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주문을 받고 있는 박금자 할머니 바리스타
 주문을 받고 있는 박금자 할머니 바리스타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광명시노인종합복지관 3층에 자리 잡고 있는 추억의 찻집 '희희낙락'에는 6명의 할머니 바리스타가 일하고 있다. 이 가운데 5명이 68세 동갑내기들이다. 이들은 하루에 3시간씩 일주일에 4일 동안 원두커피를 포함한 다양한 차를 팔고 있다. '희희낙락'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운영하며, 6명의 할머니 바리스타들이 3명씩 교대로 근무한다. 이들이 한 달에 받는 급여는 20만 원~30만 원 정도.

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박봉'일지 모르지만 할머니 바리스타들은 아주 만족해한다. 이들 바리스타들은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최고의 엘리트'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6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에 일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추억의 찻집 '희희낙락'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박금자 할머니를 만났다. 올해 68세로 돼지띠라고 밝힌 박 할머니는 "남들은 나를 60살로밖에 안 본다"며 "일을 하니 마음도 몸도 젋어졌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너무 기쁘고 감사한 게 많아요. 68세가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되게 좋은 거야. 나 같이 나이 많은 사람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기쁨, 그게 너무 좋아."

추억의 찻집 '희희낙락'은 광명시노인종합복지관 3층에 있다.
 추억의 찻집 '희희낙락'은 광명시노인종합복지관 3층에 있다.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박 할머니는 몇 번이나 나이 많은 사람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고,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 할머니가 '희희낙락'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2년 2월. 올 2월이면 경력 2년차가 된다.

박 할머니는 막내딸의 권유로  노인복지관 찻집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게 되었다. 지난 2011년 12월, 박 할머니의 막내딸이 광명시로 이사했다. 박 할머니는 손주를 봐주러 막내딸에게로 왔고, 집안일을 하면서 아이를 돌봤다.

"집에만 있으면 세수도 안 하게 돼. 빨래하고, 청소하고, 손주 봐주면 세수할 시간도 없어."

그렇게 집에서 세수조차 안 하고 지내던 박 할머니를 막내딸이 세상 밖으로 끌어냈다. 9년 전 '영감님'이 세상을 떠난 뒤, 박 할머니는 바깥에 나가기가 싫었단다. 우연히 노인복지관에 왔다가 모집광고를 본 막내딸이 박 할머니 대신 지원서를 제출했고, 박 할머니는 싫다면서도 면접을 보러 갔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면접을 보러 온 것을 보고 박 할머니는 깜짝 놀랐다.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떨어진 줄 알았는데 저녁 6시에 합격했다는 전화가 온 거야. 그 때 정말 좋더라. 눈물 나게 고맙더라."

"건강이 허락하는 한 100살까지 할거야"

최정혜, 염숙경, 박금자 할머니 바리스타.
 최정혜, 염숙경, 박금자 할머니 바리스타.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시작한 초짜 바리스타 일은 처음에는 어렵지 않았다. 당시 추억의 찻집 '희희낙락'에 있던 커피기계는 완전 자동이라 원두를 넣으면 커피가 만들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박 할머니는 이름만 바리스타였던 것. 하지만 지난해에 새로 커피기계를 들여놨는데, 커피를 직접 기계로 뽑아내야 하는 거였다.

"처음에는 겁이 났어요. 자신이 없어서 이 기계로 하면 사표 낸다고 했어."

하지만 실제로 사용해보니 어렵지 않더라는 게 박 할머니의 얘기다. 물론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손으로 하려니 기계가 무거워서 손목이 아파 힘이 든단다. 또 일할 때는 서서 주문을 받고, 손님에게 인사도 해야 하기 때문에 다리도 아프다. 그래도 박 할머니의 결론은 "너무 좋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일할 수 있으니 좋고, 아침에 일어나서 서둘러 나와야 하니, 거울도 보고 화장도 하고... 그런 게 은근히 행복해. 또 돈도 생기잖아. 손주들 용돈 주니 행복하지, 여기 나와서 친구들하고 지내니 행복하지, 어르신들과 따뜻한 인사를 나누니 행복하지. 얼마나 좋아."

박 할머니는 같이 일하는 할머니 바리스타들이 죄다 동갑내기 친구라서 너무 좋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그 말을 하는 박 할머니의 표정은 아주 밝았다.

박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손님들이 계속해서 와서 주문을 한다.

"유자 하나, 커피 하나, 2천 원입니다. 커피는 원두 드릴까, 일반 드릴까?"

