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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고등학교 때 기타를 혼자 배웠다. 대학을 진학하여 대학 기숙사에 들어갈 때도 기타를 가지고 들어갔다. 일 년 뒤 군대를 가기 위해 학교를 휴학하고 집에 있다가 작년 10월 말에 입대하였다. 입대 전날, 합천 황매산 자락으로 귀농하여 논밭을 일구는 농부 몇 분을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다. 곡차를 한 잔 기울이다, 헤어지기 섭섭한 마음에 문득 아들에게 기타 연주와 노래를 부탁했다.

거절하지 않고 선선히 기타를 집어든 아들이 부른 노래는 놀랍게도 김광석의 노래들이었다. '일어나'로부터 시작하여 '나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그리고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까지 아들 세대에는 소화하기 힘든 노래까지 불러서 좌중을 즐겁게 하였다. 아들이 기타를 배우며 만난 건 김광석이었다. 김광석의 느낌과 김광석의 정서, 김광석의 창법을 따라갔던 것이다.

나는 그 때 아들의 모습에서 김광석의 작은 부활을 보았다. 김광석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살아있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김광석을 불러내었고, 그 때마다 김광석은 부활하며 빛나고 있었다. 1996년,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통기타 하나로 세상을 어루만졌던 김광석은 아직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김광석의 힘이었다. 김광석 노래의 힘이었다.

20년만에 처음 공개되는 고 김광석 육필 원고
▲ 김광석 유고집 <미처 다 하지 못한> 20년만에 처음 공개되는 고 김광석 육필 원고
ⓒ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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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유고집 <미처 다 하지 못한>(예담)은 '미처 다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간 김광석이 그나마 남겨둔 일기와 편지, 수첩메모와 그의 자의식, 미처 몰랐던 외로움과 아픔들, 67개의 육필 원고와 64곡의 미완의 노래와 가사, 그리고 미완의 인생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내었다. 책 표지엔 '김광석 에세이'라고 했지만 책의 대부분은 일기와 메모였다.

김광석은 1964년 1월 22일에 나서 1996년 1월 6일에 갔다. 노래 '서른 즈음에'를 부르고 얼마 안 되어, 서른 두 살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갔다. 그렇다, 김광석 하면 떠오르는 건 1000회가 넘는 소극장 공연과 두고두고 불리는 주옥같은 노래들, 그리고 안타까운 죽음일 것이다. 젊은 날 어느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노래 작업과 함께, 어느 누구도 감당하기 어렵게 죽음을 앞당긴 그를,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20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왜 그리 무심했던 걸까.

쓸쓸함의 시인, 김광석

그의 글을 읽으면 자꾸만 그의 짧았던 삶과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인과의 고리들을 찾으려고 애쓰는 나를 본다. 그게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글의 편편에 그의 아픔과 쓸쓸함과 공허함이 늘 강물처럼 흘렀으므로 그의 죽음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연상 작용의 길목이 되었다.

김광석은 시인이었다. 자의식이 강한 일기들은 시의 형태로 짧은 글 속에 담아 빛나곤 했다.

바람이 분다.
마치 네 향기가 모두 사라져버린 후,
습기 먹은 내 방의 눅눅한 냄새가 더욱 확연히 느껴지듯.
봄의 신선한 바람이기보다는 먼지투성이의 누런 바람, 황색의 바람.
맑지 못한 내 눈자위에 애써 눈물 흘려 맑게 해보려 하지만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그저 부는 바람에 얼굴을 맡긴 채 찡그릴 뿐. (바람의 눈물)

일기는 사월의 바람으로 시작되었다. 누런 바람, 봄 가뭄과 함께 다가온 황사바람은 눈물도 흐르지 않고 메말라 버린 김광석의 마음이 아니고 무엇일까. 이 일기는 푸석푸석한 쓸쓸함으로 어두운 하늘을 걸어 나갈 그의 앞길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가 시인이라면 쓸쓸함의 시인이다. 그의 일기 속에는 무수한 쓸쓸함이 쓸쓸하게 흩어져 있다. 그 쓸쓸함은 김광석의 자의식과 이어져 있다. 그는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지만 바쁨 뒤에 그림자처럼 숨어 있는 쓸쓸함을 스스로 털어내기가 힘들었나 보다.

