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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구제역으로 생매장된 돼지들을 동물사랑실천협회가 촬영한 영상의 한 장면이다. 지난 구제역 사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생명경시 사상과 반성없는 육식문화에 경종을 울렸다.
▲ <생매장 돼지들의 절규> 3년 전 구제역으로 생매장된 돼지들을 동물사랑실천협회가 촬영한 영상의 한 장면이다. 지난 구제역 사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생명경시 사상과 반성없는 육식문화에 경종을 울렸다.
ⓒ 동물사랑실천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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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인플루엔자(AI·H5N8형)가 또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는 설 명절을 바로 앞에 두고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23일 현재까지 AI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농가는 8곳이라고 한다.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 전국의 가금류 농가와 방역당국이 초긴장 상태에 있다.

3년 전의 악몽이 떠오른다. 동시에 찾아온 구제역과 AI로 전국의 동물을 땅에 파묻은 사상 초유의 참극이었다. 동물사랑실천협회의 <생매장 돼지들의 절규> 영상은 당시의 참상을 통렬하게 전한다. 산 채로 매장된 돼지들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담은 이 영상은 말 그대로 '생지옥'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영상을 보며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감상주의자'라고 낙인을 찍는 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감수성을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 없다. 이 영상은 돼지들과 함께 땅 속에 파묻힌 우리 모두의 인간성을 보여주었다. 그 후로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진지한 반성이 이루어졌는가?

공장식 사육, 가축 전염병의 근본 원인

구제역·AI의 근본 원인이 공장식 사육 시스템이라는 것은 3년 전 사태를 통해 줄기차게 지적된 사실이다. 경제 논리에 따라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종 선별은 동물의 유전적 다양성을 감소시켜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저하시킨다. 햇빛과 신선한 공기로부터 차단된 채 새들이 자신의 배설물을 밟으며 살아가는 비위생적인 환경은 바이러스 배양의 최적 조건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많은 개체를 사육하는 방식은 바이러스 전파를 용이하게 한다.

무엇보다 동물을 '생명'이 아닌 '이윤'으로 간주하는 오늘날의 시스템에서 동물의 복지는 무시될 수밖에 없다. 면역력을 저하시키고 스트레스를 높이는 산업구조에서 전염병 창궐은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이윤을 위해 기른다지만 자식 같은 생명을 죽여 파묻어야만 하는 농민의 심정은 오죽할까? 생명을 '경제동물'로 규정하는 시스템은 동물을 자식으로 대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철새 탓만 하고 있다. 정부는 AI 발병 농가 폐사 오리와 동림 저수지 폐사 가창오리에서 고병원성인 H5N8형이 발견된 것을 근거로 AI가 야생 철새로부터 유입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충분한 조사와 규명 없이 철새를 주범으로 지목하는 것은 철새에 대한 일반의 혐오감만 높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게다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찾아오는 철새를 막을 방법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전문가들은 사육 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한 전염병이 반복적으로 찾아올 수밖에 없다는 점에 의견을 모으고 있다. 정부는 고기를 익혀 먹으면 안전하다는 말로 소비 위축만 방어하는데 머물지 말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장기적인 대책 없이 문제가 터질 때마다 살처분으로 동물을 싹쓸이하는 것은 사회에 만연하는 생명경시만 부추길 뿐이다. 

이대로 가면 모두에게 재앙이다

보다 싸게, 많이 먹으려는 욕심이 화를 불렀다.
 보다 싸게, 많이 먹으려는 욕심이 화를 불렀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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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든 걸 정부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소비자가 보다 싼 가격에 많이 먹으려는 욕심을 비우지 않는 한 공장식 축산 시스템은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존', '미식', '보양' 등을 이유로 과도한 육식을 탐하고 있다. 무분별한 육식문화의 심각성은 성인은 물론 청소년까지 위협하기 시작한 성인병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영양결핍이 아닌 영양과잉과 불균형을 걱정할 때다. '통큰치킨'에 열광하는 풍조는 분명 잘못되었다. 이미 지나치게 많이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50~60년 전 가난에 대한 보상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까? 무조건 싼 것이 '착한' 것이라고 간주하는 풍조는 사라져야 한다.

육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두 번 먹을 것을 한 번으로 줄여서라도 귀하게 키워서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며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한 축산 농민의 말마따나 "제 값보다 어떡해서든 싸게 먹으려는 우리의 욕심이 파업도 하지 않고 휴일도 요구하지 않는 새들"을 살처분하고 있다. '착한' 소비의 개념의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공장식 축산, 인류 존속마저 위협한다

원제: <Bird Flu: A Virus of Our Own Hatching> 저자인 마이클 그레거 박사는 광우병, 신종플루의 권위자로서 공장식 축산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
▲ <조류인플루엔자: 인간이 부화시킨 바이러스> 원제: <Bird Flu: A Virus of Our Own Hatching> 저자인 마이클 그레거 박사는 광우병, 신종플루의 권위자로서 공장식 축산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
ⓒ Lantern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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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식 축산과 무분별한 육식으로 인류는 생존까지 위협받고 있다. 미국 휴메인 소사이어티의 보건·축산 책임자인 마이클 그레거 박사는 "공장식 축산은 변형 바이러스의 슈퍼 배양소"라고 말했다. 그는 조류인플루엔자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인플루엔자로 변형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 원인은 변종 바이러스 출현에 최적화된 공장식 농장 환경이다.

과거에 가금류는 자유롭게 농장을 돌아다니며 사육되었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서 밀집 사육되는 오늘날의 공장식 환경은 질병 발생의 이상적인 환경이 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무해한 바이러스도 종간 장벽을 넘어 인간에게 전파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변형될 수 있다.

그레거 박사는 인간과 동물 모두의 재앙을 막기 위해 공장식 축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값싼 치킨이 인류의 존속을 위협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무지한 탐욕이 부메랑이 되어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 파괴적인 욕심을 내려 놓고 지속가능한 사육과 소비를 고민할 때다. 생명을 공산품처럼 생산하여 불량품처럼 폐기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생명'을 생명으로 대하고, 자연과 공존을 모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번 사태를 각자의 자리에서 반성을 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태그:#조류인플루엔자, #AI, #공장식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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