른다"고 했다. 또 "지휘성원이란 말은 있어도 지휘원은 안 쓴다"고 강조했다.

5월 모임 이후에는 일상적인 정치활동을 했을 뿐, 내란을 준비한 적이 전혀 없다고 했다.

[전쟁 준비?] "전혀 사실 아냐... 후방 교란·시설파괴 불가능"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사진은 지난해 9월 4일 저녁 국정원 직원들에 의해 강제 구인돼 수원지법으로 이송되고 있는 모습.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사진은 지난해 9월 4일 저녁 국정원 직원들에 의해 강제 구인돼 수원지법으로 이송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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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그가 2013년 한반도 정세를 위기로 판단, 'RO 조직'에 전쟁 대비를 지시했다는 근거 중 하나로 '대전환기, 대격변기'라는 표현을 지적해왔다. 그러나 이 의원은 "전혀 사실 이 아니다"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제 강의 시점은 5월이고, 긴장이 가장 고조된 때는 3~4월"이라며 "통일의 새로운 기회가 도래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진보정당 주요간부들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단어들을 "북한의 위성 발사와 핵실험 성공, 정전협정 무효화 선언 등은 분단으로 인한 낡은 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이전과 다른 현 정세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봤다"고 밝혔다.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한 미국의 기존 대북정책이 실패했고,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북미관계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은 시기였다는 주장이다.

이 의원은 '물질·기술적 준비'란 용어 역시 전쟁 대비가 아닌 반전을 말하기 위해 쓴 표현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그는 "전쟁을 막기 위한 내용으로서 물질·기술적 준비를 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후방교란, 국가 기간시설 파괴 등을 염두에 뒀냐'는 질문에 그는 "그건 불가능하다"며 "참석자 절반 이상이 여성이고, 나머지 절반의 절반은 군대를 안 다녀왔다, 현실성이 없다"고 답했다.

다만 자신이 원고 없이 강연을 하다 보니 생소한 표현을 써서 참가자들의 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철탑 파괴' 이야기도 "강연 취지가 엉뚱하게 해석되는 것 같아서 간단한 예를 재밌게 들려고 했는데, 주제가 너무 예민해서 다 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마쳤다"고 말했다.

[북한 추종?] "항일 운동가 뜻 살려... 다카기 마사오는 일본에 충성"

검찰은 그와 RO가 북한을 추종했다는 근거로 '북한식 표현'을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석기 의원은 "단어와 표현을 갖고 사람의 사상을 규정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남북 간 교류협력이 잘 이뤄지는 부분이 문화라며, 북한식 표현이 좀 생소해도 "재밌는 말도 많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한 자루의 총, 지원의 사상' 등 북한식 표현을 그대로 쓴 이유는 일제 강점기 역사에서 찾았다. '한 자루의 총'은 여러 사람이 뭉치면 거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취지로, '지원의 사상'은 조선의 독립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항일 운동가의 뜻으로 썼다는 이야기였다. 이 의원은 이때 "일제 식민지 통치 하에 수많은 정치가, 지식인이 변절했고 다카기 마사오(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란 사람은 오히려 일본에 충성했다"며 박 전 대통령을 언급하기도 했다.

[국보법 위반?] "<혁명동지가> 불러서 위반? 국보법 존재가 부끄러운 일"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에는 내란음모 혐의뿐 아니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도 있다. <혁명동지가>를 부르는 등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찬양·고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의원은 "<혁명동지가>는 집회나 당 행사에서 많이 부른 노래"라고 맞섰다. 또 "가사는 잘 모르지만 곡이 참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걸 갖고 국가보안법 운운하는 일 자체가, 국가보안법 존재 자체가 문명국가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일성 저작과 북한 영화 등 이적표현물을 소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 역시 부인했다. 검찰은 지난해 8월 28일 그의 사당동 아파트를 압수수색하며 이 자료들이 담긴 CD 등을 찾아냈다. 하지만 이 의원은 "사당동은 안방과 거실만 사용했고 CD 등이 다른 장소에 있는 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집에서 이 자료들을 볼 장비도 전혀 없었다고 했다.

압수수색을 피해 '도망갔다'는 검찰 주장에는 '신변에 위협을 느껴 피한 것'이라는 반론을 폈다. 사복을 입은 국정원 수사관 등을 자신을 해치러 온 극우단체 사람들로 의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추가 질문 시간에 "정복 경찰관도 있었는데 보지 못했냐"고 검찰이 묻자 다시 진술거부권을 행사해 답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부정하지 않고, 정통성을 인정하냐"는 질문에도 역시 답하지 않았다.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신문 시간을 적극 활용한 이석기 의원은 미소를 지으며 피고인석으로 돌아갔다.

재판부는 28일 44차 공판 때 김홍열·김근래·조양원 피고인의 신문을 진행한 뒤 2월 3일 최후 변론기일을 열 예정이다. 한편 변호인단은 '이날 재판 전 법정 사진촬영을 허락, 역사적 기록물로 남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태그:#이석기, #내란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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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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