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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 들꽃>
 <비무장지대, 들꽃>
ⓒ 세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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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는 정전 60년이 된 해였다. 정전과 함께 태어난 DMZ(비무장지대)는 동족상잔의 비극과 분단의 현실 때문에 아픈 곳이 됐다. 개인적으로는 아들의 입대로 더 애잔한 곳이 되기도 했다.

아들은 현재 모 전방 사단의 육군 병사로 복무 중이다.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늘 긴장 해야만 하는 GP나 OP 등, 눈앞에 북한군을 앞두고 있는 곳에서는 근무하지 않지만 DMZ에 대한 애잔함과 관심은 아들의 입대와 함께 더욱 깊어졌다.

군에 아들들을 보낸 수많은 부모들처럼 북한과의 긴장고조 소식이 들려오면, 아들의 안부가 더욱 더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혹시나 금방이라도 DMZ에 돌발 상황이라도 발생하면 어쩌나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한다. 당연히 쉬 잠들지는 못한다. DMZ는 내게 이런 곳이다.

한편으론 생태적 환경, 즉 그곳에 깃들어 사는 생물들이 무척 궁금해지곤 한다. 또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내 아들 또한 입대 무렵까지 들꽃이나 나무보다는 친구들과의 만남이나 젊은이들이 즐기는 놀이나 문화 등이 우선이었다.

군 입대 후 달라진 아들, 꽃 이야기를 하다니

이런 아들이 군 입대 후 처음 만난 내게 비무장지대에서 만난 경이로운 풍경과 그곳에서 만난 꽃들에 대해 들려줬다. 무엇에라도 홀린 듯, 마침 꿈꾸는 듯한 눈으로 말이다.

이후 산이나 들에서 들꽃들을 만나며 아들의 눈과 가슴에 스며들었을 비무장지대의 풍경과 꽃들이 궁금해지곤 했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그리고 얼마나 경이로웠으면 그런 눈빛으로 이야기했을까. 대체 아이가 2012년 그해 여름에 처음 봤다는 꽃들은, 너무나 신기했다는 그 꽃들은 어떤 꽃들이었을까.

<비무장지대, 들꽃>(세리프 펴냄)은 읽기 전에 이런 생각부터 들었던 책이다. 아들이 휴가 나오면 함께 책속의 꽃들을 넘겨보면서 '그때 만난 꽃이 어떤 것들인지 꼭 물어 봐야지' 생각을 하며 읽은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DMZ에 사는 들꽃들만을 모아놨다. 저자는 부부. 둘 다 DMZ 생태 연구활동이나 관련 강의 등을 하는 이들이다. 부부가 비무장지대에 사는 들꽃들을 탐사한 지는 10여 년. 이 책 <비무장 지대, 들꽃>은 그 결과물이다.

책이 소개하는 들꽃은 모두 200종. 논이나 밭·공터 등에서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는 개망초·광대나물 같은 들꽃부터 어느 정도의 높이가 있는 산에서나 볼 수 있는 꿩의바람꽃이나 앵초·산자고·층층잔대·처녀치마·세잎쥐손이, 그리고 10여 년 전까지 비무장지대에서 그나마 쉽게 볼 수 있었으나 이제는 많이 사라져 귀해진 흑삼릉과 천마까지 만날 수 있다.

부싯깃의 특징, 예전부터 알았더라면

큰앵초(2010.5 설악산)
 큰앵초(2010.5 설악산)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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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만 자란다는 금붓꽃(2013.5 북한산)
 우리나라에서만 자란다는 금붓꽃(2013.5 북한산)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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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드라마 <근초고왕>에서 부여준과 해비가 산자고 독약을 탄 술을 함께 마시고 자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렇듯 산자고는 독이 들어있는 풀이다.
예전에 '부싯깃'으로 요긴하게 쓰였다는 솜나물(2013.5.북한산)
 예전에 '부싯깃'으로 요긴하게 쓰였다는 솜나물(2013.5.북한산)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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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봐도 늘 반가운 들꽃, 봄바람이 불어올 때면 꿩의 울음소리에 잠이 깨어 피어난다고 하는 꿩의바람꽃의 학명은 '아네모스(Anemos,그리스어로 바람)'에서 유래됐다. 이름만큼이나 예쁜 미소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꿩의바람꽃.

- 솜방망이는 예전엔 나무 막대나 쇠꼬챙이 끝에 솜처럼 뭉쳐서 묶어 놓고 기름에 찍어 불을 붙이는 데 쓰곤 했다.

- 솜나물의 잎은 말려서 불 지피는데 사용하여 '부싯깃나물'이라고도 한다. 부싯깃이란 부싯돌로 불을 붙일 때 그 사이에 대는 것을 말하는데, 솜나물 외에도 수리취나 쑥 잎을 쓰기도 했다.

