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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이를 임신하고 20주가 다 돼가던 때, 산부인과에서 성별을 알려줬다. 엄마를 닮았다 했다. 시절이 그런 시절도 아닌데 첫 아이가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게 조금은 아쉬웠고, 시댁에 괜히 죄송스러웠다. 첫 손주가 딸이라는 소식에 시부모님께서는 "우린 딸이든 아들이든 다 괜찮아, 첫딸은 살림밑천이라잖아"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몇 번이나 들은 '첫 아이를 아들(나의 남편)을 낳아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몰랐다'는 시어머님의 옛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던 게 사실이다.

까꿍이의 신생아 시절
▲ 내 첫 아이 까꿍이의 신생아 시절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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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첫아이 딸을 낳고 10개월이 될 무렵 둘째가 찾아왔다. 많은 이들이 "딸 하나 있으니 이젠 아들도 키워봐야지"라는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첫 아이로 아들을 바랐던 난 딸을 낳았기에 둘째는 동성의 딸을 낳았으면 했다. 둘째는 꼭 아들을 낳아 시집 간 가문의 대를 잇는 며느리로서의 소임을 다 하라는 친정엄마의 말씀이 숙제처럼 남았지만, 내게는 없는 자매애를 까꿍이에게 최고의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었다.

친정엄마보다 더 좋다는 '친정자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분위기 속에 태어난 나는 위로 오빠가 하나뿐이다. 친가 외가 통틀어도 사촌 오빠들뿐이다. 아래로 사촌 여동생들이 있지만 나이 차도 있고 한 다리 건너인 사촌지간이라 끈끈한 자매애로 연결된 여동생은 없다. 어려서부터 언니나 여동생이 있는 친구들을 무척 부러워했었는데,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보니 친정엄마보다 더 힘이 되는 친정언니가 더 절실해졌다. 살면서 이러쿵저러쿵 속상한 일 털어놓고, 급할 때 아이를 맡기기에 친정자매만한 이가 또 있을까. 그리고 '아들은 결혼하면 사돈집 아들이고 딸은 시집가도 평생 내 딸'이라는 농담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결과는 아들이었다. 아들 소식에 남편은 '표나게' 좋아했다(아직도 아니라고 하지만). 아들이든 딸이든 괜찮다 하셨던 시댁에서도 둘째 출산이 임박하자 남편이 입었던 배냇저고리와 속싸개와 꽃등심을 보내주셨다(첫째 때 안주시고 왜 둘째때 주시냐는 우리 부부의 물음에 '있는지 몰랐는데 이제야 생각이 났다'며 웃으셨다…, 과연 그럴까). 아들을 학수고대하시던 친정부모님께선 '이제 할 도리를 다했으니 애는 그만 낳고 출산으로 쉬었던 공부와 일을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딸-아들-딸' 금메달 가능할까

닮아도 너무 닮았다
▲ 날 닮은 내 딸 닮아도 너무 닮았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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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난 딸 둘을 둔 엄마들만 보면 한없이 부러워졌고 꼭 까꿍이에게 자매를 안겨주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그러나 순한 딸을 키우다 너무나 예민한 아들을 키우니 딸이든 아들이든 두 번은 못하겠다 싶어 딸일 확률이 반반인 셋째 생각을 접고 말았다.

그러나 둘째 돌날 계획에 없던 셋째가 찾아온 걸 알았다. 전역하는 날 다시 입영통지서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간절히 바라는 딸이 찾아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굴은 나를 닮고 체형은 남편을 닮은 아주 건강한 아들이 태어나고야 말았다. '언니'가 되는 게 소원인 까꿍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받는 '남동생만 둘인 힘든 누나'가 됐다. 자아가 강하고 예민한 둘째와 고집도 힘도 센 셋째, 두 남동생을 둔 눈치 빠르고 소심한 우리집의 첫째 까꿍이.

두 돌도 되기 전에 동생을 보기 시작해 첫째로 사랑을 독차지한 시간도 짧고 어린이집도 가지 않고 늘 집에서 엄마 심부름에 동생들 돌보느라 '핑크가 제일 좋은 공주님'과는 거리가 먼 날을 지내고 있는 첫째 까꿍이가 새해를 맞아 어느새 여섯 살이 됐다. 내 뱃속에 담겨 있던 작은 아기가 이젠 무거워서 안기도 힘든 묵직한 여섯 살이 됐다니! 아직도 내가 까꿍이를 낳은 게 믿기지 않는데 늘 바쁘고 피곤한 엄마에게 보살핌보다는 짜증을 더 받으며 저 혼자 커서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됐다. 미안하고도 고맙게.