"바쁘다 못해 정신 차릴 수 없던 하루하루가 스친다. / 겨울이 익어갈 무렵 문득 다가온 내 삶의 허무"(눈)이라든가, "혼자 누운 방안이 쓸쓸해서 / 창가에 서성이는 햇살도 외롭게 보"이고(무제 1),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또 한 사람을 가슴에 묻고 지낸다는 것이 참 쓸쓸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슬픈 노래) 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물이 흐른다. 문득 내가 그 물 위를 흘러가는 부초 같다는 생각이 든다."(부초)는 허망함이나 "스치는 바람이 끝이나 시작이 없는 것처럼 애당초 인생은 의미 없는 것"(함정) 같은 허무함, 그리고 "비상구 / 비상구의 외로움 / 많은 사람이 없고 / 어쩌다 이동하는 사람이 있기에 / 늘 혼자인 듯한 외로움 / 불안함"(비상구), "즐겁지 않은 이유를 모른 채 나는 즐겁지 않다. / 또 이러다 가라앉는 것인가. / 무섭구나."(심연)와 같은 고백을 볼 때 '가라앉아' 가는 그도 함께 보인다. 어찌 보면 김광석 노래의 힘은 바로 이 공허함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따라 들었다.

안일한 평화보다 흐느끼는 사랑을 택하리라

그의 글들을 읽어보면 쓸쓸함과 함께 다가온 단어는 '사랑'이다. 수줍은 웃음같이 여린 그의 마음들은 견디기 힘든 이 많은 '심연'들을 극복하려고 자꾸만 사랑을 찾았을 게 분명했다. 그는 진실로 여린 사랑의 시인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사랑의 방법이 어렵더라도, 그 누군가 만든 기준에 의해 우리 사랑의 방법을 평가할 것인가. 가장 솔직해야 할 사랑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힘들어하는가. 사랑함, 주저함이 없는 것, 사랑함에 떳떳할 수 있는 것,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사랑하는 것을, 마음의 평안이나 그저 안일한 평화가 주는 심심함보다, 가슴이 파이고 흐느끼는 밤이 있더라도 사랑하는 쪽을 택하리라. (세상에 밤뿐이라도 나는 사랑을 택할 것이다)

콘서트를 마치고 그는 동료들에게 묻는다. 환갑 때 뭐 하고 싶냐고. 한적한 곳에 오두막을 짓고 살겠다는 친구, 회춘 쇼를 하겠다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환갑 때 연애하고 싶다고 말한다.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로맨스를 꿈꾼다. 그 로맨스는 번개를 맞은 것처럼 격렬해야 한다고 덧붙이면서. 그러나 그는 사랑으로 많은 것을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함을 알았다. 아프기 때문에 괴롭지만 또한 아프기 때문에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을 사랑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떤 때는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을 보며 / 나는 사랑하기 위하여 일어서야지 / 모두 다 소중하게 태어나서 / 아름답게 살아야 할 필연을 위해 / 사랑해야지"(사랑하기 위하여) 하고 힘차게 노래하지만, 또 어떤 때는 "좋아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 살이 찢기는 아픔만 같은 헤어짐을 /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사랑하기 때문에 아픔을 참아내지만 / 그래도 아픔은 뼈저립니다 / 그래서 좋아하지 않기로 합니다 / 그래서 사랑이라 말하지 않고 / 그저 정이라 생각하기로 합니다 / 그러나 마음 구석에 타오르는 불길은 / 그저 훅 불어서는 꺼지지 않습니다"(깊이) 하고 주저하기도 한다.

김광석의 이력서와 노래에 담긴 사연들

이 책의 두 번째 부분에는 김광석이 남긴 메모에다 소극장에서 공연할 때 노래하기 전에 그가 들려주었던 노래의 사연들을 모아 재구성해 놓았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보인다. 쓸쓸함과 사랑으로 다 볼 수 없었던 김광석의 다양한 면모를 이 부분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그의 대학 생활과 입대와 복학의 모습이 나오고, 어느 날 한 친구에게 노래책 한 권을 선물 받고 세상에 눈을 뜨는 그의 모습도 나온다. 그 노래책에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재개발로 헐리게 된 집의 아이, 아버지를 따라 일 나갔다가 땀 흘리는 아버지를 보고 눈물 흘리는 아들, 그리고 일하다 손가락을 잃은 노동자의 아픔들이 담겨 있었다. 그는 이 책을 읽고 눈물을 쏟으며, 그저 라디오나 레코드판으로 골방에서 듣는 노래들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참가한 노래작업이 '노래를 찾는 사람들' 첫 번째 앨범이다. 이 앨범은 1987년 5월에 나왔는데, 그가 산울림의 김창완을 만나 '동물원' 1집을 낸 때가 1988년 1월이었으니, 반 년 정도의 차이를 두고 김광석은 두 개의 방향으로 음악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김민기를 만나 어린이 뮤지컬 <개똥이>를 만든 것도 그 즈음이었다. 그러다 함께 노래하던 멤버들은 하나둘 떠나가고 결국 혼자 남아, 혼자 노래하게 된다.