- 제비 새끼가 태어나면 어미가 새끼의 눈을 살균해 주기 위해 발라주는 것이 바로 이 애기똥풀의 유액이다.(<비무장지대, 들꽃>중에서)

그동안 들꽃이나 나무·곤충 등 자연 생태 관련 책을 꽤나 많이 읽어온 것 같다. 그럼에도 관련 책이 출간됐다 싶으면 다시 관심이 가곤 한다. 사실 희귀종이나 특정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 일부만 빼고 그 꽃이 그 꽃인 경우도 많다. 그러니 중복되는 내용들도 많다. 그러나 그 책 저자만의 남다른 시선과 상식들을 접할 때가 많다.

아마도 나와 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비무장지대, 들꽃>, 이 책도 빼놓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이 책 역시 여타의 책들에서 쉽게 읽을 수 없었던 내용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산자고나 꿩의바람꽃·솜방망이·솜나물·애기똥풀 등 상당히 많은 꽃들을 만나왔다. 그런데 솜나물이 예전에 부싯깃으로 쓰였다는 것을 다른 책에서 읽지 못했던지라 멋있는 모습만을 살려 찍는 데 신경을 써왔다. 때문에 내가 찍은 솜나물을 보고 들국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아마도 솜나물이 예전에 부싯깃으로 쓰였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부싯깃으로 쓰인 이유가 잎에 촘촘한 솜털 때문이란 걸 알았다면, 보송보송한 솜털을 최대한 관찰했을 텐데 말이다. 솜나물의 특징인 솜털과, 들국화와는 다른 꽃술을 최대한 부각시켜 찍었을 텐데. 그랬다면 이 꽃과의 만남이 좀 더 살가웠으리라.

제비가 새끼의 눈을 살균하는 데 애기똥풀의 유액이 쓰인다는 것도 이 책에서 처음 접했다. 이름이 정겨운 데다가 꽃의 특징이나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기 좋기 때문에 유치원생 아이들도 대부분 알 정도로 애기똥풀은 유명하다. 그러나 제비와 관련해서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신선하다.

분단의 상징, 동식물에게는 '안전구역'이 됐구나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어서 국외반출 승인대상 식물 지정된 나도개감채 꽃봉오리(2013.4.북한산)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어서 국외반출 승인대상 식물 지정된 나도개감채 꽃봉오리(2013.4.북한산)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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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개감채기 활짝 피면....(2013.4.북한산)
 나도개감채기 활짝 피면....(2013.4.북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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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개감채 무리(2013.4. 북한산)
 나도개감채 무리(2013.4. 북한산)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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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개감채는 숲속에서 드물게 자라는 까닭에 쉽게 볼 수 없는 국외반출 승인대상 식물이다. 이 나이에도 처음 만나는 들꽃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여 내려오는 길에 부부끼리 연신 얘기를 주고받는다. 지난해(기자 주:2012년) 산림청에서는 나도개감채를 비롯해서 기후 변화로 멸종 또는 감소 위기에 놓인 산림식물 100종에 대해 '기후변화 취약 산림식물종 적응 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비무장지대, 들꽃>중에서)

정전협정으로 인한 비무장지대 설정 60년. 민족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 대부분은 아직까지도 민간인의 출입과 개발이 통제되고 있다. 하지만 덕분에 그곳에서 사는 동식물은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안전하게 보호받게 됐다. 때문에 그곳은 이제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 됐다. 고란초·흑삼릉·쥐방울덩굴·두루미천남성·천마 등 희귀종들과 멸종 위기에 놓인 법정 보호종들이 그나마 살아남은 안전구역이 된 것이다.

비무장지대의 들꽃 거의 전부랄 수 있는 200종의 들꽃들을 담았다는 의미도 남다른데, <비무장지대, 들꽃>에는 들꽃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꽃의 이름 유래, 관련 전설, 위에 인용한 것처럼 생태적 특징과 관련 상식 등을 풍부하게 녹여놨다. 그래서 매우 가치있고, 의미 있는, 비무장지대 60년 생태를 알 수 있는 책이다.

참고로, 이런 책들은 사진이 아무래도 중요하다. 책 설명을 보니 521장의 사진이 삽입됐다는 설명이 보인다. 그리고 반갑게도 이 부부의 <비무장지대, 곤충>과 <비무장지대, 새>가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란 소식도 들려 온다.

*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책속에서 만난 들꽃 중 일부는 필자가 찍은 사진으로 넣었음을 밝힌다.

덧붙이는 글 | <비무장지대, 들꽃>(김계성·김경희 | 세리프 | 2013-12-23 | 1만4800원)



비무장지대, 들꽃

김계성.김경희 지음, 세리프(2013)


태그:#비무장지대, #DMZ, #정전 60년, #나도개감채, #흑삼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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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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