20개월 무렵 첫째 동생을 보며 TV보며
▲ 깡패 누나 20개월 무렵 첫째 동생을 보며 TV보며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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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닮아 가깝고도 버거운 딸아이

남편과 나 사이에서 태어나 성은 남편 성을 따라 이씨 가문의 아이가 되지만, 내가 열 달 동안 품어 산고 끝에 세상에 내보낸 내 아이이기에 나를 더 닮았기를, 친정 집안의 좋은 점들을 골라 닮기를 소원했다. 철없게 들릴지 몰라도 그렇게라도 해야 공평할 것만 같은 욕심이 생겼다.

내 바람대로 아이는 커가면서 점점 아빠 얼굴도 나오지만 아직은 나를 더 많이 닮았다. 어떨 때는 나도 깜짝 놀랄 만큼 나를 닮은 얼굴이다. 친정엄마를 비롯해 나를 어릴 적부터 봐온 사람들은 무심코 까꿍이를 내 이름으로 부르기도 할 정도로 얼굴이 닮았고, 표정과 성격은 더 나를 쏙 빼닮았다(까꿍이의 건조한 피부와 냉면과 떡국 좋아하는 식성은 아빠와 똑같다).

만 4년 넘도록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종일 집에 있지만, 내가 늘 동생들 젖 먹이고 세끼 밥 하느라 바쁘니 저 혼자(요새는 말문이 트여 떼쓰기가 한 단계 낮아진 둘째를 부하처럼 데리고 다니며) 온 집안을 보물찾기 하듯 돌아다니고 뭔가를 찾아내 놀이를 만들어 낸다. 산속 외딴집에서 오빠와 놀았던 내 유년시절처럼. 강한 성격의 할머니와 부모님 밑에서 내가 원하는 바를 바로 말하지 못하고 빙빙 둘러 말했던 어릴 적 나처럼 활발하면서도 소심한 까꿍이는 어린 날의 나이며 지금의 나이기도 하다.

열번도 더 끈 촛불
▲ 만 두돌이 되던 날 열번도 더 끈 촛불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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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이 닮았다"

이렇게 나를 쏙 빼닮은 딸이지만 너무 닮아 속상하고, 어떤 때는 외면하고 싶기도 하다. 좋은 것만 닮았으면 좋겠는데…. 그게 꼭 그렇다. 좋은 것보다는 '제발 그것만은!' 하던 것들만 가려 닮아가고 있다. 심지어 오랜 마음의 상처까지도.

나를 닮은 내 딸아이와 그런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어린 시절의 나와 친정엄마가 보이고, 이는 더 올라가 친정엄마와 내 외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장녀로 반듯하게 교육받고 사셨던 외할머니는 장녀인 내 친정엄마를 무척 엄하게 키우셨다. 그런 외할머니와의 관계는 엄마에게 상처로 남아 아직도 외할머니께 마음 깊은 곳에 서운함이 깃들어 있다고 하신다. 팔순이 넘은 노모에게 환갑이 지난 딸이 품고 있는 50년도 더 된 서운함을 알 수는 없지만, 조금은 알 듯도 하다.

30개월 무렵 심심하게 혼자 논다
▲ 심심한 까꿍이 30개월 무렵 심심하게 혼자 논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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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응모했던 가족 인터뷰 공모기사 "평생 힘겨루기만... 내겐 참 벅찬 배우자였다"의 한 부분을 발췌합니다-기자 말)

육아의 대물림, 마더쇼크, 파더쇼크

친정엄마: "니 외할머니가 무척 엄하셨어, 특히 나한테. 난 어릴 때 친정엄마에게 야단맞았던 기억뿐인데 동생들은 꾸지람 들은 기억이 하나도 없다더라. 그렇게 자란 내가 싫었는데 나도 모르게 너희들을 엄하게 길렀고, 너도 애들을, 특히 까꿍일 엄하게 키우더라. 네가 애들 야단치는 거 보는 거 정말 괴로워, 어린 날 내 모습을, 넌 혼내던 날 보는 거 같아서."

: "엄마가 까꿍이한테 정말 한없이 잘해주고 같이 놀아주고 그러는 거 보면 좀 서운하기도 해. 내 기억 속의 엄만 늘 바쁘고 무서웠는데…. 내가 엄마랑 얼마나 놀고 싶었는데…. 하긴 채연이도 매일 그래, 엄마랑 놀고 싶다고….(웃음)"

까꿍이 42개월 막내 백일잔치날
▲ 남동생만 둘 까꿍이 42개월 막내 백일잔치날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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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 "엄마가 아이를 야단치는 게 훈육이 아니라 감정싸움이더라, 엄마가 지치기도 하고 여자라 감정적이 되어서. 따끔하게 야단을 치면서 훈육을 해야 하는데 자꾸만 서로 지치는 감정싸움을 해. 니가 까꿍이 꾸중하는 걸 보면 꼭 반복을 해. 나도 그렇게 널 키웠겠지. 한 번 말해가지곤 아이들이 안들을 거 같고, 한번 말해선 내 마음이 안 풀릴 거 같으니까. 그런데 애들은 한번 이상 하면 안 듣거든."

