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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한씨 집성촌 향림마을(안성 고삼면 월향리)이 물속에 잠겼다. 벌써 55년 전 일이다.

고삼호수에 눈이 내렸다. 왼쪽으로 주민들의 생업인 낚시 좌대가 얼음위에 자리 잡고 봄을 기다리고 있다. 고삼호수는 55년 전만 해도 향림마을 사람들이 살았던 고향이 묻힌 곳이다.
▲ 겨울 고삼호수 고삼호수에 눈이 내렸다. 왼쪽으로 주민들의 생업인 낚시 좌대가 얼음위에 자리 잡고 봄을 기다리고 있다. 고삼호수는 55년 전만 해도 향림마을 사람들이 살았던 고향이 묻힌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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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살아온 고향이 물속에 묻혀버렸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한씨로 이루어졌던 전통적인 마을에 고삼호수가 생긴 건 1962년 무렵이다. 국책사업으로 결정되면서, 마을 주민들은 제대로 소리를 내보지도 못하고 고향을 떠나거나 호수보다 좀 더 고지대(현 지역)로 이주해야 했다.

평생 살아온 그들의 고향이 물속에 묻혀버렸다. 그들의 터전이 물속에 묻히면서 그들의 향수도 묻혀버렸을까. 이 마을 이름이 향림마을이다. 향나무 숲이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그 시절 향나무 숲이 고스란히 물속에 묻혀버렸다. 수몰 후 마을이름은 향림이지만, 마을에 향나무가 별로 없다. 지금도 고삼호수는 향림마을의 옛 추억을 삼킨 채 말이 없다.

고삼호수는 향림마을 주민들에게 있어서 양가감정을 주는 곳이다. 자손 대대로 이어온 터전을 삼켜버린 괴물 같은 곳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상실의 감정을 안겨준 곳이다. 반면, 주민들 대부분이 이 호수로 인해 먹고 살고 있다. 상실과 풍요를 동시에 안겨주는 호수다.

향림마을은 조선시대부터 한씨 집성촌이었다. 지금은 고삼호수를 내려다 보며 한씨 종묘 비석들이 비하게 늘어서 있다. 마치 55년 전 그 옛 추억을 그 옛날 살았던 조상들이 보고 있는 듯하다.
▲ 한씨 종묘 향림마을은 조선시대부터 한씨 집성촌이었다. 지금은 고삼호수를 내려다 보며 한씨 종묘 비석들이 비하게 늘어서 있다. 마치 55년 전 그 옛 추억을 그 옛날 살았던 조상들이 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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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풍요를 동시에 안겨준 고삼호수

호수가 있다 보니 마을지역이 개발 제한구역이다. 이 마을 주민 김정식씨가 증언한다.

"우리 마을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어요. 산림보호구역이라 개발이 제한되어 마을발전을 시키기가 어렵죠. 어쨌든 뭘 하려고 하면 걸리는 게 많습니다. 사실 고삼면 전체가 그렇습니다. 50%가 산악지대, 25%가 고삼저수지, 그 외 25%가 농토입니다. 농촌에 농토가 적으니 사람들은 일부 먹고 살려고 축산업에 손대기도 합니다. 하다못해 주민들이 가진 땅도 없어요."

김정식씨가 말한 '주민들이 가진 땅도 없다'는 말은 진실이다. 이 마을 이장 한기장씨가 지난 21일, 고삼호수 앞에서 그 말에 대해 확증해준다.

"제가 대학 갈 때(1980년대 초) 쯤에 유난히 우리의 부모님들이 자녀를 대학에 많이 보냈죠. 그 때 자녀대학 시키느라 논 팔고 밭팔았죠. 그런 집들은 대부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거나, 이 마을에 있어도 국유지를 빌려 농사를 짓고 있죠."