희희낙락의 원두커피. 한 잔에 천 원이다.
 희희낙락의 원두커피. 한 잔에 천 원이다.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할머니 바리스타가 내린 커피.
 할머니 바리스타가 내린 커피.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주문을 받는 솜씨가 노련하다. 경력 2년차 바리스타의 여유가 묻어난다. 인터뷰를 하는 박 할머니 대신 최정혜 할머니와 염숙경 할머니가 원두커피를 뽑아내고, 유자차를 탄다. 망설임이 없는 손놀림이다. 두 분 할머니는 내게도 맛있는 아메리카노를 뽑아주었다. 맛있다.

"많을 때는 하루에 150잔 정도, 손님이 없을 때는 80~90잔 정도 팔아. 날씨가 나쁠 때는 60~70잔이 팔릴 때도 있어. 여름에 행사할 때는 최고 40만 원까지 판 기록이 있어."

박 할머니가 처음 바리스타를 시작했을 때는 손님이 지금의 절반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찻값이 싸면서 분위기 좋은 지역의 명소로 알려지면서 손님이 늘었다. 인근학교의 학부모들도 모임을 이곳에 와서 할 정도라고. 노인복지관 1층에는 소하1동주민센터가 들어와 있는데 직원들도 손님이 오면 이곳으로 올라온단다.

커피를 포함한 대부분의 찻값은 1천 원. 커피와 호빵을 함께 주문하면 1500원이다. 아주 착한 가격이니 차를 마시러 오기에 전혀 부담이 없다. 

"나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100살까지라도 일 할 거야."

언제까지 일하고 싶으시냐는 질문에 박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다른 바리스타 할머니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서은경 관장 "처음엔 적자... 지금은 인건비·재료비와 공공요금 부담"
추억의 찻집 '희희낙락'에서 할머니 바리스타가 원두커피를 내리고 있다.
 추억의 찻집 '희희낙락'에서 할머니 바리스타가 원두커피를 내리고 있다.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광명시노인종합복지관 추억의 찻집 '희희낙락'이 처음 문을 연 것은 지난 2010년 3월. 서은경 노인복지관장은 "목적은 처음부터 어르신 일자리 창출이었다"고 밝혔다.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도 사회 문제지만, 일하고 싶어 하는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요구가 늘어나고 있던 시점이었다.

노인복지관 3층에 안내데스크가 있던 자리를 카페로 개조, 추억의 찻집 '희희낙락'을 만들었고, 노인 바리스타를 선발했다. 5명의 어르신이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동 커피머신을 사용했는데 작동법만 알면 간단하게 커피를 뽑을 수 있었어요. 그러다가 어르신들의 역량을 강화할 목적으로 바리스타 전문교육을 실시했고, 2013년에 새로운 커피기계를 들여놓고 직접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릴 수 있게 했지요."

김성진 복지관 과장의 말이다.

찻집을 시작했을 때는 당연히 적자였다. 어르신들의 임금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2011년부터 인건비와 재료비를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커피와 찻값이 싸지만, 다른 카페들처럼 건물 임대료와 전기요금 등의 공과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르신들의 인건비 확보였다는 것이 서 관장의 설명이다.

2013년 12월부터는 손님이 늘어나면서 수입이 증가, 인건비와 재료비를 충당하고도 공공요금 30만 원을 부담하는 수준까지 되었다.

어르신들의 급여는 20만 원~30만 원 정도. 시작 단계에서는 20만 원으로 정해져 있었다. 어르신들은 손님이 많으면 자발적으로 시간외 근무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르신들은 찻집 수입이 늘어나면서 시간 외 수당도 받아 30만 원 정도가 되었다. 급여 상한선은 30만 원이라는 게 서 관장의 설명.

바리스타 일을 하면서 어르신들이 많이 달라졌다.

"직업관 같은 게 생겼어요. 바리스타 교육과정에 벤치마킹을 하는 내용이 있어서 다른 카페에도 견학을 가기도 했습니다. 보고 배우려고요. 어르신들은 제2의 인생을 산다고 좋아 하십니다. 젊은 사람을 이해하고, 젊은 사람들의 기호나 유행 트렌드도 알게 되면서 세상과 소통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시는 것 같구요."

60대 중반 이상을 훌쩍 넘긴 노인들은 노화현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접는 경우도 있다. 70대의 최고령 바리스타 할머니가 일을 그만 둔 것은 그 때문. 복지관 내의 다른 일자리를 원해 '직업 전환'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아메리카노만 팔고 있는데 카페라떼 등 다른 메뉴가 가능한 기계니까 교육을 통해 새로운 커피 메뉴를 개발하는 중입니다."

서 관장은 바리스타 교육을 지속적으로 해서 어르신 바리스타를 계속 양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바리스타는 광명시에 거주하는 60세 이상의 노인은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태그:#광명시, #광명시노인종합복지관, #바리스타, #찻집, #박금자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