'사랑했지만',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부치지 않은 편지',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나른한 오후', '외사랑'에 대한 사연들도 재미있다. 그 사연들 속에 사랑에 대한, 상실에 대한, 나이에 대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고, 노래 작업으로 분주한 모습도 보인다. 그는 한 해 동안 자그마치 개인 공연만 이백 회 했고, 다른 사람 공연의 초대 손님 일흔두 번, 대학 축제 여든 번, 밤마다 <밤의 창가에서> 라디오 공연을 계속했다. 한 해 동안 이 많은 활동을 했다니, 거의 초인적으로 공연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마침내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쯤에 다음과 같이 다짐한다.

1997년 7월 이후로 적어도 3개월에 한 번씩은 개인 공연이었고, 축제다 행사다 방송이다 눈코 뜰 새 없었다. 공연을 마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두 시간여의 생방송을 위해 부지런히 달려가곤 했다. 내가 어디쯤에 흐르고 있는지 도저히 강변을, 흐름의 주변을 볼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흘렀다. 3월부터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내 마음의 갈등의 원인은 바로 이런 생활 때문이었다. 생활의 규모와 규칙을 정해야 할 때다. 6월의 지방 공연과 7월 공연을 끝으로 쉴 것이다. 그 누가 뭐라 해도 천천히 흐를 것이다. (나는 천천히 흐를 것이다)

가을, 불교방송국 17층에서 라디오 방송 녹음을 하다가 창가에서 문득 발견한 메뚜기 한 마리. 그는 메뚜기를 잡아 창문 밖으로 날려주었다. 공해 심한 서울에서 살아갈 메뚜기를 측은해 하는 그에게 도리어 메뚜기가 일침을 놓는다. 너도 살아 있어서 움직이고, 나도 살아 있어서 움직인다. 그러니 사치스러운 생각 말고 열심히 살아. 메뚜기의 일침으로 더욱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을까. 아니면 '열심히 살아.' 하는 말이 도리어 삶과 죽음을 함께 고민하는 김광석의 속내를 보인 것일까.

슬픔과 눈물을 빗물과 노을로

책의 제목처럼 김광석이 미처 다 하지 못한 건 무엇일까. 사랑일까, 노래일까, 성공일까, 아니면 인생일까. 그 모두이겠지. 그는 다섯 번째 앨범을 준비하는 도중에 우리 곁을 훌쩍 떠났다. '말없이 고개 숙이며 밤길을 걸으면 눈물 속에 흩어지는 지난 얘기'를 가슴에 품고 떠났다. '마음속 깊은 곳에 아직도 남아 끝없이 흐르는 외로움은 거두고, 이제는 말을 해야지 말을 해야지. 가릴 것 하나 없이 말을 해야지' 하고 다짐했지만 '미처 다 하지 못한' 말들을 남겨두고 그는 떠났다.

그러나 그의 삶을 눈물로만 바라보는 것은 잘못이다. 그는 비록 눈물을 흘리지만 '저 하늘의 구름처럼 슬픔들을 모아다가 빗물로 씻'고 싶어 했고, 저문 하늘의 노을처럼 '슬픔들을 모았다가 얼굴 붉히며 돌아서'기를 바랐다. 슬픔과 눈물을 승화하여 빗물과 노을이 되기를 원했다. 그렇게 그의 노래는 힘이요 삶이 되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 시와 노래는 애닲은 양식
아무것도 뵈지 않는 암흑 속에서 / 조그만 읊조림은 커다란 빛
나의 노래는 나의 힘 / 나의 노래는 나의 삶

자그맣고 메마른 씨앗 속에서 / 내일의 결실을 바라보듯이
자그만 아이의 울음 속에서 / 마음의 열매가 맺혔으면
나의 노래는 나의 힘 / 나의 노래는 나의 삶

거미줄처럼 얽힌 세상 속에서 /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가지처럼
흔들리고 넘어져도 이 세상 속에는 /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있는 한
나는 마시고 노래하리 / 나는 마시고 노래하리 (김광석의 '나의 노래')

덧붙이는 글 | <미처 다 하지 못한>, 김광석, 예담, 2013년 12월 20일, 1만 4천 8백 원



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

김광석 지음, 예담(2013)


태그:#김광석, #쓸쓸함과 사랑, #서른 즈음에, #나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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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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