: "'마더쇼크', '파더쇼크'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공감이 가. 성격도, 상처도 육아도 다 대물림같아. '본대로 자란다'더니 모성도 부성도, 훈육도 다 대물림 되는 거 같아."

친정엄마: "그게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원죄'라고도 하더라. 산들이(둘째)는 네 아빠를 닮았고, 까꿍인(첫째) 내 성격 그대로라 걱정이다. 소심하고 그런 게 애들한테 안내려가야 되는데 손주들한테까지 내려가서. 거기에 엄하게 키운 것까지 너한테서 반복되고 있으니…."

진격의 삼남매
▲ 다섯살-세살-한살 진격의 삼남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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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줄게 이야기해봐

본대로 자라고, 받은 대로 준다고 했던가. 얼굴이 닮고 식성이 닮은 것처럼 사랑의 방식도 상처의 아픔도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었다. 지난여름 어느 밤 늦도록 엄마와 나눴던 이야기를 다시 기억하며 여섯 살이 된 까꿍이와 나의 관계를 들여다본다.

속상하면 곁에 있는 엄마보다는 딸에게 마음껏 주지 못했던 사랑을 외손녀에게 무한히 베푸시는 외할머니를 먼저 찾는 나의 딸, 내 엄마의 첫 손주. 아직 젖을 먹는 두 남동생들에게 늘 양보하는 엄마 품이 그리워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나도 안아주면 좋겠는데…, 엄마 나중에 시간 나면 나도 안아줘." 

어쩌다 한 번 내가 업어주거나 안아주면 몇날며칠 자랑하는, 엄마 사랑이 너무나 고픈 애틋한 우리의 첫 아이.

친정엄마는 상처까지 대물림되는 자식과 손주들을 보시면서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가족인터뷰 내내 부탁하고 또 강조하셨었다.

셋이라서 신날때가 더 많아요
▲ 즐거운 삼남매 셋이라서 신날때가 더 많아요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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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말한 모든 걸 이겨낼 수 있는 게 가족 간의 대화야. 부모라도 어린 자식에게 상처 준 게 있으면 아주 작은 거라도 미안했다 잘못했다 용서를 구해야 상처가 바로 치유가 될 거 같아. 다 커서 지난날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 한다고 해도 상처 받고 자란 그동안의 세월은 보상받지 못하거든.

부모와 자식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 필요가 있어. 매일 아이들과 하루를 돌아보며 솔직하게 얘기해, 우리가 너희들에게 못해준 거 넌 꼭 해. 지금은 막내가 돌도 안돼서 니가 진이 빠져 힘든 거 알지만 그래도 좀 더 애를 써. 너처럼 안키우려면, 나처럼 후회 안하려면."

엄마가 언니도 되고 친구도 돼줄게

마구 어리광을 부리며 따뜻한 사랑을 받고 싶었던 나는 나도 모르게 하나뿐인 내 딸 까꿍이를 어린 날의 나처럼 외롭게 키우고 있었다. 친정엄마에게서 채우지 못한 마음을 없는 언니에게서 채우려 했던 난 보상이라도 하듯 딸을 둘 낳고 싶었지만, 결과는 딸 하나에 아들 둘을 낳았고 까꿍이는 어느새 저 혼자 자라 여섯 살이 됐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아쉬워할 시간이 없다. 환갑이 넘은 친정엄마의 마음 아픈 후회를 먼 훗날 내가 이어받지 않도록 엄마의 바람대로 더 늦기 전에 까꿍이의 마음을 살펴줘야겠다.

빛나라 까꿍아
▲ 하나뿐인 나의 딸 빛나라 까꿍아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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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꿍이가 먼저 풀죽은 목소리로 안아달라 하기 전에 안아주고(두 팔을 힘껏 펼치면 세 아이 모두 안아줄 수 있다), 내 얘기 좀 들어달라 하기 전에 아이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들어주며 내 이야기도 아이들에게 들려줘야지. 지나고 보니 어떤 모습이었건 간에 유년의 기억은 평생을 버티게 하는 힘이자 위안이다.

이왕이면 내 아이들의 유년의 뜰이 따스할 수 있도록 엄마로서, 언니로서, 친구로서 더 힘을 내어 사랑하고 보듬어줘야지. 이렇게 하루 종일 끼고 살며 아웅다웅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그래도 세 아이 모두 유치원 가고 학교 가서 오전 시간 자유부인이 될 날이 더 기다려지는 건 숨길 수가 없다. ^-^).

"빛나라 내 딸 까꿍아!"


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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