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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이 되어버린 알바노동자. 아르바이트노동조합은 1월 16일 11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근로계약서를 요구하면 해고되는 알바들의 현실을 규탄하고 노동부가 근로계약서 미작성에 대한 특별근로감독과 처벌강화를 촉구했다.
 유령이 되어버린 알바노동자. 아르바이트노동조합은 1월 16일 11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근로계약서를 요구하면 해고되는 알바들의 현실을 규탄하고 노동부가 근로계약서 미작성에 대한 특별근로감독과 처벌강화를 촉구했다.
ⓒ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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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23)씨는 지난해 9월 중순, 알바 중개 사이트에서 주말 아르바이트 채용정보를 보고 서울의 한 프랜차이즈 중식당을 찾았다. 5500원이라는 시급이 눈에 띄었고, 자영업 식당에서 일해 본 경험도 있었기에 바로 면접을 보았다. 사장은 가족관계를 물었고, 무엇을 공부하는지 궁금해했다. 정씨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볼 계획이긴 했지만 일하는 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고, 적어도 다음해 2월까지는 일하겠다고 답했다.

정씨는 매 주말마다 10시간씩 20시간을 일했다.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고, 포장 주문된 음식들을 랩으로 싸고, 빈 그릇을 치우고, 반찬, 양념, 휴지, 컵, 물을 보충하고, 카운터를 보고,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주방 이모님이 씻은 수저들의 물기를 닦아내는 일을 했다.

열 시간 내내 서 있기만 했다.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잠깐 앉았다 일어나는 것마저 눈치가 보였다. 20분가량인 점심 식사 시간까지 합해 휴게 시간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 급여는 현금으로 받았다.

알바노조 모임에 참여한 정씨는 주휴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제기하기 위해선 근로계약서가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이에 정씨는  사장에게 '근로계약서'를 요구하기로 했다. 근로계약서만이 정씨가 그곳에서 일을 했다는 사실을 보증할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이었다.

12월 1일, 사장에게 근로계약서를 요구하자 흔쾌히 써주겠다는 대답을 들었는데, 돌아오는 근로계약서는 없었다. 그 다음 주가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재차 물어보니 사장은 다음날 주겠다는 답을 했다. 바로 다음날, 정씨는 반으로 접은 근로계약서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이와 더불어 면접 당시 제출했던 이력서, 보건증과 준비해둔 현금 봉투 그리고 "다시는 나오지마"라는 말도 함께 받았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해고됐다.

정씨는 집에 돌아와 사장이 건넨 근로계약서를 펴봤다. 반으로 접혀있던 근로계약서는 '백지'였다. 그렇게 정씨가 일한 3개월여의 시간은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버렸다. 부당해고, 체불임금을 입증할 '명백한 증거'가 사라진 것이다.

유명 프랜차이즈도 외면하는 서면 근로계약서

베스킨라빈스, GS24, 맥도널드, 뚜레주르, 던킨도너츠 등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고용노동부와 함께 '근로조건을 명시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해 근로자에게 교부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이곳에서도 근로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은 '유령 알바'들이 존재한다.

근로계약서 교부 의무화를 주장하고 있는 알바노조. 근로계약서와 함께 임금명세서 교부를 의무화해야 한다.
 근로계약서 교부 의무화를 주장하고 있는 알바노조. 근로계약서와 함께 임금명세서 교부를 의무화해야 한다.
ⓒ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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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일했던 ㄱ씨는 1년 8개월 동안 매장에서 일했지만 근로계약서가 없었다. 그는 야간근로수당 지급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사장은 근로기간 및 시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임의대로 퇴직금을 지급했고, 사장 또한 그 기록을 제대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 그는 언제 얼마나 일했는지 입증할 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체불임금을 알기가 어려운 상태로, 현재 퇴직금 부족분을 포함한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부에 진정을 한 상태다.

지난 9월부터 3개월 가량 주말 동안 대형마트 입점 업체에서 일했던 ㄴ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형마트에 보고하기 위해 이력서와 등본을 제출했지만 근로계약서는 없었다. 한 달이 지나도 점장이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고 현재까지 한 푼도 만지지 못했다. 다른 알바 노동자들의 임금도 체불되어 있다고 했다. 고용노동부 진정을 통해 도움을 구할 예정이지만 근로계약서도 없고 임금을 주고 받은 적도 없어서 막막하기만 하다.

근로기간이 명시된 근로계약서가 없어 부당해고를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겨울방학을 맞아 유명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던 ㄷ씨는 어느 날 갑자기 관리자로부터 "예전에 일했던 사람이 다시 일하기로 해서 그만 나와도 된다"는 문자를 받았다. ㄷ씨는 5개월 정도 꾸준히 일할 계획으로 열심히 일해 왔는데 경력자를 쓰겠다는 이유로 갑자기 해고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계약 기간을 증명할 방법이 현재로선 없는 상태다.

3년간 처벌은 단 3건... 노동부의 단호한 대책 필요

지난해 8월, 통계청이 발표한 '근로형태별 근로계약서 서면 작성 비율'에 따르면 알바들이 상당수 포함된 시간제 노동자는 서면 근로계약서 작성 비율이 38.6%에 불과한 상태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지만 현실은 제자리 걸음인 것이다. 문제를 풀어가려면 고용노동부의 단호함이 필요하다.

근로형태별 근로계약서 서면 작성 비율. 2013년 8월 시간제 노동자는 서면 근로계약서 작성비율이 38.6%에 불과하다.
 근로형태별 근로계약서 서면 작성 비율. 2013년 8월 시간제 노동자는 서면 근로계약서 작성비율이 38.6%에 불과하다.
ⓒ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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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신계륜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3년간 근로계약서 미 작성으로 적발된 4585건 중 처벌은 단 3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적발 이후 14일의 시정 기회를 주도록 되어 있으므로 적발과 동시에 곧바로 처벌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4585건 중 단 3건을 제외하고 모두 14일 내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는 말인데, 고용노동부가 과연 이를 제대로 확인했을지 의문이다.

편의점, 식당, 커피숍, 호프집 등 우리 일상에서 수없이 만나는 알바들. 이들 중 많은 알바들이 유령 취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근로계약서 1장이 없어서 일한 만큼 시급을 못 받아도, 떼인 돈이 있어도, 갑자기 해고 돼도 권리 주장이 막막한 신세인 것이다. 노동부는 시간제 일자리 운운하기 전에 근로계약서 주고 받기부터 제대로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강서희는 알바노조 활동가입니다. www.alba.or.kr 알바노조(02-3144-0936)



태그:#알바, #근로계약서, #알바연대,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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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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