시골에 살면서 자신들이 경작할 땅이 없다면 삶은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이 마을엔 그렇게 큰 부자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고삼호수가 주민들에겐 양가감정을 가지게 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향림마을은 고삼호수 가에 위치하고 있다. 61년도 전에는 호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던 마을이 지금은 호수 속에 마을을 묻어두고 이사를 와서 여기에 자리 잡았다. 고삼호수는 향림마을 사람들에게 아픔과 기쁨을 동시에 주는 곳이다.
▲ 마을 전경 향림마을은 고삼호수 가에 위치하고 있다. 61년도 전에는 호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던 마을이 지금은 호수 속에 마을을 묻어두고 이사를 와서 여기에 자리 잡았다. 고삼호수는 향림마을 사람들에게 아픔과 기쁨을 동시에 주는 곳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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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에 살면서, 이 마을엔 어업계가 있다. 어업계라니? 어업계라면 어촌마을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아 파는 어촌 조직을 말한다. 이 마을의 어업계는 물고기를 잡는 게 아니라 물고기를 잡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그렇다. 고삼호수에 낚시 좌대를 설치하고 운영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마을엔 현재 15가구가 소속해 있다. 매년 4월이면 통수식을 한다. 호수의 수문을 열어 농수를 흘려보내는, 말하자면 물을 통하게 하는 행사다. 이때 어업계 사람들이 모여서 한해의 발전을 기원하는 고사도 지낸다. 그들의 터전을 삼켰던 호수가 인근 지역의 농토를 살리는 물로 태어나서 물을 내려주는 날이다. 향림마을이 인근 세상과 물로서 통하는 날이다.

매년 4월이면 고삼호수를 업으로 하는 마을 어업계 주민들이 모여 고삼호수 통수식을 거행한다. 이때 한 해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낸다. 수문을 열어 농수를 흘려보낸다 해서 통수식이며, 향림마을의 희생의 대가로 이루어진 고삼호수의 물이 세상으로 흘러 통하는 날이기도 하다.
▲ 통수식 매년 4월이면 고삼호수를 업으로 하는 마을 어업계 주민들이 모여 고삼호수 통수식을 거행한다. 이때 한 해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낸다. 수문을 열어 농수를 흘려보낸다 해서 통수식이며, 향림마을의 희생의 대가로 이루어진 고삼호수의 물이 세상으로 흘러 통하는 날이기도 하다.
ⓒ 김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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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고삼호수를 통해서 관광객을 통한 수익 창출을 한다. 한기장 이장도 어머니가 만든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때론 식당 등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다. 농사조차도 고삼호수의 농수가 농사의 원천이 된다. 이 마을 사람들의 수입원이 고스란히 고삼호수에서 나온다.

이 마을은 산골이면서도 외지인이 40%나 된다. 고삼호수의 경치가 좋다는 이유다. 다른 시골마을보다 외지인이 많이 유입이 되어 그나마 마을의 인구가 유지된다. 고삼호수는 이 마을 주민들에게 사람도 모이게 하고, 돈도 벌게 해주는 고마운 곳이다.

아하, 그래서 향림 마을이었네

이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겨울 김장은 품앗이로 해결한다. 오늘 영이네 집에 김장을 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그 집 김장을 같이 해준다. 그 사람들이 또 다음날이면 철수네 집에서 모여 김장을 한다. 그래서 김장하는 날은 마을잔치가 된다.

농사품앗이도 살아 있다. 한이장에게 "아, 이봐. 밭 좀 갈아줘~"라고 마을 어르신이 이야기 하면 "알것시유"라고 대답하고 밭을 간다. 그에게 트랙터가 있어서다. 밭을 갈아주고 나면 술 한 잔, 밥 한 끼면 그 대가로 충분하다. 고추농사를 서로 도와주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산골에 모여 살다보니 마을사람들은 순박하다. 마을사람들끼리는 인정이 많다. 모두가 집안사람이다 보니 웬만한 일은 이해하고 넘어간다. 한이장이 뭔가를 실수해도 어르신들은 "뭐 그럴 수 있쟈"로 이해해준다.

아하, 이제야 알겠다. 왜 이 마을이 향림마을인지를. 비록 눈에 보이는 터전도, 향나무  숲도 물속에 묻어 버렸지만, 그 시절 서로 나누던 풍습과 마음만은 아직 그들에게 살아 있다. 사람 사는 향기가 나는 마을, 그 향기가 수풀을 이루는 마을, 바로 향림마을이 아닐까. 이런 이야기를 하며 한이장과 기자는 서로 웃었다.

향림마을 한기장 이장은 대대로 여기에 사는 토박이이며, 한씨 집성촌 사람의 후손답게 한씨다. 어머니가 시작한 펜션을 운영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 자신이 대학 갈 무렵 마을 부모님들이 논 팔고 밭파는 바람에 개인의 땅들이 많이 없어졌다고 했다.
▲ 한기장 이장 향림마을 한기장 이장은 대대로 여기에 사는 토박이이며, 한씨 집성촌 사람의 후손답게 한씨다. 어머니가 시작한 펜션을 운영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 자신이 대학 갈 무렵 마을 부모님들이 논 팔고 밭파는 바람에 개인의 땅들이 많이 없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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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향림마을, #고삼호수, #농촌, #이장,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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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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